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건 (삼화 한장경저 역경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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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天

 

乾坤有先后天也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乃先后天之意也 如坤之先迷後得主也

 

乾은 純陽卦로서 陽氣의 運行하는 天의 象이다. 乾이 三劃의 原卦인 때에는 天의 象이 되는 것이나 上天下天의 六劃卦로 되는 때에는 單純한 天의 象이 아니오, 天에 上에도 있고 下에도 있어, 天이 地를 包하고 圜行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乾은 純陽으로서 光明의 象이 되고 天의 光明은 곧 日月이므로 乾에 大明이 있는 것인데, 乾陽은 太陽의 象이 되므로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달도 太陽과 함께 大明이라 한 것이다. 乾에 大明의 象이 있으므로 乾字는 倝(해돋을간)와 乙로 되어, 倝은 太陽이 始出하여 光明하다는 뜻이오 乙은 物의 發展하는 形이니, 純陽卦인 乾은 陽氣와 光明이 天地間을 運行하는 象이므로 乾字를 取하여 卦名을 삼은 것이다. 乾에 大明인 日月이 있고 또 統天作用이 있으므로 日과 月로 된 易字도 乾卦에서 나오고 거기에 生生變化하는 象을 寓한 것이다.

 

乾元亨利貞

元亨利貞이라 함은 生하고 長하고 成하고 正하고 함을 象한 것이오, 또 春夏秋冬의 四時의 象도 되는 것이며, 乾은 統天卦이므로 生長成正의 全象을 말하고 他辭가 없는 것이다.

乾은 地를 包하고 圜行하는 統天卦로 되어 萬物의 生長成正하는 全象을 具하여 있고, 文王八卦圖가 長의 時運을 象하면서 또한 生長으로부터 成正으로 넘어가는 象을 말하여 乾卦와 文王八卦圖는 서로 表裏가 되어 있으므로 乾卦의 卦辭와 이 卦辭를 解釋한 彖辭는 文王八卦圖의 流行하는 順序와 相照하여, 乾卦와 文王八卦圖는 함께 易經의 基礎原理로 되어 있는 것이다.

乾卦 彖辭의 元亨利貞은 天으로부터 地에 下하는 順序로 되고, 爻辭에 또한 元亨利貞의 象이 있는데, 이것은 地로부터 天으로 上升하는 順序로 되니, 이는 彖辭는 太陽의 順行하는 道를 象하고 爻辭는 달의 逆行하는 道를 象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彖辭는 文王八卦圖를 順行하여 震 巽 離 坤 兌 乾 坎 艮의 序次를 行하고, 爻辭는 文王八卦圖를 逆行하여 初九坎 九二乾 九三坤離 九四巽 九五震 上九艮의 序次를 行하는 것이니, 이는 日月의 運行이 太陽은 順行하고 달은 逆行하는 理에 依한 것이오, 또한 彖辭는 太陽에서 씨가 發生하여 달에 下施하는 것을 象하여 順行이 되고, 爻辭는 달이 太陽에서 오는 씨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고 物이 下로부터 生長하여 上하는 것을 象하여 逆行이 되는 것이다.

 

說卦에 「數往者順 知來者逆 是故易逆數也」라 하니, 數往者順이라 함은 過去의 生의 時運에 太陽에서 씨가 地에 順下함을 말함이오, 知來者逆이라 함은 未來의 長의 時運에 달이 太陽에서 오는 씨를 承受하여 物을作成 逆上하여 자란다 함을 말함이다. 長의 時運을 象한 文王八卦圖의 易은 物이 자라서 逆上하는 理를 말한 것이므로 易은 逆數라 한 것이다

 

彖辭와 文王八卦圖

彖辭는 太陽運行의 象이니, 太陽이 帝出乎震에서 始하여 順行하여 四時의 象으로써 萬物을 生成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大哉乾元 一節 帝出乎震

雲行雨施 一節 齊乎巽

大明終始 一節 相見乎離 致役乎坤

時乘六龍 一節 說言乎兌

乾道變化 一節 戰乎乾

保合太和 一節 勞乎坎

首出庶物 一節 成言乎艮

 

爻辭와 文王八卦圖

爻辭는 달의 運行의 象이니, 달이 勞乎坎에서 晦하여 逆行하여 朔望의 象으로써 光明의 盈虛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上九亢龍 成言乎艮

九五飛龍 帝出乎震

九四或躍 齊乎巽

九三終日 致役乎坤 相見乎離

九二見龍 戰乎乾

初九潛龍 勞乎坎

 

初九 潛龍勿用

易學은 長을 象함으로 首卦에 言龍蛇也

龍蛇는 長을 象한 生物인데 龍은 陽物이오 蛇는 陰物이므로 上經首卦의 乾에 龍의 象이 있고 下經首卦의 咸에 蛇의 象이 있고 咸은 陰精이 陽氣를 受하는 象이 되므로 龍蛇를 兼言한 것이다.

龍이라 함은 水中에 居하여 能幽 能明 能小 能大하는 變化를 行하여 春에 登天하고 秋에 潛淵하고 하는 生物을 말함이니, 이는 陽氣의 圜轉飛動함을 象함이며, 萬物의 씨의 元으로 되는 震子는 陽氣가 陰中에 包在하여 自體의 光明을 가지고 能動作用을 行하고 水液中에 潛하여 있는 것이므로 震을 龍이라 하고, 乾은 震으로써 世世繼承하는 씨를 삼고 있으므로 乾劃이 모두 龍의 象이 되는 것이다. 三男卦中에 오직 震에만 繼世作用을 行하는 長子의 象이 있고 坎艮에는 子의 象이 없으므로 震은 震子의 象이 되는 것이다.

 

初九潛龍은 時間的으로는 物의 生하는 始初이오 空間的으로는 物이 地下의 水中에 潛한 것이다. 乾卦 各劃은 震子인 龍을 象하고 初九는 地下의 位에 있으므로 潛龍이라 하니 이는 初九가 彖에 말한 保合太和로서 貞의 位에 當하고, 文王八卦圖의 勞乎坎에 當하여, 陽氣가 地下에 隱在하므로 坎水의 象이 되어 潛龍이라 한 것이다.

勿用이라 함은, 物은 成한 然後에 用하는 것인데 初九는 陽이 下에 潛하고 成치 못함으로 用치 못하는 것이니, 달로써 보면 晦하고 있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의 陽子의 幼少한 象이다.

乾卦는 天을 象하고 自然數의 天數가 一三五七九인데, 爻는 物의 生長을 象하여 下로부터 逆行하여 上으로 올라가고 自然數의 生長도 또한 逆行하여 下로부터 上으로 올라가는 것이므로 爻와 自然數가 서로 合當하여, 初九는 一에 當하고 九二는 三에 當하고 九三은 五에 當하고 九四는 七에 當하고 九五는 九에 當하는 것이오 上九는 窮하여 位가 없는 것이며, 爻와 自然數와의 合當하는 關係는 오직 純陽純陰의 乾坤卦에만 있는 象이다. 初九는 自然數의 一에 當하므로 陽이 微小하여 用치 못하는 것이다.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九二는 地上의 位로서 龍이 地上에 見하는 象이므로 見龍이라 한 것이오, 田은 穀의 生하는 土이니, 九二가 地上에서 萬物의 生하는 中心이 되고 있음을 象함이다. 九二는 天數의 三에 當하고 三은 萬物을 生하는 數이므로 田이 天德을 承受하여 物의 生하는 象이 있는 것이오, 文王八卦圖의 戰乎乾에 當하여 陽이 陰體中에 있어 陰陽이 相薄하여 內部에서 鼓動하는 象이니, 그러므로 九二는 龍이 地上에 現하되 地를 離치 못하고, 달로써 보면 달의 體의 始現하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 陽子의 始形하는 象이다.

大人이라 함은 天地間에 有形의 最大 한 것은 光明이오, 光明보다 더 遠及하는 것이 없으므로 光明의 至大한 사람을 大人이라 하는 것이오, 이 까닭에 太陽의 光明 속에 있는 乾元震子를 象하여 大人이라 하며, 利見大人이라 함은 九二의 生의 中心에서 乾元震子를 見하면 陰陽의 義가 和한다 함이다.

九二는 地의 中心으로서 爻位로는 生의 中心이 되고 天道의 四德으로는 乾道變化하는 位인 利가 되니, 生은 物의 始生함이오 利는 陽이 陰中에 入하여 成함이라, 生과 成은 서로 엇갈리는 듯 하나 이는 同一事物의 兩面이다. 九二가 地의 位로서 上으로 天位의 乾元震子를 承受하여 陰陽의 義가 和하는 것이 곧 成이오, 九二가 承受한 震子를 田에서 生育하는 것이 곧 生이니, 그러므로 陰陽이 嘉會하여 萬物이 모두 相見한다는 뜻을 取하여 見龍이라 한 것이다.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厲無咎

乾의 六爻는 六龍의 象이 되는 것인데, 九三, 九四에 龍을 말하지 아니한 것은 文王八卦圖에 九三은 離坤에 當하고 九四는 巽에 當하며 離坤巽은 모두 陰卦로서 震龍의 象이 되지 못하므로 龍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九三은 天地間의 人位이오 또한 地上의 地平線上에 있어 文王八卦圖의 離坤에 當하여, 太陽이 終하고 달이 始하는 大明終始의 位가 되므로 終日이라 한 것이오 君子는 달의 象이다.

乾乾이라 함은 上乾下乾 또는 先乾后乾이라는 뜻이니, 太陽이 終하고 달이 始하는 것이 곧 乾乾이다. 夕은 太陽이 終하여 昏暗한 象이오 惕은 心과 易으로 되는데 光明이 陰에 掩蔽되어 心이 憂懼하되 스스로 그 心을 光明케 하는 것이 곧 惕 이오 厲는 陰中을 涉하여 危함이오 咎는 陰陽이 서로 異各함이니, 夕惕若厲無咎는, 九三은 太陽의 終하는 位에 있어 光明이 掩蔽되므로 昏暗中에 處하여 憂懼하는 象이 되고 있으나 그 心에 光明한 듯 한 陽氣가 있으니, 비록 陰中을 涉하여 危하되 달이 太陽의 光을 受하여 그 光明을 生하기 始하므로 太陽과 달의 陰陽이 異各치 아니한다 함이니, 이는 日月이 往來하여 光明의 不息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九三은 달로써 보면 光明의 始生하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의 陽子가 光明을 生하여 生殖의 機能을 發하는 象이다. 女體의 陰子가 달의 陰精의 盈虛를 따라서 消長하고 있음과 같이 男體의 陽子도 달의 光明을 받아서 生成하는 것이니 사람의 씨가 달에서 生하므로 男女의 陽子陰子가 모두 달의 作用을 받아서 生成하고 消長하고 하는 것이다.

