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 하 (삼화 한장경 저 역경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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繫辭 下

 

一. 八卦成列 章

八卦成列 ... 剛柔者立本者也 .. 夫乾確然 ... 聖人之情見乎辭

繫辭上編의 第一章 天尊地卑章은 上下編의 總綱領이 되고 下編의 第一章은 上編의 第二章과 相應하니 그러므로 이 章의 八卦成列因重은 上編第二章의 設卦觀象이오 이 章의 剛柔相推變在其中은 上編第二章의 剛柔相推而生變化이오 이 章의 繫辭焉而命之와 吉凶悔吝者生乎動은 上編第二章의 繫辭焉而明吉凶이오 이 章의 動在其中과 生乎動은 上編第二章의 六爻之動三極之道이며 다만 繫辭焉과 剛柔相推의 兩句順序가 相換된 것이오 上編은 失得 憂虞 進退 晝夜 三極等의 變化하는 象을 主로 하여 말한 것이므로 剛柔相推而生變化의 辭와 連結시킨 것이오 이 章은 作易의 序를 主로 하여 말한 것이므로 八卦成列 因而重之 剛柔相推 繫辭焉의 順序로써 象으로부터 辭에 及하고 辭의 中에 動이 있어 吉凶 悔吝이 生함을 말한 것이다.

 

剛柔는 本을 立함이라 함은 乾剛坤柔로써 作易의 本을 삼는다 함이니 이는 上編末章의 乾坤成列而易立乎其中의 뜻을 承한 것이며 變通은 時를 趣함이라 함은 日月의 運行에 依하여 四時의 變通이 生한다 함이니 이는 上編末章의 化而裁之謂之變 推而行之謂之通의 뜻을 承한 것이며 吉凶은 貞勝함이라 함은 貞은 事의 幹으로서 變通의 機를 保合하고 있는지라 爻의 動하는 中에는 吉凶이 生하고 그것이 스스로 變通되어 凶을 避하고 吉의 一途로 趍向하는 것이 곧 貞勝이니 이는 上編末章의 擧而措之天下之民의 뜻을 承한 것이다.

 

天地의 道는 貞觀함이라 함은 上文의 剛柔立本의 뜻이니 天地의 道는 스스로 變通되어 常常觀示하는 것이오 日月의 道는 貞明함이라 함은 上文의 變通趣時의 뜻이니 日月의 道는 스스로 變通되어 常常明照하는 것이오 天下의 動은 貞夫一함이라 함은 上文의 吉凶貞勝의 뜻이니 天下의 動하는 것은 스스로 變通되어 凶을 避하고 常常吉의 一途로 趍하는 것이며 天地 日月 天下의 動함이 스스로 變通되는 것은 모두 乾坤의 易簡의 理에 依한 것이다.

 

確은 石과 隺으로 되어 石은 堅함이오 隺은 鳥가 上出하려 함이니 이는 乾이 剛하여 飛高하는 象이오 隤는 阜와 貴로 되어 阜는 陸土이오 貴는 高함이니 이는 坤이 土厚하여 萬物을 載하는 象이니 乾은 確然하므로 사람에게 陽의 易함을 示하고 坤은 隤然하므로 사람에게 陰의 簡함을 示하는 것이다.

 

爻라 함은 이 乾坤의 易簡을 效함이오 象이라 함은 이 乾坤의 易簡을 像함이니 像은 人과 象으로 되어 人事의 象을 말한 것이다.

爻象動乎內라 함은 爻象은 八卦의 成列因重의 속에 있으므로 內라하고 乾坤의 易簡을 效像하므로 動이라 한 것이며 吉凶은 사람에게 明示하여 疑를 斷하는 것이므로 外에 見한다고 한 것이다. 功業見乎變이라 함은 功業은 天下의 民에게 擧措하는 事業이오 變은 化하여 裁함이니 化裁하여 事業을 天下의 民에게 擧措하는 것이 곧 功業이 變에 見함이오 聖人之情見乎辭라 함은 聖人의 情은 聖人이 易의 情을 發揮하여 吉凶利害를 明示하므로 그것을 聖人의 情이라 한 것이니 聖人이 辭를 繫한속에 動함이 있고 動하는 속에 吉凶 悔吝이 있는 것이 곧 聖人의 情이 辭에 見함이다.

上編의 第二章에 象變辭占을 말하였는데 이 章은 그와 相通하므로 또한 象變辭占을 말하니 爻象은 象이오 吉凶은 占이오 功業은 變이오 聖人之情은 辭이다.

 

 

二. 天地大德 章

天地之大德曰生 ... 古者包犧氏之王天下 ... 作結繩而爲網罟 ... 是故易者象也象也者像也

이 章은 第一章의 八卦成列象在其中의 뜻을 承하여 十三卦의 卦象으로써 義를 行하는 易簡의 道를 말한 것이다.

天地의 大德은 生生이오 사람은 天工의 未成한 것을 人工으로써 成하여 天地化育의 功으로 贊하는 것인데 聖人은 備物致用하고 立象成器하여 天地의 化育을 贊하여 天下를 利롭게 하는 것이므로 聖人이 利器利法하는 大位에 있어야 하니 이 까닭에 位는 聖人의 大寶가 되는 것이오 上編第十一章의 崇高莫大乎富貴라 함은 聖人大寶의 位를 말함이다.

 

사람의 道를 立하는 것은 仁과 義이니 그러므로 大寶의 位를 守함은 仁으로써 하는 것이오 사람을 聚함에는 財를 生하여야 하는데 財를 經理하고 言辭를 正하게 하고 民의 非違를 禁하고 함은 義로써 하는 것이니 仁과 義로써 人의 道를 立하면 能히 人工으로써 天工의 未成한 것을 成하여 사람이 三才의 位를 이루는 것이다. 人의 道를 立하는 仁과 義는 四時로써 보면 春과 秋의 象이니 孔子가 春秋를 作한 것도 또한 人의 道를 立하기 爲함이다.

 

義라 함은 陰陽의 義로서 異質의 物을 和하여 一을 만드는 것이니 理財 正辭 禁民 爲非는 權力으로써 民을 强制하는 것이 아니라 聖人이 大位에 있어 民과 和하여 一하는 것이며 理와 正과 禁이 모두 對立을 調和하여 一하는 易簡의 道이다.

八卦는 包犧氏가 天의象 地의法 鳥獸의文 水土의宜에 合한 蟲魚草木等을 觀하고 近하기는 人身과 遠하기는 萬物에서 取하여 비로소 卦象을 劃한 것이니 이 卦象의 속에는 萬物의 生生하는 情을 包括하고 있는 것이다.

 

乾坤의 神明한 德을 通하고 神明한 德은 天地의 生生하는 大德이오 萬物의 情은 萬物의 生生하는 本能이다.

作結繩而爲網罟라 함은 繩을 結하여 網罟를 만드는 일을 作興한다 함이며 離는 動하는 陽이 靜한 陰에 麗하는 卦이므로 鳥獸魚鼈이 網罟에 麗하는 漁獵生活의 象을 取한 것이다.

 

耒耨之利는 益卦의 巽과 震이 모두 木이오 上入下動하므로 耒耨를 使用하는 農業生産의 象을 取한 것이다.

日中爲市는 噬嗑이 震으로부터 離하여 日中의 象이 있고 春夏의 生長期에 營養을 攝取하는 象이 있고 또 分하고 合하고 하는 象이 있으므로 日中의 市場에서 物貨를 交易하는 交換經濟의 象을 取한 것이다.

 

包犧氏와 神農氏가 網罟를 만드는 일을 作興하고 耒耨의 理를 敎하고 市場을 만들어 交易하게 한 것은 모두 人類始生의 初에 비로소 漁獵農市의 法을 敎한 것이니 이는 人類社會의 生하는 時運의 象이며 아직 人工이 幼穉하여 그 生産이 生活을 充足시키지 못하므로 社會가 窮하여 民心이 倦怠한 것이다. 이에 黃帝堯舜氏가 作하여 社會를 變通하여 民心으로하여금 倦怠치 아니하게 하고 神하고 化하여 民으로하여금 事宜를 얻게 하니 神한다 함은 民이 그 制度를 由行함이 自然스러워서 勉强이 없는 것이오 化한다 함은 民이 스스로 樂從하고 實踐하여 그 規模의 속에 安하는 것이니 이는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다. 易은 天地와 相似하여 窮한즉 變하고 變한즉 通하고 通한즉 久하므로 大有上九爻辭와 같이 自天祐之吉無不利하니 大有上九는 無에서 有를 生하는 象을 말함이라 黃帝堯舜氏의 作하기 以前에 生의 段階가 終하여 社會가 窮하니 이는 無의 象이오 이것을 通其變 神而化之하여 無의 속에서 新有의 社會를 生하여 長의 段階가 始하니 이가 곧 窮變通久로서 大有上九의 뜻에 合하는 것이오 이것이 洛書의 長하는 時運의 始이다.

 

이 節에는 大有乾坤의 三卦가 있다.

