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節 투쟁(鬪爭)과 조화(調和)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각기(各其) 특수(特殊)한 개체조직(個體組織)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성장확대(成長擴大)를 욕망(欲望)함으로, 서로 그 성장확대(成長擴大)하는 영역(領域)을 넓히고 타(他)의 자역침범(自域侵犯)을 방비(防備)하려 하여 타(他)와의 사이에 경쟁(競爭)․충돌(衝突)․저항(抵抗)․극제(克制) 등(等) 작용(作用)이 일어나니, 이가 곧 투쟁(鬪爭)이오, 개체(個體)는 고립(孤立)하여 생존(生存)할 수가 없고, 또 개체간(個體間)의 투쟁(鬪爭)은 결국(結局) 자체(自體)의 통체적(統體的)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므로, 또한 통체적(統體的)으로 운행(運行)하여 투쟁(鬪爭)을 상여(相與)․상제(相濟)․상생(相生)․상조(相助) 등(等) 작용(作用)으로 전화(轉化)하나니, 이가 곧 조화(調和)이다. 그러므로 개체(個體) 조직(組織)에는 반드시 투쟁(鬪爭)의 추기(樞機)가 있고 통체(統體) 운행(運行)에는 반드시 조화(調和)의 추기(樞機)가 있으니, 조직(組織)은 체(體)이오, 운행(運行)은 용(用)이라,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있는 곳에 반드시 투쟁(鬪爭)과 조화(調和)가 병존(倂存)하여, 이 양자(兩者)는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별개물(別個物)이 아니오, 통일물(統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서 호근(互根)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太陽)과 대지(大地)와의 관계(關係)같은 것도 이심력(離心力)은 개체(個體)가 독자(獨自)한 운동(運動)을 행(行)하려 하여 중심(中心)에 저항(抵抗)하는 투쟁(鬪爭) 형태(形態)이오, 향심력(向心力)은 통체적(統體的) 운동(運動)을 행(行)하려하여 중심(中心)에 향응(向應)하는 조화(調和) 형태(形態)이며, 뇌풍(雷風)의 관계(關係)는 양자(兩者)가 상박(相薄)함은 투쟁(鬪爭)이오, 상패(相悖)치 아니함은 조화(調和)이며, 수화(水火)의 관계(關係)는 양자(兩者)가 상사(相射)치 아니함은 투쟁(鬪爭)이오, 상체(相逮)함은 조화(調和)이며 산택(山澤)의 관계(關係)는 비고(卑高)가 상격(相隔)함은 투쟁(鬪爭)이오 서로 기(氣)를 통(通)함은 조화(調和)이다. 생물체(生物體)의 조직(組織)으로써 보더라도 정(精)에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고 기(氣)에는 발현작용(發顯作用)이 있어, 하나는 수렴(收斂)하려하고 하나는 발현(發顯)하려하여 서로 충돌(衝突)하는 것이 곧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 양작용(兩作用)의 투쟁(鬪爭)이 없으면 생물체(生物體)는 구성(構成)되지 못하며, 토지(土地)와 초목(草木)과의 관계(關係)로써 보더라도 토양(土壤)은 함장작용(含藏作用)이 있고 초목(草木)은 상승작용(上升作用)이 있어, 하나는 함장(含藏)하려 하고 하나는 상승(上升)하려 하여 서로 저항(抵抗)하는 것이 곧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 양작용(兩作用)이 상여(相與)치 아니하면 초목(草木)은 착근(着根)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체(生物體)의 양작용(兩作用)은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조화(調和)이오, 초목(草木)과 토양(土壤)의 양작용(兩作用)은 상리(相離)치 못하는 조화(調和)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은 투쟁(鬪爭)이 없으면 생존(生存)치 못하고, 그 투쟁(鬪爭)이라 함은 곧 생존(生存)의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이다.
