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도덕 (한장경 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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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權力)과 도덕(道德)

 

정치(政治)에 있어서는 정부(政府)는 용(用)이오 민중(民衆)은 체(體)이라,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로는 정부(政府)는 상위(上位)에 있고 민중(民衆)은 하위(下位)에 있으니, 역(易)에「辨上下 定民志 = 상하(上下)를 변(辨)하고 민지(民志)를 정(定)한다」【註八】함이 곧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로는 민중(民衆)이 국가(國家)의 주인공(主人公)이 되고 정부(政府)는 민의(民意)를 반영(反映)하여 정무(政務)에 종사(從事)하는 것이니, 역(易)에「上下交而其志同也 = 상하(上下)가 교(交)하여 기지(其志)가 동(同)하다」【註九】하여, 음(陰)이 상(上)에 있고 양(陽)이 하(下)에 있음을 상하교(上下交)라고 함이 곧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다.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있으므로 써 정치(政治)의 중심기관(中心機關)이 능(能)히 사회(社會)를 통솔(統率)하여 정사(政事)의 계통(系統)이 확립(確立)하나니, 만일 이 질서(秩序)가 없으면 명령(命令)과 복종(服從)의 관계(關係)가 혼란(混亂)하고 특권계급(特權階級)이나 난법(亂法)하는 관리(官吏)들이 자의(恣意)로 민중(民衆)을 사역(使役)하고 민재(民財)를 징렴(徵斂)하여 정령(政令)이 다문(多門)하고 사회(社會)의 통일(統一)을 해(害)하는 것이다. 역(易)에 「二君而一民 小人道也 = 이군(二君)에 일민(一民)이니 소인(小人)의 도(道)라」【註十】함은, 민중(民衆)은 하나인데 명령(命令)을 발포(發布)하는 정문(政門)은 두 곳이 있어 정치(政治)의 계통(系統)이 통일(統一)되지 못함이니 이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문란(紊亂)함을 말함이다.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있으므로 써 상하(上下)의 지(志)가 상통(相通)하여 정치(政治)와 민심(民心)이 합일(合一)하나니, 만일 이 질서(秩序)가 없으면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관권(官權)을 남용(濫用)하여 독선거만(獨善倨慢)한 태도(態度)로 써 민중(民衆)을 억압(抑壓)하여 민심(民心)이 유난(遊難)하는 것이다. 역(易)에「上下不交而天下無邦也 = 상하(上下)가 교(交)치 못하여 천하(天下)가 방(邦)이 없다」【註十一】함은,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민의(民意)를 유린(蹂躪)하고 민중(民衆)이 정부(政府)의 명령(命令)을 순종(順從)치 아니하여 방국(邦國)의 도(道)가 없음이니, 이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파괴(破壞)됨을 말함이다.