黃帝堯舜이 衣裳을 垂하매 天下가 治한다 함은 衣는 上衣이오 裳은 下衣이라 萬物中에 衣裳을 입는 것은 오직 사람이오 衣裳은 古代의 가장 優秀한 人工品이니 이는 人工으로써 天工의 未成함을 成하는 것으로서 社會가 長하는 時運을 맞이함을 象하는 것이다. 乾坤에서 取한 것이라 함은 乾坤은 萬物을 妙하게 하는 神이므로 黃帝堯舜氏가 이 象을 取하여 神而化之의 治를 行한 것이라 함이다.

 

乾坤의 通變以後에는 長하는 時運이 되고 長하는 時運에는 他를 克制하여 自體의 生을 삼으니 이가 곧 洛書五行의 承乃制의 理이다. 그러므로 舟楫은 水險을 克制함이오 服牛乘馬는 牧畜을 하여 動物을 克制함이오 重門擊柝은 暴客을 克制함이오 杵臼는 搗精으로써 穀皮를 克制함이오 弧矢는 不遜을 克制함이다. 渙에 舟楫을 말한 것은 水上에 木이있어 險을 散함을 象한 것이오 隨에 服牛乘馬를 말한 것은 震兌는 乾元과 坤元으로서 서로 係維하고 있으므로 乾馬坤牛의 係維함을 象한 것이오 豫에 重門擊柝을 말한 것은 坤의 括囊의 位에 乾을 得하여 雷와 木이 되어 門과 柝을 象한 것이오 小過에 杵臼를 말한 것은 上木下土하고 上動下止하며 外陰이 消하고 內陽이 存하므로 穀의 搗精을 象한 것이오 睽에 弧矢를 말한 것은 睽는 南北極의 卦로서 南緯와 北緯가 各其 半圓으로되고 그 속에 直한 地軸이 있으며 또 金火에 武器의 象이 있으므로 弧矢를 象한 것이다.

 

易之以宮室 易之以棺槨 易之以書契의 易는 모두 乾以易知의 易이니 易는 易簡의 뜻이다. 十三卦中에서 오직 宮室 棺槨 書契의 三卦에만 乾象과 四陽以上의 盛陽이 陰中에 싸여 있으므로 大哉乾元 大哉乾乎의 뜻을 取하여 大壯 大過 및 夬等의 大字로된 卦名을 쓰니 이는 易之以가 곧 乾易의 뜻이라 함을 表한 것이다. 또 이 三卦에 모두 後世聖人易之以를 말하니 이는 網罟 耒耨 市場의 三卦에 말한 包犧 神農은 生의 時運인 先世의 王이오 易卦中 大象에 先王以라 한 것은 모두 이 先世의 王을 말한 것이며 窮變通久 舟楫 牛馬 擊柝 杵臼 弧矢等의 卦는 克制로써 生을 삼는 長의 時運을 말한 것이며 宮室 棺槨 書契의 卦는 上古의 制度를 變通하여 新制度를 만들어 易簡의 道를 行한 것이므로 先世의 王과 對稱하여 後世聖人이라 한 것이다.

 

大壯에 宮室을 말한 것은 四陽이 陰中에 止하고 上에 東方木의 震이 있어 棟의 象이 되고 棟의 下에 乾이 健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住居하는 宮室을 象한 것이오 大過에 棺槨을 말한 것은 四陽이 顚하여 陰中에 入하고 未濟의 男之窮이 大過의 속에 있어 喪亡의 象이 되고(雜卦參照)乾의 上下에 坤을 得하여 地中에 있고 木이 澤下에 있고 하므로 사람이 죽어서 地中의 木中에 있는 棺槨을 象한 것이오 夬에 書契를 말한 것은 夬卦에 一陰인 兌口가 五陽의 上에 決하고 있는 것은 內部의 陽氣를 口로써 外에 發宣하여 言語의 象이 되니 萬物中에 言語로써 能히 複雜한 事物을 說明하고 서로 그 意志와 思想을 發表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며 言語가 있는 까닭에 또한 文字를지어 書契가 있으니 書契라 함은 人工으로써 文字를 지어 사람들이 서로 約束契合하여 使用한다는 뜻이니 夬卦에 書契가 있는 것은 口로써 意思를 發表하는 象이 있는 까닭이다.

 

書契는 文字의 記錄으로서 有形한 것이오 그 속에 人間의 無形한 모든 意思가 棲在하니 마치 사람은 肉體로 되어 有形한 것이오 그 肉體의 속에 無形한 精神作用이 있음과 같으니 그러므로 書契와 人身의 象이 相似한 것이오 夬는 精子가 卵子를 決하고 入하여 사람의 形質을 成하고 神明이 肉體中에 入하는 象의 卦이므로 初九의趾 九四의臀 九五의角을 말한 것이오 人身의 象과 書契의 象이 相似하므로 夬에 書契를 말한 것이다.

 

上古에는 結繩而治하더니 後世聖人이 易簡케 하기를 書契로써 하였다 함은 十三卦의 初頭와 終末을 對稱한 것이니 結繩而治는 人類發生의 初期에 先王이 漁獵으로써 肉體生活을 하기 爲한 政治를 行한 것이오 書契는 後世聖人이 敎育을 施하여 精神生活을 하기 爲한 政治를 行한 것이니 이는 肉體生活로부터 精神生活에로 向上하는 것이며 여기에 后天時運의 師傅道의 뜻을 寓한 것이다.

 

易이라 함은 象이라 한 것은 易은 卦象을 取한 글이라 함이오 象이라 함은 像이라 한 것은 像은 人事의 象을 말함이니 이는 易은 사람의 生生을 爲하여 人事의 象을 取한 글이므로 前記한 十三卦도 모두 卦象을 取하여 人事를 말한 것이라 함이다.

 

三. 彖者材也 章

彖者材也

材는 器를 作하는 木材로서 物을 組成하는 材料의 뜻이니 彖은 卦의 組織을 말한 것이므로 材라 한 것이오 上文의 十三卦는 彖의 材를 말한 것이다. 爻는 天下의 動함을 效한 것이오 그 動함을 因하여 吉凶이 生하고 悔吝이 外面에 著하는 것이다. 著가 著 着 로 變字함

 

 

 

 

 

 

 

 

 

 

 

 

 

 

 

 

 

 

 

 

四. 陽卦多陰 章

陽卦多陰陰卦多陽 ... 陰二君而一民小人之道也

三劃卦에는 一이 主가 되는 것이므로 一陽二陰의 卦는 一陽이 主하여 陽卦로 되는 것이오 一陰二陽의 卦는 一陰이 主하여 陰卦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德行은 運行하는 陽을 主하는 것이니 一陽二陰의 卦는 一陽이 君하고 二陰이 民하여 一君을 中心으로하여 聚하므로 統一作用이 行하는 것이오 二陽一陰의 卦는 二陽이 君하고 一陰이 民하여 二君이 分立하여 蔽하므로 서로 分散하는 것이다. 天下의 運動은 統一된 然後에 調和가 되어 이것을 君子의 道라 하는 것이오 運動이 分散되면 調和가 없어서 生生치 못하니 이것을 小人의 道라 하는 것이다.

 

易學은 震子의 生成史이니 善에 一하여 震子의 生成을 爲하는 者는 君子의 道이오 惡의 쪽으로 分立하여 震子의 生成치 못하는 者는 小人의 道이니 以下 十一卦의 爻는 이 道를 말한 것이다.

 

易曰憧憧往來朋從爾思 ... 窮神知化德之盛也

九四爻 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이는 咸九四爻의 解釋이오 震子의 生成함을 말한 것이다.

咸은 感함이니 少男少女가 相配하고 男이 女에 下하여 感應하는 象이 되고 坤中에 乾을 包하여 物의 組織의 象이 되므로 夫婦感應의 卦로 되는 것이오 九四는 相感하는 心의 位이므로 憧憧이라 하니 憧은 心과 童으로 되어 童心의 象이오 少男少女의 二童의 心을 象한 것이오 往來는 外坤內乾의 陰陽往來함을 象한 것으로서 또한 男女가 相思往來한다는 뜻이오 朋從爾思는 朋은 陰으로서 兌陰이 艮陽의 思를 從한다는 뜻인데 또한 朋은 달의 陰精의 象이오 艮陽은 光明의 象이라 달의 陰精이 光明을 從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咸은 달의 形質의 卦인데 九四는 乾陽의 中心이므로 달이 乾陽을 受하는 象이 되는 것이며 朋은 달의 象이니 朋從爾思는 달이 乾陽의 光明을 受함이다. 艮兌의 여무는 것이 곧 달의 여무는 것인데 咸은 艮兌가 夫婦로 되는 것이므로 少男少女의 여무는 象이 되어 달이 여물고 달의 여문 것이 곧 后天달이니 그러므로 咸에서 后天달이 여물며 正易에 萬曆而圖兮咸兮恒兮는 后天달의 生함을 말함이니 이가 日月變化의 象이다.

