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괘와 잡괘 (한장경 저 역경대의)

|

 

序卦와 雜卦

 

易經의 序卦에는 成의 時運의 象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雜卦의 末에 大過互卦圖가 있고 大過互卦圖의 理에 依하여 天地圜行圖가 生하고 天地圜行圖의 理에 依하여 正易八卦圖가 生하니 이는 正易八卦圖가 雜卦에서 나온 것이다.

 

序卦雜卦에는 오직 上下經의 首卦인 乾坤과 咸恒이 그 位를 變치 아니하고 있으니 이는 乾坤은 天地의 大父母로서 그 位가 永遠히 變치 아니하는 까닭이다. 文王八卦圖는 艮에서 終하는데 乾卦彖辭에는 艮에서 首出庶物이라 하여 艮에 首의 象을 말하니 艮은 成終成始하는 곳이라 이는 先天이 艮에서 終하고 后天이 艮에서 始하여 乾卦에 先后天의 象이 있음을 말함이오 坤卦彖辭에는 「先하면 迷하고 後하면 主를 得한다」 하니 先迷는 先天月이오 後得主는 后天月이라 이는 坤卦에 先后天의 象이 있음을 말함이다.

后天乾坤의 世에 乾坤의 뒤를 繼할者는 다시 先天序卦의 屯蒙需訟師比이오 곧 雜卦의 比師臨觀屯蒙이다. 先天序卦는 乾坤의 속에서 次世代의 씨인 屯蒙을 生하고 需訟에서 天地가 開闢하고 師比에서 水土가 安定하니 이는 天地創生의 象이다 后天은 天地가 이미 創生되었으므로 水潮南天水汐北地의 變化가 있은 뒤에 比師에서 水土가 平하고 臨觀에서 神道의 敎가 行하고 屯蒙에서 사람이 奠居하는 것이다. 雜卦에 「蒙은 雜하고 著한다」 하니 雜이라 함은 坤文言에 「玄黃이라 함은 天地의 雜함이라」 하고 玄黃은 震子의 象이라 雜하고 著한다 함은 初筮의 象인 震子가 着生함이오 水瀆의 變化中에서 오직 天地의 雜인 玄黃한 震子가 着生하는 것이며 雜卦라는 雜字도 天地의 아들인 震子의 着生한다는 뜻을 表한 것이다.

 

雜卦에 下經咸恒의 位가 變치 아니하니 咸恒은 后天의 始이므로 正易八卦圖의 東西를 運行하는 艮兌도 咸卦를 말함이오 正易에 「萬曆而圖兮咸兮恒兮」라 한 것도 咸恒이 后天의 始임을 말한 것이며 正易의 十二月 二十四節에 和와 化를 말하니 和는 咸卦의 天下和平이오 化는 恒卦의 天下化成이라 이도 또한 咸恒이 后天曆의 始임을 말한 것이다.

 

六十四卦中 困井革鼎은 先天에서는 生長卦로서 胎宮이 되었는데 后天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后天에는 胎宮이 없고 胎宮의 位에 小過 中孚 豊 旅의 四卦가 있어 모두 收斂하니 小過中孚는 日月合朔하는 卦이오 豊旅는 日月盈虛하는 卦이라 그러므로 小過中孚豊旅는 收斂作用을 行하여 다시 胎宮이 되지 아니하고 다만 每月에 晦하여 合朔하고 盈하여 虛하고 하는 作用을 行함을 象한 것이다.

 

 

 

 

 

 

文王八卦圖와 大過互卦圖

易經의 終에 雜卦가 있고 雜卦의 終에 大過互卦圖가 있으니 이는 大過卦로부터 夬卦로 變하는 過程에 陽이 天地를 圜行하는 象이 있음을 表한 것이오 이것을 圖로써 表하면 다음과 같다.

 

大過는 兌巽의 合한 生長卦이오 兌巽의 合한 生長卦는 또한 胎宮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大過의 속에 互卦乾이 潛하고 있으며 이 乾은 下卦의 巽股에 入하여 上卦의 兌澤을 決하고 后天의 열매로 되는 것인데 그 巽股에 入하여 兌澤을 決하는 過程에 姤 漸 頤 歸妹 夬의 互卦의 象과 水火通明하는 旣濟未濟의 運行하는 象이 나타나서 雜卦의 大過以下의 姤 漸 頤 旣濟 歸妹 未濟 夬의 八卦 次序가 된 것이다.

