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교리 (역학원리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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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의 敎理

 

佛敎가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天地間에서 最初로 無形에서 有形이 生한 것은 太陽속에 있는 地風水火의 陰質인데, 佛敎는 地水火風의 四大로써 形質組織의 要素를 삼으니 이는 佛敎가 形質의 始生함을 象하여 生의 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色이 그대로 空이오 空이 그대로 色이라 하여 萬物의 自性은 生도 없고 滅도 없다하니, 이는 萬物의 形質이 空에서 生하여 色은 空을 떠나지 아니하고 空은 色을 떠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서,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生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地水火風의 陰質이 太陽의 속에 있을 때에는 늘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으나 그것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로 되는 때에는 陰質이 陽光을 가리워서 光明을 發치 못하는 것이며, 사람은 地水火風의 陰質과의 因緣에 依하여 地上에서 生하고 자라는 것이니, 이 陰質은 我도 아니오 我의 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의 陰質이 자라는 때는 스스로 光明을 가리워서 無明이 되는 것이오 無明이 되면「我」「我의 것」이라는 主觀的 執着이 生하여 貪嗔癡라는 三毒作用이 일어나서 一生을 煩惱와 苦의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佛敎의 修行에 依하여 我라든가 我의 것이라든가 하는 主觀的 執着을 없이하면 비록 形質은 있으되 形質의 生이 生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여, 마치 太陽속에 있는 陰質이 陰質그대로 있으면서 光明을 發揚함과 같은 것이오 形質이 光明을 發하면 스스로 貪嗔癡의 모든 煩惱를 解脫하고 生老病死의 苦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草木으로써 보면 草木의 씨의 組織이 자라지 아니하고 組織된 그대로 있는 象이며 組織된 그대로 있는 者는 內部에 光明을 갈무리하고 그 作用이 寂然히 靜하므로 佛敎는 그 修行의 極致를 光明과 寂靜에 두는 것이니, 이가 佛敎의 根本敎理이다.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의 陰質과는 모두 地水火風으로 되어 그 本質이 同一하고 사람의 씨는 太陽의 光明에서 오고 있으되 그 陰質은 또한 地水火風으로 되어 地上의 陰質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佛敎에서는 사람의 生前에 잘 修行하여 天性이 씨의 組織과 같이 組織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면, 死後의 鬼神이 天上의 光明한 곳에서 生한다 하고 이 光明한 곳을 極樂世界라 한다.

極樂世界는 光明이 燦爛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무와 宮殿이 모두 七寶로 되어 있다 하니 七寶라 함은 燦爛한 七色光明으로서 이것이 바로 太陽光明의 七色의 象이다. 天上의 光明體는 太陽과 달이오 달은 地球에서 分離하여 달의 陰質과 太陽속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고 太陽의 光明과 달의 光明이 또한 그 本質이 同一한 것인데, 太陽은 陽性이므로 發散作用을 行하여 生함을 主하고 달은 陰性이므로 收斂作用을 行하여 여무는 것을 主하니 그러므로 사람의 死後鬼神은 發散作用을 行하는 太陽에는 가지 못하고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가는 것이며, 이 까닭에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달이 곧 極樂世界이오 이는 鬼神이 달에 依附한다는 理에 依한 것이다. 地球의 陰質과 달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므로 사람은 地上에도 生하고 天上의 달에도 生하여 死後에 極樂世界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佛敎는 生을 象하여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을 쌓기 爲하여 「我」「我의것」이라는 執着을 없애는 同時에 또한 사람의 主要한 本能을 抑制하고 있으니, 그 敎人들이 生産業을 營爲치 아니하고 乞食을 하는 것은 飮食本能을 抑制함이오 婚姻을 하지 아니하여 家庭을 두지 아니하는 것은 生殖本能을 抑制함이다. 사람의 本能에는 飮食本能 生殖本能 및 長壽本能의 세 가지가 있는데, 我 我의것에 執着치 아니하고 自身의 形質을 私有치 아니하여 精神的으로 長壽本能을 抑制하고 또 肉體的으로 飮食本能과 生殖本能을 抑制하니, 이는 徹底히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이다. 그러나 宇宙의 時運變化는 人力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므로 佛敎에도 時運變化에 順應하는 일이 있으니, 釋迦가 前生의 善慧菩薩로부터 人世에 出生할 때에 「모든 사람이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었는가, 人間界에서 부처될 때가 되었는가」하는 것을 觀察하고 人間에 태어난 것인즉 釋迦 以前의 사람들은 아직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지 못하여 비록 修行을 하더라도 人間에서 부처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가 時運變化의 證據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을 象한 것인데, 그 敎理에 宇宙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數多한 天神을 말하니 이는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까닭이다. 物의 形質이 生하는 者는 모두 個體로 되어 空間에 布列하는 狀態로 되고 始生한 童蒙과 같아서 能動的인 統一運行이 行치 못하니 統一運行은 唯一神의 作用인데, 形質의 始生을 象한 佛敎에는 統一運行이 없으므로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佛敎에도 唯一神이 없는 것은 아니다. 儒敎에서는 唯一神을 上帝라하고 基督敎에서는 唯一神을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世界人類는 모두 唯一神의 子孫, 唯一神의 百姓으로서 서로 兄弟가 되고 있으며 神의 最大事業은 그 子孫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오 따라서 사람의 最大事業과 最大道德이 또한 自身의 兄弟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니, 이 까닭에 儒敎에서는 仁을 行하여 百姓을 사랑하라 하고 基督敎에서는 博愛로써 네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며 佛敎에서는 慈悲로써 衆生을 濟度하라하니 衆生을 濟度하는 것이 곧 儒敎 基督敎와 같이 自身의 世界兄弟를 生養한다는 原理에서 나온 일이오 世界人類를 自身의 兄弟로 생각하는 것이 곧 宇宙唯一神을 모시고 있는 證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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