모든 생물(生物)의 생극관계(生克關係)로 써 보면 만물(萬物)은 상생(相生)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상극(相克)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며, 타(他)로부터 생(生)을 받는 동시(同時)에 또한 타(他)를 생(生)하고, 타(他)로부터 극(克)을 받는 동시(同時)에 또한 타(他)를 극(克)한다. 원래(元來) 생물(生物)은 생존(生存)의 본원(本源)이 곧 상쟁(相爭)의 시단(始端)이라, 상극(相克)으로써 상생(相生)의 본원(本源)을 삼아, 타(他)를 극(克)하는 공격(攻擊) 조직(組織)을 가지지 아니한 것이 없고, 또 적(敵)을 방비(防備)하는 방어(防禦) 조직(組織)을 가지지 아니한 것이 없어, 생물계(生物界)는 일대투쟁장(一大鬪爭場)인 감(感)이 있으나, 이 상극(相克)의 속에 그 생(生)을 받고 있으니, 이가 곧 극(克)이 없으면 생(生)이 있을 수 없고, 생(生)이 없으면 극(克)이 있을 수 없음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고 극(克)의 속에 생(生)이 있어 생생극극(生生克克)으로써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 생생극극(生生克克)이 곧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호근(互根)이다. 또 모든 생물(生物)은 출생(出生)하는 날에 이미 장사(將死)할 도리(道理)를 띠고 있어 그 성장(成長)이 도리어 자체노사(自體老死)의 원인(原因)이 되며 생물(生物)이 섭취(攝取)하는 영양(營養)은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는 자료(資料)가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자체(自體)를 극제(克制)하여 노쇠(老衰)로 인도(引導)하는 자료(資料)가 되며, 자연과학(自然科學)의 발달(發達)에 의(依)하여 기계문명(機械文明)의 고도(高度)한 진보(進步)는 인류생활(人類生活)에 막대(莫大)한 편익(便益)을 주고 있으나, 그러나 또한 그 절대(絶大)한 파괴력(破壞力)을 가진 신무기(新武器)의 출현(出現)에 의(依)하여 현대문명(現代文明)은 일조(一朝)에 파괴(破壞)될 위기(危機)를 양성(釀成)하고 있어, 결국(結局) 과학(科學)으로 흥왕(興旺)한 현대사회(現代社會)는 장차(將且) 과학(科學)으로써 치패(致敗)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이는 모두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음이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投之亡地然後存 陷之死地然後生 夫衆陷於害然後 能爲勝敗 = 망(亡)할 지(地)에 투(投)한 연후(然後)에 존(存)하고 사(死)할 지(地)에 함(陷)한 연후(然後)에 생(生)하나니 그 중(衆)은 해(害)에 함(陷)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승패(勝敗)를 한다」【註一】하여, 군사(軍士)는 사생(死生)이 목전(目前)에 박도(迫到)한 위지(危地)에 들어간 연후(然後)에 최후(最後)의 사력(死力)을 다하여 적(敵)을 깨트리고 생로(生路)를 찾을 수 있음을 말하니 이는 사(死)의 속에 생(生)이 있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事物)에는 투쟁(鬪爭)의 속에 조화(調和)의 추기(樞機)가 있고 조화(調和)의 속에 투쟁(鬪爭)의 추기(樞機)가 있는 것이니,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오직 생존경쟁(生存競爭)으로 보는 것은 투쟁면(鬪爭面)만을 본 것이오, 또 오직 상호부조(相互扶助)로 보는 것은 조화면(調和面)만을 본 것이다.
그리하여 투쟁(鬪爭)과 조화(調和)는 서로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투쟁(鬪爭)이 크면 조화(調和)도 크고 투쟁(鬪爭)이 없으면 조화(調和)도 없다. 남녀간(男女間)에는 애정(愛情)이 있는 까닭에 질투(嫉妬)가 있나니, 면부지(面不知)․심부지(心不知)한 남녀간(男女間)에 아무런 질투(嫉妬)가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애정(愛情)이 없는 까닭이다. 역(易)에 「夫妻反目 = 부처(夫妻)가 반목(反目)한다」【註二】함은, 서로 친비(親比)하는 지위(地位)에 있으면서 그 지(志)가 상득(相得)치 못함으로 반목(反目)하기에 이른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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