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대의판독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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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經大意(18) 三和 韓長庚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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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旣濟는 火가 下에서 推上하는 象이오 未濟는 火가 上에서 牽引하는 象이다. 또 旣濟는 水가 火上에 있어 光明이 掩하므로 夜의 象이 되고 未濟는 火가 水上에 있어 光明이 現하므로 晝의 象이 되는데 中孚에서 日月이 合朔한 後에 小過에서 달이 太陽을 過하여 太陽의 後로 돌아오고 旣濟未濟에서 晝夜를 反復하면서 小過旣濟未濟 三卦의 十八爻 卽 太陽의 後의 十八度以外로 벗어져 나간 然後에 달이 비로소 光明을 生하는 것이오 十八度以外는 곧 다시 乾坤으로 돌아가는 度數이니 달이 다시 乾坤度數로 돌아가서 光明을 生하는 까닭에 이것을 后天달이라고 하는 것이다.

旣濟라 함은 時間的으로 이미 濟한다 함이니 이는 長의 時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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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盡하고 萬物이 모두 成하여 成의 時運으로 넘어감을 말함이다.

九五의 東鄰殺牛 不如西鄰之禴祭는 歸妹六五의 其君之袂不如其娣之袂良과 同一한 象이니 이는 文王八卦圖의 四正卦의 互卦가 모두 旣濟로 되어 旣濟와 歸妹에 先后天달의 變化하는 象이 있는 까닭이다. 先天달인 復上月이 生하는 때에 無妄卦에 天命의 象인 震子가 坤體에 下來하여 坤牛가 灾하니 震은 文王八卦圖의 東方이라 이는 東鄰殺牛의 象이오 東鄰殺牛는 先天달의 生함을 象한 것이다. 后天달의 生할 때에는 萃卦의 坤母가 大牲이 되어 禴祭에 用하니 萃卦는 天命을 順하여 兌澤의 속에 后天달을 孕胎하는 象이오 兌澤은 文王八卦圖의 西方이라 이는 西鄰禴祭의 象이오 西鄰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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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는 后天달의 生함을 象함이며 小象의 吉大來는 朔日의 큰 달이 來한다 함이다. 旣濟九五는 合朔後에 太陽의 後의 十度를 넘는 成의 中心이므로 여기에 先后天달의 象을 말하여 先天의 復上月은 后天달의 大來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 旣濟九五에 牛의 象을 말한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后天의 달은 幼虫이 飜生하여 鳥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그 形象은 鳥를 象한 것이오 后天은 物의 成하는 坤陰의 時運으로서 坤牛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그 時運은 牛를 象한 것이니 그러므로 九五의 속에 있는 달은 大牲의 子인 童牛이며 이 童牛는 또한 先天에 無妄卦의 東鄰牛의 子인 大畜卦 童牛의 胎育된 者이다.

初九는 火가 下에서 推上하는 基底이므로 圓月을 推上함을 象하여 曳其輪이라 한 것이다.

娣는 巽娣이니 易理에 婦는 모두 巽의 象이며 六二의 婦는 歸妹卦에 말한 中孚卦의 月幾望하는 巽娣이다. 茀은 草와 弗로 되어 草가 動하여 下로부터 逆生함이니 震子의 象이다. 六二는 生의 中心에서 달의 生하는 位인데 旣濟는 夜의 象으로서 光明이 掩蔽되고 있으므로 巽娣가 震子를 喪

 



 


342

失한 象이 되는 것이며 勿逐七日得이라 함은 七日은 달의 象이니 逐치 아니하여도 달의 光明은 저절로 얻어진다 함이오 彖의 初吉柔得中은 이 六二爻의 象을 말함이다. 終止則亂其道窮이라 함은 上爻의 濡其首를 말함이니 새달이 生하고 舊體는 終하고 止하여 一陰一陽하는 道가 窮하므로 小象에 何可久也라 한 것이다.

사람의 死後에는 游魂이 鬼神으로 되니 生前에 物質生活을 하는 生長本能은 鬼가되고 天性의 여문 것은 神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死後에는 반드시 鬼神이 있는 것인데 오직 生長本能이 强하여 天性이 여물지 못하고 物質生活을 爲主하던 사람은 死後에 神作用이 거의 없고 鬼만 있으며 物質生活을 主하는 사람들의 居하는 곳에는 神이없고 鬼만 있으므로 그러한 地方을 鬼方이라 하는 것이다. 高宗은 震巽이니 震巽은 長男長女로서 五行의 宗이므로 高宗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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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易理에 雷風은 神의 作用을 行하고 鬼方을 伐하는 것은 雷風의 神이니 그러므로 旣濟九三의 高宗과 未濟九四의 震은 곧 雷風의 神이다. 旣濟에 雷風을 모두 말하고 未濟에 雷만을 말한 것은 雷는 時間的 繼承作用을 行하고 雷風은 모두 空間的擴大作用을 行하는데 旣濟에는 水火衝擊하는 空間的變化가 있으므로 空間的作用을 行하는 雷風을 아울러 말하고 未濟에는 易經의 最終卦로서 先后天을 連繼하는 時間的變化가 있으므로 時間的作用을 行하는 雷만을 말한 것이다.