 

九四 或躍在淵無咎

躍은 龍의 足飛하는 象이오 淵은 地穴의 囲(?)水의 象이니 九四는 文王八卦圖의 巽에 當하여 巽股의 象이 되고 巽은 또한 달의 象이 되므로 淵은 달의 陰精의 穴을 象함이니 訟卦의 入于淵이 또한 巽股의 象이다. 或이라 함은 陰體의 陰精에는 消長이 있어 躍하는 時도 있고 躍치 못하는 時도 있으므로 或이라 한 것이니 或躍이라 함은 龍이 陰淵의 時를 보아서 躍한다 함을 말함이다.

九四는 달로써 보면 上乾에 進하여 光明의 漸滿하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의 陽子가 長成하여 生殖作用을 行할 수 있는 象이다.

九四에는 巽月의 象이 있는데 巽月은 少陰八數이오 또 自然數의 天數 七에 當하는데 七은 少陽數이니, 少陰八의 달이 少陰七의 陽을 受하여 陰陽相遇하는 象이 되므로 龍이 或躍하여 淵에 在한다고 한 것이다. 九三과 九四에 無咎를 말한 것은 九三과 九四가 文王八卦圖의 離坤과 巽의 陰卦에 當하여 달이 太陽의 光을 承受하는 象이 되므로 陰陽이 異各치 아니하여 無咎의 象이 된 것이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九五는 天位이오 陽의 聚結한 곳이니, 달로써 보면 望月이 되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의 陽子가 成實하여 生殖作用을 行하는 象이다. 九五는 文王八卦圖의 帝出乎震에 當하고 自然數의 九에 當하여 陽의 極大한 象이니, 이는 달이 太陽의 光을 受하여 陽을 聚結하여 光明을 生하고 光明의 속에 震子가 있는 象이니, 이가 利見大人의 象이다. 飛라 함은 陽精이 陰體로 넘어감에는 水火가 通明하여 絶處逢生하는 것이므로 飛의 象이 되는 것이오, 乾九五의 飛龍은 乾元用九의 象이 되어, 萬物이 이것을 資하여 始하는 것이니, 習坎의 習龍, 明夷의 于飛, 小過의 飛鳥는 모두 乾의 飛龍을 因하여 말한 것이다.

乾九五는 天의 大明의 位이므로 太陽과 달의 光明의 兩象이 있어, 彖辭에는 九五의 位에 太陽의 象을 말하고, 爻辭에는 달이 太陽의 光을 受하여 光明을 生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上九 亢龍有悔

亢은 人頸으로서 陽이 頸上에만 있는 象이니 亢龍이라 함은 陽氣가 上에 極하여 將消함을 象한 것이다. 上九는 陽極의 位에 있고 또 文王八卦圖의 成言乎艮에 當하여 成終成始의 象이 되므로 陽體가 次世代로 된 陽子를 陰體에 施하고 스스로 喪하는 것이니 이가 亢龍의 象이다.

悔라 함은 陽이 過度히 動하여 陰中에 陷하여 心의 疾함이오 有悔라 함은 陽의 生을 害함이니 亢龍有悔라 함은 上九가 乾陽의 上에 極하여 將終하는 象인 亢이 되므로 陰中에 陷하여 生育치 못하는 것이다. 上九는 달로써 보면 望을 지나서 虧缺하는 象이오 人身으로써 보면 男體가 陽子를 施하고 스스로 喪하는 象이다.

 

用九 見群龍無首吉

九와 六은 乾과 坤의 象인데, 九와 六을 用한다 함은 陽體와 陰體의 生殖器를 用한다 함을 말함이다. 自然數 中에서 九는 陽數의 先端이므로 陽體의 陽器의 象이 되고 六은 陰數의 中央이므로 陰體의 陰器의 象이 되는 것이며 또 五行의 理로써 보면, 九는 乾象의 陽金이오 乾金은 燥하므로 燥는 陽體의 陽器가 되는 것이오, 六은 坤象의 陰水이오 陰水는 濕하므로 濕은 陰體의 陰器가 되는 것이니, 乾文言에 「水流濕火就燥」는 乾坤九六의 象을 말한 것이다.

用九의 位는 九五爻이니, 九五에 位乎天德의 象이 있고 用九에 天德不可爲首의 象이 있어 九五天德과 用九天德이 同一한 天德이므로 九五爻가 用九의 位로 되는 것이다.

 

群은 陰의 象이니, 易卦中에 말한 否六二의 不亂群, 漸九三의 離群醜, 賁 上九의 群疑亡의 群은 모두 陰의 象이며, 群龍이라 함은 陰龍인데, 乾卦에는 九四에 群의 象이 있고 九四는 文王八卦圖의 巽에 當하여 股의 象이 되니, 群龍은 九四의 巽股를 말함이오, 巽股는 陽이 犯하면 반드시 喪하는 것이다.

首는 彖의 首出庶物의 首로서 自然數의 陽數의 首인 九를 말함이오, 吉은 生命의 繼生함이다.

天地가 生生作用을 行함에는 반드시 陽體가 九의 象인 首를 用하여 陽精을 陰體에 施하는 것이니, 이가 乾彖의 首出庶物의 뜻이며, 用九의 位는 九五이오, 九五의 成의 中心에 陽精이 있으므로 九五의 陽精은 그 應爻인 九二의 田에 施하여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만일 群龍인 巽股에 用하면 陽이 陰에 陷하여 喪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九를 用함에는 群龍을 見하고서는 首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易卦中에 巽股를 應하고 接하고 한 陽爻에는 반드시 戒辭가 있는 것이니, 坤初六의 弑父弑君은 陽이 巽股를 犯하여 殃함이오, 姤 九四의 包无魚, 恒九四의 田无禽, 鼎九四의 鼎折足, 大過九四의 有他吝은 모두 初六의 巽股를 應한 凶禍이오, 小畜初九의 復自道, 家人初九의 閑有家, 中孚初九의 有他不燕은 모두 六四의 巽股를 應한 警戒이오, 小畜九三의 夫妻反目, 家人九三의 婦子暿暿, 漸九三의 夫征不復은 六四의 巽股를 接한 喪失이니, 用九에 見群龍無首吉은 陽九의 爻와 巽股와의 關係를 表示한 것이다.

 

 

 

 

 

 

 

 

 

 

 

 

 

 

 

 

 

   

彖曰 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元이라 함은 物을 始生하는 原이오 元에는 乾元과 坤元이 있다.

乾元資始와 坤元資生을 卦象으로써 보건대, 宇宙에는 生命의 鼓動하는 一極이 있고 이것을 太極이라 하니, 生生하는 것이 易이오 易에 太極이 있으므로 生生하는 生命의 一鼓動體가 곧 太極이며, 太極의 運動은 陰陽의 兩儀로 分하여 一陰一陽하면서 能動과 受動, 闔과 闢等 對待作用을 行하니, 그 能動하고 闢하고 하는 作用을 象하여 乾이라 하고, 受動하고 闔하고 하는 作用을 象하여 坤이라 하며, 乾坤은 生命의 鼓動하는 太極에서 生하는 까닭에 乾坤을 生命元이라 하는 것이다. 宇宙는 그 自體가 永遠無窮하기 爲하여 生命이 반드시 生生하여야 하고 生命이 生生함에는 반드시 씨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生命의 世世繼承하는 씨는 반드시 運行自在하는 氣로서 能動的으로 鼓動하는 繼承力을 有하고 自體內에 光明이 있고 하는 것인데, 三男卦中에서 오직 震雷가 이러한 作用을 具有하므로 震에 繼世의 象이 있어 易學에는 三陽卦中에서 오직 震을 子라 稱하고 坎艮은 男이라고만 하고 子를 稱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震子는 씨의 元이 되어 乾元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男體의 陽子(精子)의 象이 되는 것이니, 이가 萬物의 씨는 반드시 陽體에만 있는 理이다. 乾元大明之火性也 坤元月之水性也 故萬物始於火生於水也

 

萬物의 形質을 成하는 物質은 반드시 陰精의 膏澤으로서 內部에 陽氣를 會하고 口가 있어 外部로부터 營養을 取하고 內部로부터 氣를 發宣하고 하는 것인데, 三女卦中에 오직 兌澤이 이러한 作用을 具有하므로 兌에 形質을 成하는 象이 있어 形質의 元이 되어 坤元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女體의 陰子(卵子)의 象이 되는 것이다.

乾坤은 日月의 象이므로 乾元震子와 坤元兌澤에 또한 日月運行의 象이 있는 것이다. 太陽의 組織은 離火의 象이오 달의 組織은 坎水의 象이며 火는 炎上하고 水는 就下하는지라 太陽의 氣와 달의 精이 相交하면, 炎上하는 離火는 坎水의 就下作用을 受하여 炎上하는 上爻 陽이 陰으로 變하면서 震雷로 되어 下向하니, 이는 太陽의 光明이 地와 달에 行하여 震子의 電氣로 化하는 理이오, 就下하는 坎水는 離火의 炎上作用을 受하여 就下하는 下爻 陰이 陽으로 變하면서 兌澤으로 되어 上行하니, 이는 兌澤이 天空에서 行하여 달의 陰精으로 되는 理이다. 震子와 兌澤의 理는 또한 日月의 出生하는 方位에도 있으니, 文王八卦圖에 震은 東方이오 兌는 西方이라, 太陽은 東方 震에서 生하므로 震子는 太陽의 속에서 乾元作用을 行하는 것이오 달은 西方 兌에서 生하므로 兌澤은 달의 속에서 坤元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大哉라 함은 陽은 發動을 主하고 陰은 收斂을 主하므로 陽을 象하여 大라하고 陰을 象하여 小라 하는데, 乾은 純陽으로서 그 氣의 運行은 無限大하므로 乾에 大의 象이 있고, 乾象으로 된 大有, 大畜, 大壯, 大過, 泰 夬의 諸卦名에 모두 大의 象을 말한 것이며, 乾元震子는 萬物의 씨의 元이 되어 無限히 擴大하는 것이므로 大哉라 한 것이다. 天地라 함은 萬物의 가득 차 있는 位이오 天地間 萬物은 모두 씨에서 生하고 있으므로 씨의 元인 震子는 天을 統하고 있는 것이다.

大哉乾元 一節은 卦辭의 元의 解釋이오 文王八卦圖의 帝出乎震의 象이니, 乾元의 統天은 帝의 作用이오 乾元의 萬物資始는 萬物出乎震이다. 爻로서는 九五의 飛龍在天이니, 그러므로 九五는 乾元의 象이오 在天이 곧 統天이다.