 

何思何慮라 함은 思는 深通함이오 慮는 謀思함이니 咸卦의 山澤通氣는 아무런 造作이 없는 無心의 感이므로 何思何慮라 한 것이다. 塗는 震의 大塗의 象이니 震子는 生命의 原이오 殊塗라 함은 사람마다 各殊한 生命을 所有하고 있다 함이며 咸卦의 艮은 震의 反易이오 兌는 文王八卦圖에 震으로 더불어 相交하는 것이므로 同歸而殊塗一致而百慮라 함은 震子를 中心으로하여 艮兌가 同歸一致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咸卦는 外坤內乾한 天地의 象이 있고 또 二少의 夫婦로서 萬物化生하는 象이 있으므로 그 속에는 스스로 萬物의 生命과 形質을 生成하는 日月寒暑의 象이 있으니 生命은 光明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萬物의 씨는 日月에서 生하고 形質은 寒暑로써 養하는 까닭에 萬物은 四時의 推移에 依하여 生成하는 것이라 日月이 相推하여 明이 生하고 寒暑가 相推하여 歲가 成하고 하는 것은 日月이 無心한 感으로써 서로 往來하여 生命과 形質의 生成하는 것이다.

 

屈은 退轉함이오 信은 孚로서 陽氣가 뭉치는 것이니 物의 往하는 者는 退轉하고 來하는 者는 新生命의 生하는 것이므로 舊物이 退轉하면서 新物이 生하니 이것을 屈信相感이라 하며 信은 陽이 陰中에 入하여 뭉치는 象이므로 陽이 陰中에 入하여 義로 和하는 利의 象이 되니 利가 生한다 함은 이 뜻을 말함이며 咸은 乾이 坤中에 있어 陽이 陰中에 入하는 象이 되므로 信과 利를 말한 것이오 이것을 時運으로써 보면 天道로부터 地道로 넘어가고 生의 時運으로부터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象이 되는 것이다.

蠖은 桑上虫이오 桑은 東方神木이니 東方木上의 尺蠖은 震子의 象이오 龍은 震子의 象이므로 龍蛇가 또한 震子의 象이다. 咸卦는 天道로부터 地道로 넘어가서 震子가 內部에 入하여 信하는 것이므로 尺蠖之屈以求信이라 함은 震子가 陰體中에 入하여 뭉침이오 龍蛇之蟄以存身 이라 함은 震子가 冬眠하여 精을 養하고 艮의 形質을 成함이다.

 

易에는 乾坤에 龍의 象을 말하고 그 以外에는 오직 咸九四에 龍을 말하니 이는 龍은 乾坤을 繼世하는 震子이오 咸卦에 乾坤을 繼世하는 震子의 生하는 象이 있으므로 龍蛇의 蟄을 말한 것이다.

 

精은 水火의 精의 通明함이오 義는 陰陽의 義이니 精義라 함은 艮山의 光明과 兌澤의 陰精이 義로 和하여 相合한다 함이오 入神이라 함은 形質이 神의 作用에 依하여 運行된다 함이니 精義入神이라 함은 山澤의 形質은 精이오 山澤의 精을 運行하는 것은 雷風의 氣이오 雷風의 氣는 神이니 山澤의 精이 義로 和하여 陽이 內에 入하고 雷風의 神에 依하여 運行되는 것이 곧 精義入神이다. 致用이라 함은 艮陽이 內에 入하여 體로 되고 兌陰이 外에 있어 用이 된다 함이니 이는 成의 時運에 陽이 內에 있어 體로 되고 陰이 外에 있어 用으로 됨을 말함이오 利用安身이라 함은 外에 있는 兌陰의 用을 義로 和하여 內에 있는 艮身을 安한다 함이니 이는 陽體陰用의 象을 말함이오 崇德이라 함은 聖人이 易簡의 道로써 生生하는 德을 崇함이니 이는 艮兌의 形質이 陽體陰用하고 雷風의 神에 依하여 運行되고 하는 成의 時運에는 易簡의 道가 行하여 德이 崇하여 天에 通한다 함이다.

 

過此以往未之或知라 함은 咸卦의 成의 時運을 過하면 그 以後는 未知의 未來后天이라 함이오 窮神知化라 함은 后天의 成의 時運은 神하여 化하는 時運이므로 神道를 窮하여 天下를 化成함을 知한다 함이니 窮神知化가 곧 人間社會가 神化되어 生生의 德의 盛한 后天時運이라 함이다. 咸卦九四는 天地感應의 中心에 있어 陽이 陰中에 入하는 位로 되어 있으므로 거기에 陽體陰用하는 后天의 象을 말한 것이다.

 

易曰 困于石據于蒺藜 ... 妻其可得見邪

이는 困六三爻의 解釋이오 陰이 陽을 蔽하여 震子와 兌精이 모두 生成치 못함을 말한 것이다. 六三爻辭 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困卦는 巽兌陰精이 水를 合한 生長卦이므로 胎宮卦로 되는 것인데 陰이 陽을 掩하고 水가 澤中에 在하여 澤無水의 象이 되고 六三은 陰이 陽을 掩하는 爻이므로 六三에 困危한 象이 있는 것이다. 六三으로 剛鹵한 澤底를 負하니 地中水의 上面의 底土는 剛鹵하여 石의 象이 되므로 石에 掩蔽되어 困하다 함이오 下로는 蒺藜에 據하니 蒺은 疾草로 되고 疾은 陽이 陰에 陷하여 病이 된 것이므로 蒺은 陽의 疾病한 草이오 藜는 旱草로서 旱害의 年에 蒺藜가 먼저 生하는 것이니 據于蒺藜는 旱害에 걸린 病草에 據한다 함이오 이는 六三의 陰이 九二의 生의 中心의 生命水를 掩蔽함을 말함이다. 六三이 生命水를 掩하여 澤에 水가 없으니 澤은 陰體陰宮의 卵子의 象이오 卵子는 妻의 象인데 澤에 水가 없어서 卵子가 生치 못하니 이는 陰宮에 卵子가 없는 象이므로 그 陰宮에 入하되 그 妻를 見치 못한 것이며 이미 生命水가 없고 또 物의 資生하는 卵子가 없으므로 凶한 것이다

 

辱은 辰과 寸으로 되어 辰은 農耕時라는 뜻이오 寸은 法度라는 뜻인데 寸이 辰의 下에 있어 疆土가 農耕의 法度를 失하여 荒蕪한 象이오 疆土의 荒蕪한 것이 곧 辱이니 澤底의 石에 掩蔽되어 疆土가 荒蕪한 것이 곧 名必辱이오 危는 人이 厓上에 있어 危懼함이니 剛을 乘하고 旱草에 據한 것이 곧 身必危이다. 이미 辱하고 또 危하여 農耕이 失時하고 旱害로 因하여 草木이 生育치 못하고 하므로 死期가 將且至한다고 한 것이다.

 

困은 胎宮卦로서 震子를 胎育하는 象이오 震은 木의 象이므로 困字가 圍의 속에 木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六三의 無水의 位에 農耕 旱草等 草木의 象을 取한 것이오 六三은 陰이 陽을 蔽하여 震子가 生成치 못하므로 이는 小人의 道라 함이다.

 

易曰公用射隼于高墉之上 ... 語成器而動者也

이는 解上六爻의 解釋이오 陰이 震子를 承受함을 말한 것이다.

上六爻辭 解釋에「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解卦는 凍氷이 解하여 百果草木이 甲坼하는 象인데 屯과 함께 雷水의 男卦이로되 屯은 生長卦이므로 씨의 象이 되고 解는 收斂卦이므로 陰精이 陽氣를 承受하는 象이 되는 것이오 上六은 氷解의 成한 位이므로 上六에 陰精의 器가 成하여 陽氣를 承受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公은 乾陽의 王과 對稱하여 坤의 陰精을 象한 것이며 隼은 禽이오 禽은 鳥獸의 胎卵으로서 震子를 含한 陽精을 象함인데 隼의 象을 取한 것은 解上六은 陰精의 器의 成한 것이므로 그 承受하는 禽도 또한 陽精의 成한 것이오 隼字는 隹와 十으로되고 十은 數의 成함이니 그러므로 隼은 禽의 成한 者이다. 解의 陰精은 坤으로서 달의 陰精의 象이오 달의 陰精이 陽氣를 受하여 震子와 兌精의 相遇하는 것은 同人卦九五爻의 先號咷而後笑의 象이오 高墉은 同人卦九三의 高陵과 九四의 墉이니 公用射隼于高墉之上獲之라 함은 달의 陰精이 陽精을 射하여 獲하되 高墉의 上에서 號咷하는 震子를 獲한다 함이오 이는 解卦에 달의 陰精이 있음을 表示하기 爲하여 달의 陰精과 乾陽의 相遇하는 同人卦의 象을 말한 것이다.

