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원론'에 해당되는 글 106건

  1. 2013.09.07 조직의 음양성 (한장경저 역학원론)
  2. 2013.09.07 운행의 사시성 (한장경저 역학원론)
  3. 2013.09.07 조직운행의 계통 (한장경저 역학원론)
  4. 2013.09.07 대대원리 통일과대대 일이이이이일(한장경저 역학원론)
  5. 2013.09.07 유물론과 유심론 (한장경저 역학원론)
  6. 2013.09.07 대대의 분포 (한장경저 역학원론)
  7. 2013.09.07 통관과 동관 (한장경저 역학원론)
  8. 2013.09.07 대대와운동 대대의호근 (한장경저 역학원론)
  9. 2013.09.07 대대의 균등 (한장경저 역학원론)
  10. 2013.09.06 사회의 신진대사 (한장경저 역학원론)
  11. 2013.09.06 대대와 삼재 (한장경저 역학원론)
  12. 2013.09.06 삼색과 삼극 (한장경저 역학원론)
  13. 2013.09.06 능동과 수동 (한장경저 역학원론)
  14. 2013.09.06 개체와 통체 (한장경저 역학원론)
  15. 2013.09.06 안정과 발용 (한장경저 역학원론)

조직의 음양성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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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組織)의 음양성(陰陽性)

 

만물(萬物)은 모두 천(天)의 기(氣)와 지(地)의 정(精)이 상교(相交)하여 형체(形體)(생물(生物))를 이루는 것이니, 정(精)은 음성(陰性)이오 기(氣)는 양성(陽性)이라, 정(精)이 있으므로 써 능(能)히 응주(凝做)하여 형체(形體)를 이루고, 기(氣)가 있으므로 써 능(能)히 발용(發用)하여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精)에는 유순(柔順)․지정(止靜)․안정(安定)․승수(承受)․수용(受容)․수동(受動)․포함(包含)․소극(消極)․퇴굴(退屈)․ 염장(斂藏)․응결(凝結) 등(等) 음성작용(陰性作用)이 있고, 기(氣)에는 강건(剛健)․유동(流動)․고무(鼓舞)․발시(發施)․주류(周流)․능동(能動)․분약(奮躍)․적극(積極)․추진(推進)․출현(出顯)․발산(發散) 등(等) 양성작용(陽性作用)이 있는데, 이 양성(兩性)의 작용(作用)은 유순(柔順)과강건(剛健) 지정(止靜)과유동(流動) 안정(安定)과고무(鼓舞) 승수(承受)와발시(發施) 수용(受容)과주류(周流) 수동(受動)과능동(能動) 포함(包含)과분약(奮躍) 소극(消極)과적극(積極) 퇴굴(退屈)과추진(推進) 염장(斂藏)과출현(出顯) 응결(凝結)과발산(發散) 등(等) 매매(每每) 상반(相反)하고 있다. 그러나 기(氣)는 정(精)에 의착(依着)한 연후(然後)에 그 부거(附據)할 곳을 얻어서 존재(存在)할수 있고, 정(精)은 기(氣)에 근저(根柢)한 연후(然後)에 그의 고무(鼓舞)에 의(依)하여 동작(動作)할수 있어, 양성(兩性)의 작용(作用)은 또한 매매(每每) 상합(相合)하고 있다.

천지(天地)․뇌풍(雷風)․수화(水火)․산택(山澤)의 팔물(八物)에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있으니, 천(天)은 양(陽)이오 지(地)는 음(陰)이라, 음양(陰陽)의 위(位)가 상하(上下)에 각정(各定)함은 상반(相反)이오, 이기(二氣)가 상교(相交)하여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함은 상합(相合)이며, 전기(電氣)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어 음(陰)이 되고 공기(空氣)는 발산작용(發散作用)이 있어 양(陽)이 되는지라, 전기(電氣)와 공기(空氣)가 상충(相衝)함은 상반(相反)이오 양물(兩物)이 함께 대기중(大氣中)에 혼륜(渾淪)하여 상여(相與)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六】함은 양자(兩者)의 상반(相反)을 말함이오,「雷風不相悖 = 뇌(雷)와 풍(風)이 서로 패(悖)치 아니 한다」【註七】함은 양자(兩者)의 상합(相合)을 말함이며, 수(水)는 윤하작용(潤下作用)이 있어 음(陰)이 되고 화(火)는 염상작용(炎上作用)이 있어 양(陽)이 되는지라, 수화(水火)가 서로 극제(克制)함은 상반(相反)이오 양자(兩者)가 서로 의부(依附)하여 그 기능(機能)을 발휘(發揮)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水火不相射 = 수(水)와 화(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 한다」【註八】함은 양자(兩者)의 상반(相反)을 말함이오,「水火相逮 = 수(水)와 화(火)가 서로 및는다」【註九】함은 양자(兩者)의 상합(相合)을 말함이며, 산(山)은 지(止)하여 정(靜)함으로 음(陰)이 되고 택(澤)은 동(動)하여 유(流)함으로 양(陽)이 되는지라, 산택(山澤)이 비고(卑高)로 각진(各陳)함은 상반(相反)이오 산(山)은 택(澤)을 흡수(吸收)하고 택(澤)은 산(山)을 상승(上升)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山澤通氣 = 산(山)과 택(澤)이 기(氣)를 통(通)한다」【註十】함은 양자(兩者)가 상반(相反)하면서 또한 상합(相合)함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에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있는데, 역리(易理)에 음성(陰性)을 상(象)하여「체(體)」라 하고 양성(陽性)을 상(象)하여「용(用)」이라 하며, 체(體)와 용(用)이 일면(一面)으로는 상반(相反)하면서 다른 일면(一面)으로는 상합(相合)하는 작용(作用)을「대대(對待)」라 하나니, 체용(體用)과 대대(對待)는 만물(萬物)의 조직형태(組織形態)를 설명(說明)하는 역리(易理)의 특수용어(特殊用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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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의 사시성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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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運行)의 사시성(四時性)

 

천지일월(天地日月)이 운행(運行)하여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가 유역(流易)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은 모두 사시(四時)의 순서(順序)를 따라서 생(生)․장(長)․성(成)․장(藏)하고 있으니, 역(易)에는 춘(春)의 생(生)함을「대시(大始)」라 하고 하(夏)의 장(長)함을「유형(流形)」이라 하고 추(秋)의 성(成)함을「변화(變化)」라 하고 동(冬)의 장(藏)함을「태화(太和)」라 한다.【註十一】(대화(大和)는 태화(太和)로 읽는다)

대시(大始)라 함은 춘(春)에 해동(解冬)하여 칩장(蟄藏)하던 물(物)이 생의(生意)를 발(發)하여, 초목(草木)의 신아(新芽)가 맹동(萌動)하고 칩충(蟄蟲)이 계출(啓出)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발현단계(發顯段階)에 스스로 폐칩상태(閉蟄狀態)를 깨트리고 발동(發動)하는 시단(始端)이오, 유형(流形)이라 함은 하(夏)에 운행우시(雲行雨施)하여 시생(始生)한 물(物)이 유행(流行)하여 본래(本來)의 형상(形象)을 현현(顯現)하여, 초목(草木)의 간(幹)․경(莖)․지(枝)․엽(葉) 등(等)이 창무(暢茂)하고 자실(子實)이 결성(結成)되어 현재(現在)의 모체(母體)와 미래(未來)의 모체(母體)(발육중(發育中)의 자실(子實))가 그 대대작용(對待作用)이 모두 상견(相見)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생장단계(生長段階)에 스스로 본유(本有)한 형태(形態)․성정(性情) 등(等)과 내포(內包)하고 있는 모든 모순(矛盾)․대립(對立)이 외현(外顯)함이오, 변화(變化)라 함은 추(秋)에 양기(凉氣)가 생(生)하여 이미 유형(流形)한 물(物)이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초목(草木)의 모수(母樹)는 노쇠(老衰)하고 자실(子實)이 성숙(成熟)하여 차대(次代)의 모체(母體)로 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수렴단계(收斂段階)에 폐고(弊故)한 자(者)가 퇴거(退去)하고 세대(世代)가 변혁(變革)함이오, 대화(大和)라함은 동(冬)에 천지(天地)의 기(氣)가 폐색(閉塞)하여 춘하추(春夏秋)에 벽통(闢通)한 물(物)이 내부(內部)에 귀장(歸葬)하고 모든 상반(相反)하는 생리(生理)가 통일체내(統一體內)에 화흡(化洽)하여 백곡과실(百穀果實)의 자인(子仁)이 피각중(皮殼中)에 굳게 포장(包藏)되고 백충(百虫)이 체내(體內)에 정기(精氣)를 심장(深藏)하고 칩거(蟄居)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응장단계(凝藏段階)에 후일(後日)의 새로운 발동(發動)을 위(爲)하여 그 내부(內部)에 정기(精氣)가 회합충화(會合沖和)하여 통일적(統一的)으로 응결(凝結)함이다.

사시(四時)의 대시(大始)․유형(流形)․변화(變化)․대화(大和)의 상(象)은 모두 독자(獨自)한 변통작용(變通作用)을 행(行)하고 있는 것이니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는데 그 한도(限度)를 넘으면 궁극(窮極)에 이르러 도리어 그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므로, 사시(四時)의 유역(流易)에 의(依)하여 그를 변통(變通)하는 것이오, 소위(所謂) 변통(變通)이라 함은 전단계(前段階)와는 대대(對待)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새로운 단계(段階)를 건설(建設)하는 것이다. 초목(草木)의 예(例)로 써 보건대, 대시단계(大始段階)는 생의(生意)가 발동(發動)하여 신아(新芽)가 급속(急速)히 발육(發育)하니 이는 전(專)혀 용(用)의 발현(發顯)이라, 용(用)의 발현(發顯)이 급속(急速)하고 또 과대(過大)하면 체(體)가 태완(怠緩)하고 연약(軟弱)하여 스스로 지탱(支撑)치 못함으로 유형단계(流形段階)로 이행(移行)한다. 유형단계(流形段階)는 지엽(枝葉)이 점차(漸次)로 충실(充實)하면서 자체(自體)의 본형(本形)이 완전(完全)히 나타나고 자실(子實)을 장육(長育)하는 것인데, 자실(子實)이 장육(長育)만 있고 수렴(收斂)이 없으면 차세대(次世代)를 성수(成遂)치 못함으로 변화단계(變化段階)로 이행(移行)한다. 변화단계(變化段階)는 지엽(枝葉)이 이미 노쇠(老衰)하고 자실(子實)이 성숙(成熟)하여 그 내부(內部)에 후일(後日)에 발생(發生)할 신생명(新生命)을 함유(含有)하고 모수(母樹)로부터 이탈(離脫)하여 차세대(次世代)의 부모(父母)로 화(化)하는 것인데, 만물(萬物)은 폐합(閉合)함이 견고(堅固)치 아니하면 후일(後日)의 신생명(新生命)의 발동력(發動力)이 강성(强盛)치 못하나니, 하추(夏秋)에 수확(收穫)한 곡물(穀物)의 종자(種子)를 당년(當年)에 파종(播種)하느니 보다, 일동(一冬)을 경과(經過)하여 파종(播種)하는 것이 그 발아력(發芽力)이 일층(一層) 강성(强盛)한 것은 이 까닭이라, 그러므로 변화단계(變化段階)는 대화단계(大和段階)로 이행(移行)한다. 대화단계(大和段階)는 자실(子實)을 굳게 염장(斂藏)하여 그 생의(生意)가 응축(凝蓄)되어 삼루(滲漏)치 아니함으로 폐합(閉合)함이 더욱 견고(堅固)한 것인데, 대화단계(大和段階)가 변통(變通)되지 아니하면 생생작용(生生作用)이 행(行)치 못함으로 다시 대시단계(大始段階)로 이행(移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사시(四時)의 각단계(各段階)는 모두 전단계(前段階)와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소이(所以)이다.