 

雲行雨施 品物流形

雲行雨施品物流形은 卦辭의 亨의 解釋이니, 亨이라 함은 陰陽의 嘉會함이며, 雲行雨施라 함은 天氣가 下降하여 地를 接하면 巽象이 되고, 巽이 天空中에 있는 때에 雲雨의 象이 되어 달의 體를 이루는 것이오, 그러므로 달에 雲雨를 行施하는 作用이 있어, 地上의 風雨는 太陽의 陽氣와 달의 陰精의 作用에 依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品物이라 함은 品은 三口로서 同類라는 뜻과 三圓形이라는 뜻이 있다. 乾彖에 萬物, 品物, 庶物의 세 가지가 있는데, 萬物은 天地間에 存在하는 모든 物을 總言한 것이니, 乾元은 天地間 萬有의 物을 資始하는 까닭에 萬物이라 한 것이오, 庶物은 庶字가 屋下의 光明으로 되어 人衆의 蓄庶함을 象한 것이니, 萬國에는 人衆이 蓄生하고 있으므로 庶物이라 한 것이다. 品物은 雲이 行하고 雨가 施하여 空中에서 流形한 것이므로 달의 象이 되니, 이는 小畜卦의 密雲이 旣雨하여 달의 體를 成한 것과 同一한 理이며,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帝乎巽에 當하고 乾卦中의 帝乎巽은 바로 小畜卦의 象이므로 品物은 달을 象한 것이니, 地에서 雲雨가 行施하여 달이 되고 달이 太陽의 光明을 受하여 太陽, 地로 더불어 三圓物의 象이 되니 이가 곧 品物流形이다. 易經에 乾 坤 姤의 三卦에 品物이 있는데, 乾은 大明의 終始하는 卦이오 坤은 달의 運行하는 卦이오 姤는 后天달의 生하는 卦이므로 이 三卦에 特히 品物을 말한 것이다.

 

易經序卦에는 風天小畜에서 달의 體가 비로소 生하고 天風姤에서 后天달이 生하는데, 乾坤에 달이 生하고 또 後得主하는 后天달을 말한 것은 乾坤은 易卦 全象을 總言한 까닭이다.

이 一節은 爻로서는 九四의 淵이니 淵이 또한 달의 陰精이다.

 

大明終始 六位時成

大明이라 함은 日月의 光明을 말함이니, 乾의 속에 太陽의 象이 있고 坤의 속에 달의 象이 있는데, 太陽은 스스로 光明을 發하고 달은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니, 日月의 光明은 모두 太陽의 光明으로서 이가 곧 大明이며, 晋卦의 大明도 또한 太陽의 光明과 달의 光明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天地가 上下에 位하고 日月이 그 사이를 運行하면 太陽은 西쪽의 地平線上에서 終하고 太陽의 終하는 곳에서 달이 生하니 이것을 大明이 終하고 始한다고 한 것이다.

大明終始 於晋明夷之三十六宮也 三十六乃六龍六位也 晋明夷之次爲家人睽 家人睽乃后天收斂之始 而예수神道之行 於是乎人性成而人道行 人道行故六位時成也

 

六位라 함은 卦의 六劃으로서 天地人 三才의 位를 象한 것이니, 初二는 地의 位이오 三四는 人의 位이오 五上은 天의 位인데 달이 또한 天地의 사이에 있어 人의 位와 同一하므로 달이 또한 天地로 더불어 六位가 된다 하여 六位時成이라 한 것이다. 時라 함은 달에는 盈虛消長의 時가 있으므로 달이 盈하고 長한 때에는 天地로 더불어 六位를 成하고 虛하고 消하고 한 때에는 六位를 成치 못하여, 成하는 時와 成치 못하는 時가 있으므로 時成이라 한 것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相見乎離와 致役乎坤이니, 太陽이 離에서 明하고 坤에서 昃하며, 달은 太陽의 昃하는 곳에서 生하므로 離坤에 終始의 象이 있는 것이오, 爻로는 九三의 終日과 夕惕이니 終日은 太陽의 終함이오 夕惕은 달의 始함이다.

 

時乘六龍 以御天

龍에는 空間六虛의 位를 따라서 潛龍 見龍 飛龍 亢龍 等의 區別이 있고 乾은 純陽卦로서 空間的으로 볼 때에는 一陽劃이 一震子의 象이 되고 一震子가 一龍의 象이 되어, 六劃이 곧 六龍의 象이 되니 六龍이라 함은 空間六虛를 上下運動하는 乾陽을 象한 것이다.

 

時乘六龍者 坤元之承乾元也 御天者坤元之乃順承天也 此一節至哉坤元乃順承天也

 

時乘이라 함은 乘하는 時와 乘치 아니하는 時가 있다 함이니, 이는 前節의 時成과 同一한 理로서 달의 盈虛消長하는 時가 있음을 말함이오 御天이라 함은 馬를 驅使하여 天을 달린다는 뜻이다. 달은 乾陽을 乘하여 運行하고 時로 光明을 發하니, 이는 時로 六龍을 乘하는 象이오, 달은 牝馬의 象으로서 乾陽을 乘하고 天空中을 行하므로 馬가 天을 달리는 象이 된 것이다. 乾의 六龍이 各各 六位를 行한즉 모두 三十六位가 되니, 三十六位는 陽氣의 運行하는 數이며 乾卦에 三十六位의 象이 있으므로 陽氣는 三十六數에서 變하는 理가 있으니, 乾의 大明이 序卦 第三十六의 明夷卦에서 日入地中이 되고 蠱卦의 先甲后甲이 序卦 第三十六의 巽卦에서 先庚后庚이 되고 하는 것이 그 一例이다. 三十六卦의 爻數는 二百十六으로서 乾策의 數가 되니 乾彖에 六龍六位를 말한 것은 乾卦의 統天作用에 三十六位와 二百十六策의 理가 있음을 表한 것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說言乎兌이니, 兌는 달의 陰精인 兌澤이오, 兌澤이 正西에 있어, 正東의 出乎震하는 太陽의 震子와 相對하여 光明을 受하는 것이 곧 乘龍의 象이오, 달이 西로부터 東으로 向하여 天空을 逆行하는 것이 곧 御天의 象이다. 달의 乘龍御天은 地上의 物이 여물어서 天으로 圜行하는 理가 되는 것이니,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아서 天으로 圜行하는 것은 달의 乘龍御天의 理에 依한 것이다.

 

乾道變化 各正性命

乾道變化라 함은 天道가 元亨으로부터 利貞으로 變하고 生長으로부터 收成으로 變하는 것이며, 變이라 함은 靜에서 動으로 向함이오, 化라 함은 動에서 靜으로 向함이니, 그러므로 現狀의 體를 改하는 것은 變이 되고 새로운 體를 成하는 것은 化가 되는 것이다.

 

性命이라 함은 天性과 天命으로서 萬物에도 있고 사람에도 있는 것인데 사람으로써 보면 사람은 出生하는 때에 天으로부터 天性과 天命을 받으니, 天性은 사람이 生生하기 爲하여 그 가진 바의 精神作用을 말함이오 天命은 사람의 生命과 그 맡은 바의 使命을 말함이다. 사람의 精神作用은 自體의 生生을 爲하여 動作치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스스로 意志의 自由가 있고 使命은 그 出生하는 때에 이미 天으로부터 賦與된 것이므로 거기에는 스스로 運命이 있는 것이니, 自由意志와 運命은 서로 對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兩者는 모두 天으로부터 받아서 그 本原이 同一한 것이니 說卦에 「窮理盡性 以至御命」이라 하고 또 「昔者 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라 한바 理는 對待를 調和함이라 天命은 그 사람의 一生 進路中에 最善한 길이오 天性은 이 最善한 길을 行하기 爲하여 禀受한 바의 精神作用이니 사람은 天命과 天性의 對待를 調和함을 窮究하고 天性의 至善을 다 하여 天性이 成하면 그것이 스스로 天命과 一致하는 것이니 이가 性命의 正함이다. 草木같은 것은 生長에서 收成으로 變化하여 次代의 果實을 成하는 것이 곧 性命의 正함이니, 이는 草木은 果實을 成하여 世世繼承하는 것이 그의 使命이라 未成한 果實은 陽이 陰中에 入하지 못하여 子仁이 成치 못하고 있으므로 次代의 芽를 發生치 못하여 그 使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은 乾道가 變化하여 元亨이 利貞으로 變化하는 때에 비로소 그 天性과 天命이 正하여 本來의 使命을 다 하는 것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戰乎乾이니 西北의 乾에서 陰陽이 相薄하고 陽이 內部에 入하여 物이 收成하여 本性이 成하고 또 序卦의 無妄 大畜에 當하여 陽이 外로부터 來하여 內에서 主가 되어 天命이 되니, 이가 各正性命의 뜻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乾에 當하므로 特히 乾字를 쓰니 이는 坤彖의 坤厚載物 一節이 文王八卦圖의 坤에 當하므로 特히 坤字를 쓴 것과 同一한 뜻이다. 爻로는 九二의 見龍이니, 物이 成하여 形體가 現하다 함이다.

 

保合太和 乃利貞

保合은 陽氣가 內에 入하고 陰이 外를 包함이오 太和는 物이 여물어서 陰陽의 義로 和하여 一한다 함이니, 保合太和라 함은 物이 生長으로부터 收成으로 되어 陽氣가 內部에 收藏되고 陰陽이 調和하여 統一됨이니 이는 利貞의 象이다.

文言에 「利貞은 性情이라」 한바 乾道가 變化하여 性이 正하고 性이 正하면 情이 또한 和하여 太和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사람으로써 보면 利貞이라 함은 性情의 正하고 和함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勞乎坎에 當하니 萬物이 坎水에 歸하여 勞하는 것이 太和의 象이오 爻로는 初九의 潛龍이니 潛이 곧 坎水에 歸함이다.

利貞은 乾道變化와 保合太和를 合하여 말한 것으로서, 이것을 區分하여 말하면 乾道變化는 利이오 保合太和는 貞이다. 易經中의 太字는 乾卦의 保合太和와 繫辭의 易有太極의 두 곳뿐인데, 乾卦가 太極의 象이 되고 있으므로 乾彖에 太字를 말한 것이다. 太極이라 함은 天地의 統天作用의 어느 一極致點을 말함이니 天地自然數는 一로부터 十까지인데 十數를 布하면 十無極이 되고 十數를 統하면 一太極이 되는지라, 乾卦에는 統天의 象이 있고 貞에는 全體를 統和하는 太極作用이 있으므로 거기에 太和의 太字를 말하여 乾卦에 太極의 作用이 있음을 表한 것이다.