鬼神을 水火로써 보면 鬼는 水의 象이오 神은 火의 象이니 그러므로 鬼方은 北方坎水의 象이며 坎水에 相接한 神이 鬼方을 伐하는 것이므로 旣濟에는 坎水에 相接한 九三의 火에 高宗伐鬼方이 있고 未濟에는 坎水에 相接한 九四의 火에 震用伐鬼方이 있는 것이다.

 



 


343

易卦의 互卦의 理에는 旣濟未濟에 易子而敎하는 師傅道의 象이 있으니 師傅道는 곧 神道로서 雷地豫의 聖人刑罰淸의 制度와 風地觀의 聖人神道設敎의 敎가 모두 師傅道이며 그러므로 旣濟未濟의 伐鬼方은 雷風神이 師傅道를 行하는 象이오 成의 時運에는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道가 行하는 까닭에 先后天을 連繼하는 旣濟未濟에 神道를 말한 것이다.

旣濟未濟는 文王八卦圖의 地方의 位는 없고 妙萬物而爲言하는 乾坤의 神에 當하여 能變化旣成萬物의 象이 되니 旣濟未濟에 雷風의 神이 있는 것은 乾坤神의 所使이며 易卦에 「變化」의 辭가 있는 것은 오직 乾彖의 乾道變化와 坤文言의 天地變化와 雷風恒의 四時變化이니 乾坤雷風에 神의 象이 있어 變化作用을 行하는 까닭에 이 三卦에만 變化의 辭가 있으며 繫辭에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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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한 것도 乾坤雷風의 變化作用이 곧 神의 所爲이라 함을 말함이며 그러므로 后天달의 生하는 旣濟未濟에는 神의 變化作用이 行하고 있는 것이다. 旣濟未濟는 天地水火의 相合한 反易 變易 交易의 三易卦이므로 이 神作用은 文王八卦圖의 어느 一地方에 局限하는 것이 아니라 天地水火의 運行하는 곳에 神의 作用이 行치 아니하는 곳이 없는 것이다.

 

序卦

小過는 달이 太陽의 後로 돌아오는 象이오 旣濟는 后天의 成의 時運으로 넘어와서 萬物을 모두 成하는 象이니 그러므로 旣濟가 小過에 次하는 것이다.

 

大象

旣濟는 水가 火上에 있어 水火의 衝擊하는 象이므로 水火變動의 患이 있는 것이다. 豫卦는 生의 時運의 終卦인데 旣濟가 또한 未濟와 함께 長의 時運의 終宮이므로 豫字로써 旣濟에서 長의 時運의 終하는 象을 表

 



 


344

示한 것이다.

繻는 關門을 出入하는 때에 包帛을 裂하여 符信으로 쓰는 帛邊이오 衣袽는 弊衣이니 六四는 水火의 界와 日入의 界에 있는 關門의 象이므로 布帛의 符信을 말한 것이오 弊衣의 象을 取한 것은 乾은 衣象이라 先天의 終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旣濟未濟는 文王八卦圖에 南北水火의 卦로서 上下를 圜行하는 象이 있어 旣濟는 南에서 北하여 南卦의 初는 尾가되고 北卦上은 首가되며 未濟는 北卦의 初는 尾가되고 南卦의 上은 首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旣濟未濟의 初爻와 上爻에 모두 首尾의 象이 있는 것이다. 上經에서 下經으로 넘어가는 卦에는 頤 大過 坎 離가 있어 모두 反易이 없는 圜轉卦로서 顚倒하되 形이 變치 아니하는 卦인데 下經에서 后天으로 넘어가는 卦는 中孚 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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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는 頤 大過와 같은 圜轉卦인데 旣濟未濟는 圜轉卦가 아니오 顚倒하면 形이 變하는 것이다. 그러나 旣濟未濟가 運行하는 때에는 水火가 南에서 北하고 北에서 南하여 循環함이 端이없어 首尾가 相聯하여 圜轉卦의 形態가 되는 것이니 旣濟未濟의 初爻와 上爻에 首尾를 말한 것은 兩卦에 圜轉하는 形態가 있음을 表한 것이다.

 



 


345

未濟   火水

未濟가 夬와 相照하는 것은 夬의 所施한 陽精水가 未濟의 水가되어 后天乾이 되는 까닭이다.

未濟는 火水의 卦이니 그 要旨는 旣濟卦下에 씌어있다. 旣濟는 「이미 濟한다」는 뜻인즉 未濟는 「아직 濟치 아니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濟한속에 아직 濟치 아니한 次世代가 있다 함이니 또한 未來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草木으로써 보면 草木의 生長이 極하여 收斂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旣濟의 象이오 열매가 여물어서 次世代의 繼承者가되는 것은 未濟의 象이며 달로써 보면 先天달의 體가 終하면서 后天달의 始하는 것은 旣濟의 象이오 后天달이 始生하여 后天으로 건너가서 여무는 것은 未濟의 象이다. 그러므로 未濟에는 새로 맺힌 六月열매가 아직 未成한 채로 가을로 건너가는 象이 있으니 未字는 木의 枝葉이 重疊하여 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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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맺힌다는 뜻으로서 六月열매의 象이므로 六月을 未月이라 하는 것이며 未成한 六月열매가 가을로 건너가는 것은 艮兌二少로써 構成된 未成한 달이 成의 時運으로 건너가는 것과 同一한 象이다.