원래(元來) 사회(社會)의 조직(組織)은 민중(民衆)을 체(體)로 하는 것이라, 민중(民衆)이 부유(富裕)하면 국가(國家)도 부강(富强)하고 민심(民心)이 화열(和悅)하면 국가(國家)도 흥왕(興旺)함으로, 역(易)에는「損 損下益上 益 損上益下 = 손(損)이라 함은 하(下)를 손(損)하여 상(上)을 익(益)함이오 익(益)이라 함은 상(上)을 손(損)하여 하(下)를 익(益)함이라」【註十二】하니, 이를 경제관계(經濟關係)로 써 보면 민중(民衆)의 재화(財貨)를 할분(割分)하여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의 호사생활(豪奢生活)에 공여(供與)함은 국가(國家)의 손(損)이 되고 재화(財貨)의 분배(分配)가 상위(上位)에 박(薄)하고 하위(下位)에 후(厚)함은 국가(國家)의 익(益)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과거(過去)의 사실(史實)로 써 보더라도 군주전제정치(君主專制政治)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를 편용(偏用)함으로 민중(民衆)의 재화(財貨)와 노력(勞力)을 박할(剝割)하여 귀족계급(貴族階級)을 봉양(奉養)한 것이오, 난세(亂世)의 관료(官僚)들은 대개(大槪)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만을 알고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알지 못함으로 겸양자비(謙讓自卑)하는 미덕(美德)을 보기 어렵고 횡포(橫暴)와 탐오(貪汚)를 자행(恣行)하는 일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는 국가(國家)를 통어(統御)하는 권력(權力)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수립(樹立)되고,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는 위정자(爲政者)가 자기(自己)의 직무(職務)와 책임(責任)을 존중(尊重)하는 도덕관념(道德觀念)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수립(樹立)되는 것이므로,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수립(樹立)된 사회(社會)는 도덕(道德)이 행(行)하여 치세(治世)가 되고 그것이 수립(樹立)되지 못한 사회(社會)는 권력(權力)이 편승(偏勝)하고 도덕(道德)이 패괴(敗壞)하여 난세(亂世)가 되나니, 인세(人世)의 치란(治亂)은 주(主)로 이 일점(一點)에서 분기(分岐)되는 것이며, 또 비록 군주전제사회(君主專制社會)라 하더라도 위정자(爲政者)의 도덕관념(道德觀念)이 발달(發達)한 시대(時代)는 그 정치운용(政治運用)이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세우는 일이 있으니, 이조(李朝) 세종시대(世宗時代)의 낙점제(落點制) 같은 것이 그 현저(顯著)한 일례(一例)이다. 당시(當時) 토지조세제도(土地租稅制度)의 공법(貢法)과 답험법(踏驗法)에 대(對)하여 국론(國論)이 귀일(歸一)치 못하고 정부내(政府內)에도 양론(兩論)이 대립(對立)하여 오래도록 결정(決定)치 못하는지라, 이에 세종왕(世宗王)은 이 문제(問題)의 가부(可否)를 민의(民意)에 묻기 위(爲)하여 전국농호(全國農戶)에게 낙점제(落點制)를 시행(施行)하니, 낙점(落點)이라 함은 곧 지금의 투표(投票)와 같은 것이니, 이 낙점제(落點制)는 교체정치(交體政治)의 일표현(一表現)이오, 거금(距今) 오백여년전(五百餘年前)에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기 위(爲)하여 이미 이러한 제도(制度)를 채용(採用)한 것은 정치사상(政治思想)의 발달(發達)됨을 말하는 것이다. 낙점(落點)의 결과(結果) 충청(忠淸)․전라(全羅)․ 경상(慶尙)의 삼도(三道)는 공법(貢法) 찬성(贊成)이 약(約) 십분(十分)의 칠(七)이오, 경기(京畿) 이북(以北)의 오도(五道)는 답험법(踏驗法) 찬성(贊成)이 약(約) 십분(十分)의 팔(八)이니, 이는 토지(土地)의 비척(肥瘠)에 따르는 민의(民意)의 반영(反映)이다. 그러나 남북(南北)의 민의(民意)가 또한 대립(對立)하고 있으므로 국법(國法)의 통일(統一)보다도 지리적(地理的) 조건(條件)에 의(依)하여 민의(民意)에 순응(順應)하는 것이 위정(爲政)의 근본(根本) 정신(精神)이라 하여, 삼남(三南)에는 공법(貢法)을 실시(實施)하되 천재(天災)가 있는 토지(土地)에 한(限)하여 급재(給災)하기로 하고, 북오도(北五道)에는 답험법(踏驗法)을 실시(實施)하여, 남북(南北)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모두 그 소의(所宜)를 얻게 하니, 이 아무 간섭(干涉)이 없는 낙점제(落點制)와 적지적법제(適地適法制)가 곧 교체정치(交體政治)의 극치(極致)이오, 또한 지금의 소위(所謂)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진수(眞髓)이다.

원래(元來) 교체(交體)에는 상여상구(相與相求)하는 상(象)이 있으니, 만물(萬物)은 아(我)의 작용(作用)을 타(他)에게 가(加)하여 타(他)의 욕망(欲望)을 만족(滿足)케 하는 때에 그 반보(反報)로서 아(我)가 또한 타(他)의 작용(作用)을 받아서 만족(滿足)을 얻는 것이다, 즉(卽)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모두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있어, 아(我)의 작용(作用)을 대대(對待)되는 상대방(相對方)에 시여(施與)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상대방(相對方)으로부터 그의 작용(作用)을 받아서 서로 그 작용(作用)을 교역(交易)하는 때에 비로소 만족(滿足)과 쾌열(快悅)을 얻는 것이오, 만일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아(我)의 작용(作用)을 타(他)에게 시여(施與)치 아니하면 또한 타(他)로부터 응보(應報)를 받지 못하는 것이니, 이 까닭에 독음독양(獨陰獨陽)은 고립독행(孤立獨行)하여 만족(滿足)도 없고 쾌열(快悅)도 없는 것이다. 예(例)컨대 다량(多量)의 상품(商品)을 소유(所有)한 상인(商人)이 있다고 하면 그 상품(商品)을 수요자(需要者)에게 공급(供給)하는 때에 그 수요자(需要者)는 만족(滿足)을 느끼고, 상인(商人)은 그 대상(代償)으로서 화폐(貨幣)를 획득(獲得)하여 또한 만족(滿足)을 느끼는 것이니, 이는 물화(物貨)의 교역(交易)에 의(依)하여 서로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한 것이다. 만일 상인(商人)이 상품(商品)을 가지고 있으되 그 상대(相對)되는 수요자(需要者)를 만나지 못하면 이는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도리어 고통(苦痛)을 느끼는 것이오, 또 수요자(需要者)가 화폐(貨幣)를 가지고 있으되 그 상대(相對)되는 상품(商品)을 만나지 못하면 또한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스스로 곤난(困難)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商品)이나 화폐(貨幣)는 타(他)를 이(利)하는 때에 또한 아(我)를 이(利)하여, 타(他)와의 교역(交易)을 행(行)함으로써 비로소 양방(兩方)이 모두 만족(滿足)과 쾌열(快悅)을 얻는 것이니, 이 이(理)는 만물(萬物)의 교체관계(交體關係)에 적용(適用)되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

