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典禮)와 경건(敬虔)
만물(萬物)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이, 비록 지잡지동(至雜至動)하되 조금도 혼란(混亂)치 아니함은 자연적질서(自然的秩序)가 있는 까닭이니, 이 질서(秩序)를 사람의 사회생활(社會生活)에 적용(適用)한 것이 곧 전례(典禮)이다. 역(易)에 「聖人有 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 성인(聖人)이 써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보고 그 회통(會通)을 관(觀)하여 써 그 전례(典禮)를 행(行)한다」【註四】하니, 회(會)라 함은 사세(事勢)가 반착(盤錯)하고 중리(衆理)가 취회(聚會)하여 허다(許多)한 곡직(曲直)․난이(難易)가 있는 곳이오, 통(通)이라 함은 회(會)의 속에 질색구애(窒塞拘礙)가 있음을 통활(通闊)하는 것이오, 전례(典禮)라 함은 사람이 떳떳이 지켜야할 전장(典章)․절도(節度)․윤서(倫序)․의칙(儀則) 등(等)과 같은 것으로서 사람의 행위(行爲)에 일정(一定)한 분도(分度)를 설정(設定)하여 항상(恒常) 경건(敬虔)한 태도(態度)를 가지고 유탕(流蕩)․방종(放縱)에 흐르지 아니하게 함이다. 물(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는 반드시 중리(衆理)의 착잡(錯雜)과 또 그를 통활(通闊)하는 도리(道理)가 있는데, 거기에는 전례(典禮)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물(事物)이 순동(順動)하여 서로 문란(紊亂)치 아니하고 스스로 통(通)하는 것이오, 만일 전례(典禮)가 없으면 혼란분잡(混亂紛雜)하여 운행(運行)이 건체(蹇滯)되는 것이니, 사회(社會)가 도덕적(道德的)으로 무질서상태(無秩序狀態)에 빠지는 것은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례(典禮)를 준행(遵行)함에는 백천(百千)의 규정(規定)보다도 오직 경건(敬虔)하는 마음 하나가 주(主)가 되나니, 경건(敬虔)이라 함은 공경(恭敬)하고 엄숙(嚴肅)함을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예론(禮論)에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 임방(林放)이 예(禮)의 본(本)을 물은대 자(子) 가라사대 크다 물음이여 예(禮)가 그 사(奢)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검(儉)할지오, 상(喪)이 그 이(易)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척(戚)할지라」【註五】하여,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이 예(禮)의 근본(根本)이 됨을 말하니,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은 곧 경건(敬虔)하는 마음이다. 경건(敬虔)의 일이(一二) 예(例)를 들건대 음식(飮食)을 대(對)하여는 일죽일반(一粥一飯)이 그 내처(來處)의 용이(容易)치 아니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주지육림(酒池肉林)하는 불검(不儉)이 없을 것이오, 의복(衣服)을 대(對)하여는 일사일루(一絲一縷)의 물력(物力)이 간난(艱難)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입는다면 호화사치(豪華奢侈)하는 불손(不遜)이 없을 것이오, 사람을 대(對)하여는 비록 빈부(貧富)․강약(强弱)의 차(差)는 있을지언정, 각기(各其) 생존(生存)을 유지(維持)하기 위(爲)한 천부(天賦)의 인권(人權)이 있음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대(待)한다면 무리(無理)히 억압(抑壓)․유린(蹂躪)․침어(侵漁)하는 불순(不順)이 없을 것이니, 이러한 불검(不儉)․불손(不遜)․불순(不順)이 없다는 것이 곧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어 사회(社會)의 질서(秩序)가 유지(維持)되는 소이(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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