狐는 犬과 瓜로 되고 犬과 瓜는 모두 艮의 象이오 狐가 또한 艮의 黔喙의 屬이니 小狐라 함은 艮果의 幼少함을 象한 것이오 이는 生의 中心인 九二爻의 象이며 解卦에도 百果草木의 象이 있으므로 九二爻의 生의 中心에 狐象을 말한 것이다. 小狐汔濟라 함은 草木으로서는 未成한 열매가 가을로 건너가는 象이오 달로서는 未成한 艮兌의 달이 成의 時運으로 건너가는 象이다. 汔은 水의 下漏하는 象으로서 井卦에 汔至의 象이 있고 井은 胎宮卦인데 地道七宮은 胎兒가 胎宮에 있음을 象한 것이오 未濟의 달도 아직 胎宮에 있는 것이므로 汔字를 써서 未濟의 달이 아직 胎宮의 井水中에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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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있는 沈水潛月이라 함을 表한 것이다.

易卦中에 六爻가 모두 不當位하여 陽이 陰位에 있고 陰이 陽位에 있는 것은 오직 未濟一卦이니 全卦의 不當位는 不安定한 象이며 비록 不安定하되 六爻의 剛柔가 모두 應하므로 圜轉하면서 濟하는 것이다.

六五君子之光은 달의 光明의 暉이니 六五는 달의 陰精의 成의 中心이므로 그暉가 비로소 生한 것이오 九二曳其輪은 火가 上에서 牽引하는 象이다.

六三은 坎水가 離火로 건너가는 分界이니 이는 上經에 習坎에서 離로 넘어가는 象과 同一하므로 六三에 六月열매의 건너가는 未濟를 말한 것이오 그러므로 旣濟未濟의 兩卦에 爻辭에 卦名을 말한 것은 오직 未濟六三一爻뿐이다. 未濟는 陽體의 坎水를 陰體의 離火宮에 施하여 長하는 陽運에서 成하는 陰運으로 넘어가는 象이 되므로 雜卦에 「未濟는 男의 窮함이라」 한 것이오 六三의 利涉大川은 陽運의 陽精水가 陰運의 坤川으로 흐르는 것을 象한 것이다.

九四의 震用伐鬼方은 旣濟卦下에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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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六의 是字는 光明과 直의 兩象이 있는데 乾初九의 文言에 또한 不見是而無悶이라 하여 一是字를 써서 未濟上六爻辭의 終端의 是字와 相結하니 이는 未濟의 終端에 있는 光明이 다시 乾에 連하여 始한다 함을 表한 것이다.

 

序卦

旣濟는 長의 時運의 萬物이 이미 濟한 象이오 未濟는 萬物의 이미 濟한속에 아직 濟치 아니한 次世代의 열매가 있어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고 있는象이니 그러므로 未濟가 旣濟에 次하는 것이오 이 열매는 다시 乾에 連繼되어 永續不窮하는 것이다.

 

大象

物은 等分이오 方은 方所이며 辨物은 火의 明한 象이오 居方은 水의 聚하는 象이니 繫辭의 方以類聚物以群分이 곧 辨物居方의 뜻이다. 未濟는 天地日月水火의 大變化하는 卦로서 人間生活에 또한 大變化가 일어나는 것이므로 分하고 聚하고 함을 愼한

 



 

 

347

다고 한 것이다.

未濟는 文王八卦圖互旣濟이니 上爻陽下爻陰故 天地間에서 胎兒가 成하여 人體가 된 象이다.

初六의 濡其尾는 彖의 不續終이다. 旣濟와 未濟는 서로 圜轉하는 卦이므로 未濟의 濡其尾가 곧 旣濟의 濡其首이오 旣濟의 首가 可久치 못하므로 未濟의 尾가 또한 續終치 못하여 時運의 極함을 知치 못하는 것이다.

未濟上九의 濡其首는 곧 旣濟의 濡其尾이오 旣濟의 尾가 無咎하므로 未濟의 首가 또한 無咎한 것이다.

上九의 有孚于飮酒는(需于酒食) 需卦의 象이니 未濟는 沈水潛月로서 需卦의 天이 水中에 있는 象이 되므로 需卦의 象을 取한 것인데 需는 乾이 剛健하여 陷치 아니하므로 濡字에 水가 없는 需의 象이 되고 上九는 剛健치 못하므로 陽이 醉倒하여 濡首失是의 象이 되는 것이며 이가 未濟男之窮也라 함이다.(濡其首有孚失是는 訟卦의 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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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六에 亦不知極이라 하고 上九에 亦不知節이라 하니 이는 先后天의 달의 變化하는 節卦의 象을 因하는 것으로 極은 節九二의 失時極의 極이오 節은 節卦의 節이다. 初六은 續終치 못하여 終하니 이는 또한 節 九二의 失時極함을 알지 못하고 되풀이 함이오 上九는 濡首하여 男의 窮이 되니 이는 또한 節卦의 其道窮함을 아지 못하고 되풀이하는 것이다.