사시유역(四時流易)의 상(象)은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운행(運行)하는 법칙(法則)이 되는지라, 이를 모든 사물(事物)에 의(擬)하여 보건대 대시(大始)는 물(物)이 칩장(蟄藏)한 자(者)는 영원(永遠)히 폐색(閉塞)되는 것이 아니오, 그「정(情)」이 스스로 발동(發動)하여 외부(外部)에 출현(出現)치 아니할 수 없음이니, 정(情)이라 함은 소위(所謂)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생활(生活)의 창조(創造)는 항상(恒常) 본능(本能)으로부터 시발(始發)하는 것이오, 유형(流形)은 물(物)이 이미 출생(出生)한 자(者)는 성장(成長)치(자라지) 아니할 수 없고 그 성장(成長)하는 과정(科程)에는 거기에 내포(內包)되어 있는 모든 상반(相反)되는 관계(關係)가 외현(外現)하는데, 그 상반(相反)의 속에는 또한 그를 제(濟)하여 상화상합(相和相合)으로 전화(轉化)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작용(作用)을「시용(時用)」이라 하는 것이오, 변화(變化)는 물(物)의 성장(成長)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에 이르면, 그 생(生)을 성수(成遂)하고 그 이상(以上) 더 발전(發展)할 수 없는 궁극(窮極)에 도달(到達)하여 스스로 변화(變化)를 일으켜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면서 그 내부(內部)에 새로운 대대작용(對待作用)을 배태(胚胎)하나니, 이 변화(變化)의 상(象)을「역(易)」이라 하는 것이오, 대화(大和)는 물(物)이 이미 종(終)을 이루면 다시 시(始)치 아니함이 없고, 장차(將且) 시(始)하려 하는 절(節)에서 모든 상반작용(相反作用)이 통일(統一)되어 후일(後日)에 출생(出生)할 신생명(新生命)의 발동력(發動力)을 강성(强盛)하게 하나니, 이 통일(統一)의 상(象)을「중(中)」이라 한다. 이 사시유역(四時流易)의 이(理)를 상(象)한 정(情)․시용(時用)․역(易)․중(中)은 또한 만물(萬物)의 운행형태(運行形態)를 설명(說明)하는 역리(易理)의 특수용어(特殊用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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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운행의 계통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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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組織)∙운행(運行)의 계통(系統)

 

이와 같이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에는 음양성(陰陽性)이 있고 운행(運行)에는 사시성(四時性)이 있는데, 이것이 스스로 질서(秩序)가 정연(整然)한 한 계통(系統) 한 궤도(軌道)로 연계(連繫)되어 만물(萬物)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이 되고 있다. 역(易)에「言天下之至賾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而不可亂也 = 천하(天下)의 지잡(至雜)함을 말하되 가(可)히 염(厭)치 못하고 천하(天下)의 지동(至動)함을 말하되 가(可)히 난(難)치 못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일정(一定)한 계통(系統)과 궤도(軌道)가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은 각기(各其) 독수(獨殊)한 형체(形體)를 가지고 천차만별(千差萬別)하여 실(實)로 천하(天下)의 지잡(至雜)이로되 조금도 염오(厭惡)할 바가 없고, 그 운행(運行)은 주류변동(周流變動)하여 잠시(暫時)도 지식(止息)치 아니하여 실(實)로 천하(天下)의 지동(至動)이로되 조금도 분란(紛亂)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우리 인생사회(人生社會)도 또한 만물(萬物)의 일부(一部)이라,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이 비록 지잡지동(至雜至動)하고 있으되 그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은 이 만물(萬物)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사류(事類)에 따라서 인신(引伸)․연장(延長)함에 불외(不外)하며 또 사람에게 비록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자주적(自主的)으로 동정(動靜)하고 있으되, 사람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이미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생긴 것이라, 그 동정자체(動靜自體)가 또한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포함(包含)되어 일보(一步)도 그 범위외(範圍外)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의 행위(行爲)에 소위(所謂)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이 선악(善惡)도 또한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속(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계속(繫屬)되어 있으므로, 그 출생이전(出生以前)에 형성(形成)된 체질(體質)․성정(性情) 등(等) 천품(天稟)이 있고, 출생이후(出生以後)에 이미 정(定)하여진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있으니, 이 기성(旣成)한 천품(天稟)과 기정(旣定)한 환경(環境)이 있는 까닭에 소위(所謂) 운명(運命)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운명(運命)으로 더불어 대대(對待)하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활동(一生活動)은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서 그 자신(自身)의 생존(生存)을 위(爲)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으로 써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함에 있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七章에「成性存存 道義之門=성(性)을 성(成)하고 존존(存存)함이 도의(道義)의 문(門)이라」하니, 존존(存存)은 존재(存在)하고 또 존재(存在)하여 영구(永久)히 그치지 아니함이오, 문(門)은 출입(出入)하는 곳이오, 도(道)는 운행(運行)하는 뜻이오, 의(義)는 재제(裁制)하는 뜻이라, 이는 만물(萬物)이 본연(本然)한 성(性)을 이루고 존지우존(存之又存)하여 그치지 아니한 연후(然後)에 운행(運行)과 재제(裁制)의 작용(作用)이 일출일입(一出一入)하고 일현일장(一顯一藏)함을 말함이니 존존(存存)은 영구(永久)히 존재(存在)한다는 뜻이다.

註二. 繫辭上傳 第五章「生生之謂易」

註三. 同上「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부유(富有)함을 대업(大業)이라 이르고 일신(日新)함을 성덕(盛德)이라 이른다」함을 해설(解說)한 것이다. 역학(易學)에는 덕(德)과 업(業)을, 사람의 행(行)할바의 최중(最重)한 일이라고 하니, 乾卦文言에「君子進德修業=군자(君子)가 덕(德)을 진(進)하고 업(業)을 수(修)한다」하고, 繫辭上傳 第一章에「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가(可)히 구(久)한즉 현인(賢人)의 덕(德)이오, 가(可)히 대(大)한즉 현인(賢人)의 업(業)이라」하고 繫辭上傳 第七章에「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그 역(易)은 성인(聖人)이 써 덕(德)을 높히고 업(業)을 넓히는바라」함은, 모두 덕(德)과 업(業)의 중요성(重要性)을 말함이다.

註四. 繫辭上傳 第四章

註五. 역괘(易卦)에 감괘(坎卦)는 수(水)가 되고 월(月)이 되며 이괘(離卦)는 화(火)가 되고 일(日)이 되니, 감(坎)은 일양(一陽)이 이음(二陰)의 속에 함(陷)함으로 내명외암(內明外暗)하고, 이(離)는 일음(一陰)이 이양(二陽)의 속에 근(根)함으로 외명내암(外明內暗)한 것이다.

註六. 說卦傳 第三章

註七. 說卦傳 第六章

註八. 說卦傳 第三章

註九. 說卦傳 第六章

註十. 說卦傳 第三章

註十一. 乾卦彖傳에「大哉乾元 萬物資始=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한다」함은 춘(春)의 상(象)이오,「雲行雨施 品物流形 = 운(雲)이 행(行)하고 우(雨)가 시(施)하여 품물(品物)이 유(流)하여 형(形)한다」함은 하(夏)의 상(象)이오,「乾道變化 各正性命 = 건도(乾道)가 변화(變化)하여 각각(各各) 성(性)과 명(命)을 정(正)한다」함은 추(秋)의 상(象)이오,「保合大和=대화(大和)를 보(保)하여 합(合)한다」함은 동(冬)의 상(象)이다. 건괘(乾卦)는 천(天)의 운행(運行)을 상(象)함으로 그 단전(彖傳)에 사시운행(四時運行)의 상(象)을 말한 것이다.

역(易)에는 또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상(象)을 원(元)․형(亨)․이(利)․정(貞)으로써 표시(表示)하니, 乾卦文言에「元者善之長也 亨者嘉之會也 利者義之和也 貞者事之幹也 君子 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 원(元)은 선(善)의 장(長)함이오 형(亨)은 가(嘉)의 회(會)함이오 이(利)는 의(義)의 화(和)함이오 정(貞)은 사(事)의 간(幹)이라, 군자(君子)가 인(仁)을 체(體)함이 족(足)히 써 인(人)을 장(長)하고 가회(嘉會)함이 족(足)히 써 예(禮)에 합(合)하고, 물(物)을 이(利)함이 족(足)히 써 의(義)를 화(和)하고 정고(貞固)함이 족(足)히 써 사(事)를 간(幹)한다」한바, 원(元)이라 함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출발(出發)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춘(春)이 되고, 만물(萬物)이 부모(父母)를 계(繼)하여 생(生)하는 자(者)는 선(善)치 아니 함이 없으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선(善)과 인(仁)이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생장(生長)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형(亨)이라 함은 생물(生物)의 통태(通泰)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창달(暢達)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하(夏)가 되고, 만물(萬物)이 창달(暢達)하는 자(者)는 자체내(自體內)의 가미(嘉美)가 모두 도회(都會)하여 절문(節文)을 채식(彩飾)하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가(嘉)와 예(禮)가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취회(聚會)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利)라 함은 생물(生物)이 생(生)을 성수(成遂)하여 수렴(收斂)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적의(適宜)히 재제(裁制)되므로, 시(時)에 있어서는 추(秋)가 되고, 만물(萬物)의 재제(裁制)는 모두 각각(各各) 그 소의(所宜)를 얻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의(義)가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재성(裁成)의 뜻이 되는 것이다. 정(貞)이라 함은 생물(生物)이 이미 종(終)을 성(成)하여 견고(堅固)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폐장(閉藏)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동(冬)이 되고, 만물(萬物)이 폐장(閉藏)하는 자(者)는 체(體)를 완성(完成)하여 본간(本幹)이 식립(植立)하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사업(事業)이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간사(幹事)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物)이 시생(始生)하는 원(元)은 대시(大始)가 되고 통태(通泰)하는 형(亨)은 유형(流形)이 되고 수렴(收斂)하는 이(利)는 변화(變化)가 되고 견고(堅固)하는 정(貞)은 대화(大和)가 되는 것이다.

註十二. 繫辭上傳 第八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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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원리 통일과대대 일이이이이일(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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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대원리(對待原理)

통일(統一)과 대대(對待)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

 

만물중(萬物中)에 포장(包藏)되어 있는 체(體)와 용(用)은 서로 혼륜묘합(渾淪妙合)하여 일물(一物)로 통일(統一)되어 상리(相離)치 못하면서 또한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완연(宛然)한 이물(二物)로 되어 서로 협잡(挾雜)치 못하니, 체용(體用)의 이러한 작용(作用)이 곧 대대(對待)이다.

대()는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 뜻이오, 대()는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 뜻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단일(單一)한 개체내(個體內)에서거나 또는 여러 개체(個體)의 집성(集成)된 통체내(統體內)에서거나를 막론(莫論)하고, 반드시 체(體)와 용(用)의 관계(關係)를 가진 양작용(兩作用)이 있어 어느 것이 상반상적(相反相敵)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어느 것이 상합상수(相合相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例)컨대 태양(太陽)과 대지(大地)의 사이에는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이 있어 향심력(向心力)은 서로 향응(向應)하려 하고 이심력(離心力)은 서로 격리(隔離)하려하여 양력(兩力)이 상지(相持)하면서 항상(恒常)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보유(保有)하니, 이 이심력(離心力)의 작용(作用)은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대(對)」이오 향심력(向心力)의 작용(作用)은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대(待)」이다.

 

 

천지(天地)의 대대관계(對待關係)에 대(對)하여「서화담(徐花潭)」은 말하되「天運其氣 地凝其形 氣之性動 騰上者也 形之質重墜下者也 氣包形外 形在氣中 騰上墜下之相停 是則懸於太虛之中而不上不下 左右圜轉 亘古今而不墜者也 = 천(天)은 그 기(氣)를 운(運)하고 지(地)는 그 형(形)을 응(凝)하니, 기(氣)의 성(性)은 동(動)하여 등상(騰上)하는 자(者)이오, 형(形)의 질(質)은 중(重)하여 추하(墜下)하는 자(者)이라, 기(氣)는 형외(形外)를 포(包)하고 형(形)은 기중(氣中)에 재(在)하여 등상(騰上)과 추하(墜下)가 상정(相停)하니 이가 곧 태허중(太虛中)에 현(懸)하여 상(上)하지도 아니하고 하(下)하지도 아니하고, 좌우(左右)로 환전(圜轉)하여 고금(古今)에 긍(亘)하여 추(墜)치 아니하는 자(者)이라」【註一】하니, 기(氣)와 형(形)이 서로 의부(依附)함이 곧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만유인력설(萬有引力說)도 또한 향심력(向心力)에 의(依)한 견인작용(牽引作用)과 이심력(離心力)에 의(依)한 추척작용(推斥作用)을 말한 것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체용(體用)의 대대(對待)가 있으므로 또한 모두 견인(牽引)과 추척(推斥)의 양력(兩力)이 아울러 작용(作用)하나니, 식물(植物)과 토양(土壤)과의 관계(關係)로써 보면 식물(植物)의 근(根)은 하향(下向)하여 토중(土中)에 투입(透入)하되 그 지엽(枝葉)은 토양(土壤)을 등지고 상행(上行)하며, 또 토양(土壤)은 식물(植物)의 근(根)을 수장(收藏)하되 양분(養分)․수분(水分) 등(等)을 간경(幹莖)에 발시(發施)하니, 이는 식물(植物)은 일입일출(一入一出)․일향일리(一向一離)함이오, 토양(土壤)은 일인일추(一引一推)․일수일발(一收一發)함이다.