 

元亨利貞의 四德에는 三顯一藏의 理가 있으니, 이 理는 邵康節說에서 取한 것이다. 八卦中에서 乾 坤 坎 離 四卦는 反易하여도 卦가 變치 아니하므로 本卦數대로 四卦가 되고 震艮과 巽兌는 反易하면 서로 變하므로 震艮이 一卦로 되고 巽兌가 一卦로 되어, 八卦는 모두 六卦로 되니 이는 八數中에서 六數가 顯하고 二數가 藏하여 六顯二藏 卽 三顯一藏이 되는 것이다. 이 理에 依하여 萬物의 生生에는 반드시 三顯一藏의 象이 있어, 그 一藏이 生生變通의 幹이 되는 것이니, 天의 四時에는 萬物이 春夏秋가 顯하고 冬에 藏하여, 그 四分一되는 一藏이 庫藏의 任務를 가지고 生生의 源을 蓄하여 다음의 顯用에 對備하며, 사람의 一日中 動作과 睡眠時間을 大別하면 大槪 四分三을 動作하고 四分一을 寢息하여 精氣를 길러서 다음날의 活動에 備用하니, 이러한 것을 三顯一藏이라 한다. 乾彖의 元亨利貞도 그러하여 資始, 流形, 變化하는 元亨利는 三顯이 되고 太和하는 貞은 一藏이 되는 것이다.

 

首出庶物 萬物咸寧

首는 乾의 象인데, 乾이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所用하는 首는 乾自體가 아니라, 自然數로는 陽數生長의 極인 九를 用하고, 卦로는 陽卦生長의 極인 艮을 用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艮에 碩, 顒等의 首의 象이 있는 것이오 이는 陽體가 生殖作用을 行함에 陽體의 全體를 用하는 것이 아니라 陽體의 陽器를 用함과 同一한 理이다. 그 生生의 順序를 文王八卦圖로써 보건대 乾體의 陽器인 艮首가 陽精水인 坎水中에 陽子인 震子를 含하고 坤體의 巽股에 入하여 震子를 施하면, 艮首는 스스로 喪하여 終하고, 震子는 子宮인 離火宮에 入하여 陰體의 陰子인 兌精과 合하면 이에 胎兒의 形이 生하면서 震子가 反易하여 艮童이 되어 形體가 成하니, 이는 先艮이 終하고 後艮이 始하는 成終成始의 象이오 이가 首出庶物의 뜻이다.

庶物은 人衆의 蓄生함이오 國은 圍와 域으로 되어 土地의 境界를 分하고 區域을 定함을 말함이니 國과 邦의 相異한 바는 國은 土地의 區域을 말함이오 邦은 邑과 丰(풀성할봉)으로 되어 邑은 人居이오 丰은 草의 生盛한 模樣으로서 사람의 集居하는 人間社會를 말함이다. 咸은 골고루 라는 뜻과 男女相感한다는 뜻이 있고 寧은 男女가 合하고 飮食한다 함이니, 家庭의 夫婦生活의 安定하다는 뜻인데 寧과 安의 相異한 바는 寧은 男體를 主하여 말하고 安은 女體를 主하여 말하는 것이다.

萬國咸寧이라 함은 人衆이 蓄生하여 土地의 區域을 나누어 國을 세우고 夫가 婦와 和合하여 安定한 生活을 한다 함이니 이는 艮에서 成終成始하여 萬物을 生育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 一節은 文王八卦圖의 成言乎艮이오 爻로는 上九의 亢龍이니, 艮의 成終은 上九亢龍의 象이오 艮의 成始는 彖의 首出庶物의 象이다.

 

乾彖과 文王八卦圖

乾彖은 地道가 天道의 元亨利貞을 承受하여 運行함을 象한 것이오 文王八卦圖가 또한 長의 時運의 地道로서 物의 長育함을 象한 것이므로 彖辭의 順序는 바로 文王八卦圖의 順序로 되어 乾彖과 文王八卦圖가 서로 表裏가 되는 것이다. 乾彖과 文王八卦圖의 順序는 또한 上經序卦의 乾道七宮의 順序로 되어 東方震은 隨蠱이오 東南巽은 臨觀이오 南方離는 噬嗑 賁이오 西南坤은 剝復이오 西方兌에는 序卦가 없고 西北乾은 无妄 大畜이오 北方坎은 頤 大過이오 東北艮은 習坎離인데, 噬嗑 賁의 日中卦가 太陽의 象으로서 南方離에 있고 剝復은 달의 盈虛消息하는 象으로서 西南坤에 있으니, 이는 달이 太陽의 앞에 있어 先迷한 先天달이 되는 象이오 이 까닭에 復卦에 迷復의 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乾卦에서 生한 文王八卦圖는 長의 時運의 先迷한 달의 象이 되고, 長의 時運의 洛書가 太陽의 象인 九金이 南方에 있고 달의 象인 二火가 西南에 있어 또한 先迷의 달의 象이 되는 것이다.

 

象曰 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

天行이라 함은 天의 上下運行하는 象이다. 八卦中에서 天地日月인 乾坤坎離는 上經에 있는데, 그 大象에는 天行地勢水洊至明兩作이라 하여, 먼저 天地水火의 本體를 말하고 다음에 行, 勢, 洊至, 兩作의 作用을 말하며, 雷風山澤인 震艮巽兌는 下經에 있는데, 그 大象에는 洊雷, 兼山, 隨風, 麗澤이라 하여 먼저 그 作用인 洊, 兼, 隨, 麗를 말하고, 다음에 雷山風澤의 本體를 말하니 이는 上經의 天地日月은 易卦의 本形四象이므로 먼저 그 本體를 말하고 다음에 그 變化하는 用을 말하며, 下經의 雷山風澤은 天地日月의 變形이므로 먼저 그 變化하는 用을 말하고 다음에 그 本體를 말한 것이다.

 

健은 乾의 德이니, 他卦의 大象에는 모두 卦名을 말하고, 오직 乾卦 大象에만 乾의 德인 健을 말하니, 이는 乾에는 天行의 象이 있고 天行은 天下의 至健한 것인데 乾은 統天卦로서 宇宙萬象을 具有하고 天行의 象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乾字를 쓰지 아니하고 健字를 쓴 것이다. 그러나 이 外에 또 다른 큰 뜻이 있으니, 乾은 萬物創造의 卦로서 萬物의 씨를 創造하는 象이 있으니 天行健이라 함은 萬物의 씨의 組織을 말한 것이다. 天은 宇宙를 主宰하는 乾父의 象이오 行은 天命을 施行하는 巽風의 象이오 健은 乾을 世世繼承하는 震子의 象이니 震子는 그 究가 健이 되는 것이며, 天이 至大한 氣로써 運行하면 스스로 空間的으로 擴大하는 作用과 時間的으로 繼承하는 作用이 生하니, 空間的擴大作用은 巽風의 行이오 時間的 繼承作用은 震雷의 健이라 乾生命元이 雷風의 氣를 合하여 三用一體의 氣化生命體로 된 것이 곧 萬物의 씨의 象이니, 그러므로 天行健은 萬物의 처음으로 創造된 氣化의 씨의 象이다.

 

彊은 弓과 畺(지경강)으로 되어 弓이 有力하여 近으로부터 遠境을 窮한다는 뜻이니, 自彊이라 함은 君子의 進德修業하는 努力을 말함이오, 不息은 明夷卦 六五의 明不可息과 升卦의 不息之貞의 뜻이니, 明夷는 乾의 大明이 地中에 入하는 象으로서 日月이 往來하여 光明의 不息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升卦는 舊月이 終하고 新月이 始하여 日月의 運行이 不息함을 말한 것이다.

乾大象은 九三爻의 君子終日乾乾의 뜻이니, 이는 사람이 天地의 사이에 成位하고 九三은 人位에 當하고 있는 까닭이다.

君子라 함은 乾君의 子라는 뜻으로서, 乾은 宇宙를 主宰하고 君子는 乾을 繼하여 用事하는 者이니, 그러므로 天에 있어서는 달의 光明을 君子라하고 人間에 있어서는 마음이 光明하고 政事를 用하는 位에 있어 天意를 奉行하는 者를 君子라 하는 것이다. 易卦中에 君子를 말함에는 달과 사람의 兩象이 있으니, 卦辭 彖辭 爻辭는 天道와 地道를 말한 것이므로 거기에 말한 君子는 달을 象함이오, 그 外의 人道를 말한 곳에는 모두 사람을 말함이며, 이는 사람의 씨가 달에서 下來하여 달과 사람의 生理가 相似한 까닭이다.

易經에는 君子와 賢人의 區別이 있으나, 君子와 賢人은 同一人의 兩面이다. 賢人이라 함은 그 人格이 光明하여 昏暗을 明照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므로 人才를 養成하는 것을 養賢尙賢이라 한 것이오, 君子라 함은 用事하는 位에 있는 賢人을 말함이다.

 

潛龍勿用 陽在下也 見龍在田 德施普也 終日乾乾 反復道也 或躍在淵 進無咎也 飛龍在天 大人造也 亢龍有悔 盈不可久也 用九 天德不可爲首也

卦爻彖象에 陰陽을 말한 것은 乾初九의 陽在下와 坤初六의 陰始凝과 泰彖의 內陽外陰과 否彖의 內陰外陽과 中孚九二의 鳴鶴在陰이니, 이는 다만 陰陽을 陰陽으로 表示한 것이 아니라, 陰陽의 義는 日月에 配하는 것이므로 이 五卦에 日月의 合德하는 象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乾에 大明이 있고 坤에 牝馬인 달이 있으니 乾의 陽在下는 달의 光明이 地下에 있음이오 坤의 陰始凝은 달의 陰精의 凝한 것이며, 泰否는 乾坤의 交不交이므로 日月光明의 消長을 象함이오, 中孚는 달의 合朔하는 象이므로 달의 陰精에 后天달의 자라고 있음을 象한 것이다.

 

陽在下也는 初九爻의 象이다. 陽이 最下爻인 地下에 있으므로 潛의 象이 된 것이다

德施普也는 九二爻의 象이다. 九五의 天德을 地에 下施하여 天施地生함에 遠邇가 모두 同一하다는 뜻이니 陰體가 陽體의 震子를 承受하여 生育하는 象을 말함이오, 그러므로 百穀의 生育하는 田의 象이 된 것이다.