雜卦終段의 旣濟未濟의 理에 依하여 旣濟는 火가 下에서 推上하고 未濟는 火가 上에서 引上하는 것이다. 旣濟는 乾在坤下而推上 未濟乾在坤上而引上也

未濟當於丙午 而物之運行於終點疊?步 故丁未亦當於未濟 未濟者丁未之濟也 丁者 後甲三日之終 先庚三日之始 故自長之時運越於成之時運之象 所以丁未當未濟也

 



 


348

繫辭 上

繫辭는 사람의 成道함을 主하여 지은 글이다.

 

一. 天尊地卑章

 

天尊地卑乾坤定矣 ----在地成形變化見矣

易卦의 六十四卦는 모두 乾坤에서 生한 것이므로 繫辭의 첫머리에 乾坤의 作用을 말한 것이다. 天尊地卑는 乾坤이 上下에 定位함이오 地는 卑하고 天은 高하여 上下에 陳하니 陳은 列함이오 貴賤은 乾坤의 尊卑의 象으로서 乾을 貴하다 하고 坤을 賤하다 하는 것이오 動靜은 乾坤의 作用으로서 動은 能動함이오 靜은 受動함이며 有常이라 함은 坤이 乾을 承하여 主를 得하여 常이 있다 함이오 斷이라 함은 剛柔는 下文의 剛柔相摩의 乾剛坤柔이오 陰陽이 異段의 事를 裁하여 一로 決한다 함이니 이는 乾의 能動과 坤의 受動이 常道가 있으므로 乾剛坤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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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靜이 一로 決하여 分하면 一하고 一하면서 分하고 하는 것이다.

方以類聚는 坤의 作用이오 物以群分은 乾의 作用이다. 方은 陰의 偶하여 靜한 象이오 類聚는 同類의 物이 聚居함이니 地는 靜하여 形을 凝하는 것이므로 同一類의 形이 同一한 地宜에 聚하여 同居하는 것이며 物은 等位를 말함이오 群은 陰의 象으로서 各自派分하는 것이니 天은 動하여 聚散分合하는 것이므로 各其上下의 等位를 따라서 서로 群을지어 分居하는 것이다. 萬物의 聚分作用은 聚가 있는 곳에 分이있고 分이 있는 곳에 또한 聚가 있으며 또 聚에서 分이 生하고 分에서 聚가 生하니 그러므로 聚分의 際에는 반드시 愛惡의 情이 相攻하고 또 物이 相雜하여 合當치 못한 部面이 있어서 或은 繼生하고 或은 陷死하고 하는 吉凶이 生하는 것이니 이가

 



 


349

類聚와 群分이 吉凶을 生하는 所以이다.

卑高 動靜 聚分은 乾坤의 作用이로되 乾坤이 六子를 生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또한 六子의 作用도 되는 것이다. 卑는 地에 屬하는 兌澤이오 高는 天에 屬하는 艮山으로서 物의 形質을 成하는 것인데 天地의 生生은 有形에서 始하므로 乾坤의 다음에 山澤을 말한 것이다. 動은 震雷이오 靜은 巽風으로서 震雷는 能動하고 巽風은 受動하므로 動靜이라 한 것이오 物의 有形의 속에는 반드시 無形한 雷風의 氣가 作用하므로 山澤의 다음에 雷風을 말하니 이는 澤山咸의 다음에 雷風恒이 序하고 山澤損의 다음에 風雷益이 序하는 理이다. 方聚 物分은 未濟卦大象의 辨物居方의 뜻으로서 方聚는 水의 凝聚하는 作用이오 物分은 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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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發散하는 作用이며 水의 속에 生命을 包하고 火의 속에 神의 作用을 含하여 萬物은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으므로 物의 聚分은 모두 水火의 作用에 依하여 行하는 것이다.

天地 卑高 動靜 聚分의 八卦의 象은 說卦의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와 相照하여 生의 時運에 씨에서 싹이 坼出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在天成象은 天의 日月이오 在地成形은 地의 萬物이니 天에 在한 日月은 그 形質을 接觸할수가없고 그 光熱같은 象만을 懸하여 地上에 垂示하는 것이므로 成象이라 한 것이오 地의 萬物은 地上에서 形質을 生成하고 있으므로 成形이라 한 것이다. 天上에서 日月이 運行하고 地上에서 萬物이 生成하여 모든 變化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生의 時運의 象이다.

 

是故剛柔相摩 ---- 坤道成女

 



 


350

剛柔는 乾陽과 坤陰이니 剛柔相摩라 함은 陰陽의 交互作用하는 象이오 盪은 皿上에 沸湯이있어 湯이 對流함이니 八卦가 上下로 交流하는 象이다. 雷霆은 震雷와 離火이오 風雨는 巽風과 坎水이니 雷風은 氣이오 水火는 精이라 乾坤生命元이 雷風의 氣를 生하여 氣化하고 水火의 精을 生하여 精化하는 것이 곧 鼓之潤之의 作用이다. 日月은 坎離이오 寒暑는 艮兌이니 艮에서 萬物이 止하는 것은 寒의 象이오 兌에서 萬物이 說하는 것은 暑의 象이며 澤山咸卦에 寒暑相推의 象이 있는 것은 이 까닭이오 寒暑는 物을 形化하는 作用이다.

