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과 생활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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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三情)과 생활(生活)과의 관계(關係)

 

사람의 수양(修養)과 사업(事業)에도 삼정(三情)의 작용(作用)이 있으니 역(易)에 「學以聚之 問以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 학(學)하여 써 취(聚)하고, 문(問)하여 써 변(辨)하고, 관(寬)하여 써 거(居)하고,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註四】하니, 학(學)하여 써 취(聚)한다 함은 학문(學問)을 배워서 지식(知識)을 적누(積累)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문(問)하여 써 변(辨)한다 함은 붕우(朋友)의 지(志)가 상통(相通)하여 난의(難疑)를 문답(問答)하여 서로 자익(滋益)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관(寬)하여 써 거(居)한다 함은 심량(心量)이 관홍(寬弘)하고 소수(所守)가 확연(確然)하여 오래 하되 변(變)치 아니하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오,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함은 심덕(心德)이 혼전(渾全)하여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함에 돈후(敦厚)하고 자애(慈愛)하고 그 행(行)하는 바가 공정(公正)하고 사사(私邪)가 없는 정대작용(正大作用)이다. 논어(論語)의 첫 머리에 공자(孔子)의 말에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학(學)하고 시(時)로 습(習)하면 또한 열(悅)치 아니하랴」【註五 以下의 二句도 同註內에 있다】함은 역(易)의 학취(學聚)이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붕(朋)이 있어 원방(遠方)으로 부터 내(來)하면 또한 낙(樂)치 아니하랴」함은 역(易)의 문변(問辨)이오,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 인(人)이 지(知)치 아니 하여도 온(慍)치 아니 하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랴」함은, 역(易)의 관거(寬居)이니 이 삼작용(三作用)이 구전(具全)하면 또한 능(能)히 인행(仁行)하여 그 실천(實踐)이 정대작용(正大作用)에 합(合)하는 것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 있어서는 역(易)에 「애(愛) 부(富) 위(威)」【註六】의 삼작용(三作用)을 말하니, 애(愛)는 가인(家人)의 지(志)가 상애(相愛)하여 화합(和合)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富)는 재화(財貨)를 생산(生産)하여 가산(家産)을 부유(富裕)케 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위(威)는 가정(家庭)의 질서(秩序)를 정제(正齊)하고 일정(一定)한 규모(規模)를 세우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다. 애(愛)가 없으면 가인(家人)의 마음이 서로 배역(背逆)하여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각기자기(各其自己)의 맡은 바의 임무(任務)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오, 부(富)가 없으면 생활(生活)이 안정(安定)치 못하는 것이오, 위(威)가 없으면 부자(婦子) 등(等)이 희희방종(嘻嘻放縱)하여 윤서(倫序)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절(家節)이 패괴(敗壞)되는 것이니, 애부위(愛富威)의 삼정(三情)이 모두 득의(得宜)한 연후(然後)에 가정(家庭)에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인(世人)은 흔히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가도(家道)는 애(愛)로서 체(體)를 삼고 위(威)로써 용(用)을 삼는지라, 그러므로 애(愛)라 함은 애정(愛情)에 빠져서 환압(歡狎)에 흐름을 말함이 아니오, 지성(至誠)으로써 상대(相對)하여 서로 속이지 아니하고 가인(家人)으로 하여금, 감격(感激)케하면 스스로 애(愛)가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친목화락(親睦和樂)함을 말함이니, 역(易)에 「王假(格) 有家 交相愛也= 왕(王)이 가(假)하여 가(家)를 유(有)함은 교상애(交相愛)함이라」【註七】함은, 그 가정(家庭)을 감화(感化)케 함으로써 서로 친애(親愛)함을 말함이오 위(威)라 함은 엄려(嚴厲)하고 노책(怒責)함을 말함이 아니오, 먼저 자신(自身)을 반성(反省)하여 스스로 엄칙(嚴飭)한 연후(然後)에 가인(家人)을 지도(指導)하면 스스로 위엄(威嚴)이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열복순종(悅服順從)함을 말함이니, 역(易)에「威如之吉 反身之謂也 = 위여(威如)의 길(吉)함은 신(身)에 반(反)함을 이름이라」【註八】함은, 위(威)함이 길(吉)하다는 것은 가인(家人)을 바로잡기 전(前)에 먼저 자신(自身)을 책(責)하면 위엄(威嚴)이 스스로 입(立)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치 못하는 것이 아니며 또 역(易)에 「立人之道曰 仁與義 = 인(人)의 도(道)를 입(立)하여 가로되 인(仁)과 의(義)라」【註九】하니, 인(仁)은 체(體)오 의(義)는 용(用)으로서 애(愛)는 인(仁)의 작용(作用)이오, 위(威)는 의(義)의 작용(作用)이니, 가정(家庭)의 애위(愛威)는 곧 인도(人道)의 인의(仁義)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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