反復道也는 九三爻의 象이다. 復卦에 反復其道의 象이 있는데 이것은 달이 剝하고 復하여 다시 光明을 生한다는 뜻이므로 九三의 反復道도 또한 太陽의 終하는 位에서 初生의 달이 生한다 함이다. 그런데 復卦의 달은 太陽의 앞에 있는 復上月로서 先天의 天心月이 되니, 이는 先迷의 달이오 乾九三은 天地間의 人位인 皇極에 當하고 또 天數의 中數인 五에 當하므로 五皇極의 象이 되어 日月의 相遇하는 中宮이 되고 거기에서 大明이 終始하여 달이 一陰一陽하는 道를 反復하니, 이는 先乾으로부터 后乾으로 乾乾하여 달이 太陽의 뒤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皇極의 中心에서 나오는 皇心月이 되는 것이니, 이가 後得主의 달이다. 그러므로 復卦의 反復其道는 先天달의 剝復하는 天行의 道를 말함이오 乾九三의 反復道는 先天에서 后天으로 넘어가는 一陰一陽하는 道를 말함이다. 復은 乾으로부터 二十四卦 百四十四爻의 坤策數에 當하여 坤이 乾大明의 震子를 受하여 先天달이 되는 象이므로 先天달을 復上에서 起하는 天心月이라 하는 것이다.

進無咎也는 九四爻의 象이다. 九四는 巽陰의 位에서 乾陽을 承受하는 것이므로 進하여 乾陽을 遇하면 서로 異各치 아니한다 함이다.

 

大人造也는 九五爻의 象이다. 大人造는 大人의 作興함이니 乾元震子가 飛龍으로서 天에 在하여 萬物을 創造하는 것은, 人事로써 보면 人間社會에 大人의 作興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盈不可久也는 上九爻의 象이다. 盈이라 함은 盈하면 昃한다 함이니, 上九는 乾陽의 上에 極하므로 盈의 象이 되는 것이다. 物은 窮極하면 變하고 變하면 通하고 通하면 久한 것인데, 上九는 窮極하되 陽이 過高하여 變通치 못하고 昃하여 그 生을 喪하여 久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乾卦는 初九, 九二에 龍德이 있고 九三, 九四에 進德이 있고 九五에 天德이 있어 諸爻에 모두 德이 있으되 오직 上九에 德이 없는 것이다.

 

天德不可爲首也라 함은 用九爻인 九五爻의 象이다. 天德이라 함은 益卦九五의 惠我德, 蠱卦六五의 承以德의 뜻으로서 乾體의 陽精을 陰體에 施하여 天施地生하는 天地生生의 大德을 말함이니, 天地의 生生은 반드시 天의 中心인 五爻와 地의 中心인 二爻가 相應하여 行한 然後에 天地生生의 大德인 天德이 되는 것이오, 만일 陰陽이 中心에 있지 아니하고 陽이 巽股를 犯하면 陽의 喪亡의 象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九五의 天德의 位에서는 巽股인 群龍에게 陽首인 九를 用치 말라고 한 것이다.

 

 

 

 

 

 

 

 

 

 

 

 

 

 

 

 

 

 

 

 

 

 

 

 

 

 

 

 

 

 

文言曰 元者善之長也....故曰乾元亨利貞

乾文言은 本卦의 卦辭, 爻辭, 彖辭, 小象辭의 順序에 依하여 지은 것이니, 처음의 元者善之長也 一節은 卦辭의 文言이오, 다음의 初九曰乃至上九曰 一節은 爻의 文言이오, 다음의 潛龍乃至天下治也 一節은 爻의 空間的 變化를 말한 文言이오, 다음의 潛龍乃至乃見天則 一節은 爻의 時間的 變化를 말한 文言이오, 다음은 乾元子始而亨 一節은 彖辭의 文言이오 다음의 君子以成德爲行乃至亢之爲言 一節은 小象辭의 文言이다 乾以外의 六十三卦는 모두 卦辭 다음에 彖辭를 두고 그 다음에 大象辭 爻辭 小象辭의 順序로 두었는데 오직 乾卦는 卦辭 爻辭 彖辭 大象辭 小象辭의 順序로 두니, 이는 乾卦 文言의 順序와 同一한 順序로 두기 爲함이다. 卦辭의 元亨利貞에 對하여, 彖辭는 大始 流形 變化 太和의 天道로써 解釋하고, 文言은 人禮義幹의 人道로써 解釋하니, 이는 彖辭는 地道로써 天道를 承함을 말하고 文言은 人道로써 人事를 말하고 한 까닭이다.

 

元이라 함은 天地로써 보면 天에서 萬物의 씨가 始生하는 象이 되고 四時로써 보면 春에 物이 始生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萬物이 처음으로 出生하는 때는 善치 아니함이 없으므로 繼之者善하고 그 善이 長하여 物이 되는 것이니, 이는 善이 仁에서 生하는 까닭이다. 仁이라 함은 萬物의 씨와 같은 것이므로 열매의 씨를 또한 仁이라 하는 것이며, 仁에 새싹의 나오는 것이 곧 善이니, 그러므로 仁과 善은 모두 生命의 繼生하는 象으로서, 內部에서 體가 되는 것을 仁이라 하고 外部에 發現하여 用하는 것을 善이라 하며, 仁의 體에서 善의 長하는 것이 곧 元이다.

 

人道로서는 仁을 體로 하여 사람을 기르는 善을 元이라 하는 것이다. 四德中에 오직 元에 仁善을 兼言한 것은 仁體善用이 合하여 元이 되는 까닭이니 復卦初九에 以下仁有不善의 仁善을 兼言하고 繫辭에 繼之者善 仁者見之의 仁善을 兼言한 것이 모두 그 까닭이다.

亨이라 함은 天地로써 보면 天에서 下降한 씨가 地에서 자라는 象이 되고 四時로써 보면 夏에 物의 자라는 象이 되는 것이다. 萬物이 처음으로 자라는 때에는 潔齊치 아니함이 없고 潔齊가 곧 嘉美이며 物은 이 嘉美가 合하여 體를 이루고 있으니 이것을 嘉의會라 한다. 人道로서는 사람의 嘉會하는 禮가 곧 亨이니 亨이라 함은 人間社會의 自然스러운 秩序인 禮로서 사람의 天性과 人情에 어그러짐이 없이 嘉美하게 相會하는 禮를 亨이라 하는 것이다.

 

利라 함은 天地로써 보면 天의 씨를 받아서 地에서 자라는 物이 여무는 象이 되고 四時로써 보면 秋에 物의 여무는 象이 되는 것이다. 物의 여무는 때에는 陽이 陰體의 속에 入하여 陰陽이 和合하면서 그 物의 本來의 性情을 具有하는 것이니, 이것을 義의 和라하며, 義라 함은 異質의 兩物이 調和하여 一하는 것이니 君臣有義, 夫婦大義, 義兄弟 같은 것이 그 一例이다. 人道로서는 人間社會의 모든 矛盾對立을 調和하여 一로 和하는 作用을 利라 하는 것이다.

 

貞이라 함은 天地로써 보면 物이 여물어서 地에 閉藏하는 象이 되고 四時로써 보면 冬에 物의 收藏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物이 여물어서 閉藏하는 것은 다음의 時機에 다시 變通發生하기 爲하여 그 精氣를 蓄하는 것이니, 이것을 事의 幹이라 하니, 事는 通變함이오 幹은 後日에 새싹의 所自出하는 幹體이며, 그러므로 貞은 變通의 所自出하는 幹體이다. 人道로서는 心의 體가 堅固하고 內部에 光明을 藏하여 萬變하는 世事에 應하는 것을 貞이라 하는 것이다.

 

仁禮義幹의 四德에도 三顯一藏의 理가 있으니, 仁禮義는 春夏秋의 三顯이오 事의 幹은 冬의 一藏이다. 一藏의 幹이라 함은 地의 仁과 對待하는 天의 知를 말하는 것으로서, 四德은 仁禮義知로 되는 것인데, 文言에는 知를 말하지 아니하고 事의 幹을 말하니, 이는 知가 모든 通變의 所自出하는 幹體가 되고 있으되 그것이 收藏함이 貞固하여 外現치 아니하는 까닭에 外現하는 通變의 現象만을 말하고 內部에 深藏한 知를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初九曰 潛龍勿用 何謂也....

初九以下 上九까지의 一節은 爻辭의 文言이다.

子曰이라 함은, 易經에는 乾元 震을 子라하고 震子를 사람에 擬한 것을 大人이라 하고 大人이 師傅의 任에 當한 것을 聖人이라 하니 그러므로 師傅의 任에 當하고 있는 聖人의 말을 子曰이라고 하는 것이다.

初九와 九二에 特히 龍德을 말한 것은 이 兩爻가 地에 있어 龍의 體가 되는 까닭이니, 德이라 함은 心의 體이다. 乾卦下五爻가 모두 易簡의 盛德을 말하였는데, 九五는 天位이므로 天德이 되고 九三九四는 文王八卦圖의 陰卦의 位에 當하고 또 人位가 되므로 龍을 말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修養하는 進德을 말하고, 地位에 있는 初九九二에는 龍德을 말한 것이다.

龍德의 隱한 者라 함은 陽氣의 圜轉飛動하는 陽體가 地中에 있어 坎象이 되므로 潛隱한 象이 된다 함이며, 그러므로 世를 移易치 아니하며 自身의 名을 外現치 아니하며 陽이 陰中에 있어 人世를 遯하되 煩悶치 아니하니, 遯은 遯卦의 陽退의 뜻이오 悶은 心의 閉鎖되어 있는 象이다

 

是는 古字의 昰이오 昰는 光明의 中天함이며 是는 또한 是非의 是로서 直하다는 뜻이니, 是는 光明과 直으로서 太陽光明의 動直한 象이며, 初九는 太陽光明을 見치 못하되 煩悶치 아니하는 것이다. 是字는 未濟卦 上九爻辭의 失是의 是와 相照하니 이는 終卦의 終爻와 首卦의 首爻에 모두 是字를 두어서 終한 者가 始에 連한다는 뜻을 表한 것이며, 그러므로 未濟의 是字는 上九爻辭의 最終에 있고 乾의 是字는 初九爻辭의 龍德而隱으로부터 不可拔潛龍也까지의 中央에 있어, 先天陽運의 終이 后天陰運의 始의 中心에 들어옴을 象한 것이다.

 

樂은 上으로 天을 向하여 喜함이오, 憂는 頭의 下垂함이니, 初九는 下에 있어 潛하되, 生의 過程에 있어 生意가 動하고 있으므로 上을 向하는 樂은 行하고, 陽이 陰中에 陷하여 垂頭하는 憂는 違하는 것이다. 確乎라 함은 乾의 德行이 確然하여 恒易한 것이며, 拔은 泰否의 拔茅茹의 拔로서 男體의 陽子를 陰體에 施하는 象이니, 初九는 龍德이 確乎하여 易簡하되 아직 幼少하여 用치 못하므로 茅茹를 拔치 아니하고 潛隱한다 함이다.

 

九二曰 見龍在田 利見大人 何謂也...

龍德은 陽氣의 圜轉飛動하는 陽體이오 正中은 統體에서 그 中이 되는 것이니, 九二는 生의 中心에 龍이 見하고 있으므로 龍德의 正中한 象이 되는 것이다.