 

 

그러므로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반드시 천(天)을 향(向)하여 상승(上升)하는 것은 다만 그 지엽자체(枝葉自體)의 배토성(背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추척력(推斥力)을 받는 까닭이오, 초목(草木)의 근(根)이 지중(地中)을 향(向)하여 투입(透入)하는 것은, 다만 그 근자체(根自體)의 향토성(向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견인력(牽引力)을 받는 까닭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음양성(陰陽性)의 양물(兩物)이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은「대(對)」이오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괴위(乖違)함으로써 그 지(志)가 상감상통(相感相通)하여 교여작용(交與作用)이 행(行)함은「대(待)」이며,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각기(各其) 자기(自己)를 중심(中心)으로하여 동작(動作)하고 배타성(排他性)을 가지고 있음은「대(對)」이오,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서로 의존(依存)하고 서로 부조(扶助)하고 있음은,「대(待)」이며, 동일(同一)한 신체내(身體內)에서도 육체(肉體)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체(體)가 되고 기(氣)는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용(用)이 되는지라, 하나는 수렴(收斂)하려 하고 하나는 유행(流行)하려 하여 두 작용(作用)이 상반(相反)함은「대(對)」이오 양자(兩者)가 비록 상반(相反)하고 있으되 혼륜일체(渾淪一體)가 되어 자체(自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수행(遂行)함은「대(待)」이다. 지금의 학문(學問)에 소위(所謂)「이율배반성(二律背反性)」․「모순(矛盾)의 통일성(統一性)」같은 것은 모두 이 대대작용(對待作用)의 일현상(一現象)을 말함이다.

 

체(體)와 용(用)은 이미 통일물(統一物)의 속에 혼륜(渾淪)하여 상리(相離)치 못하고, 또 양물(兩物)의 작용(作用)은 판연(判然)히 상이(相異)하여 상합(相合)치 못하니, 상리(相離)치 못함으로 일(一)이 되고, 상합(相合)치 못함으로 양(兩)이 된다. 역(易)에「陰陽不測之謂神 = 음(陰)하고 양(陽)함을 측(測)치 못함을 신(神)하다 이른다.」【註二】한바,『장횡거(張橫渠)』는 이를 주석(註釋)하되「兩在故不測 一故神 = 양재(兩在)한 고(故)로 측(測)치 못하고 일(一)한 고(故)로 신(神)하다」하니, 이는 음양(陰陽)의 양개작용(兩個作用)이 일물(一物)의 속에 포함(包涵)되어 신묘(神妙)한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일(一)과 양(兩)은 별개(別個)의 이물(異物)이 아니라 일(一)은 양(兩)으로써 성립(成立)되어 양(兩)의 권외(圈外)에 따로 일(一)이 있는 것이 아니오, 또 양(兩)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서 일(一)을 떠나서 양(兩)이 별물(別物)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一而二 二而一 = 일(一)하면서 이(二)하고, 이(二)하면서 일(一)한다」하는 일양작용(一兩作用)이라 한다.

 

 

역(易)에「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 형(形)하여 상(上)한 자(者)를 도(道)라 이르고, 형(形)하여 하(下)한 자(者)를 기(器)라 이른다.」【註三】하니, 도(道)라함은 운행(運行)을 말함이오, 기(器)라 함은 조직(組織)을 말함이라, 이는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한 면(面)은 형이상(形而上)한 운행력(運行力)이 되고, 한 면(面)은 형이하(形而下)한 조직체(組織體)가 되어, 비록 그 형현(形現)함이 상하(上下)의 계분(界分)은 있으나, 본원(本源)이 일(一)하고 파분(派分)이 이(二)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며, 또「一陰一陽之謂道」「一闔一闢謂之變」=「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르고」【註四】「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함을 변(變)이라 이른다」【註五】하니, 이것도 일물(一物)의 운동변화(運動變化)가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며, 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여기에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함은 한번 한(寒)하고 한번 서(暑)하며, 한번 야(夜)하고 한번 주(晝)하는 유(類)이오, 일합일벽(一闔一闢)이라 함은 한번 생장(生長)하고 한번 수장(收藏)하며, 한번 정지(靜止)하고 한번 동작(動作)하는 유(類)이다.

 

 

「서화담(徐花潭)」은 태허(太虛)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을 말하되「語其淡然之體曰一氣 語其混然之周曰太一 旣曰一氣 一自含二 旣曰太一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能生克 生則克 克則生 氣之自微 二至鼓盪 其生克使之也 一非數也 數之體也 = 그 담연(淡然)한 체(體)를 말하여 가로되 일기(一氣)라 하고, 그 혼연(混然)한 주(周)를 말하여 가로되 태일(太一)이라 한다. 기(旣)히 일기(一氣)라 하니 일(一)이 스스로 이(二)를 함(含)하고, 기(旣)히 태일(太一)이라 하니 일(一)이 곧 이(二)를 함(涵)한지라, 일(一)은 이(二)를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이(二)는 스스로 능(能)히 생(生)하고 극(克)하여, 생(生)하면 곧 극(克)하고 극(克)하면 곧 생(生)하나니, 기(氣)의 미(微)로부터 써 고탕(鼓盪)함에 지(至)함은 그 생(生)과 극(克)이 사연(使然)케 함이며, 일(一)이라 함은 수(數)가 아니오 수(數)의 체(體)라」【註六】하니, 이는 일(一)이라함은 통일체(統一體)의 명명(命名)이오 이(二)라함은 생(生)과 극(克)의 대대작용(對待作用)으로서, 태허(太虛)는 통일(統一)과 대대(對待)가 일이이(一而二)․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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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과 유심론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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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

 

지금의 서양철학(西洋哲學)에 소위(所謂) 일원론(一元論)과 이원론(二元論)이 있고, 또 일원론중(一元論中)에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이 있는데 역리(易理)로써 보면 일원론(一元論)은 통일(統一)의 일(一)을 주(主)하고, 이원론(二元論)은 대대(對待)의 이(二)를 주(主)함이며, 또 유물론(唯物論)은 체(體)를 주(主)하고 유심론(唯心論)은 용(用)을 주(主)함이니, 이는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반면(半面)을 말한 것이다. 특(特)히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은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의 생성(生成)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리(易理)로써 보면 체(體)와 용(用)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므로 물(物)이 생성(生成)하는때에 이미 체(體)와 용(用)이 함께 생성(生成)하는 것이오, 체(體)가 먼저 생성(生成)한 연후(然後)에 용(用)이 스스로 발생(發生)하는 것도 아니며, 또 용(用)이 먼저 발동(發動)한 연후(然後)에 체(體)를 조작(造作)하는 것도 아니니, 이는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에 본체(本體)의 조직(組織)은 반드시 운행(運行)하는 작용(作用)을 수반(隨伴)하는 까닭이다. 물질(物質)은 체(體)이오, 작용(作用)은 용(用)이라, 물질(物質)과 작용(作用)의 발생(發生)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가 있을 수 없고, 또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있을 수 없으니, 비록 일세초(一細草) 일미충(一微虫)이라 하더라도 그 물체(物體)가 있는 때에 반드시 자체(自體)가 운동(運動)할만한 힘과 작용(作用)이 부여(賦與)되는 것이오, 또 그만한 힘과 작용(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그에 적응(適應)한 신체(身體)의 구조(構造)를 가지는 것이다. 인체(人體)의 물심조직(物心組織)으로 써 보더라도 육체(肉體)는 정(精) 즉(卽) 물질(物質)이니 체(體)가 되고, 정신(精神)은 기(氣)의 작용(作用) 즉(卽) 심(心)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육체(肉體)가 없으면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얻지 못하여 그 존재(存在)가 있을 수 없고, 정신(精神)이 없으면 육체(肉體)가 고무(鼓舞)하는 용(用)을 얻지 못하여 아무런 활동(活動)도 행(行)치 못하는 것이니 정신(精神)과 육체(肉體)는 그 생성(生成)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가 있을 수 없으며, 또 신체(身體)의 조직면(組織面)으로 볼 때에는 육체(肉體)가 주(主)가 되고 정신(精神)이 종(從)이 되는 것이나, 그 운행면(運行面)으로 볼때에는 정신(精神)이 주(主)가 되고 육체(肉體)가 종(從)이 되나니 물(物)과 심(心)은 서로 주(主)가 되고 서로 종(從)이 되므로 양자(兩者)는 균등(均等)하여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없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으로써 보더라도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음성(陰性)이 없으면 양성(陽性)은 독양(獨陽)이 되어 생(生)치 못하고 양성(陽性)이 없으면 음성(陰性)은 독음(獨陰)이 되어 성(成)치 못하나니,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모두 세세계승(世世繼承)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폐절(廢絶)되는지라, 식물(植物)의 음양성(陰陽性)은 대체(大體)로 동일화중(同一花中)에 자웅양성(雌雄兩性)이 있거나 또는 동일경내(同一莖內)에 웅화(雄花)와 자화(雌花)가 있으며, 동물중(動物中)에도 동일체내(同一體內)에 음양양성(陰陽兩性)을 함유(含有)한 자(者)가 있으니 이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의 발생(發生)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주종(主從)의 구별(區別)이 없음을 보임이다. 역(易)에「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 인(仁)한 자(者)가 견(見)하매 인(仁)하다 이르고, 지(知)한 자(者)가 견(見)하매 지(知)하다 이른다」【註七】하니, 인(仁)이라함은 물(物)을 애육(愛育)하는 작용(作用)이니 체(體)가되고, 지(知)라 함은 물(物)에 주류(周流)하여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작용(作用)으로서 곧 의(義)의 정(精)함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작용(作用)에는 인(仁)과 지(知)의 양면(兩面)이 있는데 이 생육작용(生育作用)을 관찰(觀察)하고 있는 사람중(中)에는 그 기질(氣質)의 相異함을 따라서 그 所見이 또한 不同하여, 氣質이 인(仁)한 자(者)는 인(仁)의 면(面)만을 보고 기질(氣質)이 지(知)한 자(者)는 지(知)의 면(面)만을 보나니, 공자(孔子)가 역학(易學)을 지은 당시(當時)에 이미 체(體)를 주(主)하는 주인론(主仁論)과 용(用)을 주(主)하는 주지론(主知論)이 있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체(體)를 주(主)하는 유물론(唯物論)은 주인론(主仁論)이라 할 수 있고, 용(用)을 주(主)하는 유심론(唯心論)은 주지론(主知論)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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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의 분포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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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對待)의 분포(分布)

 