 

大過는 天氣가 地를 向하여 下하는 象이라 天氣가 地를 向하여 下하면 陽이 消하는 것이므로 乾의 下劃陽이 消하고 陰으로 變하여 巽風이 되니 乾天과 巽風은 天風姤이다.

 

巽風이 다시 下行하면 巽의 中劃陽이 消하고 陰으로 變하여 艮山이 되니 巽風과 艮山은 風山漸이다.

艮山이 다시 下行하면 陽이 全消하고 坤이 되는데 大過卦는 陽의 受胎하는 象으로되고 陽의 消하는 것이 아니므로 艮山은 坤地가 되지 아니하고 一陽反復하는 天行의 理에 依하여 艮山이 反易하여 震雷가되니 艮山과 震雷는 山雷頤이오 頤로부터 陽이 다시 天을 向하여 上升하는 것이다.

 

震雷가 天을 向하여 上升하면 陽이 長하는 것이므로 中劃의 陰이 消하고 陽으로 變하여 兌澤이 되니 震雷와 兌澤은 雷澤歸妹이다. 그런데 震雷가 上升하려 하면 반드시 地上에서 水火가 衝擊하고 火가 下로부터 推進한 然後에 能히 上升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震雷가 兌澤으로 上升하는 過程에는 下에서 火氣의 推進하는 水火旣濟가 있어 頤에 次하는 것이다.

 

兌澤이 다시 上升하면 또 陰이 消하고 陽으로 變하여 乾天이 되니 兌澤과 乾天은 澤天夬이다. 그런데 兌澤이 上升하려 하면 반드시 天上에서 水火가 通明하고 火의 引力이 上引한 然後에 能히 上升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兌澤이 乾天으로 上升하는 過程에는 上에서 火氣가 上引하는 火水未濟가 있어 歸妹에 次하는 것이다.

 

乾陽이 兌澤을 決하여 夬가 되는 때에 달의 裏面인 臀이 乾陽을 接하여 后天달이 되는 것이니 이가 后乾의 象이다.

大過互卦圖는 또한 바로 文王八卦圖가 后天을 生하는 順序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文王八卦圖로써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乾은 太陽의 象이오 巽은 달의 體의 象이라 乾陽의 氣를 巽陰의 달에 施하면 天風姤가 되는 것이다.

 

乾의 陽氣를 巽陰에 施함에는 艮陽을 用하는 것이니 巽陰과 艮陽은 風山漸이오 漸에 婚姻의 象이 있는 것은 이 까닭이다. 艮陽이 巽陰을 合하면 震子를 施하는 것이니 艮陽과 震子는 山雷頤이다. 艮陽에서 發施되는 震子는 兌澤과 合하는데 震子가 陰體의 兌澤으로 넘어감에는 반드시 水火가 通明하고 火가 推上하여 絶處逢生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頤의 다음이 火의 推上하는 水火旣濟가되고 그 然後에 震子가 兌澤을 合하는 雷澤歸妹가 되는 것이다. 震子가 兌澤을 合하면 兌澤의 속에는 乾陽이 決入하여 澤天夬가되는데 兌澤이 天으로 上함에는 또한 水火가 通明하여 火의 上引하는 火水未濟가 있은 然後에 決入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歸妹의 다음이 未濟가되고 그 다음이 夬가 되는 것이오 夬는 臀이 乾陽을 向하는 后天의 달이 되는 것이니 이는 夬의 反易한 것이 곧 后天달인 天風姤인 까닭이다.

 

夬姤는 胎宮卦인 困井의 父體이오 胎宮에서 后天달이 出生하는 것이므로 夬姤에 后天달을 生하는 象이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易經의 終인 雜卦에 大過互卦의 理를 말하여 文王八卦圖에 后天달을 生하는 象이 있음을 表한 것이다.