九二는 元亨으로부터 利貞으로 넘어가는 中心으로서 乾道가 變化하여 各各 性命을 正하는 象이 있으므로 庸言庸行을 말하니, 庸은 庚과 用으로 되어 事를 變更하여 用한다는 뜻이다. 乾道가 變化하는 때에는 用事를 變함에 言을 信하게 하고 行을 謹하고 비뚤어짐을 막고 誠을 두고 世를 善하게 하니 善이라 함은 繼之者善의 뜻이라 世를 變通하여 새로운 善한 世上이 繼한다 함이오 自己를 자랑하기 爲하여 남을 攻伐하지 아니하고 九五의 天德을 承受하여 地上에 普及하여 사람들이 化하는 것이니, 이가 見龍在田의 象이오 乾君의 德이다.

 

六爻文言中에 오직 九二에만 「易曰」이라 하고, 坤文言과 繫辭의 各爻 解釋에도 「易曰」을 特言한 곳이 있으니, 易이라 함은 日月의 運行法則이오 거기에 變化한다는 뜻을 寓한 것이라, 爻의 文言과 爻의 解釋에 「易曰」을 말한 것은, 그 爻에 日月의 變化하는 象이 있는 까닭이며, 九二爻는 달의 始生하는 位이므로 庸과 時舍의 象이 있어, 日月의 變化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爻辭에는 九五와 九二에 모두 利見大人을 말하였는데, 文言에는 九五에만 大人을 말하고 九二에는 大人이 없고 君德을 말하니, 이는 九五는 天德의 位로서 成의 中心이므로 大人의 象이 되고, 九二는 地上의 生의 中心으로서 九五의 天德을 承受하는 것이므로 德의 施함이 普하고 德이 博하고 化하여, 地上의 人君의 德의 象이 되는 것이며 九五의 大人과 九二의 大人은 各異한 二 大人이 아니라, 九二는 始生하는 大人이오 九五는 成德한 大人이니, 그러므로 天位의 大人은 乾元資始하는 陽氣를 陰體에 施하는 象의 大人이 되는 것이오 地上의 大人은 天德을 承受하여 人間社會에 普施하는 君德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天性을 正함에는 三顯一藏의 象이 있으니, 心은 內部에 있어 一藏이 되고 言語는 사람의 意思를 外部에 發하여 三顯이 되는 것이다. 庸言의 信은 人言이니, 人言은 사람의 말의 有信한 것이오 庸行의 謹은 菫 言이니 菫은 時의 뜻이라, 時에 맞는 말이 謹이 되는 것이오, 閑邪存誠은 成言이니 誠實한 말이 誠이 되는 것이라, 이 信 謹 誠은 言語의 三顯이오 世를 善하게 하되 伐하지 아니하고 德이 博하고 化함은 心의 一藏이다. 言語의 三顯이 信謹誠하고 心의 一藏이 善하고 한 것이 곧 사람의 天性의 正함이다.

 

九三曰 君子終日乾乾...雖危無咎矣

君子의 進德修業은 易簡의 道이니, 繫辭에 「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이라 하고 또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이라 하고 또 「易 聖人所以崇德 而廣業也」라 한바 이 德과 業은 모두 易簡을 말한 것이므로 九三과 九四의 進德修業은 또한 易簡을 말한 것이다. 易簡이라 함은 易는 太陽의 作用하는 法則이오 簡은 달의 作用하는 法則이라, 九三九四에 日月의 相遇하는 象이 있으므로 特히 易簡의 理를 말한 것이다.

 

德을 進함은 忠과 信으로써 하고 業을 修함은 修辭와 立誠으로써 하는데, 여기에도 九二와 같이 心의 一藏과 言語의 三顯의 理가 있다. 忠은 中心의 忠함이니, 이는 心의 一藏이오 信은 人言의 有信함이오 修辭는 言語의 正함이오 立誠은 言語의 誠實함이니 信, 修辭, 立誠은 言語의 三顯이다. 君子는 一藏한 心이 忠하고 三顯하는 言語가 信하고 修하고 立하고 하면 德을 進하고 業에 居하여 易簡을 體得하는 것이다.

 

幾라 함은 繫辭에 「幾는 動의 微함이오 吉의 先見함이라」하니 吉은 朔이라 易經의 月幾望은 모두 달이 비로소 太陽의 光을 받는다는 뜻이며 義는 繫辭에 「陰陽의 義는 日月에 配한다」하니 易經의 義字는 모두 陰陽相配의 뜻으로 되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九三의 幾와 義는 또한 日月相遇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九三은 太陽이 終하고 달이 始하고 하는 大明終始의 位이므로 달은 그 至할 데를 知하여 거기에 至한 까닭에 太陽과 비로소 相望하여 光을 받아서 朔日이 된 것이오, 太陽은 그 終할 데를 知하여 거기에서 終한 까닭에 달과 相遇하여 陰陽의 義를 存하는 것이니, 可與幾可與存義가 곧 日月의 易簡이다. 日月과 易簡은 同一物의 體用으로서 日月은 易簡의 體이오 易簡은 日月의 用이니 體되는 日月은 天道이오 用이 되는 易簡은 人道이라, 그러므로 繫辭에는 「陰陽의 義는 日月에 配하고 易簡의 善은 至德에 配한다」하여, 먼저 天道의 日月을 말하고 다음에 人道의 易簡에 미쳐서 사람의 崇德廣業이 天道를 본받는 것임을 말하고, 文言의 九三에는 먼저 進德修業하는 人道의 易簡을 말하고 다음에 可與幾可與存義하는 天道의 日에 미쳐서 사람이 易簡을 體得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天人圜行의 理를 말한 것이다.

 

上位와 下位는 上乾下乾의 乾乾을 말함이오 驕는 高亢함이오 憂는 頭의 下垂함이니 在上位不驕는 上位에 있는 太陽이 地中에 入함이오 在下位不憂는 下位에 있는 달이 地平線上의 天에 있음이다. 사람은 在上不驕在下不憂하면 日月의 可與幾可與存義함과 같이 能히 易簡의 德業을 進修한다 함이다.

 

九四曰 或躍在淵...故無咎

九四는 雲行雨施의 位이니, 雲은 上하고 雨는 下하며, 上함은 進이오 下함은 退이므로 上下進退의 象을 말한 것이다. 進德은 德을 높이는 것으로서 天에 屬하여 上進의 象이 되고 修業은 業을 넓히는 것으로서 地에 屬하여 下退의 象이 되니, 그러므로 進德과 修業이 곧 雲行雨施하여 上下進退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無常이라 함은 主를 得치 못하여 陰陽의 常道가 없음이니, 九四가 陽龍으로서 巽股의 位에 當하여 上하고 下하고 하여 陰陽의 常道가 없으되 비뚤어진 軌道를 行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或躍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恒이라 함은 雷風相與하는 恒卦의 뜻이므로 無恒은 震龍과 巽股가 相與치 아니 함이니 進하고 退하고 하여 雷風이 相與치 못하되 光明이 陰精에서 離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在淵의 象을 말한 것이다. 달의 陰精에는 光明을 受하는 時와 受치 못하는 時가 있으므로 雲上雨下하면서 그 時에 及코자 함이니, 그러므로 陰陽이 異各치 아니하는 것이다.

   

九五曰 飛龍在天 利見大人 何謂也

九五는 飛龍 用九의 位이므로 同類가 相從하고 陰陽이 相交하여 時運의 變通되는 理가 있는 것이다. 時運의 變하는 것은 반드시 天에서 變하고 六十四卦中에서 乾九五가 天德의 位이므로 乾九五에 時運變化의 象이 있어 生의 象인 伏羲八卦圖가 長의 象인 文王八卦圖로 變한 象을 말한 것이다.

 

物의 生長하는 것은 無形에서 有形으로 되고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伏羲八卦圖가 文王八卦圖로 變하는 順序를 보건대, 聲氣應求는 無形한 氣이오 水火燥濕은 形의 始生하는 精이니 이는 無形한 氣에서 有形한 精으로 變하는 것이오 風雲龍虎는 風雲의 精氣가 龍虎의 形을 從하는 것이니 이는 形의 成함이며 氣精形이 이미 生成하면 이에 萬物中의 最靈한 聖人이 作하여 三才가 成하며, 本天本地하는 乾坤은 神이니 이는 物이 여물어서 有形에서 無形으로 變하는 것이다.

 

同聲相應이라 함은 震은 雷이오 離는 霆으로서 雷霆이 同一한 雷聲인데 伏羲八卦圖의 東北의 震이 東方의 離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東方 震으로 되니 이는 同聲의 相應함이오 同氣相求라 함은 坎은 水이오 兌는 澤으로서 水澤이 同一한 水氣인데 伏羲八卦圖의 東南의 兌가 西方의 坎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西方 兌로 되니, 이는 同氣가 相求함이다. 水流濕이라 함은 水는 坎이오 濕은 坤의 水土의 象이라, 伏羲八卦圖의 西方 坎이 北方의 坤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北方 坎으로 되니, 이는 水가 濕에 流함이오, 火就燥라 함은 火는 離이오 燥는 乾金의 象이라 伏羲八卦圖의 東方 離가 南方의 乾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南方 離로 되니, 이는 火가 燥에 就함이며, 陰體陽體의 生殖器를 濕과 燥로 名한 것은 이 坤의 水土와 乾의 金의 象에 基한 것이다.

雲從龍이라 함은 坎水에 雲雨의 象이 있고 또 天氣와 地氣의 相接한 巽艮에 雲의 象이 있어 小畜과 小過에 密雲의 象이 있는 것이며, 龍은 震象이니 伏羲八卦圖의 西北의 艮이 東北의 震位에 移居하여 文王八卦圖의 東北 艮으로 되는 것이 곧 雲이 龍을 從함이오 風從虎라 함은 달에 虎의 象이 있는데 乾陽은 달의 光明이 되고 兌澤은 달의 陰精이 되므로 乾과 兌에 虎의 象이 있는 것이며, 風은 巽象이니 伏羲八卦圖의 西南의 巽이 東南의 兌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東西巽으로 되는 것이 곧 風이 虎를 從함이다.

時運의 推移에 依하여 聲氣 水火 雷風의 六子가 類를 從하여 萬物을 生하는데 時運의 變化하는 때에는 사람의 生活도 또한 變化하는 것이므로 天은 반드시 聖人을 生하여 사람을 가르치고 生活을 指導하는 것이니 이가 聖人作而萬物睹의 뜻이다. 九五에는 大人과 聖人의 兩象이 있는데 그 相異한 바는 光明의 大한 사람을 大人이라 하고, 大人으로서 師傅의 任에 當한 사람을 聖人이라 한 것이다.

