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반복(反復)
물(物)의 운행(運行) 과정(過程)에 다음 단계(段階)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투쟁(鬪爭) 형태(形態)가 생(生)하나니, 사시(四時)의 유행(流行)은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본원(本源)이라, 그 유행(流行)은 가장 통일적(統一的)으로 조화(調和)된 상태(狀態)이로되, 그 변화(變化)하는 단계(段階)에는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이 일어나서 투쟁(鬪爭)이 생(生)하고, 그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다시 조화(調和)함을 얻는 것이다. 역(易)에「戰乎乾 乾西北之卦也 言陰陽相薄也 = 건(乾)에서 전(戰)하니 건(乾)은 서북(西北)의 괘(卦)라, 음(陰)과 양(陽)이 서로 박(薄)함을 말함이라」【註三】하니, 건(乾)은 방위(方位)로는 서북(西北)이되고 시절(時節)로는 사시중(四時中)에 변화단계(變化段階)로부터 대화단계(大和段階)로 넘어가는 추동(秋冬)의 교(交)인데, 역리(易理)에 음(陰)이 왕성(旺盛)하여 양(陽)에 대적(對敵)하여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함을 전(戰)이라 하고, 양(陽)이 왕성(旺盛)하여 음(陰)의 조색(阻塞)함을 극제(克制)하고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함을 제(齊)라 하나니, 추동(秋冬)의 교(交)는 음(陰)이 왕성(旺盛)하여 음양(陰陽)이 서로 투쟁(鬪爭)하고, 이 투쟁(鬪爭)을 지나서 비로소 대화단계(大和段階)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 까닭에 만물(萬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는 반드시 투쟁(鬪爭)과 조화(調和)가 호근(互根)하여 병행(竝行)하는 것이다.
인생사회(人生社會)는 그 속에 세력대세력(勢力對勢力)․계급대계급(階級對階級)․이해상쟁(利害相爭)․애오상공(愛惡相攻)등(等)이 있고, 시대(時代)의 진전(進展)에 따라서 신고(新故)의 충돌(衝突),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마찰(摩擦) 등(等)이 있음은 모두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鬪爭)은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수단(手段)이므로 부단(不斷)히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상여상제(相與相濟)하여 상생상조(相生相助)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는 조화(調和)이다. 이 까닭에 투쟁(鬪爭)이라 함은 사회내(社會內)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폐해(弊害)가 생(生)한 때에 그를 극제(克制)하고, 분산(分散)되고 있는 개체(個體)를 통합(統合)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조화(調和)를 만드는 운동(運動)이어야 하고, 만일 개체(個體)가 각자(各自) 분산(分散)하여 사리사욕(私利私慾)과 세력(勢力) 쟁탈(爭奪)을 중심(中心)으로하여 투쟁(鬪爭)한다면, 이는 그 소위(所謂) 투쟁(鬪爭)이 한 난투(亂鬪)에 불과(不過)하여, 사람의 이성적(理性的) 투쟁(鬪爭)이 되지 못하고 동물적(動物的) 감정적(感情的) 투쟁(鬪爭)으로 타락(墮落)되어 크게 사회(社會)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나니, 그 사회(社會)의 투쟁(鬪爭)하는 모양(模樣)을 보고 가(可)히 써 그 사회(社會)의 민도(民度)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조화(調和) 운동(運動)에는 역(易)에 말한 바의 「동인(同人)」【註四】의 이(理)가 있으니, 동인(同人)이라 함은 사사(私邪)를 버리고 지공(至公)한 마음으로 써 사람과 대동(大同)함을 말함이다. 그 동인(同人)하는 과정(過程)을 보면, 사람의 행동(行動)은 반드시 개체(個體)로부터 시발(始發)하여 점차(漸次)로 그 범위(範圍)를 넓히는 것이므로, 투쟁(鬪爭)으로 시(始)하여 조화(調和)로 종(終)하는 것이라, 그 초단(初段)에는 「同人于門 = 문(門)에서 동인(同人)한다」하니, 이는 가장 인근(鄰近)한 향리(鄕里)와의 동인(同人)으로서 그 범위(範圍)가 좁고, 또 「同人于宗 = 종(宗)에 동인(同人)한다」하니, 종(宗)이라 함은 동일(同一)한 혈족(血族) 또는 종파(宗派)․종교(宗敎) 등(等)과 같은 것이라, 이는 향리(鄕里)의 동인(同人)보다는 그 범위(範圍)가 조금 넓으나 공명(公明)한 이성(理性)으로써 동인(同人)치 아니하고 편협(偏狹)한 감정(感情)으로써 겨우 종당(宗黨)에만 교여(交與)하는 것이니, 국가(國家)의 선거(選擧)가 있을 때에 인물(人物)의 여하(如何)를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동일(同一)한 교도(敎徒)라던가, 동일(同一)한 친족(親族)이라하여 선거(選擧)함과 같음이다. 이를 역(易)에는 「同人于宗 吝道也 = 종(宗)에 동인(同人)함은 인(吝)한 도(道)라」하니, 인도(吝道)라 함은 수치(羞恥)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문(門)과 종(宗)에 동인(同人)함은 그 동인(同人)하는 범위(範圍)가 국(局)하여 대(大)치 못하고, 그 처심(處心)이 편(偏)하여 정(正)치 못함으로 배타성(排他性)이 강(强)하고, 타인(他人)으로 더불어 지(志)가 상통(相通)치 못하여 스스로 공쟁(攻爭)의 단(端)이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단(中段)에 이르러서는 혹(或)은 병(兵)을 초림중(草林中)에 복장(伏藏)하고 혹(或)은 담을 타고 공격(攻擊)하는 것이다. 종단(終段)에 이르러 「先號咷而後笑 = 먼저 호도(號咷)하고 후(後)에 소(笑)한다」하니, 이는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비로소 천하(天下)의 지(志)가 통(通)함으로 상극(相克)이 화호(和好)로 변(變)하고 호도(號咷)가 환소(歡笑)로 화(化)하여 서로 동인(同人)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천지(天地)에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므로 만물(萬物)이 자연(自然)스럽게 통일(統一)되어 조화(調和)하고 있으나, 사람은 편(偏)하고 국(局)함으로 천지(天地)의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받은 연후(然後)에 능(能)히 천하대동(天下大同)의 지역(地域)에 도달(到達)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원야(遠野)에까지 동인(同人)함은 이상(理想)이오, 겨우 근교(近郊)에만 동인(同人)함은 현실(現實)이니, 역(易)에 「同人于野 = 야(野)에 동인(同人)한다」함은 광원(廣遠)한 지역(地域)에까지 동인(同人)하려하는 이상(理想)을 표현(表現)함이오, 「同人于郊 = 교(郊)에 동인(同人)한다」함은 겨우 도시(都市)의 주변(周邊)인 근교(近郊)에만 동인(同人)하는 현실(現實)을 표현(表現)함이다. 이상(理想)은 정대(正大)하고 현실(現實)은 편국(偏局)한지라, 사람은 항상(恒常) 정대(正大)한 이상(理想)을 추구(追求)하고 편국(偏局)한 현실(現實)을 타개(打開)하여 통활(通豁)한 대지역(大地域)으로 향진(向進)하려 하는 것이므로, 이 천하(天下)는 항상(恒常)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하여 투쟁(鬪爭)하고,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조화(調和)하면서, 함께 존존생생(存存生生)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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