만물(萬物)의 체용관계(體用關係)는 물(物)과 물(物)의 상대(相對)하는 형태(形態)에 따라서 생(生)하는 것이오,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은 아니다.『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體無定用 唯變是用 用無定體 唯化是體 = 체(體)에는 정(定)한 용(用)이 없고 오직 변(變)함을 용(用)으로 하며, 용(用)에는 정(定)한 체(體)가 없고 오직 화(化)함을 체(體)로 한다」【註八】하니, 변(變)이라 함은 화(化)의 점진(漸進)함이오, 화(化)라함은 변(變)의 완성(完成)함이라, 이는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모두 체용(體用)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대(相對)하는 때에 양성(陽性)을 띤 자(者)는 용(用)이 되고 음성(陰性)을 띤 자(者)는 체(體)가 됨을 말함이다. 이를 법칙(法則)과 사물(事物)과의 관계(關係)로써 보건대 조직면(組織面)으로는 사물(事物)은 체(體)가 되고 그 발현(發顯)하는 법칙(法則)은 용(用)이되며, 운행면(運行面)으로는 법칙(法則)은 체(體)가 되고 그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사물(事物)은 용(用)이 되어, 법칙(法則)과 사물(事物)이 서로 체(體)가 되고 서로 용(用)이 되어 무한(無限)한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수화(水火)의 예(例)로써 보건대 수(水)와 화(火)가 상대(相對)하는 때에는 수(水)는 수축작용(收縮作用)이 있으므로 체(體)가 되고 화(火)는 발산작용(發散作用)이 있으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지만, 수(水)와 육(陸)이 상대(相對)하는 때에는 육(陸)은 지정(止靜)함으로 체(體)가 되고 수(水)는 유동(流動)함으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원래(元來) 수(水)의 성(性)은 음성(陰性)으로서 유하(流下)하는 것이로되 육(陸)에 대(對)하여는 용(用)이 되므로 능(能)히 역상(逆上)하여 산정(山頂)에 이르러 지택(池澤)이 되며 수(水)가 초목(草木)의 말초(末梢)에까지 상승(上昇)하는 것도 동일(同一)한 이(理)이니, 이는 동일(同一)한 수(水)가 그 상대(相對)하는 대대물(對待物)에 따라서 체(體)도 되고 용(用)도 되는 것이다. 또 물(物)의 현상(現狀)은 지정작용(止靜作用)이 있으므로 체(體)가 되고 물(物)의 변통(變通)은 유동작용(流動作用)이 있으므로 용(用)이 되는지라, 전(前)에 예거(例擧)한 수화(水火)의 관계(關係)에는 비록 수(水)는 체(體)가 되고 화(火)는 용(用)이 되나, 화재(火災)가 있는 경우(境遇)에 수(水)를 관주(灌注)하여 식멸(息滅)하는 때는, 화재(火災)는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관주(灌注)는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며, 수륙(水陸)의 관계(關係)에는 비록 육(陸)은 체(體)가 되고 수(水)는 용(用)이 되나, 홍수(洪水)가 있는 경우(境遇)에 토사(土砂)를 구축(構築)하여 제방(堤防)하는 때는, 홍수(洪水)는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축토(築土)는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는 수화(水火)와 수륙(水陸)이 그 대대(對待)하는 시(時)와 위(位)의 변화(變化)함에 따라서 그 체용관계(體用關係)가 또한 변화(變化)하는 것이다. 음(陰)과 양(陽)의 관계(關係)에 있어서도 일년중(一年中)의 음양(陰陽)의 소장관계(消長關係)로써 보면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생(生)한 이후(以後)에 음(陰)은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양(陽)은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며, 하지(夏至)에 일음(一陰)이 생(生)한 이후(以後)에는 양(陽)은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음(陰)은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시(時)와 위(位)에 따라서 체용관계(體用關係)가 호역(互易)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은 모두 체용량면(體用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물(物)이 있는 때는 반드시 그 속에 체(體)와 용(用)이 있고, 또 체(體)의 속에도 체(體)와 용(用)이 있고 용(用)의 속에도 체(體)와 용(用)이 있어, 체용(體用)이 한(限)없이 분포(分布)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천지간(天地間)에는 지대지광(至大至廣)한 자(者)로부터 지세지미(至細至微)한 자(者)에 이르기까지 평면적(平面的)으로는 서로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연계(連繫)되고, 입체적(立體的)으로는 수지상(樹枝狀)의 체용(體用)이 분포(分布)․미만(彌滿)하고 있는 것이다.

아국(我國)에서 발생(發生)한『이동무(李東武)』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은【註九】사람의 체질(體質)을 음인(陰人)과 양인(陽人)으로 구분(區分)하고, 다시 그것을 소음인(少陰人)․소양인(少陽人)․태음인(太陰人)․태양인(太陽人)의 사상(四象)으로 구분(區分)하여 양생치병(養生治病)의 원리(原理)를 삼으니, 이는 역학(易學)의 상리(象理)와 대대(對待)의 이(理)를 응용(應用)한 것이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은 한의학(漢醫學)의 일부(一部)이라, 그러나 종래(從來)의 중국의학(中國醫學)과 상이(相異)한 바는, 중국의학(中國醫學)은 병리(病理) 즉(卽) 병세(病勢)의 운행면(運行面)을 중시(重視)하고, 사상의학(四象醫學)은 생리(生理) 즉(卽) 체질(體質)의 조직면(組織面)을 중시(重視)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의학(四象醫學)은 의학(醫學)의 체(體)이오 중국의학(中國醫學)은 의학(醫學)의 용(用)이니, 두 의학(醫學)이 상수상제(相須相濟)하는 때에 비로소 통일(統一)된 완전(完全)한 의학(醫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류계(人類界)에도 한(限)없는 대대(對待)가 분포(分布)되어 있으니,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은 동서량극(東西兩極)에 위(位)하여 주야(晝夜)가 상반(相反)하고 남위(南緯)와 북위(北緯)는 남북량극(南北兩極)에 위(位)하여 한서(寒暑)가 상반(相反)함으로 그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 좌(左)하고 우(右)하고 전(前)하고 후(後)하는 등(等) 동작(動作)이 상반(相反)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우연(偶然)이 아니오,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스스로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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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관과 동관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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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관(通觀)과 동관(童觀)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공간(空間)과 시간(時間), 환경(環境)과 사람의 의식(意識), 민중(民衆)과 정령(政令),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등(等), 어느 것이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대대(對待)되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이 대대(對待)되는 양면사물(兩面事物)을 통관(通觀)한 연후(然後)에 그 속에 함장(含藏)되어 있는 이해(利害)․득실(得失)․선악(善惡)․미추(美醜) 등(等)의 전형(全形)이 요연(暸然)히 나타나는 것이다.『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聖人之所以能一萬物之情者 謂其聖人之能反觀也 所以謂之反觀者 不以我觀物也 不以我觀物者 以物觀物之謂也 以物觀物 性也 以我觀物 情也 性公而明 情偏而暗 = 성인(聖人)이 써 능(能)히 만물(萬物)의 정(情)을 일(一)하게 하는 바는 성인(聖人)이 능(能)히 반관(反觀)함을 이름이라, 써 반관(反觀)이라 이르는 바는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치 아니함이오,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치 아니한다 함은 물(物)로써 물(物)을 관(觀)함을 이름이다. 물(物)로써 물(物)을 관(觀)함은 성(性)이오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함은 정(情)이니 성(性)은 공(公)하고 명(明)하며, 정(情)은 편(偏)하고 암(暗)하다」【註十】하니, 성(性)은 이성(理性)이오 정(情)은 감정(感情)이라, 이는 반관(反觀)이라 함은 이성적(理性的) 관찰(觀察)로서 지금의 소위(所謂) 객관(客觀)이니, 사물(事物)을 반관적(反觀的)으로 관찰(觀察)하면 일점(一點)의 사사(私邪)가 없이 공정(公正)하고 현명(賢明)하여 능(能)히 만민(萬民)의 심정(心情)을 통일(統一)할 수 있으니 이가 곧 통관(通觀)이오 아관(我觀)이라 함은 감정적(感情的) 관찰(觀察)로서 지금의 소위(所謂) 주관(主觀)이니, 아관(我觀)은 자아(自我)의 이해(利害)를 중심(中心)으로한 관찰(觀察)이므로, 편사(偏私)하고 혼암(昏暗)하여 사물(事物)의 일부분(一部分)밖에는 보지 못하나니 이가 곧 동관(童觀)이다.

고래(古來)로 비록 용군암주(庸君暗主)라 하더라도 그 군주(君主)에게 일기일예(一技一藝)의 능(能)이 없는 것이 아니니 혹(或)은 시문(詩文)에 우수(優秀)하고 혹(或)은 서화(書畵)에 특장(特長)하고 혹(或)은 변론(辯論)에 능숙(能熟)하여 그 재능(才能)의 가칭(可稱)할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하여 국사(國事)의 전체(全體)를 통관(通觀)치 못하고 부분(部分)에는 현명(賢明)하나 대체(大體)에 혼암(昏暗)한 까닭에, 마침내 국가대사(國家大事)를 그르친 것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智者之慮 必雜於利害 雜於利而務可伸也 雜於害而患可解也 = 지자(智者)의 여(慮)는 반드시 이해(利害)를 잡(雜)할지니 이(利)를 잡(雜)하면 무(務)를 가(可)히 신(伸)할지오, 해(害)를 잡(雜)하면 환(患)을 가(可)히 해(解)할지라」【註十一】하니, 잡(雜)이라함은 이해량면(利害兩面)을 아울러 참작(參酌)함이라, 이는 모든 사물(事物)에는 이해(利害)가 병존(倂存)하여 서로 의복(倚伏)하고 있으므로, 지자(智者)는 이(利)를 만난 곳에 그 사려(思慮)가 반드시 이중(利中)의 해(害)를 생각하여 이(利)를 탐(貪)내어 해(害)를 유망(遺忘)치 말 것이오, 또 해(害)를 만난 곳에 그 사려(思慮)가 반드시 해중(害中)의 이(利)를 생각하여, 해(害)를 두려워하여 이(利)를 일실(逸失)치 말 것이라 함을 말함이다. 제이차(第二次) 세계대전중(世界大戰中)에 미국(美國)과 일본(日本)은 구적(仇敵)이오, 미국(美國)과 소련(蘇聯)은 연합(聯合)이러니, 겨우 종전(終戰)한 후(後)에, 구적(仇敵)이던 미일(美日)은 친우(親友)가 되고, 연합(聯合)이던 미소(美蘇)는 적대(敵對)하고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사업(事業), 특(特)히 정치(政治)에 있어서 동관(童觀)에 빠지지 말고 항상(恒常) 대대(對待)되는 양면(兩面)을 통관(通觀)하며 부분(部分)에 구니(拘泥)치 말고 힘써 대체(大體)를 파지(把持)치 아니하면 안 되는 소이(所以)는, 실(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에 모든 학문(學問)이 전문적(專門的)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는데 이는 사물(事物)을 깊이 연구(硏究)함에는 극(極)히 필요(必要)한 일이나, 학문(學問)이 분화(分化)하면 분화(分化)할수록 부분(部分)에 편경(偏傾)하여 통일성(統一性)을 상실(喪失)하기 쉬우며 따라서 사람의 두뇌기능(頭腦機能)도 전문화(專門化)하고 편국화(偏局化)하여 사물(事物)의 전체(全體)를 통관(通觀)치 못하는 폐(弊)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더욱이 정치(政治)같은 것은 먼저 국가통체(國家統體)를 운영(運營)하는 통일적(統一的)․항구적(恒久的)인 대책(大策)를 수립(樹立)하고, 그 대책(大策)에 의(依)하여 대체(大體)로부터 세부(細部)에 나누어 법령(法令)을 정(定)하고 이무(吏務)를 분장(分掌)하는 것이니, 만일 정치(政治)에 이 분화(分化)된 전문방법(專門方法)을 쓰고 또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사람의 두뇌(頭腦)가 편국화(偏局化)한다고 하면, 대대(對待)의 이(理)를 알지 못하여 그 정치(政治)는 면전(面前)만을 보고 월편(越便)을 보지 못하며, 금일(今日)만을 알고 명일(明日)을 알지 못하여,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속(速)함을 욕(欲)하지 말고 소리(小利)를 견(見)하지 말라, 속(速)하고저 하면 달(達)치 못하고, 소리(小利)를 견(見)하면 대사(大事)가 성(成)치 못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정치(政治)의 운행(運行)하는 도정(途程)은 장원(長遠)하고 영역(領域)은 광대(廣大)한지라, 급속(急速)하고저 하면 겨우 근지(近地)에는 도달(到達)할 수 있으나 원방(遠方)에는 도달(到達)치 못하고, 소리(小利)에 착안(着眼)하면 비록 소사(小事)는 성취(成就)할 수 있으나 대사(大事)는 성취(成就)치 못함을 말함이니, 이것도 또한 원근(遠近)․대소(大小) 등(等) 모든 대대(對待)를 통관(通觀)하여야 할 것을 경고(警告)함이오, 역(易)에「開國承家 小人勿用 = 국(國)을 개(開)하고 가(家)를 승(承)함에 소인(小人)을 용(用)치 말라」하고, 그의 소상전(小象傳)에「小人勿用必亂邦也 = 소인(小人)을 용(用)치 말라 함은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게 함일 새라」【註十三】하니, 소인(小人)이라 함은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하여 소체(小體)만을 보고 대체(大體)를 보지 못하며 자기일신(自己一身)의 이해(利害)에 절근(切近)한 일만을 알고 국가통체(國家統體)의 안위(安危)에 관(關)한 대사(大事)를 알지 못하는 동관자(童觀者)를 말함이니, 이러한 소인(小人)은 이권(利權)을 보면 자기(自己)가 먼저 먹으려하고, 위난(危難)한 일을 당(當)하면 먼저 몸을 피(避)하는 까닭에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以前民用 = 써 민(民)의 용(用)에 앞서 한다」【註十四】하니, 이는 위정자(爲政者)의 총명(聰明)이 광대(廣大)하고 명조(明照)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만민(萬民)의 실정(實情)을 살피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미래(未來)를 예측(豫測)하는 선견(先見)의 명(明)이 있어 사전(事前)에 미리 조처(措處)함을 말함이니, 임진란전(壬辰亂前)에『이율곡(李栗谷)』의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과『이충무(李忠武)』의 구선예비책(龜船豫備策) 같은 것이 곧 이전민용(以前民用)이 되는 것이다. 정치운영자(政治運營者)의 총명(聰明)의 대소(大小)와 혼명(昏明)은 직통(直通)으로 국가(國家)의 안위(安危)와 민중(民衆)의 생명보호(生命保護)에 관계(關係)되는 것이니, 역학전체(易學全體)를 통(通)하여 대인(大人)과 성인(聖人)이 대위(大位)에 이처(履處)하여야 할 것을 말함은 이 까닭이다.