 

大過互卦圖는 陽의 消長의 理로써 天地를 順行하고 天地圜行圖는 八卦의 變象으로써 天地를 逆行하니 이는 陽의 消長은 四時循環의 理에 依하므로 順行이 되고 八卦의 變象은 生長에서 成으로 變하는 것이므로 逆行이 되는 것이다. 大過互卦圖의 理에서 天地圜行圖가 生하고 天地圜行圖에서 正易八卦圖가 生하니 그러므로 易經의 最終篇인 雜卦는 正易八卦圖를 生하는 基礎가 된 것이오 이는 序卦大過에서 陽이 陰中에 入하여 后天의 象인 下經首卦 咸이 되고 天地가 圜行하여 生長時運이 成의 時運으로 變하여 咸卦象인 艮兌가 東西를 運行用事하여 正易八卦圖가되어 大過卦와 天地圜行圖가 모두 后天의 咸卦를 生하고 있는 까닭이다.

大過互卦圖가 天風姤에서 始하는 것은 달의 變化에 天風姤의 象이 있음을 因함이니 先天의 달은 風天小畜에서 달의 體가 始生하여 巽의 一陰이 天을 向하였는데 小畜으로부터 序卦三十六卦에 天風姤가 있어 后天달의 生하는 象이 되고 姤는 巽의 臀이 天을 向하니 그러므로 天風姤의 달은 后天의 始가되고 雜卦에 后天時運의 到來를 象한 大過互卦圖가 姤에서 始한 것이다.

 

 

 

 

 

 

 

 

 

 

 

And

미래의 정치 사부정치 (한장경 저 역학원리총론)

|

 

第三節 未來의 政治

■ 師傅政治

 

長의 時運은 遠心運動의 形態로서 사람이 神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神作用이 行치 못하고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므로 生長競爭이 激甚하여 善惡이 뒤섞여 있고 勢力의 强한 者가 勢力의 弱한 者를 壓制하고 政權을 잡고 民衆의 위에 臨하고 있으므로 政治形態가 君主政治이든지 資本主義의 政治이든지 또는 民主政治이든지를 不問하고 모두 權力政治로 되어 權力으로써 民衆을 支配하는 것이니, 이가 長의 時運에 行하는 政治의 特徵이다. 權力政治의 制度下에서는 스스로 權力을 잡은 者가 權力없는 民衆을 支配하게되어 옛적의 君主政治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近世의 所謂 民主政治라는 것도 實際에 있어서는 權力이 民衆을 支配하는 政治이오 民衆을 國家의 主權者로 모시는 政治가 아니니, 이는 長의 時運의 人間들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의 生生事業을 遂行한다는 생각보다 그 權力을 自由意志대로 行使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近世 所謂 共産主義라는 政治가 나와서 資本主義 打破를 標榜하고 資本主義下의 植民地를 解放시킴에는 一助가 되고 있었으나, 宇宙의 唯一神을 알지못하고 唯物思想에 빠져서 階級獨裁로써 民衆을 奴隸化하는 政治를 行하니 이 政治는 人間社會에 絶對로 容納할 수 없는 虐政이다.

政治라 함은 國家最大의 生生事業이오 어느 執權者의 私利를 爲하는 일이 아니니, 그러므로 爲政者는 民衆의 飢寒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飢寒함과 같이 여기고 民衆의 病苦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病苦함과 같이 여긴 然後에 國家의 生生事業이 完遂되는 것이니, 이것은 蜂蟻社會의 例로써 알 수 있는 일이다. 蜂蟻社會는 그 多數한 群衆이 自然스럽게 和合하고 各自가 모두 그 職務에 忠實하여 秩序가 自然스럽게 維持되고 있으니, 이는 그 社會의 統率者가 바로 父母이오 社會의 構成員이 모두 子息으로서, 父母와 子息의 한 家族이 한 集團을 이루어, 社會員이 곧 한 家族인 까닭이다. 人間社會는 그렇지 아니하여 數多한 家族으로써 構成되고 있으므로 그 統率者는 自己의 家族과 他人의 家族을 差別하여 民衆을 自己의 家族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權力으로써 支配하며, 그 民衆이 또한 그 統率者를 自家의 尊長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하나의 權力支配者로 여겨서, 이에 蜂蟻社會와 같은 自然스러운 秩序가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神은 萬物의 創造主로서 사람의 始祖가 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神을 모시고 神의 뜻에 合하는 나라를 세우면, 神은 비록 無形하되 스스로 그 나라의 天祖가 되고 世界人類는 모두 天祖一神의 밑에서 一祖의 子孫이 되어 한 家族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蜂蟻社會의 形態이다. 그러나 神은 無形하므로 사람들이 神을 모시는 것은 精神의 面을 말함이오 政治는 아니며, 成의 時運에 實際 政治를 行함에 있어서는 神의 뜻을 받들어 行하는 師傅制度가 行하는 것이다.