 

弓矢者器라 함은 弓矢는 坎의 弓輪의 象으로서 陰精이 陽氣를 取하는 器라는 뜻이니 解九二爻의 黃矢가 곧 器이오 射之者人이라 함은 射隼하는 곳은 同人의 高墉上의 震子라 함이오 待時而動이라 함은 陰精이 解하여 器의 成하는 時를 待한다 함이오 何不利之有라 함은 陰精과 陽氣가 相遇하여 義가 和한다 함이오 動而不括이라 함은 陰精의 解함이 成하여 括囊치 아니한다 함이다.

解上六은 君子가 器를 成하고 動하여 陽氣를 承受하므로 이는 君子의 道라 함이다.

 

 

子曰小人不恥不仁 ... 屨校滅趾無咎此之謂也

이는 噬嗑初九爻 解釋이오 震子가 花中의 子仁으로 됨을 말함이다.

初九爻辭의 解釋에 「易曰」의 象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噬嗑卦는 文王八卦圖의 東方震으로부터 南方離를 行하는 生長卦이므로 太陽이 朝로부터 午中하고 四時가 春으로부터 夏하여 生長이 盛하고 震子가 離火의 陰宮에 入하여 草木의 花가 開하고 子仁이 始生하는 象이다. 花가 開하는 것은 生長의 象이오 子仁이 生하는 것은 收斂의 象이니 그러므로 噬嗑에는 分과 合의 兩象이 있는 것이며 物의 生長함에는 반드시 他를 克하여 食物을 삼는 것인데 噬嗑은 震子의 生長의 盛한 象이므로 他를 克하여 食物로 하는 뜻을 取하여 噬嗑이라 하니 噬는 他를 克하여 分解한다는 뜻이오 嗑은 그 分解된 營養을 合한다는 뜻이다.

 

初九는 震子의 位로서 子仁의 象이므로 陰體인 花中에 入하여 子仁으로 生하는 것이다. 屨는 足을 繫함이오 校는 木囚이오 趾는 震象으로서 足의 行함이오 滅은 沒入함이니 屨校滅趾無咎라 함은 震子를 木에 繫하여 行치 못하게 하고 陰陽이 異各치 아니한다 함이오 이가 곧 花中에서 子仁의 生하는 象이다. 小人은 昏暗하여 形質의 生長만을 主하고 精神生活은 知치 못하는 사람이오 仁은 子仁이오 義는 陰陽이 義로 和함이니 初九는 春夏生長卦의 陽으로서 陰中에 包在한 然後에 世世繼承하는 씨로 되는 것이오 만일 形質이 長하기만 하고 그 속에 震子를 收斂치 아니하면 子仁이 生치 아니하여 不仁이 되고 陰陽이 義로 和치 못하여 不義가 되는 것이니 小人은 이러한 不仁을 自塊反省치 아니하고 이러한 不義를 畏懼收縮치 아니하는 것이다. 利는 物의 收成함이오 勸은 合力함이오 威는 陽이 陰中에 壓入함이오 懲은 徵과 心으로 되어 心의 收斂함이니 小人은 收成하는 利를 見치 아니하면 力을 合하지 아니하고 陰中에 壓入하지 아니하면 心이 收斂치 아니하는 것이다. 小懲而大誡라 함은 小는 陰이니 形質의 象이오 大는 陽이니 精神의 象이라 形質인 趾를 懲하여 精神을 깨닫게 한다 함이니 形質의 罰을 받고 精神이 覺醒하는 것은 小人의 福이오 福이라 함은 光明의 속에서 生命이 長하고 있음을 象함이니 이 爻는 小人이 君子로 化함을 말함이다.

 

善不積不足以成名 ... 易曰何校滅耳凶

이는 噬嗑上九爻의 解釋이오 震子의 生育치 못함을 말한 것이다.

上九爻辭의 解釋에 「易曰」의 象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小人은 달의 陰精이니 剛柔分의 卦로서 上에 極하여 月虧의 象이 되므로 小人惡의 象이 된 것이다. 解卦는 달의 陰精이 陽光을 受하는 것인데 噬嗑上九는 月虧하므로 解치 못하는 것이며 小人惡은 剝의 小人長의 뜻이다.

 

木의 生生은 水液이 科條의 上端까지 上昇하여 震子가 生育하는 것인데 上九는 生長의 極으로서 火의 炎上하는 位에 있어 科條의 水液이 枯渴하고 또 陰中에 包在되지 못하여 스스로 枯하는 象이 되어 씨의 原으로 되는 震子가 없는 것이니 이는 木囚의 校를 負하고 있는 象이며 水液은 坎象이오 坎은 耳이니 科條에 水液의 枯渴한 것은 滅耳의 象이 되는 것이다.

 

小라 함은 形質의 私를 말함이니 小善은 形質의 私慾을 自克함이오 小惡은 形質의 私慾을 自恣함이다. 善은 자주 行하여 積한 然後에 成名할수가있고 惡은 한번 行하고 다시 行치 아니하여 善하지 아니하면 滅身되지는 아니하는 것인데 小人은 形質의 私慾을 自克하는 것을 小善이라 하여 그것은 益함이 없다 하여 行치 아니하고 形質의 私慾을 自恣하는 것은 小惡이라 하여 그것은 傷함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掩은 陽이 陰의 속에 掩蔽되어 發育함이오 解는 雷雨가 作하여 凍氷이 解함이라 上九는 形質만 長하고 陽이 陰의 속에 掩蔽되지 못하니 이는 小人의 自恣하는 惡이 積하여 掩치 못하는 象이오 科條가 枯하여 水液이 없어서 解치 못하니 이는 小人의 惡한 罪가 長하여 解치 못하는 象이며 이 爻에 「子曰」이 없는 것은 罪積罪大가 모두 男體陽精의 枯渴함을 象한 것으로서 師傅는 이것을 口筆치 아니하는 까닭이다.

 

子曰危者安其位者也 ... 易曰其亡其亡繫于苞桑

이는 否九二爻의 解釋이오 震子의 胎育을 말한 것이다.

九五爻辭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달이 下弦을 지나서 光明이 消하므로 日月變化가 되는 것이다.

 

否卦는 天氣가 上에 在하여 더욱 上升하고 地氣가 下에 在하여 더욱 下降하므로 天地가 相交치 못하고 否閉하는 象이 되는 것인데 否卦의 否閉는 二氣가 相通치 못하는 否閉가 아니라 否卦가 泰卦로부터 震子를 承受하여 胎育하는 것이므로 胎宮의 門이 否閉하고 있는 象이며 九五는 成의 中心에 胎兒를 胎育함에 喪亡하는 일이 있을까 戒懼하여 苞桑에 繫한다 함이니 이는 天地가 上下로 相離하면서 또한 相離치 아니하는 것이 곧 喪亡을 戒懼하여 繫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桑은 東方의 日出方의 木을 象한 것이오 震子는 太陽의 光明에서 오고 震은 文王八卦圖의 東方에 位하여 草木의 象이 되고 있으므로 九五에 震子를 胎育함을 象하여 苞桑에 繫한다 한 것이오 苞는 草로써 包한다는 뜻으로서 震子가 陰體中에 包在하여 生育함을 象한 것이다.

 

危者安其位라 함은 危懼하는 者가 그 危를 克하여 그 位를 安全케 한다 함이오 亡者保其存이라 함은 亡할 것을 두려워하는 者가 그 生存을 保全한다 함이오 亂할 것을 두려워하는 者가 그 治를 有한다 함이니 이는 否하는 속에 通함이 있는 理를 말한 것이다.

 

子曰德薄而位尊 ... 言不勝其任也

이는 鼎九四爻의 解釋이니 震子가 巽股를 犯함을 말한 것이다.

九四爻辭 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鼎은 胎宮에서 달이 여물어서 出生하는 象이므로 日月變化의 象이 되는 것이다.

 

鼎卦는 巽兌陰精이 火를 合한 生長卦로서 胎宮卦로 되므로 水火烹飪의 象이 있어 震子를 胎育하여 成하는 象이 되는데 九四는 初六의 巽股를 應하여 陽이 陰에 陷한 象이 되는 것이다.

 

足은 震子의 象이오 九四의 陽이 巽股를 應하여 陷하므로 折足이 된 것이며 公은 坤의 象이오 餗은 烹飪한 粥으로서 陽體의 陽精을 象함이니 覆公餗이라 함은 巽股를 應한 까닭에 坤陰에 施할 陽精을 顚覆遺失하였다 함이며 渥은 水와 屋으로 되어 水의 下注하는 象이니 其形渥이라 함은 陽精을 股에 下施함이 水의 下注함과 같다 함이다.

德薄而位尊이라 함은 九四가 乾體로서 震子를 包하여 健德이 있으나 震子와 巽股는 雷風이 相薄하므로 德이 薄하고 그 位는 上卦에 居하여 尊하다 함이오 知小而謀大라 함은 九四는 乾體로서 乾以易知의 知가 있으나 下로 陰股를 應하므로 知가 小하고 그 謀는 乾知大始의 作用을 行한다 함이오 力小而任重이라 함은 九四는 乾體로서 馬의 引重致遠하는 力이 있으나 足이 折하므로 力이 小하고 그 任은 重을 引하고 遠에 致하는 일이라 함이다. 鮮은 震의 蕃鮮으로서 震子가 胎中에 始生하여 微少하다 함이니 鮮不及이라 함은 震子가 微少하고 巽股를 犯하여 德薄 知小 力少하므로 等位 大謀 重任에 不及한다 함이오 이가 곧 不勝其任의 뜻이다.