註一.『徐花潭』先生集 原理氣中에서 要點을 초출(抄出)한 것이다.

註二. 繫辭上傳 第五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四. 繫辭上傳 第五章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六. 『徐花潭』先生集 原理氣中에서 要點을 抄出한 것이오,「一非數也數之體也」라 함은 先生의 自註中에서 取한 것이다.

註七. 繫辭上傳 第五章

註八. 皇極經世觀物內篇之二

註九.『李濟馬』箸 東醫壽世保元

註十. 皇極經世觀物內篇之十二인데「以物觀物」以下는 同書 觀物外篇上

註十一. 孫子九變篇

註十二. 論語 子路篇

註十三. 師卦上六爻辭와 그 小象傳

註十四. 繫辭上傳 第十一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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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와운동 대대의호근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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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節 대대(對待)와 운동(運動)

‣대대(對待)의 호근(互根)

 

만물(萬物)은 그 조직체(組織體)가 있는 동시(同時)에 반드시 운행력(運行力)이 있고 운행(運行)은 물(物)의 운동(運動)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하나도 운동(運動)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일순간(一瞬間)도 운동(運動)을 계속(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면 신단계(新段階)로 넘어가지 못하고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치 못한다. 역(易)에「終止則亂 = 종(終)하여 지(止)한즉 난(亂)한다」【註一】하니, 사물(事物)이 이미 종(終)하여 궁극(窮極)하려하는 때에 운동(運動)이 계속(繼續)하면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전사(前事)의 종단(終端)이 곧 후사(後事)의 발단(發端)이 되어 다시 시작(始作)하는 것이오, 만일 지식(止息)하여 운동(運動)치 아니하면 전사(前事)가 양패(壞敗)하고 후사(後事)가 계속(繼續)치 못하여 스스로 패란(敗亂)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지(終止)와 정(靜)은 그 뜻이 상이(相異)하니 정(靜)은 종지(終止)함이 아니오 능동(能動)에 대(對)한 수동(受動)의 상(象)을 말함이니, 마치 사람의 활동(活動)은 능동(能動)이오 휴식(休息)은 수동(受動)이므로 휴식(休息)을 정(靜)이라 함과 같음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잠시(暫時)도 지식(止息)하는 것이 없고 그 조직(組織)이 스스로 운동(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구성(構成)되어 있으니 그 조직(組織)이라 함은 곧 대대(對待)의 호근(互根)이다. 호근(互根)이라 함은 용(用)은 체(體)에 의착(依着)하여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고, 체(體)는 용(用)의 고무(鼓舞)를 승수(承受)하여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여, 상리(相離)하지도 못하고 상합(相合)하지도 못함이다. 그러므로 호근(互根)하고 있는 양물(兩物)은 하나는 동작(動作)하려 하고 하나는 정지(靜止)하려 하며, 하나는 발현(發顯)하려 하고 하나는 수렴(收斂)하려 하여, 거기에 스스로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 견인(牽引)과 추척(推斥), 압제(壓制)와 분기(奮起) 등(等)에 의(依)한 동작(動作)이 생(生)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이러한 동작(動作)이 곧 운동(運動)이다. 역(易)에「尺蠖之屈 以求伸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 척확(尺蠖)의 굴(屈)함은 써 신(伸)함을 구(求)함이오, 용사(龍蛇)의 칩(蟄)함은 써 신(身)을 존(存)함이라」【註二】하니, 굴(屈)은 수렴작용(收斂作用)이므로 체(體)가 되고 신(伸)은 발서작용(發舒作用)이므로 용(用)이 되어 서로 대대(對待)하여, 굴(屈)치 아니하면 신(伸)할 수가 없고 신(伸)치 아니하면 굴(屈)할 수가 없으며, 또 이미 굴(屈)하면 다시 신(伸)치 아니할 수가 없고, 이미 신(伸)하면 다시 굴(屈)치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반드시 하나는 굴(屈)하려 하고 하나는 신(伸)하려 하며, 또 한번은 굴(屈)하려 하고 한번은 신(伸)하려 하여, 굴(屈)하는 작용(作用)은 능(能)히 신(伸)하는 작용(作用)을 제어(制御)하고 신(伸)하는 작용(作用)은 능(能)히 굴(屈)하는 작용(作用)을 추척(推斥)하여, 굴신(屈伸)이 상감(相感)하여 스스로 운동(運動)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며, 동칩(冬蟄)하는 용사(龍蛇)는 체(體)만 있고 용(用)이 고무(鼓舞)치 못함으로 운동(運動)이 없으니, 이는 체내(體內)에 정(精)과 기(氣)의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기 위(爲)하여 지정(止靜)한 것이오, 지식(止息)함은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대대(對待)가 있으면 운동(運動)이 생(生)하고 대대(對待)가 없으면 운동(運動)이 생(生)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대(對待)와 운동(運動)은 어느 것이 선(先)하고 어느 것이 후(後)한다는 선후(先後)의 구별(區別)이 없나니, 이미 말한바와 같이 대대(對待)가 있은 연후(然後)에 운동(運動)이 생(生)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와 반대(反對)로 운동(運動)이 대대(對待)를 생(生)하여 운동(運動)이 있으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하고 운동(運動)이 없으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폐절(廢絶)되는 것이다. 역(易)에「乾坤 其易之縕耶 乾坤成列而易立乎其中矣 乾坤毁則 無以見易 易不可見則 乾坤或幾乎息矣 = 건곤(乾坤)은 그 역(易)의 온(縕)인저 건곤(乾坤)이 열(列)을 성(成)하매 역(易)이 그 중(中)에 입(立)하나니 건곤(乾坤)이 훼(毁)하면 써 역(易)을 견(見)치 못하고 역(易)을 가(可)히 견(見)치 못하면 건곤(乾坤)이 혹(或) 거의 식(息)한다」【註三】하니, 건(乾)은 양물(陽物)이오 곤(坤)은 음물(陰物)이며 온(縕)이라 함은 포축(包蓄)하는 뜻이오 역(易)이라 함은 운동변화(運動變化)의 뜻이라, 모든 운동변화(運動變化)는 음양(陰陽)의 대대(對待)와 서로 포축(包蓄)하고 있으므로, 음양(陰陽)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양편(兩便)에 위열(位列)을 지은 연후(然後)에 운동변화(運動變化)가 그 중(中)에 행(行)하나니, 음양(陰陽)이 훼기(毁棄)하여 독음(獨陰)이나 독양(獨陽)이 되면 운동변화(運動變化)가 생(生)치 못하고 또 운동변화(運動變化)가 생(生)치 못하면, 양물(陽物)은 독양(獨陽)이 되고 음물(陰物)은 독음(獨陰)이 되어, 생생(生生)의 공(功)이 지식(止息)하는 것이니, 이것이 운동(運動)과 대대(對待)의 관계(關係)를 가장 명확(明確)히 표시(表示)함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반드시 운동(運動)과 대대(對待)가 병행(竝行)하나니, 식물(植物)의 동일체내(同一體內)에 뿌리의 배일성(背日性) 및 향토성(向土性)과 지엽(枝葉)의 향일성(向日性) 및 배토성(背土性)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능(能)히 그 발육(發育)을 이루고, 동물(動物)의 동일체내(同一體內)에 피부(皮膚)의 수렴작용(收斂作用)과 혈액(血液)의 고동작용(鼓動作用)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신체(身體)의 활동(活動)이 생(生)하고, 동일(同一)한 혈관(血管)에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능(能)히 순환작용(循環作用)을 행(行)하고, 어느 지방(地方)에 특수(特殊)한 풍토병(風土病)이 있으면 그 지방(地方)에는 반드시 그 병(病)을 극복(克服)하는 약재(藥材)가 생(生)하고, 와류(蛙類)가 동면(冬眠)하는 까닭에 그를 식물(食物)로 하는 사류(蛇類)가 대대(對待)의 대상(對象)을 상실(喪失)하여 또한 동면(冬眠)치 아니할 수 없고, 어느 사물(事物)에 한 세력(勢力)이 이루어지면 그 반면(反面)에 반드시 그에 대항(對抗)하는 신세력(新勢力)이 발생(發生)하나니, 이것이 모두 대대작용(對待作用)에 의(依)하여 운동(運動)이 일어나고 또 운동(運動)이 있으므로 써 대대(對待)가 생(生)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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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의 균등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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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對待)의 균등(均等)

 

체(體)와 용(用)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므로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체(體)가 용(用)에 작용(作用)하는 동시(同時)에 용(用)이 또한 체(體)에 작용(作用)하며, 그 기능(機能)은 서로 균등(均等)하여 우열(優劣)․강약(强弱) 등(等) 차등(差等)이 없으니, 마치 이심력(離心力)과 향심력(向心力),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그 역량(力量)이 상등(相等)함과 같음이다. 만일 양자(兩者)에 우열(優劣)․강약(强弱)의 차등(差等)이 있다고 하면 혹(或) 체(體)가 우강(優强)하고 용(用)이 열약(劣弱)한 때에 체(體)는 용(用)에 작용(作用)할 수가 있으되 용(用)은 체(體)에 작용(作用)치 못하며, 또 혹(或) 용(用)이 우강(優强)하고 체(體)가 열약(劣弱)한 때에 용(用)은 체(體)에 작용(作用)할 수가 있으되 체(體)는 용(用)에 작용(作用)치 못하여 대대(對待)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나니,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면 그 운동과정(運動過程)에 스스로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생(生)하여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는 것이다. 물(物)의 소장과정(消長過程)에는 어느 일편(一便)이 현저(顯著)히 우강(優强)하고 다른 일편(一便)이 현저(顯著)히 열약(劣弱)한 현상(現象)이 나타나지 아니함은 아니나, 그것은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아니오 한서(寒暑)․주야(晝夜)가 서로 대사(代謝)함과 같이 일왕일래(一往一來)․일진일퇴(一進一退)하는 소장운동(消長運動)이다.