위정층(爲政層)과 민중(民衆)과의 사이도 또한 그러하여, 위정층(爲政層)의 시책(施策)이 득의(得宜)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만족쾌열(滿足快悅)하여 정치(政治)를 지지(支持)하고, 민심(民心)의 정치지지(政治支持)가 곧 위정층(爲政層)의 만족쾌열(滿足快悅)이 되는 것이니, 민심(民心)은 분노원한(憤怒怨恨)하되 위정층(爲政層)이 홀로 만족쾌열(滿足快悅)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오, 혹시(或是) 있다고 하면, 그는 오직 권력행사(權力行使)만을 위주(爲主)하여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파괴(破壞)하던 고려(高麗)의 충혜(忠惠)나 이조(李朝)의 연산(燕山)․광해(光海)의 시대(時代)와 같이, 폭군암주(暴君暗主)와 간신흉도(奸臣兇徒)들이 용사(用事)하는 정치하(政治下)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삼략(三略)에 「昔者良將之用 兵有饋簞醪者使投諸河 與士卒同流而飮矣 一簞之醪 不能味一河之水 而三軍之士 思爲致死者 以滋味之及己也 = 옛적에 양장(良將)이 용병(用兵)함에 단료(簞醪)를 주는 자(者) 있거늘 이를 하(河)에 던지게 하여 사졸(士卒)로 더불어 동류(同流)하여 음(飮)하니, 그 일단(一簞)의 요(醪)가 능(能)히 일하(一河)의 수(水)를 맛이 나게 하지 못하되 삼군(三軍)의 사(士)가 치사(致死)하기를 생각하는 것은 자미(滋味)의 자기에게 및음으로 쎄라」【註十三】하니, 이는 주장(主將)의 지정(至情)이 사졸(士卒)에 및고, 사졸(士卒)의 지정(至情)이 또한 주장(主將)에 미쳐서, 지정(至情)과 지정(至情)이 서로 교체(交體)됨을 말함이라, 지정(至情)이 교체(交體)된 곳에는 권력(權力)도 없고 위세(威勢)도 없고, 오직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있을 뿐이다. 역(易)에「君子定其交而後求 無交而求則民不與也 = 군자(君子)는 그 교(交)를 정(定)한 후(後)에 구(求)하나니, 교(交)가 없이 구(求)한즉 민(民)이 주지 아니한다」【註十四】하니, 교(交)라 함은 상하(上下)가 상교(相交)하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라, 정치(政治)는 상하(上下)가 상교(相交)한 후(後)에 민중(民衆)에게 그 복종(服從)을 요구(要求)할 것이오, 만일 상교(相交)함이 없이 요구(要求)하면 민중(民衆)이 응종(應從)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민중(民衆)에게 요구(要求)함이 있으되 민중(民衆)이 응종(應從)치 아니하는 때는, 민중(民衆)을 벌책(罰責)하기 전(前)에 먼저 위정자(爲政者) 자신(自身)이 권력(權力)을 중심(中心)으로한 독선정치(獨善政治)를 행(行)하고 있는가, 또는 도덕(道德)을 중심(中心)으로 한 교체정치(交體政治)를 행(行)하고 있는가를 반성(反省)하여 냉정(冷靜)히 자기(自己)를 비판(批判)하는 것이 곧 정치(政治)의 상도(常道)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泰卦 大象傳

註三. 謙卦 彖傳

註四.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五, 旣濟卦는 水가 上에 있고 火가 下에 있으므로 相交가 되고, 未濟卦는 火가 上에 있고 水가 下에 있으므로 不交가 된다.

註六. 恒卦 彖傳

註七. 咸卦 彖傳

註八‘ 履卦 大象傳

註九. 泰卦 彖傳

註十. 繫辭下傳 第四章

註十一. 否卦 彖傳

註十二. 損卦 彖傳에 「損損下益上」益卦彖傳에 「益損上益下」

註十三. 三略이라는 兵書

註十四. 繫辭下傳 第五章 益卦上九爻義中에서 抄出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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