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학의 원리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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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학(觀相學)의 원리(原理)

 

사람이 향진(向進)하고 있는 미래(未來)의 경지(境地)는 실(實)로 유심(幽深)하여 예측(豫測)하기 어렵고, 또 자기(自己)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 무엇인가를 알기 어려운 것이니, 이 미래(未來)와 천명(天命)을 전지(前知)하려 하는 것은 인생(人生)의 최대(最大) 소원(所願)이며, 이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기 爲하여 생겨난 것이 곧 관상학(觀相學)이다.

관상학(觀相學)은 역(易)의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한 것으로서 그 원리(原理)를 보면 충어조수(虫魚鳥獸) 등(等)은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형질조직(形質組織)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에 의착(依着)한 정신(精神)이 각이(各異)할 뿐만 아니라, 그 생활(生活)․수명(壽命) 등(等)이 또한 그 유(類)에 따라서 각이(各異)하니, 동물(動物)의 생활(生活)에 수서(水棲)․육서(陸棲)․비류(飛類)․주류(走類) 등(等)의 유(類)가 있고 그 천수(天壽)도 그 유(類)에 따라서 대개(大槪)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이삼월(二三月)의 물(物)이 있고 수년(數年)의 물(物)이 있고 혹(或)은 이삼십년(二三十年)․혹(或)은 수백년(數百年)의 물(物)이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오, 이러한 생활(生活)․수명(壽命)은 그 유(類)의 천명(天命)이며, 만물(萬物)에는 모두 그의 형질(形質)의 조직여하(組織如何)에 따라서 천명(天命)이 각이(各異)함으로 그 습성(習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각이(各異)한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동일(同一)한 유(類)라 하더라도 각개(各個)의 형질조직(形質組織)이 상이(相異)한 때에 그 개성(個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상이(相異)할 것은 자명(自明)한 이(理)이다. 이와 같이 형질(形質)의 조직(組織)이 상이(相異)하면 개성(個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상이(相異)한지라, 사람도 인류(人類)라는 처지(處地)로써 보면 인류공통(人類共通)의 천명(天命)과 천성(天性)을 가지고 운명(運命) 성정(性情) 등(等)이 상동(相同)한 것이지만, 개인(個人)으로써 보면 전인류중(全人類中)에 동일(同一)한 용모(容貌)를 가지고 있는 자(者)는 일인(一人)도 없음과 같이 각개인(各個人)이 모두 독자(獨自)한 형질조직(形質組織)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독자(獨自)한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여 개성(個性)이 상이(相異)함은 물론(勿論)이오 수요(壽夭)․현우(賢愚)․귀천(貴賤) 등(等) 운명(運命)도 각이(各異)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이것이 관상학(觀相學)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나 운명(運命)은 선천조직(先天組織)에 속(屬)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 운행(運行)에 속(屬)하는데, 조직(組織)은 안정체(安貞體)로서 항구(恒久)하고 있으므로, 체(體)로써 운명(運命)을 예지(豫知)할 수는 있으나, 운행(運行)은 유동(流動)하는 용(用)으로서 부단(不斷)히 변화(變化)하고 있으므로, 용(用)으로써 운명(運命)을 예지(豫知)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관상학(觀相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네 가지가 있으니,

一.은 관상학(觀相學)은 골격(骨格)․형용(形容) 등(等) 체(體)의 조직(組織)으로써 운명(運命)을 점(占)함으로 인생생활(人生生活)의 체(體)에 속(屬)하는 부면(部面), 즉(卽)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재산(財産) 등(等)에 관(關)한 운명(運命)은 알 수가 있으나, 용(用)에 속(屬)하는 사상(思想)․학술(學術)․기능(技能) 등(等)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

二.는 사람에게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한 자(者)와 용대체소(用大體小)한 자(者)가 있는지라, 체대용소(體大用小)한 자(者)는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 미약(微弱)하여 운명(運命)에 지배(支配)되는 면(面)이 광대(廣大)함으로 이러한 사람에 대(對)하여는 관상학(觀相學)으로써 그 운명(運命)을 알 수가 있으나, 용대체소(用大體小)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 강대(强大)한 자(者)는 의지(意志)의 힘이 능(能)히 그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하는 면(面)이 광대(廣大)함으로 운명(運命)을 예점(豫占)하기 어려운 것이다.

三.은 고래(古來)로 「골상(骨相)이 심상(心相)만 같지 못하다」하여, 사람을 음해(陰害)하고 불선(不善)을 적루(積累)한 자(者)는 길상(吉相)이 흉상(凶相)으로 변(變)하고, 사람을 제활(濟活)하고 음덕(陰德)을 적루(積累)한 자(者)는 흉상(凶相)이 길상(吉相)으로 변(變)한다는 뜻을 말하고, 수경집(水鏡集)이라는 상서(相書)에는 「사람을 상(相)하는 법(法)이 그 형용(形容)․골격(骨格)을 취(取)하는 자(者)가 십(十)의 오(五)이오, 그 가변(可變)함을 득(得)하는 자(者)가 또한 십(十)의 오(五)이라」하여, 불변(不變)하는 골격(骨格)과 가변(可變)하는 의지(意志)의 작용(作用)이 반반(半半)함을 말하니, 이 가변(可變)하는 면(面)이 있는 까닭에 운명(運命)을 예점(豫占)하기 어려운 것이다.

四.는 운명(運命)이라 함은 개인(個人)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個人)에게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음과 같이 통체조직(統體組織)인 사회(社會)에도 또한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으니,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다만 자연환경(自然環境)에 의(依)하여 기계적(機械的)으로 일정(一定)한 기간(期間)에 일정(一定)한 단계(段階)를 밟아서 진행(進行)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력(强力)히 작용(作用)하여 있고 또 다만 국민(國民)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임의(任意)로 건설(建設)․변개(變改)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부단(不斷)히 운명(運命)의 제약(制約)을 받고 있으니 사회(社會)의 흥망(興亡)․성쇠(盛衰)도 또한 반(半)은 운명(運命)이오, 반(半)은 자유의지(自由意志)이다. 그리하여 개인(個人)과 사회(社會)는 대대관계(對待關係)로써 호근(互根)하고 있는지라, 개인(個人)의 운명(運命)과 사회(社會)의 운명(運命)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고, 개인(個人)의 의지(意志)와 사회(社會)의 의지(意志)가 또한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개인(個人)의 면(面)과 사회(社會)의 면(面)으로부터 오는 화복(禍福)이 또한 반반(半半)하고 있는 것이다. 전장(戰場)에서 다수(多數)한 생명(生命)이 일시(一時)에 상해(傷害)되는 것은, 그들의 운명(運命)이 모두 그날 그 시(時)에 상해(傷害)되기로 부여(賦與)된 것이 아니오, 국력(國力)이 부강(富强)하고 정치(政治)가 청신(淸新)한 나라의 국민생활(國民生活)이 모두 안락(安樂)한 것은, 그들의 운명(運命)이 모두 천복(天福)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이는 모두 사회(社會)로부터 오는 화복(禍福)이니, 그러므로 개인(個人)의 운명(運命)만으로서 화복(禍福)을 예점(豫占)치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화복(禍福)이 유래(由來)하는 길은 실(實)로 다기다양(多岐多樣)한지라, 그러므로 인생(人生)의 일생행로(一生行路)는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반반착종(半半着綜)한 미지(未知)의 지역(地域)을 탐검(探檢)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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