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생활 (삼화선생 서당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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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생활(原始生活)

 

아국(我國)의 원시시대(原始時代)에는 주(主)로 어패(魚貝)와 조수(鳥獸)를 잡아먹고 초근목실(草根木實)을 캐어 먹고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입고 석굴(石窟)과 움집에서 살았다. 농사(農事)라고는 오직 서(黍 기장)가 있을 뿐이오 서(黍 기장)는 어떤 토지(土地)에서든지 잘 생육(生育)되고 파종시기(播種時期)의 조만(早晩)에 영향(影響)됨이 적으므로 농업기술(農業技術)이 부족(不足)한 고대(古代)에 서농(黍農)만 있는 것은 필연(必然)한 일이다.

기구(器具)나 기명(器皿)은 주로 토석(土石)들로 만든 것이었으니 이 때를 석기시대(石器時代)라 한다. 지금(只今) 아국(我國)과 만주(滿洲)에서 발견(發見)되는 석부(石斧), 석촉(石鏃), 석도(石刀)의 여러 가지 석기(石器)는 모두 같은 계통(系統)인 것이며 이 시대(時代)의 토기(土器)는 물론(勿論) 날 그릇이었으니 그래도 쓸모 있게 여러 가지 모양(模樣)을 만들고 또 간단(簡單)한 그림 모양(模樣)도 새겨내었다. 그러므로 석기(石器)보다 토기(土器)에 있어서 그 시대(時代)의 모습(模習)과 그 민족(民族)의 성격(性格)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석기시대(石器時代)의 흔적(痕跡)은 지금(只今) 아국(我國)의 각처(各處)에 있는 굴(屈)속과 고성지(古城地)와 고분(古墳) 가운데서 많이 발견(發見)되거니와 그 중(中)에서도 해변(海邊) 여러 곳에 산재(散在)하는 패총(貝塚)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패총 중(貝塚中)에는 황해도(黃海道) 몽금포(夢金浦)와 경상남도(慶尙南道) 김해(金海)에 있는 것이 가장 유명(有名)하며 그밖에 경상남도(慶尙南道) 고성(固城)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일(迎日) 함경남도(咸鏡南道) 북청(北靑) 함경북도(咸鏡北道) 성진(城津), 웅기(雄基) 등지(等地)에도 큰 패총(貝塚)이 있으니 이는 옛날사람들이 조개껍질을 버린 것이 파묻혀 생긴 것이다.

「선돌」이라는 입석(立石)은 높은 산(山)을 본뜬 것이어서 그때 사람들의 신앙(信仰)의 대상(對象)이었으며 이는 세계(世界)에서도 태양(太陽)을 숭배(崇拜)하는 풍습(風習)이 있는데, 어떤 곳에나 있지만 아국(我國)에 더욱 많고 그 중(中)에서도 단군전설(檀君傳說)이 남아 있는 황해도(黃海道) 구월산(九月山)을 중심(中心)으로 한 지방(地方)과 마한(馬韓)의 옛 땅에 특(特)히 많다.

또「고인돌」이라고 한 지석(支石)은 혹(或)은 하늘에 제사(祭祀)지내던 제단(祭壇)이었다 하고 혹(或)은 옛사람들의 무덤이라 하나 이 역시(亦是) 태양(太陽)을 숭배(崇拜)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한 흔적(痕跡)이며 특(特)히 지석(支石)은 인국(鄰國)인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에서는 전연(全然) 발견(發見)되지 아니 하는데 아국(我國)을 비롯하여 만주(滿洲)와 시베리아와 유럽에 걸쳐서 이것이 있고 아국(我國)에서는 여러 곳에서 발견(發見)되었다.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과 황해도(黃海道) 은률(殷栗)에 있는 것이 가장 유명(有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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