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류역사의 전환기 (한장경 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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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전환기(轉換期)

 

시운(時運)을 관찰(觀察)함에는 수(數)와 상(象)이 있다.

수(數)라 함은 연수(年數)를 말함이니, 역(易)에「二篇之策 萬有一千五百二十 當萬物之數 = 이편(二篇)의 책(策)이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이니 만물(萬物)의 수(數)에 당(當)한다」【註二】한바, 만물(萬物)이라 함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전체수(全體數)를 개산(槪算)하여 말한 것인데, 이 전체수(全體數)는 공간(空間)에만 있는 것이 아니오, 또한 시간(時間)에도 있는 것이므로,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은 역사(歷史)의 일환주년수(一圜周年數)에 당(當)하는 것이오, 이를 사시(四時)에 나누면 일시절(一時節)의 연운(年運)은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 약(約) 삼천년(三千年)에 당(當)하고 있다. 그런데 삼도(三圖)의 생장성단계(生長成段階)를 역사(歷史)에 의(擬)하건대, 복희(伏羲)가 팔괘도(八卦圖)를 지음으로부터 은국말(殷國末)에 이르는 약삼천년간(約三千年間)은 「생(生)」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고, 문왕(文王)이 팔괘도(八卦圖)를 지음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약삼천년간(約三千年間)은 「장(長)」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고,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가 출생(出生)한 지금의 시세(時勢)는 「성(成)」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다. 김일부(金一夫)의 대역서(大易序)의 기(記)에 「天地傾危二千八百年」이라 함은 문왕괘도(文王卦圖)에 건곤(乾坤)이 실위(失位)한지 이천팔백년(二千八百年)인 금일(今日)에 건곤(乾坤)이 득위(得位)하는 정역도(正易圖)가 출생(出生)한다는 뜻을 말함이니, 이가 또한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으로써 일시절(一時節)의 시운(時運)을 삼은 것이다. 이 연수(年數)로써보면 지금은 문왕괘도(文王卦圖)의 이후(以後) 약삼천년(約三千年)의 「장(長)」단계(段階)를 지나서 정역도(正易圖)의 「성(成)」단계(段階)로 넘어가는 과도기(過渡期)에 처(處)하여 있는 것이다.

黃道上의 春分點은 恒常 一定치 아니하여, 地球의 歲差運動으로 因하여 每年 東쪽으로부터 西쪽으로 移動하는데, 約 二萬五千七百年을 一週期로하여 다시 本位置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約 一萬二千八百餘年 後에는 只今의 春分點이 秋分點으로되고, 지금의 秋分點이 春分點으로되나니, 이것은 春分點과 秋分點이 百八十度 떨어져 있는 까닭이다. 天球上에서 黃道와 赤道의 交叉點이 二個가 있으니, 太陽이 天球의 南半球에서 北半球로 건너가는 交叉點이 春分點이오 그 反對가 秋分點이다. 그러므로 百八十度 떨어저 있다. 一萬二千八百餘年을 四節로 나누면, 一節의 年數는 約 三千二百餘年이다.

一分間 呼吸數를 十八로하면 一日에 二千五百九十餘回이니 이는 春分點의 移動週期 二萬五千七百年과 비슷하다.

 