子曰知幾其神乎 ... 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

이는 豫六二爻의 解釋이오 震子의 奮出함을 말한 것이다.

六二爻의 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豫卦는 一陽이 中爻에 있고 震子가 坤母로부터 奮出하여 河圖時運으로부터 洛書時運으로 옮기는 때에 長의 時運의 달의 始生하는 象이 되므로 天地가 順으로써 動하여 日月이 過치 아니하고 四時가 忒치 아니한다 한 것이며 六二는 生의 中心에 있어 달의 幾微하는 位로 되는 것이다.

 

石은 艮의 象이오 介는 成終成始하는 交界이다. 地中에서 奮出하는 震은 반드시 稼와 같이 反生하고 反生하기 以前은 艮이니 石에 介한다 함은 生의 中心인 六二에 震으로 反生할 艮이 있어 成終成始의 作用을 行한다 함이다.

 

不終日이라 함은 日이 終치 아니한다 함이니 六二에는 震子의 反生하는 幾가 있고 艮으로부터 震이 反生하는 것은 晦月이 初生月로 反生하는 象이오 이는 九四의 奮出하는 震子는 下로는 互艮이 되어 晦月의 象이 되고 上으로는 震이 되어 初生月의 象이 되는 까닭이며 달은 太陽의 終하는 位에서 生하고 太陽은 三爻에서 終하는 것이므로 乾卦九三에 終日夕惕과 可與幾 可與存義의 象이 있는 것이며 豫卦도 六三의 位에서 太陽이 終하고 달이 生하는 것이나 六二에 달의 生하는 幾가 있어 六三의 日終을 俟치 아니하고 이미 달이 生하니 이가 不終日의 뜻이다.

 

貞吉이라 함은 保合하여 生命의 生한다 함이니 震子가 生의 中心에서 生하고 있으므로 貞吉이라 한 것이다.

幾는 달의 光明의 始生하는 幾微이오 知幾其神乎라 함은 繫辭의 「神以知來」라는 뜻으로서 六二에서 달이 그 生하는 幾微가 있음을 知하는 것이 곧 神한 것이라 함이니 이는 日月의 政이 至神至明한 까닭이다. 諂은 사람의 氣가 坎地에 陷함이오 瀆은 坎의 溝瀆으로서 水土의 混함이니 豫卦는 大坎의 象이 되어 上諂下瀆하는 象이 있으되 雷가 艮石에서 動하여 奮出하고 있으므로 上을 交하되 氣가 諂치 아니하고 下를 交하되 水土에 混瀆치 아니하니 이는 幾를 知함이 神한 까닭이다. 幾라 함은 動하는 幾微로서 朔日의 先現함이오 吉은 朔日이니 이는 震子가 反生하여 朔日이 됨을 말함이오 달은 六二에서 幾微가 動하여 六三의 日終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하므로 朔日이 先現한다 한 것이다.

 

爻辭에는 介于石이라 하고 解釋에는 介如石이라 하니 介于石이라 함은 成終成始하는 艮山에 界한다 하여 그 處位를 말함이오 介如石이라 함은 界함이 成終成始하는 艮山과 같다 하여 그 終始하는 作用을 말함이며 斷이라 함은 異段事를 裁하여 一로 決하는 것이니 終에서 始하는 兩段事를 裁하여 달을 生하는 一事를 決하는 것이 곧 介如石의 뜻이다.

 

微는 動의 微로서 未來라는 뜻이오 彰은 彰往으로서 過去라는 뜻이니 知微知彰이라 함은 時間의 未來와 過去를 知한다 함이오 柔剛은 地道의 柔剛으로서 天道陰陽의 뜻이니 知柔知剛이라 함은 空間의 陰과 陽을 知한다 함이다. 望은 月幾望의 望으로서 陰精이 陽의 光明을 受함이니 萬夫之望이라 함은 乾卦의 「聖人作而萬物覩」의 뜻으로서 萬人이 君子의 光明을 望함은 달이 太陽의 光明을 望함과 같다 함이다.

 

君子 知微知彰知柔知剛 萬夫之望이라 함은 豫卦는 河圖의 生의 時運으로부터 洛書의 長의 時運으로 變하는 象의 卦로서 달도 長의 象으로되고 사람의 精化의 씨도 豫卦의 달에서 地로 下來하여 形質을 成하는데 씨는 반드시 男體에서 生하는 것이므로 豫卦에서 下來하는 씨는 곧 震子로서 精子의 象이 되고 그것이 地에 下來하면서 男女로 分化한 것이니 君子는 달의 象이오 知微知彰은 河圖時運의 過去로부터 洛書時運의 未來로 向한다 함이오 知柔知剛은 陰精으로서 太陽의 光明을 受한다 함이오 萬夫之望은 夫는 男體라는 뜻으로서 달에서 生하는 사람의 씨는 모두 男體의 精子이라 함이오 望은 달의 光明을 受한다 함이니 이 爻는 달의 光明으로써 君子의 光明에 擬하여 말한 것이다.

 

子曰顔氏之子其庶幾乎 ... 不遠復無祗悔元吉

이는 復初九爻의 解釋이오 震子가 陰中에 來復하여 長함을 말함이다.

初九爻辭 解釋에 「易曰」이라 한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復卦는 剝의 一陽이 上에 窮하여 下에 反하는 象이며 草木에 있어서는 子仁의 象이 되고 달에 있어서는 光明의 長하는 象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復卦는 洛書時運의 始生하는 달로서 正易에 말하는 「復上月」이며 復卦에 天地之心의 象이 있으므로 또한 天心月이라 하는 것이다.

 

初九는 復卦의 달의 來復하는 主爻이다. 復卦에는 天地之心이있고 天地之心을 中心으로하여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이 있는데 初九는 心의 象으로서 出入往來함이 있으되 中心에서 遠하지 아니하고 向心運動에 依하여 그 道를 反復하고 있으며 悔라 함은 陽의 發動이 過度하여 陰과 異各함을 後悔하는 것인데 初九는 遠心과 向心의 運動을 行하므로 遠치 아니하여 復하여 過度치 아니하고 後悔하기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이며 元吉이라 함은 陽이 陰에 附하여 生育하는 것이니 初九는 달의 光明의 象으로서 陰精과 異各치 아니하고 反復往來하므로 不遠復 無祗悔 元吉의 象이 된 것이다.

 

顔氏의 子는 孔子弟子인 顔回를 말함이오 子라 한 것은 震子를 象함이며 庶는 庶物의 뜻이오 幾는 動의 微함이니 이는 震子의 生育하는 象을 말함이다.

 

不善은 坤初六文言의 不善이니 震子가 巽股를 犯함을 말함이며 顔氏의 子는 不善을 復行치 아니하므로 善의 繼生하는 象이 되는 것이오 善의 繼生은 곧 光明의 象이니 이는 顔回의 心에 光明이 息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天地絪縕萬物化醇 ... 言致一也

이는 損六三爻의 解釋이오 陰陽의 致一함을 말함이다.

六三爻辭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損益은 달의 陰精이 乾陽을 承受하여 后天달을 生하는 象인데 六三은 用六爻이므로 달을 受胎하는 象을 말한 것이오 이가 달의 變化의 象이다.

 

損卦는 內坤外乾한 山澤卦로서 山과 澤이 相應하고 乾이 坤을 包하고 圜行하는 象이며 이것을 乾坤의 象으로 볼 때에는 三爻의 陽을 損하여 上爻의 陰을 益한 象이 되므로 下를 損하여 上을 益하는 損卦로 된 것이며 六三爻는 下를 損한 主爻이오 또한 乾坤卦의 用六宮에 當하므로 男女相交의 象이 있는 것이다.

 

三人行則損一人이라 함은 下卦는 本乾으로서 三人의 象인데 三爻의 陽을 損하여 上爻를 益하니 이는 三人의 行하던 것을 一人을 損한 象이 되는 것이오 一人行則得其友라 함은 六三의 陰은 一人의 女인데 上九의 陽을 應하여 그 友를 得하여 夫婦가되니 이는 一人이 行하여 그 友를 得한 象이 되는 것이다.

 

絪縕이라 함은 노끈을 꼰다는 뜻이니 陰陽의 相交함을 象함이오 化醇이라 함은 醇은 穀을 釀하여 酒를 만드는 것으로서 化學的作用에 依하여 異質의 物을 生함을 象한 것이다. 天地가 相交하여 萬物이 精化하고 男女가 精을 構하여 萬物이 形化하니 여기에 男女라 함은 萬物의 牝牡 雌雄을 通稱한 것이며 이는 萬物은 乾元坤元의 二元作用에 依하여 生生하는 것인데 만일 三이 되면 二元作用이 行치 못하고 一이 되면 獨陰獨陽은 生치 못하는 것이므로 夫婦關係는 반드시 二元組織의 一夫一婦制를 쓴다 함을 말한 것이오 一夫一婦가 곧 陰陽의 致一이다.