 

天에 本한 者는 純陽인 乾이오, 下에서 上하는 者는 地氣의 上升하여 天에 接하는 艮山이니, 그러므로 純陽의 乾은 接天하는 山上에 있어 伏羲八卦圖의 南方의 乾이 西北의 艮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西北乾으로 되니, 이는 天에 本한 乾이 下에서 上하는 山을 親함이오, 地에 本한 者는 純陰인 坤이오 上에서 下하는 者는 天氣의 下降하여 地에 接하는 巽風이니, 그러므로 純陰의 坤은 接地한 風下에 있어 伏羲八卦圖의 北方의 坤이 西南의 巽位에 移하여 文王八卦圖의 西南坤으로 되니, 이는 地에 本한 坤이 上에서 下하는 風을 親함이다.

八卦는 各各 그 類를 從하여 運行하는데, 伏羲八卦圖의 生의 時運과 文王八卦圖의 長의 時運이 또한 類를 從하여 運行하는 象이 있으므로 그것을 乾九五에 말한 것이다.

 

上九曰 亢龍有悔 何謂也... 動而有悔也

貴는 乾의 象이니 上九는 乾體로서 貴의 象이 되는데, 過亢하여 陽이 依附할 곳이 없으므로 無位라 한 것이오, 上九는 純陽卦의 上爻에 있으므로 高의 象이 되는 것이오, 民은 陰의 象인데, 陽의 高亢은 곧 陰을 遇치 못함을 象한 것이므로 無民의 象이 되는 것이다. 賢人이라 함은 달의 光明을 象한 것이니, 上九의 相應하는 爻인 九三의 君子가 곧 賢人이며 上九는 上에 窮하고 文王八卦圖의 東北艮에 當하여 달의 消하는 象이므로 달의 光明이 下位의 九三에서 生하고 있으되, 上九의 消함을 輔치 못하는 것이다.

動而有悔라 함은 動하면 無位 無民 無輔의 길을 行하여 陽이 陰中에 陷하여 疾하여 生育치 못하는 것이다.

 

潛龍勿用下也 見龍在田時舍也 終日乾乾行事也 或躍在淵自試也 飛龍在天上治也 亢龍有悔窮之灾也 乾元用九天下治也

이 一節은 空間의 位로써 陽氣의 運行하는 象을 말한 文言이다. 初九에 下라 함은 그 位가 最下에 있음이오 九二에 舍는 廢止함이오 時舍라 함은 九二는 달의 體로서 天의 陽氣를 承受하는 時와 承受치 못하는 時가 있어 時로는 廢止한다 함이니, 初九의 下와 九二의 時舍는 井卦 初六小象의 下및 時舍와 同一한 뜻이며, 九三에 行事라 함은 大明이 終하고 始하여 變通을 行함이오 九四에 自試라 함은 時에 及하기 爲하여 或進함이오 九五에 上治라 함은 治는 上에서 水를 下施하여 陰陽의 和하는 것인데 九五의 飛龍에 陽精을 施하는 象이 있어 上에서 下를 治함이오 上九에 窮之灾라 함은 灾는 天火로서 屋이 火災함이니, 消滅하는 運을 象함이오 純陽卦의 上九는 陽의 消하는 곳이므로 窮의 灾가 된 것이며 用九에 天下治라 함은 九五는 乾元과 用九의 位이므로 九五에는 上治라하고 用九에는 天下治라 하니 兩者가 同一한 位의 同一한 뜻인데, 다만 九五는 天位이므로 治者의 位를 말하고 用九는 萬物의 陰陽相交하는 것이므로 萬物의 生生하는 位인 天下를 말한 것이다.

 

 

潛龍勿用陽氣潛藏 見龍在田天下文明 終日乾乾與時偕行 或躍在淵乾道乃革 飛龍在田乃位乎天德 亢龍有悔與時偕極 乾元用九乃見天則

이 一節은 時間의 推移로써 陽氣의 運行하는 象을 말한 文言이다. 初九에 陽氣潛藏이라 함은 陽氣가 地下에 藏하여 出顯치 못함이오 九二에 文은 陰物과 陽物이 相雜하여 形質에 光彩가 生함이오 明은 光明의 發함이니 天下文明은 地가 天으로부터 陽光을 受하여 光明을 生함이오 九三에 與時偕行이라 함은 달이 太陽의 뒤에 있어 光明을 生하여 運行하는 時를 當함이오 九四에 革이라 함은 革卦 己日의 뜻으로서 九四가 巽陰의 位에 當하여 乾陽의 氣를 內部에 包함이오 九五에 天德이라 함은 天德은 天에서 씨를 生하여 地에 施하고, 地에서 生한 物을 天에서 成하여 生生不已하는 天地의 大德을 말함이니 初九 九二의 龍德과 九三九四의 進德은 모두 九五의 天德에서 承受한 것이다. 上九에 與時偕極이라 함은 陽氣가 上極하는 位에 當하여 消하는 時가 됨이다.

用九에 則이라 함은 聖人則之의 則으로서 天의 垂示한 法則을 坤이 效法하여 物을 作成하는 것을 말함이니 天地가 物을 生生하는 自然法則이 곧 天則이며 乾元의 用九는 物을 生生하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므로 用九에서 天則을 見한다고 한 것이다.

以上 二節은 乾各爻를 다시 空間의 位와 時間의 推移로써 解說한 것이다. 爻라 함은 事物의 變動하는 狀態를 象한 것이오 事物의 變動은 空間의 位와 時間의 推移를 따라서 生하는 것이니 繫辭에 「六爻相雜 唯其時物」이라 함은 時는 時間의 推移를 말함이오 物은 空間의 等位(爻有等故曰物)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乾文言에는 各爻를 解釋하고 다시 空間의 位와 時間의 推移로써 爻辭를 解釋하여 易經爻辭解釋의 凡例를 삼은 것이다.

 

 

 

 

 

 

 

 

 

 

 

 

 

 

 

 

 

 

 

 

 

 

 

 

 

 

乾元者 始而亨者也...雲行雨施天下平也

이 一節은 彖辭의 文言이다.

物의 元亨 段階는 먼저 形質의 發育이 있고 아직 本然의 性情을 具치 못하는 것이므로 乾元이라 함은 物이 始하여 그 形이 長하는 것이며, 利貞段階는 形質이 이미 定하고 本然의 性情이 成하는 것이다. 彖辭에는 性命을 말하고 文言에는 性情을 말하니, 命은 天의 賦與한 使命이오 情은 天性에서 發하는 生生本能이라 彖은 天道를 말한 까닭에 性命이라 하고 文言은 人道를 말한 까닭에 性情이라 한 것이다.

 

乾始라 함은 乾元의 始함이오 美라 함은 嘉의 會하는 亨이오 利라 함은 義의 和함이니 乾元이 物을 始하고 美와 利로써 그것을 個個히 長育하고 統一的으로 義和하여 天下의 萬物을 모두 裁成하되 乾元의 統天作用은 自然스럽게 行하여 그 統一하는 形跡을 나타내지 아니하며 (不言의 뜻)萬物의 生生은 모두 同一한 自然法則에 統一되고 있으되 各自의 物은 各其 獨立生活을 하는 것으로 되어 自然法則에 裁成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가 乾元의 大矣哉한 所以이다

大哉乾乎라 함은 乾의 全象을 말함이오 乾에는 卦辭의 元亨利貞의 四德과 爻辭의 潛 見 惕 躍 飛 亢의 六龍이 있으니, 四德과 六龍이 곧 大哉한 所以이다. 剛 健 中 正은 元亨利貞의 四德을 말함이오 六爻發揮는 潛見惕躍飛亢의 六龍을 말한 것이며, 卦辭는 天道이오 爻辭는 地道이라 사람의 天性은 日月光明의 圓深通明한 作用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天道에 屬하고 情은 달에서 震子가 兌精의 相合하는 作用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地道에 屬하니, 그러므로 純粹精은 圓深通明한 天性을 말함이오 旁通情은 震子兌精의 生生하는 情을 말함이다.

 

純은 糸와 屯으로 되어 屯卦의 經綸의 뜻으로서 盤桓하여 圓한 象이오 粹는 米와 卒로 되어 草와 卒을 合한 萃卦의 뜻으로서 澤이 聚하여 深한 象이며, 精은 水火의 合한 것으로서 水通火明한 象이니, 純粹精이라 함은 사람의 天性이 圓하고 深하고 通明하다 함을 말함이오 旁通이라 함은 日月 暈과 같이 中心으로부터 圓形으로 外向하여 發하는 것이니 生生의 本能이 天性에서 發하는 것을 旁通情이라 한 것이다. 文言은 人道를 말한 까닭에 卦辭의 四德을 天性으로 解釋하고 爻辭의 六龍을 情으로 解釋하니 이는 또한 仁 禮 義 知는 性이오 潛見惕躍飛亢은 情이라 함을 말한 것이다.

彖辭에는 雲行雨施를 먼저 말하고 다음에 御天을 말하며 文言에는 御天을 먼저 말하고 다음에 雲行雨施를 말하니 이는 彖辭는 大明의 生成을 말한 까닭에 雲行雨施品物流形한 뒤에 乘龍御天하는 것이오 文言은 사람의 性情을 말한 까닭에 사람의 天性이 成하여 天에 圜行한 뒤에 神의 事業을 祐하여 天下가 平하는 것이다.

 

君子 以成德爲行....君子弗用也

이는 初九小象의 陽在下也의 文言이다.

日可見之라 함은 日用한다는 뜻도 되고 太陽의 光明을 見한다는 뜻도 되니, 爻辭文言의 不見是의 是와 相照하는 것이오 陽이 下에 있으므로 隱而未見行而未成이 되는 것이다.

爲言이라는 말은 潛之爲言也 亢之爲言也 妙萬物而爲言이 있으니, 乾初上의 爲言도 또한 神의 爲言이다.

乾五有鬼神之象 故初上之言 潛言亢亦皆神之言也

 

 

君子 學以聚之....君德也

이는 九二小象의 德施普也의 文言이오 爻辭文言의 德博而化와 同一한 뜻이다.

君子가 德을 修함에는 學聚 問辨 寬居 仁行의 네 가지가 있으니, 이는 四情에서 나온 것이다. 九二에 性命의 象이 있으므로 또한 性에서 發하는 情의 象이 있으니, 學以聚之는 萃聚의 情이오 問以辨之는 感應의 情이오 寬以居之는 恒久의 情이오 仁以行之는 天地에만 있는 正大의 情이다. 彖辭의 文言에 「利貞者性情也」라 한 것도 九二가 利貞의 位로 되어 性命과 性情의 象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君德이라 함은 乾君의 德이오 德施普의 德이니, 이는 九五 天德의 位에서 下施하는 德이며, 君德의 下施가 곧 利見大人의 象이다.

