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과 수동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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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動과 受動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기(氣)는 모두 발동작용(發動作用)을 행(行)함으로 기(氣)와 기(氣)가 상대(相對)하는 때는 양자(兩者)가 서로 발동(發動)하려하여 스스로 서로 추척(推斥)하고 서로 견인(牽引)하나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八】함은,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動靜有常 = 동(動)하고 정(靜)함이 상(常)이 있다」【註九】함은, 동(動)은 능동(能動)이오 정(靜)은 수동(受動)으로서 동정(動靜)함이 상도(常道)가 있다 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추척(推斥)과 견인(牽引)과의 상대(相對)는 또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로 되어, 기(氣)의 운동(運動)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수동(受動)은 체(體)가 되고 능동(能動)은 용(用)이되어, 능동(能動)이 없으면 수동(受動)이 있을 수 없고 또 수동(受動)이 없으면 능동(能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나니, 역(易)에「剛柔相易 不可爲典要 惟變所適 = 강유(剛柔)가 서로 역(易)하여 가(可)히 전요(典要)를 삼지 못하고 오직 변(變)의 적(適)하는 바이라」【註十】하니, 전요(典要)라 함은 상례(常例)의 뜻이라, 역(易)의 도(道)는 강유(剛柔)의 위(位)와 작용(作用)이 서로 환역(換易)하여 고정(固定)한 상례(常例)가 없고 오직 변화(變化)함을 따른다 함이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아(我)가 능동(能動)하여 타(他)에 발시(發施)하면 타(他)는 수동(受動)하여 그를 승수(承受)하고, 그 승수(承受)하는 작용(作用)이 다시 능동(能動)으로 전화(轉化)하여 아(我)에 발시(發施)하고 아(我)는 수동(受動)으로 변화(變化)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인 아(我)는 한번은 능동(能動)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번은 수동(受動)의 위(位)에 입(立)하여 소위(所謂)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반복(反復)하면서 한(限)없는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소장(消長)․성쇠(盛衰)와 왕고래금(往古來今)의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이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반복(反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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