 

六三은 天地卦의 用六의 位이오 天地가 相交하여 震子를 生하는 것이므로 天地의 二元組織과 人間의 一夫一婦制를 말한 것이며 이 解釋에「 子曰」이 없는 것은 師傅는 男女構精에 對한 일을 말하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子曰君子安其身而後動 ... 立心勿恒凶

이는 益上九爻辭의 解釋이오 上九爻辭解釋에 易曰이 있는 것은 日月變化의 象이 있는 까닭이다. 上九는 益의 極에 居하므로 先天달의 傷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益卦는 內坤外乾한 雷風卦로서 雷와 風이 相應하고 乾이 坤을 包하고 運行하는 象이며 이것을 乾坤의 象으로써 볼 때에는 四爻의 陽을 損하여 初爻의 陰을 益한 象이 되므로 上을 損하여 下를 益하는 益卦로 된 것이며 上九爻는 益의 極이 되니 益이 極하면 衰하는 것이오 上下卦로써 보면 上卦가 下卦를 益하여 上九는 受損의 地가되니 그러므로 上九는 益할 이가 없는 것이오 益하여 已치 아니하면 溢하여 반드시 決하는 것이므로 或來擊하는 者가 있는 것이오 心이라 함은 陽氣가 陰體의 內外를 出入하는 것이니 內乾外坤한 咸卦九四에 縕과 感의 心이 있고 恒卦의 恒이 心으로되고 復에 天地의 心이 있고 한 것은 이 까닭이며 益上九는 天地圜行하는 卦에 陽의 衰決하는 位에 있어 陰을 得치 못하므로 心을 立함에 恒常한 體가 없어서 陷한 것이다.

 

益卦는 乾坤卦인데 上卦巽이 天氣下降의 象이 되고 下卦震이 地氣上升의 象이 되어 天이 地를 包하고 圜行하여 天施地生하는 象이 되니 이는 乾卦가 乾의 속에 있는 坤을 包하여 圜行하면서 萬物을 生함과 같은 것이며 그러므로 乾卦에 文王八卦圖를 圜行하는 象이 있어 彖辭에 그것을 말한 것이오 益卦에 또한 文王八卦圖의 象이 있으니 彖辭에 益動而巽 日進無疆 天施地生 其益無方 凡益之道與時偕行이라 함은 文王八卦圖의 象을 말한 것이다. 益은 正東의 震으로부터 東南의 巽으로 行하여 文王八卦圖를 順行하는 始로 되어 있으므로 動而巽이라한 것이오 그 卦體가 大離로 된 것은 正南의 離이오 內包된 坤은 西南의 坤이니 日進은 離의 象이오 無疆은 坤의 象이다. 天施는 成의 中心인 九五이오 地生은 生의 中心인 六二인데 九五는 天氣의 下施하는 中心이 되어 天施하는 象이 되고 六二는 民說의 位이오 說은 兌의 象이므로 六二는 兌精의 地生하는 象이 되는 것이니 天施地生은 正西의 兌이오 無方은 神無方의 뜻으로서 乾의 統天의 象이므로 其益無方은 西北의 乾의 象이다. 益之道與時偕行은 곧 木道乃行이오 木道乃行은 坎水의 大川을 涉하는 것이니 坎은 正北의 大水이오 益에 大水의 象이 있으므로 益字가 皿上에 橫水가 있어 水의 橫溢함을 象한 것이며 大水를 涉하고 이에 木道가 行하니 木道는 艮의 成終成始하여 震巽益의 木을 生하니 文王八卦圖에 震三巽八이 三八木이니 文王八卦圖를 圜行하는 震巽의 天施地生하는 道가 곧 木道이오 三八木은 또한 三劃八卦의 뜻이오 三劃八卦의 三八木은 곧 易이므로 木道는 易道이다.

 

益卦는 乾卦와 같이 文王八卦圖의 象을 具하는데 乾은 文王八卦圖를 順行하여 物을 生成하는 象이 되고 益은 震子가 陰宮에 入하고 天施地生하여 次世代를 生하는 象이 되니 이는 益卦에 時運의 變化가 있는 象이다.

 

萬物의 生生은 그 體가 安定한 然後에 그 氣가 平하고 그 氣가 平한 然後에 그 對象과 相交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體가 安한 後에 動하고 그 心이 平易한 後에 相語하고 그 交가 定한 後에 同氣가 相求하는 것이며 全은 太陽이 恒常하여 性이 全하다는 全으로서 恒常하다는 뜻이오 이 三者를 修한 然後에 立心함이 全하여 恒常한 것이다. 그런데 上九는 陰을 得치 못하여 그 身이安치 못하고 危以動하는 象이 되며 衰決의 位에 있어 그 氣가 平易치 못하고 懼以語하는 象이 되며 立心함이 恒常치 못하여 交가 定치 못하고 無交而求하는 象이 된 것이며 危以動하므로 民이 應與치 아니하고 懼以語하므로 民이 應從치 아니하고 無交而求하므로 民이 施與치 아니하니 民은 陰의 象이라 民이 應與치 아니하면 獨陽이 되어 全치 못하고 恒常치 못하여 先天의 陽運의 衰決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五. 乾坤易之門 章

子曰乾坤其易之門邪 ... 夫易彰往而察來 ... 其稱名也 ... 井以辨義巽以行權

이 章은 第一章의 乾確坤隤의 象으로부터 爻象動乎內吉凶見乎外의 뜻을 承한 것이다. 易의 卦는 모두 乾坤의 相交로써 成하여 乾坤의 속을 出入하는 것이므로 乾坤은 易의 門이라 한 것이며 乾은 陽物이오 坤은 陰物이니 卦는 모두 陰劃과 陽劃이 合하여 成한 것이므로 陰陽이 德을 合하고 剛柔가 體가 있다고 한 것이다. 撰은 巽으로되고 巽은 天氣가 下降하여 地에 接한 것이므로 天地의 氣의 相接함을 象함이니 體天地之撰이라 함은 모든 卦가 天地의 氣의 相接한 것을 體로 한다 함이오 通神明之德이라 함은 모든 卦는 乾坤의 神明한 德을 通한다 함이다.

 

모든 卦의 名稱은 天地의 象을 雜合하여 乾確坤隤의 範圍를 越치 아니하니 그 取한 바의 事類로써 보건대 그것이 易簡의 道로써 衰世를 濟하려는 뜻이다. 夫易彰往의 易은 上文의 易之門의 易을 指함이다. 彰往은 知以藏往의 뜻이오 察來는 神以知來의 뜻이오 微顯은 藏諸用의 뜻이오 闡幽는 顯諸仁의 뜻이니 이는 乾坤의 門이 內外로 闔闢하는 象이며 乾坤의 門이 開하여 卦의 名稱을 適當히 하고 爻의 等을 辨하고 擬하는 言을 正하게 하고 辭를 裁하여 一로 決하고 하여 象爻言辭가 備한 것이다.

 

卦名을 稱함은 小하되 事類를 取함은 大하고 卦象의 旨는 遠하고 卦辭는 物을 雜하여 文하며 그 言은 曲盡하여 的中하고 그 事는 極陳하되 隱蔽한 것이다. 貳는 二君의 二로서 貞夫一의 一과 相對한 것이오 失得은 吉凶의 象이니 民行은 二하면 失하여 凶하고 一하면 得하여 吉한 것이다. 그러므로 易은 衰世의 民行이 二함을 因하여 易簡의 道로써 濟하여 一로 調和하고 吉凶失得의 應報를 明示하여 天下로 하여금 貞一의 道에 歸하게 하는 것이니 이가 곧 乾坤易簡의 門을 出入하는 象이다.

 

六. 九德 章

易의 興이라 함은 中古의 長의 時運에 文王이 다시 八卦圖를지어 易學을 興함을 말함이며 憂患이라 함은 不與聖人同憂의 憂와 與民同患의 患으로서 人世의 易簡치 못함을 憂患함이다. 그러므로 九德卦는 사람이 易簡의 道를 본받아서 生生의 德을 進함을 말한 것이다.