원래(元來) 체(體)는 조직(組織)이니 조직(組織)은 지세(地勢)를 상(象)하여 돈후(敦厚)하여야 하나니, 역(易)에「坤厚載物 = 곤(坤)은 후(厚)하여 물(物)을 재(載)한다」【註四】함은 이를 말함이오, 용(用)은 운행(運行)이니 운행(運行)은 천행(天行)을 상(象)하여 강건(强健)하여야 하나니, 역(易)에「天行健 = 천행(天行)이 건(健)하다」【註五】함은 이를 말함이다. 조직(組織)이 돈후(敦厚)치 못하면 흠결(欠缺)하기 쉽고, 운행(運行)이 강건(强健)치 못하면 체색(滯塞)하기 쉬우니 흠결(欠缺)과 체색(滯塞)은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병적현상(病的現象)으로서 반드시 편승편패(偏勝偏敗)의 폐(弊)를 생(生)하는 것이다. 체용(體用)의 편승편패(偏勝偏敗)에 대(對)하여 역(易)에는「소과(小過)」와「대과(大過)」로써 상(象)하니 역리(易理)에 음(陰)은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으므로 소(小)라 하고 양(陽)은 발현작용(發顯作用)이 있으므로 대(大)라 하는지라, 소과(小過)라 함은 음(陰)이 과성(過盛)함이니, 체(體)가 과중(過重)하고 용(用)이 부족(不足)하여 약동(躍動)하는 힘이 강건(强健)치 못함으로 상(上)에 등상(騰上)치 못하고 하(下)에 추하(墜下)하는 상(象)이 되는 것이니, 역(易)에「上逆而下順 = 상(上)하면 역(逆)하고 하(下)하면 순(順)한다」【註六】함은 이를 말함이며, 상역하순(上逆下順)은 체승용패(體勝用敗)라, 모든 사물(事物)이 질량(質量)이 태중(太重)하고 활동력(活動力)이 약(弱)하여 주류방행(周流旁行)치 못함은 소과(小過)의 상(象)이 되는 것이오, 대과(大過)라 함은 양(陽)이 과성(過盛)함이니 용(用)이 과대(過大)하고 체(體)가 부족(不足)하여 지탱(支撑)하는 토대(土臺)가 돈후(敦厚)치 못함으로 요동(搖動)하여 전도(顚倒)하는 상(象)이 되는 것이니, 역(易)에「棟撓 本末弱也 = 동(棟)이 요(撓)함은 본말(本末)이 약(弱)함이라」【註七】함은 이를 말함이며 동요본말약(棟撓本末弱)은 용승체패(用勝體敗)라, 모든 사물(事物)이 기초(基礎)가 박약(薄弱)하고 상층구조(上層構造)가 과대(過大)하여 전복(顚覆)의 환(患)이 있음은 대과(大過)의 상(象)이 되는 것이니 소과(小過)와 대과(大過)는 모두 체용(體用)이 균등(均等)치 못하여 운동(運動)이 행(行)치 못하는 것이다. 한의학(漢醫學)에 편승편절(偏勝偏絶)의 이(理)가 있으니 어떤 병(病)에 대(對)하여 단약(單弱)을 복용(服用)하는 때에 병(病)이 제거(除去)되면 곧 중지(中止)하여야 하고, 만일 계속장복(繼續長服)하면 그 약(藥)이 작용(作用)하고 있는 장부(臟腑)는 강(强)하여지나, 그와 대대(對待)되는 장부(臟腑)는 도리어 약(弱)하여져서 마침내 절기(節氣)하기에 이르나니, 이를 장절(臟絶)이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감초(甘草)와 같은 중화성(中和性)의 약(藥)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약(單藥)으로 장복(長服)치 아니하며, 약(藥)의 조제(調劑)에는 반드시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을 배합(配合)하는 것이다. 또 수화호택(水火互宅)의 이(理)가 있으니 이는 역학(易學)의 대대호근(對待互根)의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수(水)는 화(火)의 고무(鼓舞)에 의(依)하여 유행(流行)하고, 화(火)는 수(水)에 의착(依着)하여 존재(存在)하나니, 수화(水火)는 곧 혈(血)과 기(氣), 냉(冷)과 열(熱) 등(等)이라, 그러므로 기약(氣藥)을 쓸 때에도 반드시 혈약(血藥)을 가(加)하고 혈약(血藥)을 쓸때에도 반드시 기약(氣藥)을 가(加)하며, 냉열(冷熱)의 약(藥)에도 또한 중화제(中和劑)를 가(加)하는 것이오, 다만 그 분량(分量)에 있어서 주종좌사(主從佐使)의 구별(區別)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모두 편승편절(偏勝偏絶)의 해(害)를 막기 위(爲)함이다.

공자(孔子)의 문질론(文質論)에「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 질(質)이 문(文)을 승(勝)한즉 야(野)이오, 문(文)이 질(質)을 승(勝)한즉 사(史)이오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연후(然後)에 군자(君子)이라」【註八】하니, 질(質)은 체(體)이오 문(文)은 용(用)이라 야(野)는 체승용패(體勝用敗)의 상(象)이오 사(史)는 용승체패(用勝體敗)의 상(象)이오, 군자(君子)는 문(文)과 질(質)이 잡채(雜彩)하여 체용(體用)이 균등(均等)한 상(象)이다. 또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학(學)하고 사(思)치 아니한즉 망(罔)하고 사(思)하고 학(學)치 아니한즉 태(殆)하다」【註九】하니, 사(師)로부터 학습(學習)함은 체(體)가 되고, 이미 학습(學習)한 것을 기초(基礎)로 하여 스스로 사색(思索)함은 용(用)이 되는지라, 학습(學習)만하고 사색(思索)치 아니하면 체승용패(體勝用敗)함으로 혼암(昏暗)하여 각득(覺得)함이 없고, 사색(思索)만 하고 학습(學習)치 아니하면 용승체패(用勝體敗)함으로 학문(學問)의 기초(基礎)가 박약(薄弱)하여 안정(安定)치 못한 것이다. 사람이 마음은 성실(誠實)하나 재능(才能)이 부족(不足)하여 작사(作事)가 민첩(敏捷)치 못함은, 체승용패(體勝用敗)의 상(象)이오, 역(易)에「德薄而位尊 知小而謀大 力少而任重 鮮不及矣 = 덕(德)이 박(薄)하되 위(位)가 존(尊)하고 지(知)가 소(小)하되 모(謀)가 대(大)하고 역(力)이 소(少)하되 임(任)이 중(重)하면 화(禍)에 급(及)치 아니함이 적다」【註十】함은, 그 실력(實力)이 책임(責任)을 감승(堪勝)치 못하여 용승체패(用勝體敗)하는 상(象)이다.

사람의 성격(性格)에는 냉정(冷靜)과 열렬(熱烈)이 있는데, 냉정(冷靜)은 체(體)이오 열렬(熱烈)은 용(用)이라, 냉정(冷靜)한 체(體)는 열렬(熱烈)로써 용(用)을 삼은 연후(然後)에 진취(進取)의 기(氣)와 추행(推行)하는 힘이 있어 능(能)히 전도(前途)의 험난(險難)을 개척(開拓)하는 것이오, 열렬(熱烈)한 용(用)은 냉정(冷靜)으로써 체(體)를 삼은 연후(然後)에 냉정(冷靜)한 자기비판(自己批判)과 반성(反省)이 있어 진퇴(進退)함이 그 정도(正道)를 잃지 아니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사상(思想)에는 현실(現實)을 주(主)하는 자(者)와 이상(理想)을 주(主)하는 자(者)가 있는데, 현실(現實)은 체(體)이오 이상(理想)은 용(用)이라, 사람이 현실(現實)에 만족(滿足)하여 더 향상(向上)할 이상(理想)을 가지지 못하면, 혹(或)은 인순고식(因循姑息)하고 혹(或)은 안일(安逸)을 탐(貪)하여 아무 진취(進就)가 없는 것이니, 이는 체승용패(體勝用敗)함이오, 또 이상(理想)의 추구(追求)에 급급(汲汲)하여 현실사회(現實社會)가 착종(錯綜)한 전통(傳統)과 무한(無限)한 관련(關聯)의 환경(環境)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면, 혹(或)은 공상(空想)에 흐르고 혹(或)은 모험돌진(冒險突進)하다가 패사(敗事)하는 일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용승체패(用勝體敗)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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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신진대사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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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社會)의 신진대사(新陳代謝)

 

인생사회(人生社會)는 부단(不斷)히 운동(運動)하여 일반생물(一般生物)과 같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이(理)가 있으므로, 거기에는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등(等)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생(生)하고, 또 이러한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있으므로 써 부단(不斷)히 운동(運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성장(成長)이 어느 한도(限度)에 이르면 스스로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경화(硬化)․정체(停滯)․폐색(閉塞) 등(等) 수장현상(收藏現象)이 나타나서, 인심(人心)이 구안(苟安)을 탐(貪)하고 만무(萬務)가 해이(解弛)하여 장래(將來)할 화환(禍患)을 원려(遠慮)치 아니하나니,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승평(昇平)이 일구(日久)하여 귀족계급(貴族階級)이 향락(享樂)과 부패(腐敗)의 생활(生活)에 빠진 것이 그 일예(一例)이오, 또 사회(社會)가 시(時)로 더불어 진전(進展)하는 도중(途中)에는 스스로 거기에 동반(同伴)치 못하는 낙오자(落伍者)가 생(生)하나니, 지금 우리 사회(社會)에 봉건시대(封建時代)의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잔재(殘滓)가 남아 있는 것이 그 일예(一例)이다. 그런데 사회(社會)에는 반드시 현실(現實)을 유지(維持)하려 하는 세력(勢力)이 있어 그 현실(現實)을 옹호(擁護)하기 위(爲)하여 보수작용(保守作用)을 행(行)하고 또 한편(便)에는 반드시 현실(現實)을 변통(變通)하려 하는 이상(理想)이 있어 보수세력(保守勢力)을 추척(推斥)하고 사회(社會)를 일신(日新)하려 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을 행(行)하나니, 역(易)에「革去故也 鼎取新也 = 혁(革)은 고(故)를 거(去)함이오 정(鼎)은 신(新)을 취(取)함이라」【註十一】함은, 구폐(舊弊)를 혁거(革去)하여 물(物)을 일신(日新)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을 말함이다. 보수(保守)는 체(體)가 되고 혁신(革新)은 용(用)이 되는지라, 보수사회(保守社會)의 속에는 반드시 폐고(弊故)한 폐물(廢物)이 생(生)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부면(部面)이 있으므로 사회(社會)는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위(爲)하여 고(故)를 버리고 신(新)을 취(取)하려 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마치 생물체(生物體)의 신진대사(新陳代謝)와 사시(四時)의 서(序)에 성공자(成功者)가 거(去)함과 같은 것이오, 이것이 사회내(社會內)의 운동(運動)이 신고(新故)의 대대(對待)를 생(生)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신고(新故)의 대대(對待)가 사회내(社會內)의 운동(運動)을 일으키는 소이(所以)이다.

