‣사람의 生死와 鬼神
孔子의 死生․鬼神論에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知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계로(季路)가 귀신(鬼神)을 섬김을 물은대 공자(孔子)가라사대 능(能)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거니 어찌 능(能)히 귀신(鬼神)을 섬기리오, 감(敢)히 사(死)를 묻나이다, 가라사대 생(生)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사(死)를 알리오」【註四】하니. 이는 사(死)의 도(道)는 곧 생(生)의 도(道)이오, 귀신(鬼神)의 도(道)는 곧 사람의 도(道)이니, 사생인귀(死生人鬼)는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한 것이라, 사람의 생전(生前)에 정신(精神)이 여하(如何)히 발생(發生)되고 또 지각(知覺)이 여하(如何)한 형태(形態)로서 여하(如何)히 취적(聚積)되고 있는가를 지득(知得)한 연후(然後)에, 가(可)히 써 사(死)와 귀신(鬼神)의 이(理)를 알 수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면 사람의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라 함은 여하(如何)한 것인가.
만물(萬物)은 모두 정(精)과 기(氣)로써 조직(組織)되고, 인신(人身)에는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육체(肉體)는 정(精)의 응성(凝成)함이오, 정신(精神)은 기(氣)의 발용(發用)함이다. 역(易)에 「剛柔者晝夜之象也 = 강유(剛柔)는 주야(晝夜)의 상(象)이라」【註五】하니, 강(剛)은 주(晝)의 상(象)을 말함인데, 주(晝)는 명(明)하고 열(熱)함으로 강(剛)은 명(明)과 열(熱)을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있다. 화석(火石부싯돌)의 예(例)로써 보건대 석중(石中)에서 화(火)가 발생(發生)하는 것은 석중(石中)에 화(火)가 있는 것이 아니오, 석(石)의 질(質)을 결합(結合)시키고 있는 기(氣)는 가장 강(剛)하고, 강(剛)과 강(剛)이 상촉상마(相觸相摩)하는 때에 명(明)하고 열(熱)한 화(火)가 일어나는 것이니, 이 화(火)는 강(剛)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뇌(腦)는 그 질(質)이 가장 정수(精粹)함으로 그에 의착(依着)한 기(氣)는 또한 강건(剛健)하고, 그 강건(剛健)한 기(氣)가 물(物)의 기(氣)와 상감상응(相感相應)하는 때에 사물(事物)을 광조(光照)하는 명(明)과 사물(事物)을 상영(相迎)하는 열(熱)이 생(生)하여, 감정(感情)․사고(思考) 등(等)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출현(出現)하나니, 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은 석중(石中)의 화(火)와 같이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은 그 본질(本質)(剛)이 화(火)와 같고 또 그 발생(發生)함이 화(火)와 같은지라, 그러므로 물(物)의 강(剛)과 강(剛)이 상촉(相觸)치 아니하면 화(火)가 생(生)치 아니함과 같이, 사람이 아무 생각함도 없고 감촉(感觸)함도 없으면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나타나지 아니하며, 화(火)는 물(物)에 의착(依着)치 아니하면 형상(形象)을 이루지 못함과 같이, 사람은 뇌(腦)가 건전(健全)치 못하면 건전(健全)한 기(氣)가 의착(依着)치 못함으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또한 건전(健全)치 못하며,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한 화염(火焰)은 공중(空中)에 유동(流動)하여 곧 소산(消散)할 듯 하되, 마침내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일정(一定)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명(明)과 열(熱)을 발(發)하는 것은, 물질(物質)은 체(體)가 되고 화염(火焰)은 용(用)이 되어, 물질(物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화염(火焰)이 근착(根着)하고 있는 까닭이니, 사람의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도 뇌질(腦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유산(遊散)치 아니하며, 소위(所謂) 경험(經驗)․학문(學問)․지식(知識)같은 것도, 그 기(氣)의 속에 포장(包藏)되어 기억(記憶)되는 것이니, 사람의 기억력(記憶力)이 강(强)하다 함은 이 기(氣)를 강(强)하게 수렴(收斂)한 까닭이다. 물질(物質)이 정수(精粹)할수록 화염(火焰)이 강(强)하여 그 광(光)과 열(熱)의 힘이 원급(遠及)하는 것이니, 사람도 뇌질(腦質)이 정수(精粹)할수록 그 의착(依着)한 기(氣)가 청정(淸淨)하고 강건(剛健)하여, 순결(純潔)한 감정(感情)과 고원(高遠)한 사고력(思考力)과 사람을 제압(制壓)하는 위엄(威嚴)을 가지는 것이며, 화(火)가 상극(相克)하는 수(水)를 만날 때에 화력(火力)이 약(弱)한 자(者)는 식멸(息滅)되는 것이나, 화력(火力)이 강(强)할 때는 도리어 반발력(反撥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니, 사람도 기(氣)가 약(弱)한 자(者)는 외부(外部)의 압력(壓力)을 받을 때에 쉽게 굴복(屈伏)하나, 기(氣)가 강건(剛健)한 자(者)는 도리어 반발작용(反撥作用)을 일으켜서 그 저항력(抵抗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전(生前)에 이미 기(氣)의 작용(作用)이 정신(精神)을 생(生)하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도 또한 기(氣)의 작용(作用)이 없지 아니한 것이다. 역(易)에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 知鬼神之情狀 = 시(始)를 원(原)하고 종(終)을 반(反)한지라 고(故)로 사생(死生)의 설(說)을 알고,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혼(魂)이 유(遊)하여 변(變)이 되는지라 이런 고(故)로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을 안다」【註六】하니, 원(原)이라 함은 전(前)에 추(推)함이오 반(反)이라 함은 후(後)에 요(要)함이라, 시생(始生)하기 전(前)의 일을 추구(推求)하면 가(可)히써 사후(死後)의 일을 알 수 있고, 사후(死後)의 형상(形象)을 반요(反要)하면 가(可)히써 미생전(未生前)의 일을 알 수 있으며, 또 정(精)과 기(氣)가 취(聚)하여 물(物)이 되는데, 사후(死後)에 기(氣)가 유산(遊散)하여 어떠한 운동(運動)을 생(生)함을 혼(魂)이라 하고 혼(魂)의 변화(變化)하는 상태(狀態)가 곧 귀신(鬼神)이며 사후(死後)의 혼(魂)은 곧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이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또한 생전(生前)의 심(心)의 작용(作用)과 같은데, 사람의 자연발로(自然發露)하는 생존본능(生存本能)인 정(情)에 대(對)하여 의지(意志)가 그를 결단(決斷)하고 실천(實踐)하는 것으로서 정(情)은 체(體)가되고 의지(意志)는 용(用)이 됨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귀(鬼)는 체(體)이오 신(神)은 용(用)이니, 이 까닭에 귀(鬼)에는 정(情)이 있고 신(神)에는 상(狀)이 있으니, 정(情)은 감응(感應)에 의(依)하여 자연발로(自然發露)함이오 상(狀)은 발용(發用)하여 변화(變化)를 행(行)함이다. 그러므로 귀(鬼)와 신(神)은 합언(合言)하면 심(心)과 같고 분언(分言)하면 귀(鬼)는 정(情)과 같고 신(神)은 의지(意志)와 같은 것이다.