 

九德卦는 乾坤易簡의 德이 物을 生生하는 順序를 말한 것이니 乾의 九五天位에 天德이 있어 德의 發源이 되고 履의 달에서 日月이 相交하고 謙에서 天道下濟하여 地上에 사람의 씨가 下來하고 復에서 洛書月이 光을 生하여 陽體의 震子가 復하니 이 上經天道의 三卦는 天德의 發生함을 象한 것이다. 下經地道의 六卦는 陰卦가 陽體의 震子를 受하여 乾陽物과 坤陰物의 陰陽合德함을 象한 것인데 恒卦가 下經의 九德卦의 首가되어 乾九五에 天地 日月 四時 聖人이 있고 恒에 또한 天地 日月 四時聖人이 있으며 乾에 大明終始가 있고 恒에 終則有始가 있으며 乾은 天이 되고 恒은 恒久不已하는 天地의 道가되니 이는 天行健의 理에 依하여 乾卦의 天과 恒卦의 風行雷健이 合하여 天의 運行하는 天行健의 象이 되어 天道는 乾에서 發源하고 天道의 運行은 乾坤의 長男長女인 雷風恒에서 行하는 까닭이다. 恒은 天道가 地上에서 運行하는 象이 되고 損益에서 天地가 絪縕하여 天施地生하고 胎宮의 困井水에서 入胎하고 巽에서 庚實하여 成形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九德卦에는 一定한 度數가 있으니 乾으로부터 履까지는 十이오 履로부터 謙까지는 六이오 謙으로부터 復까지는 十이오 復으로부터 下經의 恒까지는 九이며 恒으로부터 損益宮까지는 十이오 損益宮으로부터 困井宮까지는 六이오 困井宮으로부터 巽까지는 十이오 巽으로부터 다시 乾에 圜하기는 九이니 上下經이 모두 十 六 十 九의 順으로되고 下經의 恒과 巽의 中央에 있는 損益과 困井은 偶數로 되어 地道의 陰宮의 象이 되니 이는 陰體의 生生組織의 理에 依한 것이다.

 

第一段은 卦象과 易簡의 德과의 關係를 말한 것이니 履는 上下의 禮가 定하여 德의 基가되니 基는 사람의 立하는 곳이오 사람은 禮가 있은 然後에 또한 世에 立하는 것이며 謙은 謙虛 自卑하여 스스로 人의 下에 處하므로 德의 柄이 되니 柄은 物을 執持하는 權柄인데 坤에 柄의 象이 있는 것은 物을 含載하는 까닭이며 復은 仁의 根着한 것이므로 德의 本이 되니 本은 草木의 根柢이며 恒은 恒久하므로 德의 固가되니 固는 貞固하여 事의 幹으로 되어 恒久할 때에 恒久하고 變化할 때에 變化하는 것이며 損은 忿欲을 去하므로 德의 修함이 되니 修는 不完한 것을 修理하는 것이며 益은 天施地生하므로 德의 裕가되니 裕는 乾의 陽氣를 受하여 生養함이며 困은 剛이 揜하므로 德의 辨이 되니 辨은 昏昧한 中에서 光明을 辨別하는 것이므로 光明의 뜻이며 井은 物을 養하여 窮치 아니하므로 德의 地가되니 地는 萬物을 無窮히 生養하는 母體이며 巽은 陰이 陽에 順하여 物을 作成하므로 德의 制가되니 制는 裁制하여 形을 成함이니 곧 成德의 뜻이다.

 

第二段은 卦德을 말한 것이니 履는 說하여 天을 應하므로 和氣로써 地에 立하는 것이오 謙은 天道가 下濟하므로 天은 尊하되 그 光明은 下施하여 光한 것이오 復은 乾의 光明이 來復한 것이므로 陽이 微小하되 物의 善不善을 明辨하는 것이오 恒은 恒久하여 已치 아니하므로 恒久하고 變化하고 하여 雜錯하되 厭치 아니하는 것이오 損은 不完함을 修理하므로 先에 難하고 後에 安易한 것이오 益은 乾의 陽氣를 受하여 長養하므로 簡約하여 施設치 아니하는 것이오 困은 陰陽이 相遇하므로 困窮하되 通하는 것이오 井은 水가 地中으로부터 出하여 無喪無得함으로 그 處所에 居하되 遷하여 人에게 及하는 것이오 巽은 物을 制하여 形을 成하는 變通의 象이 있으므로 天氣가 地에 下來하여 稱衡施命하는 象이 있고 天氣가 下하여 地에 入하여 坎象이 되므로 坎의 隱伏의 象이 있고 巽도 또한 伏象이 되는 것이니 이는 柔가 剛에 順하는 象을 말함이다.

 

第三段은 德을 踐行하는 것이니 履는 和氣로써 禮를 行하는 것이오 謙은 謙虛함이 禮의 實이 되는 것이므로 謙虛한 君子가 能히 禮를 制하는 것이오 復은 一陽이 光明을 陷하고 있으므로 스스로 知함이 明하여 善에 復하는 것이오 恒은 恒久하므로 德이 一하여 二三치 아니하는 것이오 損은 스스로 修하여 患難을 除去하므로 害를 遠히 하는 것이오 益은 日進하여 그 益함이 方이 없으므로 利로움을 興하는 것이오 困은 身은 窮하되 道는 通하여 怨함이 있지 아니한 것이오 井은 地中의 水가 內로부터 外에 遷하여 坤의 方外하는 義가 있고 또 水가 遷하여 物을 利하는 義가 있으므로 義를 明辨하는 것이오(辨은 光明의 뜻) 巽은 申命行事하여 物을 變通하는 것이므로 權을 行하여 稱平케 하는 것이다.

이 九德卦는 易簡의 德을 말한 卦이므로 易簡치 못한 人世의 憂患을 解決하기 爲하여 特히 이 九卦를 擧한 것이다.

 

七. 易不可遠 章

易之爲書也不可遠 ... 其出入以度 ... 道不虛行

이 章은 第一章의 爻象動乎內吉凶見乎外하는 乾坤易簡의 뜻을 承한 것이다.

易의 書됨은 易簡의 道를 行하려는 사람으로서는 可히 遠치 못하는 書이다. 易의 道는 一陰一陽하여 자주 遷하고 變動하여 居치 아니하고 六虛를 周流하니 六虛라 함은 天地人三才의 空間으로서 六爻를 象한 것이며 上下함이 常이 없고 剛柔가 相易하여 可히 經常歸結한 典要를 삼을 수가 없고 오직 變하는 대로 나가는 것이니 이는 爻象動乎內의 뜻을 말한 것이다.

 

一陰一陽하는 道는 그 出入함이 度數로써 하고 內에서 爻象의 動한 것이 外에 吉凶으로 見하여 사람으로하여금 戒懼할 줄을 알게 하고 또 憂患과 事故에 明하여 悔吝過咎의 辭를 明白히 繫하니 이는 吉凶見乎外의 뜻을 말한 것이다. 易에는 敎訓을 施하는 師保는 없으되 慈愛하는 父母에 臨함과 같아서 그 辭는 愛情으로 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그 辭를 좇고 그 方向을 揆度하건대 典要를 삼을 수 없는 속에 이미 經常한 度數가 있으니 진실로 易을 遠치 아니하여 父母에 臨하듯 하는 사람이 아니면 一陰一陽하는 易簡의 道가 六虛의 天地人 三才로 行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八. 原始要終 章

易之爲書也原始要終 ... 若夫雜物撰德 ... 二與四同功而異位 ... 其剛勝邪

이 章은 第一章의 爻象動乎內吉凶見乎外를 이어 功業見乎變聖人之情見乎辭의 뜻을 말한 것이다. 上章에 旣有典常의 辭가 있으므로 이 章에는 典常으로써 말한 것이다.

 

易의 書됨은 始를 推原하고 終을 歸結하여 質을 삼으니 質은 材의 뜻이오 이는 彖을 말함이며 六爻가 서로 雜錯한 것은 이는 그 時와 物이니 物은 爻에 等位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初爻는 事物의 始이므로 아직 隱하여 知하기가 어렵고 上爻는 事物의 終이므로 모두 나타나서 知하기가 쉬우니 이는 本末로서 本은 一이 木의 下에 있어 木의 根柢이오 末은 一이 木의 上에 있어 木의 枝杪이며 그러므로 初爻의 辭는 準擬하고 上爻의 辭는 成하여 終하는 것이다.

 

卦에 雜錯한 文을 成하고 德을 相交相接하고 是와 非를 辨하고 하는 것은 그 二三四五의 中爻가 아니면 具備치 못하니 이는 初爻는 地下에 있고 上爻는 天上에 있어서 用事하는 位가 되지 못하고 그 二三四五의 中爻가 用事하는 까닭이다. 二三四五의 中爻를 觀하면 存亡吉凶에로 歸結됨을 坐하여 可히 知하는 것이며 知한 者는 그 彖辭를 觀하면 爻의 뜻의 太半을 得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中爻에 互卦의 象이 있고 互卦를 모두 歸結하면 乾坤旣濟未濟의 四卦가 되어 乾坤은 易의 始가되고 旣濟未濟는 易의 終이 되니 乾坤은 天地이오 旣濟未濟는 日月의 往來이다. 이는 天地가 位를 設하고 易이 그 中에 行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中爻에 二와 四는 모두 陰位로서 事功은 同一하나 位가 異하므로 그 善의 生함이 同一치 아니하여 二는 譽가 多하고 四는 懼가 多하니 이는 二는 生의 中心이므로 譽가 多하고 四는 生으로부터 上升하여 成의 中心에 近하므로 成否未定한 位에 있어서 懼가 多한 것이다. 柔의 一陰一陽하는 道는 成의 中心에 遠하면 利치 못하므로 二爻는 六二보다 九二가 善한 것이오 다만 그 異各치 아니함을 要함에는 六二의 柔中을 用하는 것이며 柔는 成의 中心에 遠하면 利치 못하고 近하면 利하므로 成의 中心에 近한 四爻는 六四보다 九四의 懼가 甚한 것이다. 三과 五는 모두 陽位로서 事功은 同一하나 位가 異하여 三은 凶이 多하고 五는 功이 多하니 이는 貴와 賤의 等位가 不同하여 五는 成의 中心에 있으므로 事功의 成함이 多하고 三은 生으로부터 上升하되 下位에 있어 成의 中心에 達치 못하므로 陷함이 多한 것이다. 三爻는 成의 中心에 達함에 그 柔는 力이 弱하여 危하고 그 剛은 勝하므로 九三보다 六三의 危가 甚하며 五爻도 또한 柔는 危하고 剛이 勝하여 六五보다 九五의 功이 勝한 것이다.