男女라 함은 萬物의 雌雄牝牡를 總言한 것이다.

男女는 陽과 陰의 象인데 或은 男이 되고 或은 女가 되고 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萬物은 男女가 모두 陰과 陽으로 組織되어 있으되 다만 相異한 바는 坤體가 乾陽을 受하여 男을 生하는 까닭에 男은 陰體陽用이 되고 乾體가 坤陰을 受하여 女를 生하는 까닭에 女는 陽體陰用이 되어 그 體用關係를 달리한 것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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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道라 함은 陰體陽用의 一陰一陽하는 道이오 坤道라 함은 陽體陰用의 一陰一陽하는 道이다. 이 一節은 說卦의 雷以動之 風以散之 雨以潤之 日以暄之 艮以止之 兌以說之 乾以君之 坤以藏之와 相照하여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 天地가 最初로 男女를 生하여 地上에서 男女가 비로소 分化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雷霆의 鼓와 風雨의 潤은 震雷巽風의 氣가 相應하고 離霆坎雨의 水火의 精이 相聚함이오 日月의 運行은 太陽의 震子와 달의 兌澤이 合體하여 씨로 되어 生命體를 生함이오 一寒一暑는 生命體가 艮山兌澤의 質과 寒暑의 止說에 依하여 形이 成함이다. 여기에 日月과 寒暑를 말한 것은 物의 生生에 生命과 形質의 두 가지가 있음을 因함이니 物의 生生함에

 



 


351

는 生命은 光明에서 오는 까닭에 萬物의 씨는 日月에서 生하는 것이오 形質은 寒暑로써 養育되는 까닭에 春夏에 長育하고 秋冬에 收藏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日月이 相推하여 明이 生하고 明이 生하는 까닭에 生命이 生하는 것이오 寒暑가 相推하여 歲가 成하고 歲가 成하는 까닭에 形質이 成하는 것이다. 乾坤은 生命元이 되어 乾道가 男을 成하고 坤道가 女를 成하니 乾坤에는 日月의 光明이있고 그 光明에 運動하는 힘이 있는 까닭에 生命元이 되는 것이다.

 

乾知大始 ---- 成位乎其中矣

乾知大始라 함은 知는 光明의 發射함이오 大는 大哉乾元이오 始는 萬物의 資始함이니 乾은 光明의 속에 씨의 元인 震子가 있어 萬物에 周遍하여 資始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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坤作成物이라 함은 作은 制作함이오 成物은 物의 形體를 成함이니 坤은 乾의 씨를 承하여 그것을 制作하여 物을 形成하는 坤元資生의 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易簡이라 함은 日月의 陰陽作用이니 易는 平易함이오 簡은 簡約함이다. 太陽의 發施作用은 易하므로 日로된 易字를 쓰고 달의 承受作用은 簡하므로 月로된 簡字를 쓴 것이다. 乾以易知라 함은 乾의 發施는 易의 作用으로써 光明을 發射하여 知하다 함이니 知는 光明을 發하여 萬物에 射함이오 坤以簡能이라 함은 坤의 承受는 簡의 作用으로써 乾의 光明을 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能이 있다 함이니 能은 才能이라는 뜻이다.

乾은 易하므로 光明을 發하여 遠射하기가 쉽고 坤은 簡하므로 光

 



 


352

明을 承하여 應從하기가 쉬우며 知하기가 쉬우면 親함이 있으니 親이라 함은 萬物을 生하는 父母가됨이오 應從하기가 쉬우면 功이 있으니 功이라 함은 萬物을 作成하는 功業이다. 親함이 있으면 可히 久하니 이는 萬物의 父母가되면 恒久히 繼承한다 함이오 功이 있으면 可히 大하니 이는 作成하는 功業이 이루면 富有의 大業이 된다 함이다. 可히 恒久하면 이는 賢人의 德이니 德이라 함은 物을 生生하는 光明한 體를 말함이오 可히 富大하면 이는 賢人의 業이니 業이라 함은 物을 生生하는 事業을 말함이다.

易簡의 德業에 對하여 或은 聖人의 崇德廣業을 말하고 或은 君子의 進德修業을 말하고 或은 賢人의 可久之德 可大之業을 말하니 崇德廣業은 天의 崇과 地의 廣을 象한 것이므로 聖人의 일이 되는 것이오 進德修業은 사람의 修養을 말한 것이므로 用事하는 位에 있는 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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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의 일이 되는 것이오 賢人은 人品의 賢함을 말함이라 可久之德과 可大之業은 天地間에 三才의 位를 成하는 사람의 일이므로 用事하는 位를 取하지 아니하고 그 人品의 賢함을 取하여 賢人이라 한 것이다.

