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원리(對待原理)
통일(統一)과 대대(對待)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
만물중(萬物中)에 포장(包藏)되어 있는 체(體)와 용(用)은 서로 혼륜묘합(渾淪妙合)하여 일물(一物)로 통일(統一)되어 상리(相離)치 못하면서 또한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완연(宛然)한 이물(二物)로 되어 서로 협잡(挾雜)치 못하니, 체용(體用)의 이러한 작용(作用)이 곧 대대(對待)이다.
대(對)는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 뜻이오, 대(待)는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 뜻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단일(單一)한 개체내(個體內)에서거나 또는 여러 개체(個體)의 집성(集成)된 통체내(統體內)에서거나를 막론(莫論)하고, 반드시 체(體)와 용(用)의 관계(關係)를 가진 양작용(兩作用)이 있어 어느 것이 상반상적(相反相敵)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어느 것이 상합상수(相合相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例)컨대 태양(太陽)과 대지(大地)의 사이에는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이 있어 향심력(向心力)은 서로 향응(向應)하려 하고 이심력(離心力)은 서로 격리(隔離)하려하여 양력(兩力)이 상지(相持)하면서 항상(恒常)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보유(保有)하니, 이 이심력(離心力)의 작용(作用)은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대(對)」이오 향심력(向心力)의 작용(作用)은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대(待)」이다.
천지(天地)의 대대관계(對待關係)에 대(對)하여「서화담(徐花潭)」은 말하되「天運其氣 地凝其形 氣之性動 騰上者也 形之質重墜下者也 氣包形外 形在氣中 騰上墜下之相停 是則懸於太虛之中而不上不下 左右圜轉 亘古今而不墜者也 = 천(天)은 그 기(氣)를 운(運)하고 지(地)는 그 형(形)을 응(凝)하니, 기(氣)의 성(性)은 동(動)하여 등상(騰上)하는 자(者)이오, 형(形)의 질(質)은 중(重)하여 추하(墜下)하는 자(者)이라, 기(氣)는 형외(形外)를 포(包)하고 형(形)은 기중(氣中)에 재(在)하여 등상(騰上)과 추하(墜下)가 상정(相停)하니 이가 곧 태허중(太虛中)에 현(懸)하여 상(上)하지도 아니하고 하(下)하지도 아니하고, 좌우(左右)로 환전(圜轉)하여 고금(古今)에 긍(亘)하여 추(墜)치 아니하는 자(者)이라」【註一】하니, 기(氣)와 형(形)이 서로 의부(依附)함이 곧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만유인력설(萬有引力說)도 또한 향심력(向心力)에 의(依)한 견인작용(牽引作用)과 이심력(離心力)에 의(依)한 추척작용(推斥作用)을 말한 것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체용(體用)의 대대(對待)가 있으므로 또한 모두 견인(牽引)과 추척(推斥)의 양력(兩力)이 아울러 작용(作用)하나니, 식물(植物)과 토양(土壤)과의 관계(關係)로써 보면 식물(植物)의 근(根)은 하향(下向)하여 토중(土中)에 투입(透入)하되 그 지엽(枝葉)은 토양(土壤)을 등지고 상행(上行)하며, 또 토양(土壤)은 식물(植物)의 근(根)을 수장(收藏)하되 양분(養分)․수분(水分) 등(等)을 간경(幹莖)에 발시(發施)하니, 이는 식물(植物)은 일입일출(一入一出)․일향일리(一向一離)함이오, 토양(土壤)은 일인일추(一引一推)․일수일발(一收一發)함이다.
그러므로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반드시 천(天)을 향(向)하여 상승(上升)하는 것은 다만 그 지엽자체(枝葉自體)의 배토성(背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추척력(推斥力)을 받는 까닭이오, 초목(草木)의 근(根)이 지중(地中)을 향(向)하여 투입(透入)하는 것은, 다만 그 근자체(根自體)의 향토성(向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견인력(牽引力)을 받는 까닭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음양성(陰陽性)의 양물(兩物)이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은「대(對)」이오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괴위(乖違)함으로써 그 지(志)가 상감상통(相感相通)하여 교여작용(交與作用)이 행(行)함은「대(待)」이며,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각기(各其) 자기(自己)를 중심(中心)으로하여 동작(動作)하고 배타성(排他性)을 가지고 있음은「대(對)」이오,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서로 의존(依存)하고 서로 부조(扶助)하고 있음은,「대(待)」이며, 동일(同一)한 신체내(身體內)에서도 육체(肉體)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체(體)가 되고 기(氣)는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용(用)이 되는지라, 하나는 수렴(收斂)하려 하고 하나는 유행(流行)하려 하여 두 작용(作用)이 상반(相反)함은「대(對)」이오 양자(兩者)가 비록 상반(相反)하고 있으되 혼륜일체(渾淪一體)가 되어 자체(自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수행(遂行)함은「대(待)」이다. 지금의 학문(學問)에 소위(所謂)「이율배반성(二律背反性)」․「모순(矛盾)의 통일성(統一性)」같은 것은 모두 이 대대작용(對待作用)의 일현상(一現象)을 말함이다.