이상(以上)의 이(理)를 요약(要約)하여 말하면, 사람이 시생(始生)할때에 먼저 음양양성(陰陽兩性)의 기(氣)가 감응(感應)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췌취(萃聚)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인데, 사람의 어느 중요(重要)한 기관(器官)에 기(氣)의 운행(運行)이 끊어지면, 정(精)은 독음(獨陰)이되고 기(氣)는 독양(獨陽)이되어 서로 분산(分散)함으로 사(死)가 되며, 생전(生前)의 기(氣)는 화(火)와 같이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 유산(遊散)하는 기(氣)도 어느 기간(期間)안에는 그 작용(作用)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것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기(氣)의 비약적(飛躍的) 운동(運動)의 산물(産物)임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유혼(遊魂)의 변화(變化)하는 산물(産物)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반드시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음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도 반드시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는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死)하는 즉시(卽時)로 기(氣)가 모두 소멸(消滅)치 아니하고 혼(魂)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수 있는가, 서화담(徐花潭)은 「造化鬼神은 神易陰陽의 極致라」하여 鬼神死生說一篇을 지은바 그 요지(要旨)는 「死生人鬼只是 氣之聚散而己 氣之淡一淸虛者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大小之聚散於太虛 以大小之有殊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 况人之精神知覺 聚之大且久者哉 形魄見其有散 似歸盡沒於無 此處率皆不得致思 氣之聚之有漸以至博厚 爲天地爲吾人 人之散也 形魄散耳 聚之淡一淸虛者 終亦不散 散於太虛淡一之中同一氣也 其知覺之聚散 只有久速耳 雖散之最速有日月朞者 乃物之微者 爾其氣終亦不散 何者氣之淡一淸虛者 旣無其始又無其終 此理氣之所以極妙底 雖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 = 死와生, 人과鬼는 다만 이 氣의 聚散뿐이다. 氣의 淡一淸虛한 者가 聚함이 大한 者는 天地가 되고 聚함이 小한 者는 萬物이 되며, 聚散하는 勢는 隱微하고 나타나고 오래고 빠름이 있으니. 大小의 界함이 太虛에 聚散함에, 大하고 小함으로 써 다름이 있음이라, 비록 一草一木의 적은 者라도 그 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곤, 하물며 사람의 精神知覺이 聚함이 大하고 또 久한 者이랴. 形魄은 그 散함이 있음을 보매, 無에 盡沒함에 歸하는듯하나, 此處에 모두 시러곰(能히) 致思치 못함이니라, 氣의 聚함이 漸이 있어 써 博厚함에 이르러, 天地가 되고 吾人이 되며 사람의 散함은 形魄이 散함이오, 聚함이 淡一淸虛한 者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라.
太虛淡一의 中에 散함에 한가지 一氣이라, (花潭이 易學의 鬼神說微旨에 對하여 그 底蘊을 敷衍하려 하다가 뜻만 있고 成就치 못함을 恨한다 함이 이곳을 말함인 듯하다 ) 그 知覺의 聚散함은 다만 오래고 빠름이 있나니라, 비록 散함이 가장 速한 것도 一日․ 一月․ 一年의 것이 있으니, 곧 物의 적은 者이로되 그 氣가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 무슨 까닭인고, 氣의 淡一淸虛한 者는 이미 그 始가 없고 또 그 終이 없음이니, 이가 理氣의 써 極妙한바이다. 비록 一片香燭의 氣도 그 目前에 散함이 있음을 보나, 餘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나니, 어찌 시러곰(能히) 無에 盡한다고 이르랴」【註七】하니, 이 뜻을 요약(要約)하면, 만물(萬物)이 취(聚)한 자(者)는 반드시 산(散)함이 있는데, 취(聚)함이 대(大)한 자(者)는 산(散)함이 오래고 취(聚)함이 소(小)한 자(者)는 산(散)함이 속(速)한지라, 사람의 사후(死後)에 기(氣)도 태허중(太虛中)에 산(散)하나, 그 취(聚)함이 대(大)하고 구(久)한 지각(知覺)은 어느 기간(期間)을 소산(消散)치 아니하니, 이가 곧 귀신(鬼神)이라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곧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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