理라 함은 對待를 調和함이니 萬物은 모두 對待의 二元組織으로 되어 있으므로 對待를 調和한 然後에 生生作用이 行하는 것이다. 天地間에는 日月이 運行하여 易簡의 道로써 萬物의 對待를 調和하고 人間社會에서는 賢人이 易簡으로써 社會生活의 모든 對待를 調和하는 것이니 社會의 對待를 調和함이 곧 天下의 理가 得함이오 社會의 對待를 調和하는 賢人은 天地의 中에서 三才의 位를 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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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聖人設卦 章

 

聖人設卦觀象 --- 六爻之動 三極之道也

聖人이 易을 作하여 設卦 觀象 繫辭하는 것은 吉凶을 밝히기 爲함이오 卦와 爻에는 剛柔가 相推하여 變化를 生하니 明吉凶 生變化는 前章의 吉凶生矣 變化見矣를 承하여 말한 것이다. 明吉凶이라 함은 方以類聚物以群分하는 吉凶을 밝힘이니 卦爻中의 吉凶은 或은 聚하고 或은 分하고 하는 愛惡의 情을 因하여 生하는 것이오 生變化라 함은 在天 成象 在地成形하는 變化를 말함이니 卦爻中의 變化는 陰陽이 或은 進하고 或은 退하여 成象成形함을 因하여 生하는 것이다.

吉凶은 聚分하는 失得의 象이니 分은 失하여 凶함이오 聚는 得하여 吉함이다. 悔는 陽이 過動하여 陰中에 陷하여 心의 疾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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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吝은 陰이 收縮함이 過하여 吝嗇하여 進路가 窮한 것이다. 悔는 過함이오 吝은 不及함이다. 憂는 吝의 象이오 虞는 悔의 象이니 憂는 頭가 下垂함이오 虞는 虎가 大口 出聲하는 것으로서 震子의 鼓動하는 象이다. 悔는 陽이 陰에 陷하여 心의 疾하는 것인데 陽에는 能動作用이 있으므로 中途에서 懺悔하여 震子의 鼓動作用으로써 陷中에서 出하여 常道에 復하면 吉이 되는 것이오 吝은 陰이 收縮하여 吝嗇한 것인데 陰의 收縮이 過度하여 吝嗇에서 出치 못하고 進路가 窮하면 凶이 되는 것이니 事物의 聚分함에는 悔吝의 憂虞過程을 거쳐서 失得이 生하여 得한 者는 吉이 되고 失한 者는 凶이 되는 것이다.

變化라 함은 剛柔가 相推하여 進하고 退하고 하는 象이오 剛柔相推라 함은 日月晝夜의 相推하는 象이니 萬物의 變化는 모두 日月이 運行하고 晝夜가 交代하여 光明의 消長하는데서 生하는 것이므로 卦爻에도 光明의 消長하는 象

 



 


354

이 있는 곳에 變化가 生하는 것이다.

三極이라 함은 天의 太極과 地의 無極과 人의 皇極이니 六爻에는 上五의 兩爻가 天이 되고 三四의 兩爻가 人이 되고 初二의 兩爻가 地가 되는데 六爻를 靜的으로 보면 六爻는 天人地의 三才의 道가되고 動的으로 보면 六爻에 成象成形하는 變化가 있어 太極 皇極 無極의 象이 되니 그러므로 六爻의 動하여 變化를 生하는 것은 三極의 道이다.

三極의 道를 物의 生生으로써 보면 太極은 陽體의 象이오 無極은 陰體의 象이오 皇極은 太極과 無極이 相交하여 사람을 生하는 位의 象이니 天地가 相交하여 사람을 生하는 것이 곧 成象成形하는 變化이므로 六爻가 動하여 變化를 生하고 사람이 三才의 位에 있는 象에 三極의 道를 말한 것이오 三極의 道는 곧 사람의 生하는 道이다.

 

是故君子所居而安者 --- 自天祐之吉無不利

 



 


-355

易의 序라 함은 六十四卦의 卦序이오 卦序는 三極의 道로써 天地萬物의 生長成하는 象을 表示한 것이니 이는 사람이 天地中에 生하여 皇極의 位에 居하는 象이므로 君子가 居하여 安하는 것이오 爻의 辭라 함은 三極이 一陰一陽하는 道로써 動하는 六爻의 辭이니 六爻의 辭는 사람이 皇極의 位에서 動하고 있는 길을 指示하는 것이므로 君子가 樂하여 遊心하는 것이다.

觀象 觀變 玩辭 玩占의 象變辭占은 聖人의 四道이오 이 四道는 至精 至變 至神한 神道이므로 君子가 이것을 觀玩하면 天祐神助를 받는 것이다. 自天祐之吉無不利는 大有上九爻辭로서 달에서 賢人의 씨가 生할 때에 天祐를 받고 있음을 말함이니 聖人의 四道가 또한 天祐를 받는 神道이므로 大有上九爻辭를 引用하여 말한 것이다.