고래(古來)로 전제독재(專制獨裁)의 정치(政治)를 행(行)하는 사회(社會)는 국내(國內)에 일원적(一元的) 지배세력(支配勢力)을 수립(樹立)하려 하여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을 억제(抑制)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회(社會)에는 지배세력(支配勢力)에 대(對)한 혁신운동(革新運動)이 일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정체(停滯)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대작용(對待作用)은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이라, 현실(現實)의 지배세력(支配勢力)과 대대(對待)하고 있는 혁신세력(革新勢力)이 비록 표면(表面)에 나타나서 활발(活潑)히 동작(動作)치 못한다 하더라도, 사회(社會)의 깊은 오저(奧底)에는 역시(亦是) 대대력(對待力)이 잠행암류(潛行暗流)하여 은연(隱然)히 지배층(支配層)에 대항(對抗)하고 이 잠행력(潛行力)이 축적(蓄積)하여 일시(一時)에 용출(湧出)하는 때는 사회(社會)의 대변동(大變動)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배층(支配層)들은 항상(恒常) 자기(自己)들에게 향래(向來)하는 대항세력(對抗勢力)의 봉인(鋒刃)이 있을 것을 예상(豫想)하고, 그 봉인(鋒刃)을 타(他) 방면(方面)으로 전환(轉換)시키기 위(爲)하여 권모(權謀)와 술책(術策)으로써 인위적(人爲的) 대대작용(對待作用)을 조작(造作)하나니, 그 관용(慣用)하는 수단(手段)으로는 혹(或)은 외국(外國)에 대(對)한 강경외교(强硬外交)의 기치(旗幟)를 고게(高揭)하고 때때로 폭탄적(爆彈的) 선언(宣言)을 발(發)하여 국민(國民)의 주의(注意)를 대외관계(對外關係)에 전환(轉換)시키는 동시(同時)에 외국(外國)에 대(對)한 적개심(敵愾心)을 환기(喚起)하여 자기(自己)들에게 향래(向來)하는 반항력(反抗力)을 마비(麻痺)시키고, 혹(或)은 국내(國內)에 어떤 사건(事件)이 발생(發生)함을 교묘(巧妙)히 이용(利用)하여 고의(故意)로 과장선전(誇張宣傳)하여 국민(國民)의 이목(耳目)을 그 방면(方面)에 집주(集注)시켜 그 사건(事件)과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케 하는 것이니, 이가 모두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지 못한 소이(所以)이오, 지금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國家) 같은 것이 전제독재정치(專制獨裁政治)의 산 표본(標本)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조대대(人造對待)는 사회(社會)의 자연(自然)스러운 생존작용(生存作用)으로 부터 출래(出來)한 것이 아니므로, 그 사회내부(社會內部)에는 지배층(支配層)에 대(對)한 항쟁세력(抗爭勢力)이 부단(不斷)히 움직이고 있어, 사회(社會)에는 운동(運動)이 지식(止息)치 아니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社會)는 거대(巨大)한 조직(組織)이라 편승편패(偏勝偏敗)하는 일이 거의 없고, 혹시(或是) 일시적(一時的)으로 그러한 현상(現狀)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항구(恒久)히 계속(繼續)되는 것이 아니며, 또 혹(或)은 자체(自體)의 내부(內部)에서 분열작용(分裂作用)이 일어나서 다시 대대양면(對待兩面)을 생(生)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에 양세력(兩勢力)이 상쟁(相爭)하다가 어느 일편(一便)이 폐절(廢絶)되는 때에 독존(獨存)한 세력(勢力)은 독음(獨陰)이 되고 다시 대대(對待)되는 세력(勢力)이 생(生)치 못하면 사회(社會)의 생존운동(生存運動)이 행(行)치 못하여 침체(沈滯) 부패(腐敗)하는 것이나 사회(社會)는 생생(生生)하여 궁(窮)치 아니하는지라, 반드시 그 독음체내(獨陰體內)에서 상반(相反)되는 양작용(兩作用)이 생(生)하여 필경(畢竟) 분열(分裂)에 의(依)하여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으로써 보면 고등생물(高等生物)은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이체(異體)로 되어 서로 대대(對待)하여 생식(生殖)의 공(功)을 이루고 있지만 저급생물중(低級生物中)에는 음양성(陰陽性)이 동체내(同體內)에 병존(竝存)한 것도 있고 최하층생물(最下層生物)에 이르러서는 자체(自體)의 분열작용(分裂作用)에 의(依)하여 생식(生殖)하고 있는지라, 사회(社會)도 민도(民度)가 높은 곳에서나 또는 높은 시대(時代)에는 대대(對待)되는 양세력(兩勢力)이 존립(存立)하여 사시(四時)의 서(序)가 자연(自然)스럽게 대사(代謝)함과 같이, 어느 일세력(一勢力)이 정권(政權)을 잡고 있다가 인심(人心)이 향응(向應)치 아니하면 곧 정권(政權)을 대대(對待)되는 세력(勢力)에게 양도(讓渡)하고 야(野)에 내려와서 실력(實力)을 양성(養成)한 후(後)에 다시 출발(出發)하여 사시순환(四時循環)의 이(理)를 몸소 실천(實踐)하는 것이며, 민도(民度)가 저하(低下)한 사회(社會)나 시대(時代)에는, 한번 정권(政權)을 잡으면 인민(人民)의 향배여하(向背如何)를 불문(不問)하고 한 사유기(私有器)의 소유권(所有權)으로 생각하여 수중(手中)의 권력(權力)을 이용(利用)하여 백년독점(百年獨占)을 몽상(夢想)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회(社會)에는 순리(順理)로운 정권수수(政權授受)가 있을 수 없고 마침내 유혈(流血)의 혁명(革命)이 일어나거나 그러하지 아니하면 자체(自體)의 분열(分裂)에 의(依)하여 대대세력(對待勢力)이 생(生)하는 것이니, 아국(我國)의 이조정쟁사(李朝政爭史)같은 것은 귀족사회(貴族社會)의 대대운동(對待運動)의 자취를 확실(確實)히 보여주는 것이다.【註十二】

註一. 旣濟卦彖傳

註二. 繫辭下傳 第五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四. 坤卦彖傳

註五. 乾卦大象傳

註六. 小過卦彖傳

註七. 大過卦彖傳

註八. 論語雍也篇

註九. 論語爲政篇

註十. 繫辭下傳 第五章

註十一. 離卦傳

註十二. 이조(李朝)의 파당대대(派黨對待)의 투쟁(鬪爭)은 멀리 세조(世祖)가 단종(端宗)과 육신(六臣)을 죽이고 탈위(奪位)한데서 발단(發端)하니, 당시(當時) 유신파(儒臣派)의 분노(憤怒)는 主로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를 향(向)하여 발사(發射)하고 성종(成宗)일대중(一代中)의 정치투쟁(政治鬪爭)은 전(專)혀 유신파(儒臣派)의 대(對)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 공격(攻擊)이다. 이 투쟁(鬪爭)이 연산시대(燕山時代)에 이르러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가 유신파(儒臣派)를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양성(釀成)하고 중종반정후(中宗反正後)에 조광조(趙光祖)등(等) 유신파(儒臣派)가 다시 등장(登場)하여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와의 격렬(激烈)한 투쟁(鬪爭)을 전개(展開)하더니 마침내 공신(功臣)삭탈문제(削奪問題)로 인(因)하여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보게 되고 중종(中宗)말년(末年)에 유신파(儒臣派)가 다시 거두(擧頭)하더니 명종(明宗)초년(初年)에 또 척리파(戚里派) 윤씨(尹氏)와 충돌(衝突)이 생(生)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만난 것이다. 선조(宣祖)이후(以後)에 비로소 유신파(儒臣派)의 천하(天下)가 되어 오랜동안의 숙분(宿憤)을 쾌설(快雪)하기는 하나 아직 척리파(戚里派)에 대(對)한 숙감(宿憾)이 풀리지 아니하던중(中) 사적(私的)으로는『김효원(金孝元)』대(對)『심의겸(沈義謙)』 공적(公的)으로는 유신파(儒臣派)대(對) 척리파(戚里派)의 대(對) 결전(決戰)이 일어나서 드디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이라는 양당(兩黨)을 생(生)한 것이다. 그러나 세조(世祖)이후(以後) 백수십년간(百數十年間)의 정쟁(政爭)은 서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여 정쟁(政爭)의 의의(意義)가 있고 따라서 그 운동(運動)도 활기(活氣)를 띤 것이러니 동서분당(東西分黨)이후(以後)에 척리파(戚里派)는 다시 지평선(地平線) 상(上)에 올라오지 못하고 유신(儒臣)일색(一色)으로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니, 이 때로 부터의 정쟁(政爭)은 종래(從來)와 같은 투쟁(鬪爭)대상(對象)이 있는 것도 아니오, 또 현실(現實)과 이상(理想)의 대립(對立)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정쟁(政爭)의 의의(意義)를 전연(全然) 상실(喪失)하니, 의의(意義)없는 정쟁(政爭)은 다만 권력(權力)과 모략(謀略)으로써 상대방(相對方)을 공파(攻破)하고 정권(政權)을 잡는 것이 유일(唯一)한 목표(目標)이라, 그러므로 동인(東人)은 마침내 서인(西人)을 구축(驅逐)하고 독천하(獨天下)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독천하(獨天下)는 또한 대대(對待)의 대상(對象)이 없는지라, 이에 자체(自體)분열(分裂)에 의(依)한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하여 동인(東人)은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분파(分派)되고 북인(北人)은 다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분열(分裂)된 것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후(以後)에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조정(朝廷)에 공립(共立)하더니, 서인(西人)은 남인(南人)을 타도(打倒)한 후(後)에 다시 자체(自體)분열(分裂)에 의(依)하여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을 생(生)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한 것이다. 영조(英祖)이후(以後)에 소위(所謂) 탕평책(蕩平策)을 써서 당쟁(黨爭)의 휴전(休戰)을 도모(圖謀)하나 여의(如意)치 못하고, 주(主)로 노론(老論)이 용사(用事)하여 거의 독천하(獨天下)가 되더니, 이에 무당무파(無黨無派)를 표방(標榜)한 속칭(俗稱) 탕평당(蕩平黨)이 새로 출현(出現)하여 홍씨(洪氏)를 중심(中心)으로한 척리파(戚里派)가 재차(再次) 등장(登場)하니, 이 세력(勢力)은 비록 오래지 아니하여 제거(除去)된 것이나 척리파(戚里派)의 재등장(再登場)의 뿌리는 이미 부식(扶植)되고, 역사(歷史)는 여기서 일대환전(一大圜轉)하여 이래(爾來) 근백년간(近百年間) 왈조(曰趙), 왈김(曰金), 왈민(曰閔), 등(等) 척리(戚里)천하(天下)를 현출(現出)하고 유신파(儒臣派)는 다시 거두(擧頭)치 못하며, 척리(戚里)천하(天下)는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운동(運動)이 지식(止息)하여 퇴폐(頹廢)와 부패(腐敗)의 일로(一路)를 향진(向進)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조(李朝)의 학술(學術)은 정주학(程朱學)이 독세력(獨勢力)을 차지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고 사상계(思想界)의 침체(沈滯)를 초래(招來)하더니, 여러 차례의 정쟁(政爭)에서 패배(敗北)를 당(當)한 남인(南人)들은 새로운 방면(方面)에 진로(進路)를 개척(開拓)하여, 국리(國利)민생(民生)에 실천(實踐)할 수 있는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 즉(卽) 실학(實學)으로써 종래(從來)에 공리공론(空理空論)에 흐르고 있는 소위(所謂) 성리학(性理學)과 대대(對待)하니, 정치(政治)와 사회(社會)가 천부만패(千腐萬敗)한 이조(李朝)말기(末期)에 있어서 실학(實學)의 발생(發生)은 실(實)로 유일(唯一)한 생기(生氣)의 약동(躍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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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와 삼재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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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節 대대(對待)와 삼재(三才)

‣대대조직(對待組織)과 삼재운행(三才運行)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은 모두 대대양물(對待兩物)로 되어 있으므로 대대(對待)가 운동(運動)하여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는 때는 반드시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하여 생생불궁(生生不窮)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양작용(兩作用)이 상가(相加)하는 때에 반드시 새로운 일작용(一作用)을 생(生)하고 양사(兩事)가 상여(相與)하는 때에 반드시 새로운 일사(一事)를 생(生)한다. 그리하여 조직체(組織體)의 대대(對待)로부터 운행력(運行力)이 발동(發動)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때는 그 수(數)가 삼(三)이 되어「삼재(三才)」의 상(象)을 나타내나니, 역(易)에「天地絪縕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 = 천지(天地)가 인온(絪縕)하매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순(醇)하고 남녀(男女)가 정(精)을 구(構)하매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생(生)한다」【註一】한바, 인온(絪縕)은 교밀(交密)함이오 화순(化醇)은 기(氣)가 화응(化凝)함이오 화생(化生)은 형(形)이 화성(化成)함이니, 이는 천지(天地)의 기(氣)가 교밀(交密)하여 만물(萬物)의 기(氣)가 화응(化凝)하고 만물(萬物)의 음양성(陰陽性)이 정(精)을 상교(相交)하여 형(形)을 화성(化成)함을 말함인데, 천지(天地)의 중간(中間)에 사람이 생(生)하여 만물중(萬物中)의 최령최장(最靈最長)으로서 위(位)를 이루고 있으므로 천지(天地)와 사람을 병칭(倂稱)하여 삼재(三才)라 하나니, 이 이(理)에 의(依)하여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여 후계자(後繼者)를 생(生)하는 것이 모두 삼재(三才)의 도(道)이다.

물(物)의 조직(組織)은 대대(對待)로써 구성(構成)되어 그 상(象)이 이(二)하니 이(二)는 우(偶)하고 우(偶)한 자(者)는 수용작용(受容作用)이 있으므로 그 형(形)이 광(廣)하여 지잡지동(至雜至動)한 물(物)을 포장(包藏)하는 것이오, 물(物)의 운행(運行)은 삼재(三才)의 도(道)로써 발전(發展)하여 그 상(象)이 삼(三)하니 삼(三)은 기(奇)하고 기(奇)한 자(者)는 추진작용(推進作用)이 있으므로 그 형(形)이 대(大)하여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무궁(無窮)히 추이(推移)하는 것이니, 천(天)은 운행(運行)의 상징(象徵)이오, 지(地)는 조직(組織)의 상징(象徵)이므로, 역(易)에는「廣大配天地 = 광(廣)하고 대(大)함은 천지(天地)에 배(配)한다」【註二】하여, 천(天)을 대(大)하다 하고 지(地)를 광(廣)하다 하며 또「參天兩地 = 천(天)을 삼(參)으로 하고 지(地)를 양(兩)으로 한다」【註三】하여, 천수(天數)를 삼(三)이라 하고 지수(地數)를 이(二)라 한 것이다.

