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시범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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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指導者)의 시범(示範)

 

사회(社會)의 악(惡)을 제거(除去)함에는 형벌제도(刑罰制度)가 있는데, 실제(實際)에는 형벌(刑罰)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 도(道)하기를 정(政)으로써 하고 제(齊)하기를 형(刑)으로써 하면 민(民)이 면(免)하되 치(恥)가 없나니라, 도(道)하기를 덕(德)으로써 하고 제(齊)하기를 예(禮)로써 하면 치(恥)가 있고 또 격(格)하나니라」【註八】하니, 도(道)라함은 지도(地道)함이오, 제(齊)라 함은 양(陽)이 음(陰)을 극제(克制)하여 균평제일(均平齊一)함이라, 민중(民衆)을 지도(指導)하기를 법령(法令)으로써 하고 균제(均齊)하기를 형벌(刑罰)로써 하면, 민중(民衆)이 범죄(犯罪)하지 아니할 정도(程度)에 이를 수는 있으나 범죄(犯罪)를 수치(羞恥)로 생각하는 이성(理性)은 발(發)하지 아니하며, 지도자(指導者)의 덕행(德行)이 상도(常度)가 있어 실천(實踐)으로써 지도(指導)하면 인심(人心)이 관감(觀感)하여 스스로 흥기(興起)하고, 다시 예절(禮節)로써 질서(秩序)를 균제(均齊)하면 인심(人心)이 수치(羞恥)를 알고 스스로 화성(化成)함에 이른다 함이니, 정형(政刑)은 외형(外形)을 조화(調和)함이오, 덕례(德禮)는 마음을 조화(調和)함이라, 악(惡)의 제거(除去)는 외형(外形)의 조화(調和)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마음에 수치(羞恥)를 알아서 스스로 조화(調和)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수치심(羞恥心)이라 함은 이성(理性)의 산물(産物)로서 만물중(萬物中)에 오직 사람만이 가지는 특성(特性)이라, 사람이 과오(過誤)나 죄악(罪惡)을 범(犯)한 때에 그를 세척회개(洗滌悔改)하는 것은 오직 수치심(羞恥心)의 힘이니, 역(易)에 「회(悔)」라 함은 이 수치심(羞恥心)의 분진(奮震)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치심(羞恥心)을 상실(喪失)하여 어떠한 야비(野卑) 저열(低劣)한 행동(行動)을 하더라도, 그것이 수치(羞恥)인줄을 알지 못하면 그는 이미 인류계(人類界)로부터 동물계(動物界)로 타락(墮落)한 것이니, 정치(政治)는 그 사회내(社會內)에 일인(一人)의 동물(動物)도 없게 하는 사업(事業)이다. 또 논어(論語)에 「季康子 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慾 雖賞之 不竊 = 계강자(季康子)가 도적(盜賊)을 근심하여 공자(孔子)에게 물은대 공자(孔子)가 대(對)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자(子)가 욕(欲)치 아니하면 비록 상(賞)주더라도 절도(竊盜)치 아니하리라」【註九】하니, 이는 계강자(季康子)가 탐욕(貪慾)하여 권세(權勢)와 지위(地位)를 절도(竊盜)한 까닭에 백성(百姓)이 그를 본받아서 절도(竊盜)하는 것이니 자(子)가 절도(竊盜)를 하지 아니하면 비록 백성(百姓)에게 상(賞)을 주면서 절도(竊盜)하기를 권장(勸獎)하더라도 백성(百姓)들이 응(應)치 아니하리라 하여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것이 곧 절도(竊盜)를 방지(防止)하는 양책(良策)이오, 지도자(指導者) 자신(自身)이 절도(竊盜)를 하면서 백성(百姓)의 절도(竊盜)를 방지(防止)하기 위(爲)하여 금령(禁令)을 발(發)하고 형벌(刑罰)을 쓰는 것은 효과(效果)없는 일이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天地 以順動故 日月不過而四時不忒 聖人以順動 則刑罰淸而民服 = 천지(天地)가 순(順)으로써 동(動)하는 고(故)로 일월(日月)이 과(過)치 아니하고 사시(四時)가 틀리지 아니하나니, 성인(聖人)이 순(順)으로써 동(動)하는지라 곧 형벌(刑罰)이 청(淸)하고 민(民)이 복(服)한다」【註十】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이 순리(順理)로 동(動)하는 까닭에 일월(日月)의 절도(節度)가 어기지 아니하고 사시(四時)의 순서(順序)가 틀리지 아니하며.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순리(順理)로 동(動)하는 까닭에 백성(百姓)이 범법(犯法)하는 자(者)가 적어서 형벌(刑罰)이 청간(淸簡)하고 인심(人心)이 순복(順服)함을 말함이다.