 



 


355

三. 彖者言乎象 章

 

彖者言乎象者也 --- 無咎者善補過也

彖者言乎象이라 함은 前章의 設卦 觀象 繫辭를 말함이오 爻者言乎變이라 함은 前章의 剛柔相推生變化를 말함이다. 吉凶者言乎其失得이라 함은 物의 聚하고 分하고 하여 失하면 凶하고 得하면 吉하고 함을 말함이다. 悔吝者言乎其小疵라 함은 吝은 小이오 悔는 疵이며 小는 陰의 收縮吝嗇함이오 疵는 疾이니 陽이 過動하여 陰中에 陷하여 心의 疾함이다. 無咎라 함은 咎는 人과 各으로 되어 사람이 서로 異各함이니 陰陽이 서로 異各치 아니하는 것이 곧 無咎이니 善으로써, 過度하는 悔를 補하면 서로 異各치 아니하는 것이다. 悔와 咎는 모두 物의

 



 


-356

聚分作用의 過程에 그 度를 過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是故 列貴賤者存乎位 --- 辭也者 各指其所之

列貴賤이라 함은 第一章의 貴賤位矣의 뜻을 承함이니 貴는 天의 象이오 賤은 地의 象이라 卦爻에는 天位를 貴라하고 地位를 賤이라 함으로 「三多凶 五多功 貴賤之等」이라 한 것이오 齊小大라 함은 第一章의 方聚物分의 뜻을 承함이니 小는 收斂하여 聚하는 象이오 大는 生長하여 分하는 象이라 收斂卦와 生長卦가 均齊히 配置된 것이 곧 齊小大이다.

辨吉凶이라 함은 第二章의 繫辭焉而明吉凶을 承함이오 憂悔吝이라 함은 第二章의 憂를 말함이오 震無咎라 함은 第二章의 虞를 말함이다. 介는 界의 뜻이니 陽의 發動하는 度와 陰의 收縮하는 度가 곧 介이므로 悔吝을 憂하는 것은 介를 過치 아니하기 爲함이오 震은 大口出聲하는 虞虎의 象이니 震이 陰과 異各치 아니하

 



 


356

는 것은 懺悔하여 常道에 復한 까닭이다.

險易라 함은 乾의 德行이 恒易하여 險함을 知한다는 뜻이니 易는 乾의 易簡이오 險은 易簡치 못한 險阻이다. 卦에는 聚하고 分하고 하는 小大가 있고 辭에는 易簡하고 險阻하고 함이 있으니 그러므로 卦爻의 辭는 各各 그 進出하는 길의 易簡하고 險阻하고 함을 指示한 것이다.

之라 함은 草木이 出하여 莖枝가 長한다는 뜻이니 卦爻의 辭는 草木의 出하여 長함과 같이 物의 生長하는 길을 말한 것이다.

 



 


-357白

 



 


357

四. 易與天地準 章

 

易與天地準 --- 知鬼神之情狀

이 章은 前章의 辭也者各指其所之를 承하여 易의 辭의 所指를 말한 것이다.

準이라 함은 水平으로 行한다 함이니 易學은 天地의 模寫圖로서 天地로 더불어 水平으로 行하여 함께 推移하는 까닭에 能히 天地의 一陰一陽하는 道를 彌縫織組하는 것이다. 天文이라 함은 太陽의 晝夜 달의 晦望等이오 地理라 함은 地의 四方 地上地下等이오 幽明이라 함은 달의 光明의 顯藏함이다. 달의 面은 太陽의 光을 받으면 明하고 太陽의 光을 받지 못하면 幽하니 이가 幽明이오 明은 生의 象이오 幽는 死의 象이라 달의 光明은 前面과 裏面을 循環하여 顯藏은 있으되 生死는 없는 것이며 달의 陰質은 太陽의 光을 받으면 明하여 生하는 象이 되고 光을 받지 못하면 幽하여 死하는 象이 되니 明과

 



 


-358

幽는 生과 死의 象이다. 사람의 씨는 달에서 生한 것인데 달에 幽明의 象이 있으므로 달의 陰質의 象인 사람의 形質에는 死生의 象이 있고 달의 光明의 象인 사람의 精神에는 顯藏만 있고 生滅이 없는 것이다. 仰과 俯는 上天下地의 象이오 幽明은 上天下地의 關係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仰觀俯察하면 幽明의 事故을 知하는 것이다. 原始라 함은 始하여 生하는 곳을 推原함이오 反終이라 함은 死하여 終하는 곳을 뒤집음이다. 사람은 生命의 元에서 始하여 生하고, 生이 다시 生命의 元으로 圜行하면 終하여 死하는 것이니 이는 死의 속에 生의 原이있고 生의 속에 死의 本이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始를 推原하면 거기에는 死가 있고 終을 뒤집으면 거기에는 生이 있어 死生이 互根하니 이가 사람의 死後에 鬼神이 存在하는 原理이다.