삼천양지(參天兩地)의 이(理)에 의(依)하여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수(數)의 비교(比較)는, 항상(恒常) 그 상(象)이 양성(陽性)은 삼(三)이 되고 음성(陰性)은 이(二)가 되나니 동식물(動植物)의 생식기(生殖器)로써 보면 음성(陰性)은 수용(受容)하기 위(位)하여 대대(對待)의 형태(形態)와 같이 우(偶)함으로 그 상(象)이 이(二)하고 양성(陽性)은 발시(發施)하기 위(爲)하여 삼재(三才)의 형태(形態)와 같이 기(奇)함으로 그 상(象)이 삼(三)하며, 사람의 생식(生殖)유효(有效)연령(年齡)의 기간(期間)도 대체(大體)로 남삼여이(男三女二)의 비(比)이다. 식물체(植物體)의 구조(構造)로써 보면 이미 체(體)를 완성(完成)한 근간(根幹) 등(等)은 음성(陰性)을 띠고 있으므로 중공(中空)하여 그 상(象)이 우(偶)하고, 성(成)의 용(用)이 되는 지초(枝梢) 등(等) 성장점(成長點)은 양성(陽性)을 띠고 있으므로 그 상(象)이 기(奇)하며, 마류(馬類)는 양물(陽物)이므로 그 제(蹄)가 기(奇)하여 중실(中實)하고, 우류(牛類)는 음물(陰物)이므로 그 제(蹄)가 우(偶)하여 중공(中空)하니, 중실(中實)과 중공(中空)이 또한 삼(三)과 이(二)의 상(象)이다.

그러나 대대(對待)와 삼재(三才)는 각기(各其) 별물(別物)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오, 대대(對待)가 삼재(三才)를 생(生)하고 삼재(三才)의 속에 대대(對待)를 포함(包含)하고 그 대대(對待)가 다시 삼재(三才)를 생(生)하여 서로 착종(錯綜)하고 서로 인과(因果)하며, 대대(對待)와 삼재(三才)의 한(限)없는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은 생생(生生)하면서 존존(存存)하고 존존(存存)하면서 생생(生生)하며, 또 그 만물(萬物)은 비록 삼라만상(森羅萬象)하고 있으되 모두 태일체(太一體)의 통일(統一)에 귀(歸)하는 것이니, 老子가「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 일(一)이 이(二)를 생(生)하고 이(二)가 삼(三)을 생(生)하고 삼(三)이 만물(萬物)을 생(生)한다」【註四】함은, 통일(統一)․대대(對待)․삼재(三才)의 이(理)를 간명(簡明)하게 표현(表現)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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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과 삼극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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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三索)과 삼극(三極)

 

원래(元來) 천(天)․지(地)․인(人)을 삼재(三才)라 함은, 상(上)의 천(天)과 하(下)의 지(地)와 그 중간(中間)에 생(生)한 만물(萬物)을 합(合)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동적(動的)으로 볼 때에는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오,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오, 만물(萬物)은 형(形)의 결성(結成)함이니, 기(氣)․정(精)․형(形)의 삼자(三者)가 또한 삼재(三才)의 형태(形態)이다. 그러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여(相與)하여 삼재(三才)로 발전(發展)하는 과정(過程)에는 정(精)과 기(氣)의 혼륜착종(渾淪錯綜)한 작용(作用)을 일으켜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상(象)을 생(生)하는 것이다.

삼색(三索)의 상(象)이라 함은 시간적(時間的)․입체적(立體的) 또는 종적(縱的)으로 발전(發展)함이니,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하여 물(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일색(一索)하여 뇌풍(雷風)의 기(氣)를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장남(長男)․장녀(長女)라 하고, 재색(再索)하여 수화(水火)의 정(精)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중남(中男)․중녀(中女)라하고, 삼색(三索)하여 산택(山澤)의 형(形)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소남(少男)․소녀(少女)라 하니, 이것을 삼색(三索)이라 한다.【註五】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음양성(陰陽性)의 대대(對待)가 신물(新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먼저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상응(相凝)하여 신물(新物)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나니, 이가 곧 삼색(三索)의 상(象)이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있어서는 처음에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여 연모(戀慕)가 생(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여 잉태(孕胎)가 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응결(凝結)하여 차세대(次世代)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는 것이며, 사람의 사업(事業)같은 것도 처음에 계획(計劃)의 수립(樹立)은 기(氣)의 감응(感應)함이고, 다음에 기구(機構)의 조직(組織)은 정(精)의 취합(聚合)함이오, 그 다음에 실천(實踐)의 결실(結實)은 형(形)의 생성(生成)함이니,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발생(發生)에는 어느 하나도 이 삼색(三索)의 순서(順序)를 밟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삼극(三極)의 상(象)이라 함은 공간적(空間的)․평면적(平面的) 또는 횡적(橫的)으로 관섭(關涉)함이니, 여기에는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 등(等), 세 가지 형태(形態)가 있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에는 모두 양극(兩極)이 있으니, 유(幽)와 명(明)은 지(地)의 주야(晝夜)의 양극(兩極)이오, 사(死)와 생(生)은 인(人)의 일생(一生)의 양극(兩極)이오, 귀(鬼)와 신(神)은 천(天)의 조화(造化)의 양극(兩極)이며, 또 음(陰)과 양(陽)은 천(天)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유(柔)와 강(剛)은 지(地)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인(仁)과 의(義)는 인(人)의 도(道)의 양극(兩極)이니【註六】, 물(物)의 운동(運動)이 천지인(天地人)의 각(各)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을 삼극(三極)의 도(道)라 한다.【註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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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과 수동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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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動과 受動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기(氣)는 모두 발동작용(發動作用)을 행(行)함으로 기(氣)와 기(氣)가 상대(相對)하는 때는 양자(兩者)가 서로 발동(發動)하려하여 스스로 서로 추척(推斥)하고 서로 견인(牽引)하나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八】함은,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動靜有常 = 동(動)하고 정(靜)함이 상(常)이 있다」【註九】함은, 동(動)은 능동(能動)이오 정(靜)은 수동(受動)으로서 동정(動靜)함이 상도(常道)가 있다 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추척(推斥)과 견인(牽引)과의 상대(相對)는 또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로 되어, 기(氣)의 운동(運動)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수동(受動)은 체(體)가 되고 능동(能動)은 용(用)이되어, 능동(能動)이 없으면 수동(受動)이 있을 수 없고 또 수동(受動)이 없으면 능동(能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나니, 역(易)에「剛柔相易 不可爲典要 惟變所適 = 강유(剛柔)가 서로 역(易)하여 가(可)히 전요(典要)를 삼지 못하고 오직 변(變)의 적(適)하는 바이라」【註十】하니, 전요(典要)라 함은 상례(常例)의 뜻이라, 역(易)의 도(道)는 강유(剛柔)의 위(位)와 작용(作用)이 서로 환역(換易)하여 고정(固定)한 상례(常例)가 없고 오직 변화(變化)함을 따른다 함이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아(我)가 능동(能動)하여 타(他)에 발시(發施)하면 타(他)는 수동(受動)하여 그를 승수(承受)하고, 그 승수(承受)하는 작용(作用)이 다시 능동(能動)으로 전화(轉化)하여 아(我)에 발시(發施)하고 아(我)는 수동(受動)으로 변화(變化)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인 아(我)는 한번은 능동(能動)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번은 수동(受動)의 위(位)에 입(立)하여 소위(所謂)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반복(反復)하면서 한(限)없는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소장(消長)․성쇠(盛衰)와 왕고래금(往古來今)의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이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반복(反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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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와 통체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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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라 함은 만물(萬物)의 정(精)은 모두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함으로 정(精)과 정(精)이 상대(相對)하는 때는 서로 적응(適應)하여 相與치 못하고, 오직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교호작용(交互作用)으로써 서로 관섭(關涉)이 생(生)하나니, 역(易)에「水火不相射 = 수(水)와 화(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한다」【註十一】함은,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인데, 정(精)의 작용(作用)은 취합(聚合)하면 형(形)을 이루어 통체(統體)가 되고 발산(發散)하면 기(氣)로 화(化)하여 개체(個體)가 되는 것이므로 역(易)에「方以類聚 物以群分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하고 물(物)은 군(群)으로써 분(分)한다」【註十二】하니 유(類)로써 취(聚)함은 통체(統體)를 이루는 것이오, 군(群)으로써 분(分)함은 개체(個體)로 화(化)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상대(相對)는 스스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로 되어, 개체(個體)는 물(物)의 구성요소(構成要素)가 되고 통체(統體)는 각개체(各個體)가 취합(聚合)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통일체(統一體)가 되는 것이며, 정(精)의 운동(運動)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개체(個體)는 체(體)가 되고 통체(統體)는 용(用)이 되어 개체(個體)가 없으면 통체(統體)는 성립(成立)되지 못하고 또 통체(統體)가 없으면 개체(個體)는 고립(孤立)하여 생존(生存)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개체(個體)와 통체(統體)는 시(時)와 처지(處地)의 변화(變化)에 따라서 주객(主客)의 위(位)가 항상(恒常) 이역(移易)하나니, 만물(萬物)은 모두 한편으로는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하는데,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개체(個體)는 주(主)가 되고 통체(統體)는 객(客)이 되며,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통체(統體)는 주(主)가 되고 개체(個體)는 객(客)이 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이 한편으로는 주(主)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객(客)의 위(位)에 입(立)하여 주객(主客)의 위(位)가 서로 전도(轉倒)되는 것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사적생활(私的生活)이라 함은 개체(個體)의 위(位)이오, 공적생활(公的生活)이라 함은 통체(統體)의 위(位)이니, 이 사적생활(私的生活)과 공적생활(公的生活)의 착종(錯綜)으로 인(因)하여 지잡(至雜)한 양상(樣相)과 지동(至動)하는 변화(變化)를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분합(分合)․취산(聚散) 등(等)은 이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교착(交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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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발용 (한장경저 역학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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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安貞)과 발용(發用)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이라 함은, 정(精)은 지정(止靜)하고 기(氣)는 발동(發動)함으로 기(氣)는 정(精)에 의착(依着)하고 정(精)은 기(氣)의 고무(鼓舞)로써 동작(動作)하여 호상의부(互相依附)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이니 역(易)에「山澤通氣 = 산(山)과 택(澤)이 기(氣)를 통(通)한다」【註十三】함은,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卑高以陳 = 비(卑)와 고(高)가 써 진(陳)한다」【註十四】함은 산(山)은 고(高)하고 택(澤)은 비(卑)하여 고저(高低)의 차등(差等)이 있으나 산(山)은 안정(安貞)하고 택(澤)은 발용(發用)하여 수(水)가 산정(山頂)에까지 통(通)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형체(形體)의 조직(組織)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호근관계(互根關係)로 되어 안정(安貞)은 현상(現狀)을 항구(恒久)히 유지(維持)하려 하여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하고 발용(發用)은 현상(現狀)을 부단(不斷)히 변개(變改)하려하여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정(精)과 기(氣)의 운동(運動)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안정(安貞)은 체(體)가 되고 발용(發用)은 용(用)이 되어, 안정(安貞)만 있고 발용(發用)이 없으면 물(物)의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고, 또 발용(發用)만 있고 안정(安貞)이 없으면 물(物)이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자체(自體)를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현상(現狀)인 현실(現實)은 안정(安貞)의 위(位)이오, 시(時)의 추이(推移)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발전(發展)하고 나가는 미래(未來)는 발용(發用)의 위(位)인데, 만물(萬物)은 현실(現實)을 떠날 수가 없고 또 미래(未來)를 향진(向進)치 아니할 수도 없어, 동일(同一)한 물(物)이 한편으로는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하여,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발용(發用)하는 작용(作用)을 견제(牽制)하고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안정(安貞)하는 작용(作用)을 추척(推斥)하며, 이리하여 현실(現實)은 정지(停止)하고 이상(理想)은 행진(行進)하며 다시 정지(停止)하던 현실(現實)은 행진(行進)하고 행진(行進)하던 이상(理想)은 정지(停止)하여 무한(無限)히 앞으로 행진(行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진퇴(進退)․굴신(屈伸) 등(等)은 이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련(關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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