대저(大抵) 시운(時運)의 생장성(生長性)은 천지(天地)의 일합일벽(一闔一闢)하는 대호흡(大呼吸)이오, 시운(時運)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은 호흡(呼吸)의 일절(一節)이다. 그런데 시운(時運)의 호흡년수(呼吸年數)는 사람의 호흡수(呼吸數)와 관련(關聯)되어 있으니, 사람의 일분간(一分間) 호흡수(呼吸數)는 십오내지십팔(十五乃至十八), 평균(平均) 십육가량(十六假量)이오, 일일(一日)의 일천사백사십분(一千四百四十分)으로 계산(計算)하면 일일(一日) 호흡수(呼吸數)는 대개(大槪) 이만삼천사십(二萬三千四十)이라, 이를 주야(晝夜)에 나누면 각(各)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으로서 이편(二篇)의 책수(策數)에 당(當)하고, 또 이를 복희도(伏羲圖)의 조직(組織)인 조석(朝夕), 오야(午夜), 신혼(晨昏), 조양(朝陽), 석양(夕陽) 등(等) 팔기(八氣)에 나누면 일기(一氣)의 호흡수(呼吸數)는 이천팔백팔십(二千八百八十)으로서 일시절(一時節)의 연운수(年運數)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에 당(當)하고 있으니, 천지시운(天地時運)의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은 결(決)코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다. 역(易)에 「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之變 往來不窮謂之通 = 호(戶)를 합(闔)함을 곤(坤)이라 이르고 호(戶)를 벽(闢)함을 건(乾)이라 이르고, 일합일벽(一闔一闢)함을 변(變)이라 이르고, 왕래(往來)하여 궁(窮)치 아니함을 통(通)이라 이른다」【註三】하니, 천지(天地)의 변통(變通)은 곧 합벽왕래(闔闢往來)하는 호흡운동(呼吸運動)이다.

상(象)이라함은 형세(形勢)를 말함이니, 역(易)에「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 南方之卦也 = 이(離)라함은 명(明)함이라 만물(萬物)이 모두 상견(相見)하니 남방(南方)의 괘(卦)라」【註四】한바, 이괘(離卦)는 정남(正南)에 위(位)하여 시절(時節)로는 정하(正夏)가 되고 천하(天下)가 대명(大明)한 상(象)이라, 지금에 대지상(大地上)에 있는 육지(陸地)가 모두 발견(發見)되고, 인적(人跡)이 이르지 못하는 남북량극(南北兩極)의 권내(圈內)까지 모두 알려지며 종래(從來)에 서로 교제(交際)가 없던 세계각국(世界各國) 각종족(各種族)이 모두 상견(相見)하고 있으니, 이는 지금 정하대명(正夏大明)의 시운(時運)에 당(當)하고 있는 상(象)이다. 정하(正夏)는 하지(夏至)의 일음(一陰)이 하(下)로부터 생(生)하는 시기(時期)이라, 하지이전(夏至以前)은 생장단계(生長段階)이므로 이를 선천(先天)이라 할 수 있고, 하지(夏至)이후(以後)는 성숙단계(成熟段階)이므로 이를 후천(後天)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것을 인사(人事)에 의(擬)하면, 선천(先天)은 복희(伏羲)․문왕(文王)․이도(二圖)의 시대(時代)이니 곧 구세대(舊世代)이오, 후천(後天)은 정역도(正易圖)의 시대(時代)이니 곧 신세대(新世代)이다. 그런데 역경(易經)의 상경(上經)은 선천(先天)을 상(象)하고 하경(下經)은 후천(後天)을 상(象)하여 선천(先天)의 장종기(將終期)에 감괘(坎卦)와 이괘(離卦)를 배(配)하니, 감(坎)은 수(水)이오 이(離)는 화(火)이라 ,수화(水火)가 동거(同居)하여 상극상멸(相剋相滅) 하고 있으며, 또 감(坎)은 함정(陷穽)이오 이(離)는 망고(網罟)이라, 사람이 함정(陷穽)에 빠지고 그물에 걸리는 상(象)이니, 이는 수화(水火)로써 상공(相攻)하고 사람이 도탄(塗炭)에 빠져서,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있은후(後) 최대(最大)의 난경(難境)이다. 또 십이월(十二月)의 소식괘(消息卦)로써 보면 지금은 사월(四月)로부터 오월(五月)로 넘어가는 대과괘(大過卦)의 시(時)에 당(當)하고 있으니, 대과괘(大過卦)는 이음(二陰)이 사양(四陽)을 포함(包涵)하여, 비록 양성(陽盛)의 시기(時期)이로되 도리어 음기(陰氣)가 성만(盛滿)하고, 장차전도(將且顚倒)하여 하지(夏至)의 일음(一陰)을 생(生)하는 상(象)이라, 음양(陰陽)이 구상(俱傷)하여 상장(喪葬)의 상(象)이 있으니, 지금에 이 시운(時運)을 당(當)하고 있으므로 살벌(殺伐)의 기(氣)가 대행(大行)하여 천하(天下)가 모두 큰 과오(過誤)를 범(犯)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以上)의 이(理)를 총언(總言)하면 지금은 선천(先天)으로부터 후천(後天)으로 과도(過渡)하는,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일대전환기(一大轉換期)이다. 이 시기(時期)를 지나면 하경(下經)의 함항시대(咸恒時代)가 되나니, 함(咸)은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하여 천하(天下)가 화평(和平)하는 상(象)이오, 항(恒)은 성인(聖人)이 그 도(道)에 항구(恒久)하여 천하(天下)가 화성(化成)하는 상(象)으로서, 산택(山澤)과 뇌풍(雷風)이 용사(用事)하여 예악(禮樂)이 대행(大行)하는 치세(治世)가 되는 것이다.