說이라 함은 死生에 對한 論爭이라는 뜻이니 知死生之說이라 함은 從來로 紛紛相訟하는 死生論爭을 判斷할 수 있다 함이다. 精氣爲物 游魂爲變이라 함은 사람의 씨는 달에서 生하여 有形한 精

 



 


358

과 無形한 氣로써 組織되는데 그 有形한 것은 形質이 되고 無形한 氣는 天性이 되는 것이며 形質은 有形하고 有形은 다시 無形으로 되어 生滅이 있으므로 肉體에는 死生이 있고 天性은 無形하고 無形은 生滅이 없으므로 天性에는 顯藏이있고 死生이 없어 사람의 死後에는 天性이 藏하여 游魂이 되는 것이니 이 游魂이 곧 鬼神의 情狀이다.

情은 鬼의 作用이오 狀은 神의 作用이니 生前의 本能인 情은 鬼의 作用으로되고 生前의 心의 光明은 神의 作用인 狀으로 되는 것이다. 이 一節은 易의 辭에 依하여 幽明 死生 鬼神의 理를 知한다 함을 말한 것이다.

 

與天地相似故不違 --- 安土敦乎仁故能愛

易學은 天地의 模寫圖로 되어 天地로 더불어 相似한 까닭에 天地와 相違치 아니하여 天地에 知와 仁이 있어 知崇禮(仁의 發展한 것)卑함과 같이 易理에 또

 



 


-359

한 知와 仁이 있는 것이다.

知는 光明의 發射함이니 곧 乾의 易知의 知이며 知가 萬物에 周遍하여 一陰一陽하여 天下의 生生을 濟하므로 陰陽이 道를 過치 아니하여 咎하는 過가 없는 것이오 이는 天의 事이다. 旁行이라 함은 中心으로부터 圓形으로 外向하여 行함이오 流라 함은 下로 陷하여 垂流함이오 樂天이라 함은 上으로 天의 光明을 向하여 喜함이오 知命이라 함은 天의 賦與한 命을 따라서 行함이오 不憂라 함은 憂悔吝하는 憂가 없다 함이니 光明이 中心으로부터 四方으로 旁行하여 乾陽의 光明을 順承하여 運行하므로 悔吝하는 過不及의 憂가 없는 것이니 이는 달의 事이다.

安土는 地의 象이오 敦은 열매의 象이오 仁은 열매의 子仁의 象이오 愛는 陰陽이 和合하여 陰이 陽을 包育하는 象이니 安土敦乎仁이라 함은

 



 


359

地가 安定하여 萬物을 生하고 기르고 여물게 하여 子仁을 包育하는 것은 곧 仁의 象이니 이는 地의 事이다. 이 一節은 易의 辭에 天의 知와 달의 順天命과 地의 仁의 象이 있다 함을 말함이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 --- 神無方而易無體

範圍라 함은 規模包括함이니 圓狀의 속에 物을 包括하는 象이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라 함은 天地의 化生 化成하는 作用을 規模하여 圓狀의 속에 包括하여 咎하는 過가 없는 것이다. 曲은 曲盡하다는 뜻으로서 또한 圓狀의 範圍라는 뜻이니 曲成萬物而不遺라 함은 萬物을 남김없이 天地의 圜運動의 속에 包하여 여물게 한다 함이다.(過過度也遺不及也過遺者悔吝也)

晝夜之道라 함은 日月이 相推하여 一陰一陽하여 變化를 生하는

 



 


-360

道이니 第二章의 「剛柔相推而生變化 剛柔者 晝夜之象也」의 뜻을 承한 것이다. 晝夜가 相推하여 變化를 生하고 變化의 道를 知하는 者는 神의 所爲를 知하는 것이니 天地間萬物의 變化는 모두 晝夜의 道로서 神의 所爲이며 晝夜의 道를 通하여 知한다 함은 變化의 道를 知하여 神의 所爲를 知한다 함이다. 萬物은 日月의 相推運動에 依하여 不斷히 變化하여 一定한 方所도없고 一定한 形體도 없으므로 變化를 行하는 神도 一定한 方이없어 無所不在하는 것이오 天地와 準似한 易도 萬物의 變化하는 狀態를 象하여 또한 一定한 形體가 없는 것이다. 이 一節은 易의 辭에 日月變化의 道와 神의 所爲의 象이 있다 함을 말함이다.

 



 

 

360

五. 一陰一陽 章

 

一陰一陽之謂道 --- 君子之道鮮矣

本章以下는 사람이 長의 時運으로부터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서 天性이 여물고 神의 作用이 生함을 말한 것이다.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는 것은 天地의 道이니 易學에 道라 한 것은 모두 一陰一陽하는 天地運行의 道를 말함이다.

繼之者善이라 함은 사람은 天地의 子로서 天地를 繼하여 生하는데 物의 生하는 것은 반드시 열매의 子仁에서 繼生하는 것이오 子仁은 四德의 一인 仁의 象이오 仁의 發用하는 것이 곧 善이다. 그러므로 物의 繼生하는 者는 모두 善함이오 사람의 善言善行같은 것은 모두 여문 열매의 子仁에서 繼生하는 象이며 子仁의 없는 열매는 發用하는 善이 없으므로 쭉정이가 되어 繼生치 못하는 것이다.

成之者性이라 함은 善이 天地를 繼하여 生하면 自體의 生生法則에 依하여 生하는 者는 반드시 長成하는 것이오 善이 長成하면 그것이 子仁으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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