교육(敎育)은 인격(人格)의 수양(修養)을 체(體)로 하고 지능(知能)의 학습(學習)을 용(用)으로 하는 것이라, 인격(人格)은 우수(優秀)하되 지능(知能)이 적으면 체(體)가 용(用)의 고무력(鼓舞力)을 얻지 못하여 사물(事物)에 응(應)하여 조판(措辦)하는 재능(才能)이 적고, 지능(知能)은 있으되 인격(人格)이 연성(鍊成)되지 못하면 용(用)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얻지 못하여 그 소위(所謂) 지능(知能)은 부허(浮虛)에 흘러서 도리어 사회(社會)를 해독(害毒)하는 교지간재(巧智奸才)로 화(化)하기 쉬운 것이며, 또 모든 사물(事物)에 이론(理論)은 체(體)이오, 실천(實踐)은 용(用)이라, 이론(理論)이 없는 실천(實踐)은 무정견(無定見)․무계획(無計劃)한 행동(行動)이 되고, 실천(實踐)이 없는 이론(理論)은 관념유희(觀念遊戱)와 공리공론(空理空論)이 되나니, 인격(人格)과 지능(知能), 이론(理論)과 실천(實踐)이 체용(體用)이 상사(相俟)하고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교육(敎育)의 사공(事功)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고어(古語)에 「구이학(口耳學)」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사(師)로부터 들은 학문(學問)이 귀에 들어와서 다시 입으로 나간다는 말이다. 학문(學問)이라 함은 귀에 들어오면 그것을 마음속에 반입(搬入)하여 검토(檢討)하고 소화(消化)하여, 인격(人格)을 수련(修鍊)할 자료(資料)를 삼고 사업(事業)을 실천(實踐)할 이론(理論) 근거(根據)를 만들고, 그 연후(然後)에 입을 통(通)하여 외부(外部)에 발표(發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이학(口耳學)은 마음에 반입(搬入)하는 한 과정(過程)을 엽등(躐等)하고 겨우 일촌(一寸) 거리(距離)밖에 되지 아니하는 귀와 입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므로 그 학문(學問)한 바의 지능(知能)과 이론(理論)은 부유공허(浮遊空虛)하여 도리어 악(惡)의 방면(方面)에 유용(流用)되기 쉬운 것이다.

천지(天地)가 운행(運行)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함에는 문서(文書)나 언어(言語)가 있는 것이 아니오, 오직 일월(日月)과 사시(四時)가 신(信)을 잃지 아니하고 간단(間斷)없이 운행(運行)하여 상(象)을 수시(垂示)할 뿐이며, 만물(萬物)은 그 운행(運行)에 따라서 스스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고, 사람이 조기야침(朝起夜寢)하고 춘경추수(春耕秋收)하는 것도 또한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신뢰(信賴)하고 그 수시(垂示)하는 범법(範法)을 따를 뿐이다. 사회(社會)를 지도(指導)하는 정치(政治)나 민중(民衆)을 교화(敎化)하는 교육(敎育)도 모두 민중(民衆)에게 수시(垂示)하는 범법(範法)이라, 소위(所謂) 법령(法令)이나 강의(講義) 같은 것은, 그것을 널리 알려서 외형(外形)을 균제(均齊)함에 불과(不過)한 것이오, 진실(眞實)로 인심(人心)을 고무(鼓舞)하여 흥작(興作)케 함에는 지도자(指導者)들 자신(自身)이 실천(實踐)으로써 시범(示範)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자신(自身)들이 악(惡)을 시범(示範)하면서 민중(民衆)에게 선(善)을 요구(要求)하는 것은 수치(羞恥)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지도자(指導者)들은 극기작용(克己作用)으로써 먼저 자신(自身)의 두흉복중(頭胸服中)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든 사사심(私邪心)과 투쟁(鬪爭)하여 그를 극복(克服)하고 자체(自體)를 수제(修齊)한 연후(然後)에 타(他)를 지도(指導)할 것이다. 즉(卽) 민중(民衆)의 악(惡)과 투쟁(鬪爭)하기 전(前)에 먼저 자신(自身)의 악(惡)과 투쟁(鬪爭)하는 자(者)가 진실(眞實)로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본받는 자(者)이다 고래(古來)로 사회(社會)의 조화(調和)를 먼저 파괴(破壞)하는 자(者)는 백성(百姓)이 아니라, 실(實)로 상층위(上層位)에 앉아서 순리(順理)로 동(動)치 아니하고 불선(不善)한 일을 시범(示範)하는 소위(所謂) 지도층(指導層)들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下觀而化 = 하(下)가 관(觀)하여 화(化)한다」【註十一】하니, 이는 하층민(下層民)은 지도층(指導層)의 언행(言行)을 관(觀)하여 그 감화(感化)를 받는 것이므로 지도층(指導層)이 선(善)을 수시(垂示)하면 선(善)으로 화(化)하고 악(惡)을 수시(垂示)하면 악(惡)으로 화(化)한다 함을 말함이다.

註一. 孫子 九地篇

註二. 小畜卦 九三爻辭

註三. 說卦傳 第五章

註四. 同人卦 以下에 同人에 對한 引用文은 모두 同人卦中에 있는 것이다

註五. 繫辭下傳 第五章

註六. 同上

註七. 論語 子路篇

註八. 論語 爲政篇

註九. 論語 顔淵篇

註十. 豫卦 彖傳

註十一. 觀卦 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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