체(體)와 용(用)은 이미 통일물(統一物)의 속에 혼륜(渾淪)하여 상리(相離)치 못하고, 또 양물(兩物)의 작용(作用)은 판연(判然)히 상이(相異)하여 상합(相合)치 못하니, 상리(相離)치 못함으로 일(一)이 되고, 상합(相合)치 못함으로 양(兩)이 된다. 역(易)에「陰陽不測之謂神 = 음(陰)하고 양(陽)함을 측(測)치 못함을 신(神)하다 이른다.」【註二】한바,『장횡거(張橫渠)』는 이를 주석(註釋)하되「兩在故不測 一故神 = 양재(兩在)한 고(故)로 측(測)치 못하고 일(一)한 고(故)로 신(神)하다」하니, 이는 음양(陰陽)의 양개작용(兩個作用)이 일물(一物)의 속에 포함(包涵)되어 신묘(神妙)한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일(一)과 양(兩)은 별개(別個)의 이물(異物)이 아니라 일(一)은 양(兩)으로써 성립(成立)되어 양(兩)의 권외(圈外)에 따로 일(一)이 있는 것이 아니오, 또 양(兩)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서 일(一)을 떠나서 양(兩)이 별물(別物)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一而二 二而一 = 일(一)하면서 이(二)하고, 이(二)하면서 일(一)한다」하는 일양작용(一兩作用)이라 한다.
역(易)에「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 형(形)하여 상(上)한 자(者)를 도(道)라 이르고, 형(形)하여 하(下)한 자(者)를 기(器)라 이른다.」【註三】하니, 도(道)라함은 운행(運行)을 말함이오, 기(器)라 함은 조직(組織)을 말함이라, 이는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한 면(面)은 형이상(形而上)한 운행력(運行力)이 되고, 한 면(面)은 형이하(形而下)한 조직체(組織體)가 되어, 비록 그 형현(形現)함이 상하(上下)의 계분(界分)은 있으나, 본원(本源)이 일(一)하고 파분(派分)이 이(二)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며, 또「一陰一陽之謂道」「一闔一闢謂之變」=「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르고」【註四】「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함을 변(變)이라 이른다」【註五】하니, 이것도 일물(一物)의 운동변화(運動變化)가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며, 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여기에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함은 한번 한(寒)하고 한번 서(暑)하며, 한번 야(夜)하고 한번 주(晝)하는 유(類)이오, 일합일벽(一闔一闢)이라 함은 한번 생장(生長)하고 한번 수장(收藏)하며, 한번 정지(靜止)하고 한번 동작(動作)하는 유(類)이다.
「서화담(徐花潭)」은 태허(太虛)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을 말하되「語其淡然之體曰一氣 語其混然之周曰太一 旣曰一氣 一自含二 旣曰太一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能生克 生則克 克則生 氣之自微 二至鼓盪 其生克使之也 一非數也 數之體也 = 그 담연(淡然)한 체(體)를 말하여 가로되 일기(一氣)라 하고, 그 혼연(混然)한 주(周)를 말하여 가로되 태일(太一)이라 한다. 기(旣)히 일기(一氣)라 하니 일(一)이 스스로 이(二)를 함(含)하고, 기(旣)히 태일(太一)이라 하니 일(一)이 곧 이(二)를 함(涵)한지라, 일(一)은 이(二)를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이(二)는 스스로 능(能)히 생(生)하고 극(克)하여, 생(生)하면 곧 극(克)하고 극(克)하면 곧 생(生)하나니, 기(氣)의 미(微)로부터 써 고탕(鼓盪)함에 지(至)함은 그 생(生)과 극(克)이 사연(使然)케 함이며, 일(一)이라 함은 수(數)가 아니오 수(數)의 체(體)라」【註六】하니, 이는 일(一)이라함은 통일체(統一體)의 명명(命名)이오 이(二)라함은 생(生)과 극(克)의 대대작용(對待作用)으로서, 태허(太虛)는 통일(統一)과 대대(對待)가 일이이(一而二)․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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