師傅制度라 함은 師傅가 政治의 任에 當하여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쳐서 知識을 열고 天性을 여물게 하고 國家의 政治機關은 權力機關이 아니라 한 敎場으로 되어 있고 國家機關에 從事하는 官員은 모두 師傅의 일을 行하고 民衆들은 權力에 支配되는 것이 아니라 師傅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制度이다. 萬物中에서 言語와 文字를 使用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니, 사람은 言語로써 複雜한 意思를 表示하고 온갖 事物의 狀態를 說明하며, 文字는 모든 言語를 記錄하여 空間과 時間을 超越하여 遠隔地에서도 서로 意思를 傳達할 수가 있고 몇 千百年前의 일이라도 文字의 記錄에 依하여 그것을 알수 있는 것이며, 사람에게 言語와 文字가 있는 까닭에 師傅의 道가 行하여 人間의 오랜동안의 經驗과 硏究를 弟子에게 傳達하여 能히 그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師傅와 弟子와의 關係는 비록 他人과 他人의 사이라 하더라도 그 恩誼가 父母子息間의 사이와 같아서 師傅는 그 弟子를 子息과 같이 생각하고 弟子는 그 師傅를 父母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니, 師傅制度下의 政治는 蜂蟻社會의 形態와 거의 同一한 作用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비록 蜂蟻社會와 同一치 아니하다 하드래도, 저 長의 時運의 權力支配의 社會와 같이 師傅가 弟子를 欺瞞하거나 搾取하거나 陰害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理에는 成의 時運에 師傅政治가 行하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의 先天時代에도 사람을 敎育하는 師傅의 道가 없는 것은 아니나 先天의 敎育은 長의 時運에 處하여 사람들의 心氣가 外向하여 外的知識의 獲得에 專力하고 있으므로 사람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사람을 여물게 하지는 못하여, 비록 敎育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天性에 쭉정이가 많고 알맹이가 적은 것이다. 成의 時運에 神道가 行하는 師傅政治의 行하는 社會에서는 唯一神을 大始祖로 모시고 國家의 統率者인 師傅는 神과 相通하여 父母의 格이 되고 全社會가 한 家族으로 되어 和平한 生活을 享有하는 것이다.

 

註 ●易學의 父子 國家 師傅의 道

天地自然數로써 構成된 河圖洛書 및 正易數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으니, 河圖의 數는 五行이 相生으로 되어 父傳子受의 象이 되므로 父子의 道가 되는 것이오, 洛書의 數는 五行이 相克으로 되어 勢力으로써 相勝하는 象이 되므로 勢力으로써 權力을 爭奪하는 國家의 道가 되는 것이오, 正易의 數는 五行이 克成으로 되어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象이 되므로 師傅의 道가 되는 것이다.