 

九三 重剛而不中....雖危無咎矣

이는 九三小象의 反復道也의 文言이다.

重剛이라 함은 上乾下乾의 境界에 있음을 象함이오 中치 못하고 不在天不在田하여 天地間의 人位에 있으므로 下乾上乾하여 一陰一陽하는 道를 反復하는 것이며 陰體가 陽을 遇하는 時와 遇치 못하는 時가 있음을 因하여 그心을 光明케 하면 비록 陰中을 涉하여 危하되 陰陽이 異各치 아니 하는 것이다.

 

 

九四 重剛而不中....故無咎

이는 九四小象의 進無咎의 文言이다.

上乾下乾의 境界에 있어 中치 못하고 不在天 不在田 不在人하여 天空中에 있으니 이는 進退不定의 象이다. 或이라 함은 不安定함이오 疑라 함은 心의 枝疑未定함이니 九四는 天空中의 安定치 못한 位에 있으므로 스스로 試하여 進한 然後에 陰陽이 相遇하여 異各치 아니하여 時에 及하는 것이다.

六爻中에 오직 九三과 九四에만 爻位를 말한 것은 重剛不中한 爻位에서 君子가 進德修業하여 九三에서 反復하고 九四에서 進退하고 함을 말하기 爲함이다.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況於鬼神乎

이는 九五小象의 大人造也의 文言이니, 夫大人은 「저大人」 또는 「그大人」이라는 뜻으로서 大人造의 大人을 指함이다.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는 그 事象이 外面에 나타난 三顯이오 與鬼神合其吉凶은 無形無體한 一藏이다. 鬼神이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天地에는 唯一神이 있고 神이 萬物의 生生作用을 行함에는 마치 사람이 生生作用을 行함에 耳 目 口 鼻 手足等이 各其 任務를 나누어 部分的으로 動作함과 같이 神도 神全體가 行하는 것이 아니라 神의 여러 分身이 各其 맡은 바의 任務를 行하는 것이오, 이 分身이 곧 鬼神이다.

 

鬼는 個體 獨有의 作用이오 神은 天地 統體의 作用이니 天地 唯一神은 天地 統體의 作用이므로 거기에는 神만 있고 鬼가 없으며 神의 分身은 이미 個體를 가지고 있으므로 거기에 鬼와 神의 두 作用이 아울러 있는 것이다. 與鬼神合其吉凶이라 함은 大人의 吉凶이 곧 鬼神의 吉凶이오 鬼神의 吉凶이 곧 天의 吉凶이므로 大人은 鬼神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하고 또 天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하여 天에 先하되 天이 違치 아니 하는 것이다. 여기에 天이라 함은 神의 居하시는 位를 말함이니 그러므로 天이 違치 아니한다 함은 곧 神이 違치 아니 한다는 뜻이다.

 

鬼神의 吉凶이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謙卦에 「鬼神害盈而福謙」이라 한바 鬼神의 福하는 것은 吉이 되고 害하는 것은 凶이 되는 것이다. 鬼神은 무슨 까닭에 사람을 福하고 害하고 하는가 하면 사람은 神에서 生하여 神의 生長成法則에 依하여 生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生生하는 法則은 곧 神의 分身인 鬼神의 運行法則이며 그러므로 鬼神의 吉凶은 또한 사람의 吉凶과 一致하니 이가 鬼神이 사람을 福하고 害하는 象이다. 그런데 鬼神이 사람에 對하여 福害의 作用을 行함에는, 善한 者를 卽時로 福하고 惡한 者를 卽時로 害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繫辭에 「善不積不足以成名 惡不積不足以滅身」이라 하니 이는 善도 많이 行하여 積한 然後에 福을 받는 것이오, 惡도 많이 行하여 積한 然後에 害를 받는다 함을 말함이다. 萬一 善을 行하되 조금 行하고 다시 行치 아니하여 善이 積치 아니하면 成名하는 福이 오지 아니하고 惡을 行하되 조금 行하고 다시 行치 아니하여 惡이 積치 아니하면 滅身하는 害가 오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物의 生長成의 理에 依하여 善을 積하면 善이 長成하여 鬼神으로부터 福을 받아서 生氣가 繼續하는 것이니 이가 鬼神의 吉하다 하는 것이오 惡을 積하면 惡이 長成하여 鬼神으로부터 害를 받아서 쭉정이가 되는 것이니 이가 鬼神의 凶하다 하는 것이다. 謙卦의 盈과 謙은, 이것을 人事로써 보면 盈은 驕盈함이오 謙은 謙讓함이다. 惡의 積한 것이 곧 盈이오 善의 積한 것이 곧 謙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驕盈한 者는 鬼神으로부터 害를 받아서 凶하고 謙讓한 者는 鬼神으로부터 福을 받아서 吉한 것이다.

 

九五爻의 大人은 小象의 大人造의 大人이오 造는 天造의 뜻으로서 乾陽을 陰體에 施하는 作用이 곧 天造이니 天造는 物을 創造한다 함이다. 天에 先하되 天이 違치 아니한다 함은 天의 開闢하기 以前에 大人이 物을 創造하되 天道에 違치 아니한다 함이오 天에 後함에 天時를 奉한다 함은 天의 開闢以後에 天時를 奉行하여 物을 創造하면 天時에 合한다 함인데 九五에 天의 開闢以前과 開闢以後의 象으로서는 生의 時運의 象인 伏羲八卦圖와 長의 時運의 象인 文王八卦圖가 있다. 伏羲八卦圖는 天의 開闢하기 以前의 天地渾沌한 象을 圖寫한 것이니 이는 天에 先함이오 伏羲八卦圖가 天에 先하되 天地의 運行하는 天道가 卦圖에 如實히 나타나고 있으니 이가 天不違이다. 文王八卦圖는 天이 開闢한 以後의 萬物生長하는 象을 圖寫한 것이니 이는 天에 後함이오 文王八卦圖가 天에 後하여 天地의 運行하는 天時가 卦圖에 如實히 나타나고 있으니 이가 奉天時이다. 伏羲八卦圖는 天에 先하므로 先天의 象이 되고 文王八卦圖는 天에 後하므로 后天의 象이 되니 이는 長의 時運에 있어서는, 生의 時運은 先天이 되고 長의 時運은 后天이 되는 것이며 時運이 變하여 生長時運으로부터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는 生長時運은 모두 先天이 되고 成의 時運은 后天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易經(周易)은 先天易이 되고 正易은 后天易이 되는 것이다.

 

况於鬼神乎의 鬼神은 與鬼神合其吉凶의 鬼神이니 天도 大人의 創造한 卦圖의 理를 違치 못하므로 神의 分身인 鬼神도 또한 卦圖의 理를 違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伏羲八卦圖의 理와 文王八卦圖의 理는 天도 違치 못하고 사람도 違치 못하고 鬼神도 違치 못하여 天 人 鬼神이 모두 그 生長成의 原理를 따라가서 生長成의 作用을 行하는 것이니 이가 易이 天地로 더불어 準하고 天地로 더불어 相似하고 한 所以이다.

 

四時日月

四時의 象은, 文王八卦圖의 四正으로써 보면 震은 正春이오 離는 正夏이오 兌는 正秋이오 坎은 正冬이며 易卦中에 四時를 말한 것은 統天卦인 乾 以外에 五卦가 있으니 豫와 觀에는 「四時不忒」이라 하고 恒에는 「四時變化」라 하고 革과 節에는 「四時成」이라 하니 卦象과 序卦로써 보면 豫는 春이오 觀은 夏이오 恒은 夏秋의 交이오 革은 秋이오 節은 冬이다. 革과 節에 四時를 말한 것은 革은 南의 離로부터 西의 兌로 옮기는 正秋이오 節은 西의 兌로부터 北의 坎으로 옮기는 正冬인 까닭이다. 坎으로부터 震하는 解와 震으로부터 離하는 噬嗑에는 春과 夏의 四時를 말하지 아니하고 豫와 觀에 四時를 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四時라 함은 生長成의 理이오 春과 夏의 生長은 반드시 雷風의 氣가 乾坤生命元을 運行하여 地上에 流行하여 地力을 吸取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文王八卦圖의 流行이 東과 東南의 雷風에서 始하는 것이오 이가 雷風이 地에 行하는 豫와 觀에 四時를 말한 所以이다. 秋冬에 物을 成함에는 地力을 吸取하지 아니하고 이미 吸取한 膏澤을 資賴하여 太陽의 光熱과 雨露等을 받아서 凝成하는 것이므로 水火 및 澤으로 된 革과 節에 四時를 말한 것이다. 恒은 雷風의 卦이라 春豫夏觀의 雷風이 合하여 生命元을 運行하는 力이 되어 生長에서 成으로 넘어가는 生成의 變化를 行하고 있으므로 恒에 四時의 變化를 말하고 序卦로는 豫觀의 生長과 革節의 成의 中間에 位한 것이다. 卦中에 日月을 말한 것은 統天卦인 乾以外에 오직 豫 恒 및 離이니 離는 上離下離인 까닭에 繼明의 象이 있어 日月의 麗天이 된 것이오 豫와 恒은 四時卦인데 四時는 日月의 運行에 依하여 生하고 日月의 光明은 震子의 作用에 依하여 生하며 四時卦中에서 震子를 合한 卦는 오직 豫와 恒이므로 이 두 卦에만 日月을 말한 것이다.

 

亢之爲言也.....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

이는 上九小象의 盈不可久의 文言이다.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은 모두 盈의 象이오 盈한 者는 반드시 虧하여 久치 못한 것이다. 聖人을 거듭 말한 것은 前者는 進退 存亡 得喪을 知함을 聖人이라 한 것이오 後者는 不失其正함을 聖人이라 한 것이다. 먼저에는 進退 存亡 得喪을 말하고 뒤에는 進退 存亡만을 말하니 이는 不失其正의 失이 곧 喪의 뜻인 까닭이다.

 

繫辭에 「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皇帝堯舜垂衣裳 而天下治盖取諸乾坤」이라 하니 乾坤에는 窮變通久의 道가 있는데 皇帝堯舜은 이 乾坤의 道를 法하여 變通한 까닭에 久한 것이오 上九는 窮之災의 象인데 이 乾坤變通의 道를 知치 못한 까닭에 盈하여 久치 못한 것이며 其唯聖人乎라 함은 窮變通久의 道를 知하여 不失其正한 皇帝堯舜을 指한 것이다.

正이라 함은 乾의 剛健中正의 正으로서 貞하여 保合한다는 뜻이니 上九는 陽極의 位에 있으므로 保合한 然後에 喪亡치 아니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動하면 悔가 있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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