지금 정하(正夏)의 시운(時運)은 하(夏)의 유형단계(流形段階)에 당(當)하여 모든 규이(睽異)․함험(陷險)․건난(蹇難) 등(等)이 나타나는 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스스로 그것을 변통(變通)하여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있으니, 이 시용(時用)을 찾아서 시의(時義)를 행(行)하는 것이 곧 난경(難境)을 타개(打開)하는 길이다. 이 시용(時用)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은 곧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이니,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상규상이(相睽相異)한 체(體)가 상동상류(相同相類)한 용(用)으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세계각국(世界各國)은 비록 그 종족(種族)․정치형태(政治形態) 등(等)이 상이(相異)하더라도 또한 서로 교여(交與)할수 있으며, 또 비록 국토(國土)와 국력(國力)의 대소(大小)․강약(强弱) 등(等)이 동일(同一)치 아니 하더라도, 차등(差等)한 조직(組織)을 기초(基礎)로하여 균평(均平)한 운행(運行)을 행(行)할수 있는 것이니, 소위(所謂) 강대국(强大國)들이 교영(驕盈)한 태도(態度)를 버리고 약소국가(弱小國家)를 침략(侵略)치 아니하고, 대지상(大地上)의 모든 국가(國家)가 서로 균평(均平)한 처지(處地)에서 교제(交際)하여, 함께 생생존존(生生存存)하는 것이 곧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이다.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은 곧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이니, 천지(天地)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투쟁상태(鬪爭狀態)가 생(生)하는 것은 모두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이오, 어느 개체(個體)의 위력(威力)을 과시(誇示)하기 위(爲)한 투쟁(鬪爭)이 아니다. 지금의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한 나라도 고립(孤立)한 것이 없고 모두 세계사(世界史)의 일환(一圜)으로 연계(連繫)되어 있는지라, 이러한 기운(氣運) 속에서 한 개체(個體)의 세력확장(勢力擴張)을 위(爲)하여 타국(他國)을 억압(抑壓)하는 것은 인류사회(人類社會)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고 타(他)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악행위(惡行爲)이다. 더욱이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은 어느 일편(一便)에 한 세력(勢力)이 이루어지면 그 반면(反面)에 그에 대항(對抗)하는 대대세력(對待勢力)이 발생(發生)하는 것이라, 세간(世間)의 사물(事物)에는 독강독대(獨强獨大)가 있는 것이 아니오, 세력(勢力)의 경쟁(競爭)은 결국(結局) 공도동복(共倒同覆)이 되는 것이니, 침략주의(侵略主義) 국가(國家)들은 그 근성(根性)을 버리고 세계(世界)와 함께 조화(調和)하는 것이 곧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이다.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은 곧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이니,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반드시 먼저 그 체(體)를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유동(流動)하는 것이라, 이 전도기(顚倒期)를 당(當)하여 이미 안정(安定)하고 있는 사회(社會)는 능(能)히 난경(難境)을 면(免)할 수가 있으나 안정(安定)치 못한 사회(社會)는 시운(時運)의 전도(顚倒)와 자체(自體)의 동요(棟撓)가 병지(並至)하여 중대(重大)한 위기(危機)에 봉착(逢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정(內政)을 정정(整正)하여 자체(自體)를 안정(安定)케 함이 곧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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