五行의 相克과 克成은 그 象이 同一하면서 그 運行은 判然히 相異하니, 相克이라 함은 長의 時運에 自身이 자라기 爲하여 他를 克하여 自身의 자라는 資料를 삼고 自身이 被克者의 世代繼承者가 되는 것이오, 克成이라 함은 成의 時運에 他를 克하여 그 天性을 여물게하고 他로 하여금 克者의 世代를 繼承하는 者로 삼는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하고 克者의 生長을 圖하는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神이 사람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때이므로 그 克이라는 것은 克者의 生長을 爲함이 아니라 他를 克制하여 그 天性의 속에 神作用을 갈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河圖五行의 相生하는 生의 時運에는 父子의 道가 行하고, 洛書五行의 相克하는 長의 時運에는 國家의 道가 行하고 正易五行의 克成하는 成의 時運에는 師傅의 道가 行하는 것이다. 또 互卦에도 父子 國家 師傅의 道의 象이 있으니 互卦라함은 卦中의 人位를 相互하여 卦를 지은 것이다. 三劃卦는 中劃이 人의 象이오 六劃卦는 三爻와 四爻가 人의 象이니 그러므로 六劃卦에서는 三爻四爻와 中劃인 二爻五爻가 모두 人의 象이오 이 人象의 爻를 모두 中爻라 한다. 中爻의 四劃을 相互하여 三四五로써 上卦를 삼고 二三四로써 下卦를 삼아서 六劃卦를 만든 것이 곧 互卦이니, 그러므로 互卦는 天地間에 人類가 生生하고 있음을 象한 것이며 互卦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는 것은 趙柯汀의 學說에서 取한 것이다. 序卦의 首에 있는 乾卦의 互卦는 亦是乾卦이오 坤卦의 互卦는 亦是 坤卦이니 이는 第一世 乾坤이 第二世 乾坤을 生하는 것으로서, 父母가 子女를 生하여 世世生生하는 父子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序卦의 終에 있는 旣濟卦의 互卦는 未濟卦이오 未濟卦의 互卦는 旣濟卦이니 이는 第一世 旣濟가 第二世 未濟를 生하고 第一世 未濟가 第二世 旣濟를 生하는 것으로서, 서로 그 子를 바꿔서 他子로써 자기의 繼承者인 子를 삼아 「子를 바꿔서 가르친다」는 師傅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乾 坤 旣濟 未濟의 四卦를 除하면 그 나머지의 六十卦는 모두 父子가 隱藏하고 子女가 홀로 出現하니 이는 子女가 父母를 離脫하여 國家社會로 進出하는 것으로서 國家社會의 世世傳承하는 道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生長成은 生하기를 父子의 道로써하여 父傳子受하는 相生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자라기를 國家의 道로써하여 勢力의 相勝하는 相克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여물기를 師傅의 道로써하여 스승이 弟子를 敎育하는 克成으로써 繼承하는 것이다. 序卦는 互卦의 象으로써 이 세 가지를 말하니, 사람의 生함은 父子에서 始하는 것이므로 父子의 道인 乾坤으로써 首를 삼은 것이오, 父子가 있으면 國家社會가 組織되는 것이므로 屯卦에서 建侯한 以後는 國家社會의 道로써 序한 것이오 國家社會가 있으면 모든 對待를 調和하기 爲하여 師傅의 道로써 易簡의 理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師傅의 道인 旣濟 未濟로써 序卦를 終한 것이다.

And

일월운행법칙이 정치의 원리이다 (한장경 저 역학원리총론)

|

 

日月運行法則이 政治의 原理이다

 