二四의 譽懼와 三五의 凶功은 爻의 變化에 나타난 功業이오 또한 辭에 나타난 聖人의 情이다.

 

九. 易三才 章

易之爲書也廣大悉備 ... 道有變動 ... 文不當故吉凶生焉

이 章은 第一章의 乾確坤隤하여 사람에게 易簡을 示하고 爻는 이것을 效함이라 한 뜻을 承한 것이다.

易의 書됨은 地와 같이 廣하고 天과 같이 大하여 모조리 具備하여 天의 一陰一陽하는 道가 있고 地의 一陰一陽하는 道가 있고 人의 一陰一陽하는 道가 있으며 三才를 合하여 陰陽의 兩으로한 까닭에 六爻가되니 六이라 함은 他가 아니라 三才의 一陰一陽하는 道이다.

 

他는 人과 也로 되고 也는 女陰의 象이니 六은 用六의 象이 되고 用六은 곧 女陰을 用함이다. 그런데 여기에 말한 六은 三才를 兩한 六이오 用六의 六이 아니니 그러므로 六者非他라 한 것이다.

 

一陰一陽하는 道에는 變과 動이 있으므로 爻라하니 變動이라 함은 第一章의 變在其中 動在其中의 뜻이며 爻에 等位가 있으므로 物이라 하니 物은 前章의 時物 撰物의 뜻이며 物이 相雜하므로 文이라 하고 文이 當치 못함이 있으므로 吉凶이 生하니 이는 第一章의 吉凶見乎外의 뜻이다.

 

十. 殷之末世 章

易之興也其當殷之末世 ... 是故其辭危 ... 此之謂易之道也

이 章은 第五章의 作易者其有憂患의 뜻을 承한 것이다.

易의 興함은 殷의 末世와 周의 盛德에 當하니 周文王과 殷紂의 일에 當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辭가 危하여 危懼하는 者는 平坦하게 하고 慢易하는 者는 傾側하게 하니 그 一陰一陽하는 道가 甚히 大하여 百物이 廢치 아니하고 物의 終하고 始하고 하는 際를 懼하여 그것이 異各치 아니함에 歸結케 하니 이가 易의 一陰一陽하는 易簡의 道이다.

 

十一. 易簡險阻 章

夫乾天下之至健也 ... 是故變化云爲 ... 八卦以象告 ... 將叛者其辭慙 ... 失其守者其辭屈

이 章은 上下編의 뜻을 通論하여 乾坤易簡의 道로써 愛惡 遠近 情僞의 情을 調和하는데 情은 그 辭에 나타난다 함을 말한 것이다.

易와 險이 相反하고 簡과 阻가 相反하니 乾은 天下의 至健이므로 德行이 恒常 易하되 或 險에 陷하는 일이 있고 坤은 天下의 至順이므로 德行이 恒常 簡하되 或 阻에 塞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能說諸心이라 함은 上編 十一章의 探賾索隱의 뜻이니 說은 喜함이오 心은 事物에 出入하여 探索하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므로 賾隱한 것을 探得하여 心에 喜한다 함이오 能硏諸侯之慮라 함은 上編 十一章의 鉤深致遠의 뜻이니 硏은 窮究함이오 侯는 斥候로서 險阻를 檢行하여 伺候함이오 慮는 未來의 深遠한 일을 謀하는 것인데 乾坤의 易簡에는 險阻가 있으므로 그 險阻를 檢行伺候하는 深遠한 慮를 窮究한다 함이다. 上編의 十一章에는 蓍龜가 天下의 吉凶을 定하고 天下의 亹亹를 成한다 하고 이 章에는 乾坤의 易簡이 天下의 吉凶을 定하고 天下의 亹를 成한다 하니 그러므로 易의 占筮蓍龜는 모두 乾坤易簡의 神道를 말하는 것이다.

 

變化와 云爲는 變과 辭이오 象事는 象이오 占事는 占이니 이는 象變辭占의 四道를 말한 것이다. 易簡의 道를 行하면 變化하고 云爲하고 함에 善한 事에 祥瑞가 있고 事를 象하여 器를 制함을 知하고 事를 占하여 未來를 知하는 것이니 이는 天地가 位를 設하여 易簡으로써 사람에게 示人하고 聖人은 坤의 簡能을 成하여 亹亹한 業務를 이루고 사람은 善事로써, 鬼는 占으로써 深謀遠慮하여 險阻를 伺候하고 百姓은 簡能의 效에 參與하여 日用하는 것이다.

 

十二. 八卦以象告 章

八卦以象告는 第一章의 爻象動乎內의 뜻이오 爻彖以情言은 第一章의 吉凶見乎外의 뜻이니 이는 吉凶은 情으로써 生하는 까닭이며 剛柔가 雜錯하여 居하면 情의 相互作用에 依하여 吉凶이 나타나는 것이다. 變動以利言은 第一章의 功業見乎變의 뜻이오 吉凶以情遷은 第一章의 聖人之情見乎辭의 뜻이다.

 

易은 日月의 運行하는 時이므로 六十四卦는 모두 時이오 時의 속에는 事와 位와 德이 있어 情이 서로 作用하는데 事에는 愛惡가 있고 愛惡가 相攻하여 吉凶이 生하니 家人九五의 交相愛하여 吉함과 같음이오 位에 遠近이있고 遠近이 相取하여 悔吝이 生하니 蒙六四에 獨遠實하여 吝함과 같음이오 德에는 情僞가 있고 情僞가 相感하여 利害가 生하니 咸九四의 貞吉하여 未感害함과 같음이다.

 

物의 聚分에 分과 失은 凶이오 聚와 得은 吉이며 聚分過程에 過度히 發動하면 悔가 生하고 過度히 收斂하면 吝이 生하니 悔는 反路의 象이오 吝은 吝嗇하여 陰에 掩蔽됨이다. 此乃遠近相取而悔吝生也

 

相攻 相取 相感이라 함은 모두 爻位의 比와 應으로써 말함이오 爻位는 또한 遠近으로써 말하여 比應하면 近하고 比應치 아니하면 遠함이니 그러므로 下文에 홀로 近而不相得하는 遠近을 擧하여 吉凶 利害 悔吝을 말한 것이다. 近而不相得의 例는 情의 相感의 最强한 男女의 爻에 많으니 巽股와 陽의 比하는 小畜九三의 夫妻反目과 漸九三의 夫征不復과 家人九三의 家人嗃嗃는 모두 比近하여 不相得함이오 巽股와 陽의 應하는 大過九四의 有他吝과 恒九四의 田無禽과 姤九四의 包無魚와 鼎九四의 折足凶과 小畜初九의 復自道와 家人初九의 閑有家와 中孚初九의 有他不燕은 모두 應近하여 不相得함이다.

 

將叛者其辭慙一節은 后天의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說言乎兌 成言乎艮의 言辭를 말함이오 說卦의 神也者妙萬物而爲言者也의 節과 相照한다.

 

叛은 半과 反으로 되어 心을 半하여 離叛하는 뜻이오 易의 情은 辭에 나타나고 있으니 將且 叛하려 하는 者는 良心을 가리우고 있으므로 그 辭가 慙愧하여 明朗치 못하고 中心에 疑惑을 품은 者는 心에 主함이 없으므로 그 辭가 枝하여 一貫치 못하고 善을 行하는 사람은 聞達을 求하지 아니하므로 그 辭가 簡約하고 躁動하는 사람은 自讚하기에 急하므로 그 辭가 多하고 (躁는 足과 喿로 되어 足은 動함이오 喿는 鳥群鳴이니 擾動頻急의 뜻이라) 善을 誣陷하는 사람은 隱然히 陰害하는 心을 懷하므로 그 辭가 浮하여 橈動하고 그 操守를 失한 者는 劣等感에 사로잡히므로 그 辭가 屈하여 스스로 低卑하는 것이다. 이 六辭는 情의 發露한 것으로서 上編第三章의 辭有險易辭也者各指其所之의 뜻을 承한 것이니 慙枝寡多游屈이 곧 辭의 所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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