師傅政治는 神道에 依한 政治인데, 神道라함은 天에 있어서는 日月의 運行이 틀리지 아니하는 것이 神道이오 人間에 있어서는 聖人의 設한 宗敎가 神道이다. 佛敎 儒敎 基督敎는 세 聖人이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친 宗敎이니, 先天時代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고 있으므로 神道로써 部分的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宗敎는 設할 수가 있으나 神道로써 全民衆을 다스리는 政治는 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政治도 또한 神道로써 行치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며, 神道政治는 日月運行의 法則을 取하여 그 原理를 삼는 것이니, 正易에「日月의 政이 至神至明하다」하고 또「雷風이 位를 正하고 政을 用한다」하여 日月의 運行을 政이라고 한 것은 日月에 政治原理가 있다 함을 말함이오, 이는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한 까닭에 日月의 運行法則이 바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인 政治原理가 되는 것이다. 正易은 近世에 우리 나라의 易學者 一夫先生이 天의 啓示를 받아서 지으신 글로서 長의 時運의 學問인 易經을 後繼하여 成의 時運에 日月軌道의 變化하는 象을 豫示한 學問인데, 正易의 理에 依하면 長의 時運에는 萬物이 자라서 閏餘가 生하는 象이오 日月의 行度에도 스스로 閏餘가 生하여 지금의 一歲日數가 三百六十五日餘가 되니 一歲의 日數는 三百六十日이 正한 것이므로 지금의 每歲 五日餘는 閏數로 되는 것이다. 日月行度에 閏餘가 있으므로 日月의 行度가 서로 差錯하여, 몇해에 한번씩은 閏日이나 閏月을 두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日月行度의 不正이라고 하며 日月이 不正하므로 萬物의 자라는 것도 또한 正치 못하여 人口가 過度히 膨脹하고 人心이 바르지 못한 일이 많은 것이다.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周天度數는 꼭 三百六十度가 되고 一歲의 月數는 꼭 十二月이 되고 一月의 日數는 꼭 三十日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日月의 正한 것으로서 一夫先生이 正易에 發表한 后天正曆이다. 后天正曆은 閏이 없고 正하므로 그 時運에는 陰陽의 調和에 依하여 人口가 自然調節되고 萬物도 여물어서 그 形이 正하고 人心도 正을 向하고 政治도 이 日月正度의 理를 取하는 것이다. 日月正度라함은 易經에 말한 易簡(이간)이오 易簡이라 함은 易字가 日과 月로써 構成됨과 같이 太陽이 陽氣를 달에 發施하여 物을 創始하는 作用이 極히 平易함을 易라하고, 簡字가 月로써 構成됨과 같이 달이 太陽의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作用이 極히 簡約함을 簡이라 하는 것이며, 易簡은 곧 日月의 政이다. 日月이 天地間을 運行하여 晝夜와 四時를 生하고 萬物을 生成함이 至公無私하여 萬物은 日月의 運行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生하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자연스럽게 여물면서 스스로 富有하고 스스로 日新하니 이가 日月의 易簡의 政이다. 저 愚妹無知한 鳥獸虫魚도 能히 交精의 作用을 行하여 生長成하고 아무 意識이 없는 草木도 能히 交配의 機能을 다하여 生長成하고 있는 것은 모두 日月易簡의 政에 依한 것이다. 사람이 政治를 行함에 發施하는 政令이 平易하여 人心에 合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는 易가 되는 것이오, 承受하는 民心이 簡約하여 政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은 簡이 되는 것이니, 政令과 民心이 서로 感應하여 生物들의 生成作用과 같이 自然스럽게 行하는 것이 곧 易簡政治이다.

先天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天性이 여물지 못하고 政治가 未成品인 人間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行하고 政治를 行하는 者가 日月易簡의 理를 알지못하니, 그러므로 政治가 險阻하기만 하여 千章萬條의 法令을 만들고 複雜多歧한 機構를 만들며, 나라의 爲政層이 權力을 잡고 모든 法令을 만들고 있는데 實際로 나라의 法令을 어기는 者는 無勢無力한 民衆이 아니라 法令을 만든 者가 도리어 自身의 만든 法令을 어기는 것이 거의 大部分이니, 이 까닭에 政治가 易簡치 못하여 日月의 運行法則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日月의 運行法則을 原理로한 后天政治는 어떠한가하면 后天에는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본받아서 師傅가 弟子를 가르치듯 하면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뿐이오 아무런 虛僞 私慾이 없으므로 지금과 같은 千條萬項의 强制法令이 必要치 아니하고 複雜盤錯한 權力機關이 쓸곳이 없고 온 世上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 곧 政治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釋迦 孔子 基督의 세 聖人의 敎는 日月의 運行하는 神道에 依하여 設한 것이오 后天에는 三敎의 合一된 새 宗敎가 나와서 사람들을 敎育하는데, 敎育과 政治는 元來 한가지이오 두가지가 아니며, 또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하였으므로 敎育과 政治가 모두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原理로 하고 있어 또한 敎育과 政治가 그 本源이 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夫先生의 提示한 正曆의 原理가 바로 后天宗敎와 后天政治의 原理로 되는 것이오, 이 正曆原理에 依하여 새 宗敎와 새 政治가 實行되면 이 世上에는 지금 사람들의 意思의 全然 想到치 못하는 社會가 展開되는 것이다.

And